하루키가 또 한번 전달하는 잃어버린 감성의 복원
이 단편 소설집이 출간되기 직전에
발간된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비해서 이 책에 대한 광고는
그다지 많은 곳에 대대적으로
뿌려지지 않았었다.
경색된 한일관계도
어쩌면 출판계가
요란 벅적하게 이 단편집을
홍보할 여지를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쩍 나온 이 책을
발견하자마자, 사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이 대단한 무엇인가를
전달하거나 지식의 보고 인양
위대한 깨달음을 전달할리는 없다.
그렇지만, 대단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잊고 지낸 것이나,
내게서 사라져가는 것,
있어야만 보다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내 안으로부터 되살려준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실제의 자기 자신,
그리고 인간으로서 주어진
본연의 조건들을 맹렬하게
자기 바깥으로 던져버리고,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이라도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아직 온전한 인간이었을 때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우리 안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라졌는지도 모른 채로
살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8-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 소개: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여자 없는 남자들"은 하루키의
여러 소설들을 관통하면서
항상 나오는 우리 안에 순수하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본능,
그리고 상처 입기 쉬운 인간성의
온전하게 약한 부분들이 무엇들인지를
착실하게 여러 변주들을 통해서
다시 보여준다.
우리 중 누군가가 보낸 꿈과 야심,
저 멀리로 간 순수한 사랑,
상처 주고 입었던 기억들을
어떻게 다시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를
여러 다른 이야기들을
통해서 점점으로 이야기한다.
이 글이라는 것이
결국 그 글을 쓰는 사람
자체를 치유하는 것은 되지 못해도
읽는 사람은 치유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가능성을 보여주어,
다시금 나로 하여금
이렇게 글을 쓰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 글이 하루키가 인세를 받은
출판사의 매출을 올려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래의 자신을
계속 잃어가면서 살아온 사람이
바로 이 글을 마주 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좀 더 당신답기 위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강해지기 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글을 읽고 나서 나에게 남는 여운은
내가 보낸 사람들 그리고
나를 보낸 사람들이 생각해보자면
마냥 냉정한 사람들만은
아니었다는 진실의 단서들이다.
나 역시 매정한 척 뒤돌아 섰지만
구구절절이 밝힐 수 없는 나름의
이유를 갖고 헤어졌었고,
상처 입지 않은 척해보았지만
실제로 상처 입은 곳을 잘 싸매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자각이 나온다.
이 정도의 자기 회복과 복원이
내부적으로 이뤄진다면
이 단편 소설은 씌여진 값을
톡톡히 해냈음에 틀림없다.
그럼으로써, 다시 돌아오는
큰 변화가 없는 하루를
약간은 다른 시간으로 만들어준
책이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