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은 왜 일본 SF애니가 실사화에 실패해왔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제 글에는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보신 뒤에 읽어 주십시오.
앞 서의 글에서 "인랑"을 거의 불모의
영화처럼 감상한 내용을 적었었다.
그 와중에 비교를 했던 영화는 "마녀".
왜 이 영화에는 그렇게 호의적으로
평가를 했는지, 그 이유를 적어도
적어야, "인랑"같은 영화보다
왜 다른 영화가 더 재미있는 영화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를 알릴 수 있기 때문에
아래처럼 적어본다.
일단, 영화 "인랑"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1. 흥행 공식(우수 감독, 전적, 기술 우위)에
사로잡혀 극화의 완결성 등 품질 고려 부족
2.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원작의 핵심과
잘못 바꾸고 보충한 영화만의 실책(서사 및
논리의 붕괴, 낯선 멜로 케미컬)
3. 배우의 비주얼과 이미지에 집중
4. 제작/배급사 경영진의 조급증
이 네 가지로 요약된다면
"마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1. 한국 영화에 장르적으로 새로운 극화를
제시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 품질에 집중
2. 주연 배우 선정에 높은 경쟁률을 통과한
신선한 이미지의 실력 중심의 배우를 배치
(이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을 강조)
3. 일본 SF 애니메이션의 성공을 가져온
핵심적인 매력 요소를 여럿 차용해서 이를
극단화하여 "강화된 클리셰"를 제시함
4. 배우의 비주얼보다 전반적인 역할의
효과성에 보다 집중
이 네 가지로 요약이 된다.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도전자라든가
이전의 실패를 극복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지닌 감독과 제작진, 배우가
더 높은 영화적 성과를 이뤄내기도 한다.
예술도 매너리즘에 빠지면 구해낼
길이 없어진다. 이전의 성공 요인을
더 이상 손을 댈만한 구석이 없는
일종의 보증수표처럼 생각하면,
잘못 쓰인 액면가가 실제 가치와는
동떨어진 금액이 된다.
"마녀"에는 흥행 보증 수표 같은 것은
없었다. 연기력이 안정적인 조연인
"박희순"과 "조민수"등의 배우가
참여해서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가는
이 극화에 안정감을 주고, 현실감을
부여했다는 점을 빼놓고는 이 영화가
과연 성공작이 될 것인가를 미리
감잡을 수 없는, 모험으로 불릴만한
요소가 "인랑"보다 더 많았다.
A. 일단 어느 정도 검증받고 성공한
원작이라고 할만한 작품하나에 올인하지
않았다. 대신, 각종의 일본 SF애니에서
독자의 관심을 유도했던 흥미로운
부분의 "클리셰" 성격을 더 강화시키면서
이를 극단화하여 "클리셰"같이 느껴지지
않는 신선한 장면으로 변화시켰다.
허세에 가득히 찌든 초능력자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면서, 여기에 더해서 훨씬
더 짜증스럽고도 기분 나쁜 문답을 주고
받게 만들어 관객으로 하여금, 높은 수준의
복수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갖게끔 만든
악당 진영의 모든 배우는
일본 애니가 실사화했을 때, 그 애니 속에
있었던 극단화된 "허세". 기분 나쁘기
그지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캐릭터"
를 현실에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일본과 기타 각 국가의 배우를 넘어섰다.
이 허세와 여기에 맞서는 얼핏
외형이 부실한 주인공이 맞대응하듯
보여주는 허세는 사무라이와 사무라이에게
눌려 살았던 일본의 역사가 현실에서는
야쿠자와 일반 시민의 관계로 남아 있기에
일본 대중에게는 계속 환영받는 방식의
자극이다. 이것을 글로벌화하거나
국내 현지화한 연기가 일본 애니를
전체 또는 부분으로 차용한 영화가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을 낳는다.
일본 애니의 캐릭터를 성공적인 실사화로
끌어낸 감독 중에 하나는 "쿠엔틴
타란티노"다.
"킬빌"의 1, 2편에서 관객은 일본 애니에서
너무 많이 나와서 지겨울 악당 캐릭터를
만나지만, 실사화된 이 캐릭터는 실상 이
지겨움을 넘어서는 극단화된 자기중심성과
"허세"를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분명히 "마녀"의 제작진은 "킬빌"스러움도
충실하게 학습하고 배워서, 내용 속에
적지 않게 반영했을 것 같다. 때문에
"킬빌" 속의 일본 여고생 복을 입은
캐릭터 하나가 그대로 뽑혀 나온 듯이
등장한다. 물론 복장은 다르지만서도.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비밀병기 그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순진하고
착한 여고생이 실상 엄청난 무력을 지니고
적과 전면전을 벌이는 중요한 무기라는 등
엄청나게 다른 극단화된 이미지가 하나로
붙어 흥미진진함을 유발하는 "클리셰"를
일본 SF애니의 성공요소의 엑기스로써
가져와 극단화시키고, 제대로 형상화하여,
온전히 재미있게끔 실사 영화화하고, 이를
성공적인 흥행까지 연결시켰다.
그렇다면 실패한 SF애니 실사화와 성공한
실사화의 차이점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애니는 아무래도 영화보다는 좀 더 많은
부분에서 독자가 상상한 것을 결합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제공한다.
설명이 모자라고 애니 속 인물의 형상화가 다소 잘못되었더라도 독자와의
의식/무의식적인 협조는 애니의
모자란 설명에 거의 자동적인 보충을 한다.
결국 이 보충이 현저하게 적게 일어나는
"애니가 실사화된 영화"에서 배우는
오버해서라도 원작 애니가 나타내지 않고, 못하는 인간성을 제대로 보충해주어야만
한다.
전반부에선 주인공이 현실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여고생처럼 느껴졌고,
가족 구성원의 일부처럼 느끼게 만들어
일종의 동일시에 성공했기에 후반부에는
일거에 변신하여 허세 가득한 악당을
압도적인 능력으로 제거하는데 관객이
얼떨떨한 후련함을 새롭게 경험하게
만든 것이 흥행의 핵심이었다.
그러니까, 관객이 보충하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 보충하여 신선하게 느끼게
만든 영화속 캐릭터가 관객이
애니의 즐거움과 실사화된 영화 속에서의 즐거움을 연결하도록 해서, 흥행을
성공시켜 준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여기에 미장센과 액션의 방식, 동선 등의
다른 요소도 많은 디테일로 표현되어야만
애니가 전달한 만큼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장소를 한정하면서 그 디테일을
어느정도 충족시켰다. 물론 이 부분은
인랑과 마녀가 같이 공유하는 부분이다.
B. 관객을 기대하게끔 만든 배우는 기존의
연기자가 아니라 검증받지 않았지만
공개 "오디션"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나온 "괴물 신인"이었다. 그리고
이 배우가 배역 선정에 대한 "매너리즘",
흥행공식에 사로잡힌 충무로 시스템에
색다르고도 파격적인 바람을 불어넣었다.
오랜 기간 프로모션이나 스튜디오가
오디션을 통해서 공개 모집하여 선정한
인물은 통상 이미 오래전에 미리 낙점이
되어 있고, 오디션 자체가 요식 행위임에도
대중의 관심을 끌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선선정", "후 합리화"의
비합리적인 선정의 반복 이어 왔다.
인생은 확률 게임이라 부르는 다수가
흥행 확률이 높은 배우를 먼저 찾아내고,
그다음에 그 과정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심지어는 흥행
확률이 높은 배우라기보다는 그저
회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낙점하고
밀어주기로 한 배우를 홍보하는 한
방법이 공개 오디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다미"는 설사 위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된 높은 경쟁률의 오디션이
요식행위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될 이유가 전혀 없을 정도로,
"야누스"적이고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이 이미 내용을 알고도
계속 관심 있게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성의 연기력을 가진 이 작품에
200% 이상 부합되는 배우였다.
분명히 이 배우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익히 보고 들어
알고 있었는데, 후반부로 가던 중에
갑자기 "마녀"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 내 무의식마저 깜쪽같이 속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알고도
당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초반의 성실하고 착하고 귀여우면서도
살짝 미스터리 한 느낌의 "구자윤" 배역을
연기할 때, 어쩌면, 감독이나 제작진은
그에게 실제 이 배역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 배우가 변화할 것이라는
기척조차 읽히지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마치 관객석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급변하고, 그 반전의 이유
"우리가 걔를 찾은 게 아니라 걔가 우리를
발견한 거야"로 나타나는 이야기에서
관객 중 누구도 "말도 안 돼"라고 여기지
못하고, 꼼짝없이 놀란 상태에서 "납득"
하고 "압도당하는" 것은 꽤 오랜 시간
우리나라 영화가 해내지 못한 커다란
반전이었다.
이런 의도를 갖고 배우를 찾기 위해
1,500명을 검토했을 거라는 납득이
밀려왔고, 감독과 제작진의 의도와
200% 부합되는 한국 영화 사상 없었던
배우를 하나 또 발견해낸 것은 또한
쾌거다. 마녀 2편과 3편 등으로
시리즈물이 진행되면서도 이 같은
놀라움이 계속 연장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반전의 극단성을 제대로 보여준 것을
보자면 "김고은"같은 배우가 점유할
수 없는 고퀄 반전 연기력의 영역을
"김다미"라는 신인이 혜성처럼 나타나
꽤 오랫동안 점유할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C. 초반에 죽어가는 아이를 데려와서
키워낸 두 부부와 함께, 선의를 갖고
농장의 가축을 키우며, 공부도 틈틈이
해서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특별한
능력의 소녀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깊은 효심과 연결된 자연스러운 연기를
부모 역을 연기한 두 중견 배우와 함께
하나 모자람 없이 해 낸 김다미는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게끔 만들었다.
이건 이성의 영역에서 나온 눈물이 아니라,
온전히 감정의 영역에서 나온 눈물이었다.
그를 키워준 어머니의 치매가 악화되고,
"구자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은 그저 여러 극화에서 볼 수 있는
뻔한 스토리, 그렇다. "클리셰"다. 그런데,
그 뻔한 스토리에서조차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물론, 이 자연스러움을 배가하는데 있어
조연의 훌륭한 연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는, '실은 “구자윤"이
유도해서’ 오디션에 추천하게끔 하고,
그 자신의 아버지를 악당에게 죽도록 한
역할을 의도치 않게 하면서 일방적인
희생자가 되었지만, "자윤"의 급변 전
단계에서 관객이 거의 아무런 미심쩍은
기척을 느끼지 못하게끔 만든 연기
레시피는 "고명희"를 연기한
"고민시"로부터 효과적으로 나왔다.
제작진이 이 전반부와 후반부의 격차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 시나리오와 콘티를
숨기고 배우에게 전반부의 시나리오만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 정도다.
이것이 영화 산업의 의외성이라고 느꼈다.
보증수표화 된 흥행 공식에 충실한
영화만이 큰 흥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을 잘 이해하고 감동시키는
영화만이 흥행작으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원래 바른 방법이다.
그 때문에서라도 "인랑"에 대한 도전을
"김지운 감독님"도 하고자 했던 것이고,
그 모험은 위험을 경감시키는 차원에서
흥행 보증 수표 연기자 급의 정우성 씨나
강동원 씨, 한효주 씨를 캐스팅하고
그 외 여타 수준급의 조연을 포함한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진용을 갖추게 했다.
그러나 결여되어 있었던 것은
A. 인랑을 포함한 일본 애니의 성공 요인을
어떻게 변환시켜야 실사화된 영화의 성공
요인으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분석.
B. 변환의 측면에서 적합한 대중의 관심사
C. 안타깝지만, 한국화 된 인랑의 주연에는
어쩌면 우리가 잘 아는 배우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잘 아는
배우의 "익숙한 연기"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
물론, 정확한 내막까지는 잘 모른다.
단지 "마녀"를 보게 되면 "인랑"의 실패는
좀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유사한 선택을 한 사례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김다미씨는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 여배우상을 받았다. https://www.google.com/amp/m.chosun.com/news/article.amp.html%3fsname=news&contid=2018072701080 글로벌에도 통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