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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Sep 26. 2018

<공작>-소문과 실제

충분한 개연성이 있으나 너무 낭만적인 결말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성과를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부정해야 하거나, 갖고 있는

가치를 낮추거나 말 그대로

빌고 구걸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다르게 말하면 나로부터

어떤 성과를 구하는 사람은

그만큼 나에게 그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갑을 관계고

비단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봉건주의적 관계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던지

관계 설정에 따라서

때로는 비애가 가득하게

때로는 의기양양하게

벌어진다.


항상 갑이 되고자 하면

결국 그러한 입장에

처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빌 게이츠가

되었든 얼론 머스크가

되었든 팀 쿡이든

소비자에게는 분명히

을이다. 다만, 동등하거나

지배력을 가진 슈퍼 을이다.

을의 모범 표준은 그 같은

창업자나 사업주이다.


그래서 사업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최소한 비굴한 을로 자신을

만들지 않으려고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결과적으로라도

그는 갑과 제대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야만 한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보수 정권 또는 정당의

비합리성을 공격하는

정치적인 공박을 떠나서

좀 더 본질적인 "갑과

을의 관계"를 다룬

메시지이며, 절대로 "갑"

에게 쫄지 말라는

"호연지기"를 설파한다.


설사 총이 머리를 겨누고

생명을 위협당해도

먼저 준비한 카드가

있어야만 하고, 이 카드를

활용하면서 꼭 결과를

만들어 내는 쪽으로

"갑"을 유도하고

"을"이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메시지다.



극화가 모티브로 삼은

총풍 사건의 진실 여부는

아직 확실하게 가려지지

않았다. 웹을 뒤져보면

오랜 시간 동안의 소송이

확실한 결론으로 마무리

되진 않았다. 영화는

미진한 판결이 일어나는

부분까지 연장해서 거론하진

않았다. 그곳에는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하고 본질이

흐려진 판결이 쌓여있다고

보는 것 같다.


영화와는 달리 현실의 내용은

확실하게 김대중 정권

이전의 정권에서 일한

우리나라의 보수 정권의

안기부에서 북한을 매수해서

북풍을 일으키려다 실패하고

결국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결과로 이어지는

그렇게 매끈한 기승전결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주인공인 흑금성의

실제 인물은 2016년에야

국가 보안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다는 판결에

따른 오랜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옥한 상황이다.


영화 속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공작원으로서의

그는 국가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사명으로 알고

활동했던 사람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면, 북핵에 관련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북한까지 들어가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그것은

돈보다 중요한 더 큰 목적이

없이는 시도하기 힘든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원한다는

방식으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실 "국가"가

"국민"으로 이뤄진 공동체임을

망각한, 안기부라는 조직

자체의 존속과 그 조직의

상부 조직과 최고 권력자의

이익만을 위한 것으로

변질이 되어 있었다.


영화 속의 상황은 그렇게

나타난다. 흑금성은 "호연지기"를

지니고 사람 하나의 목숨쯤

크게 망설이지 않고

없앨 수 있는 북한 독재 정권의

독재자와 그의 끄나풀들과 마주하여

협상을 하고, 남북 사업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임무대로

북한 내의 핵무기 시설의

유무를 밝혀 내고자 한다.


흑금성의 이런 유능함은

실상 소수의 이익을 위한

도구이자 기능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상관

역시 주어진 임무를 수행코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만 꺾이고

말았다. 어쩌면 둘의 갈림길은

입장 차이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긴장 가득한

장면을 운과 실력과 기지로

넘어가는 흑금성의 모습은

조직의 대의명분을 꺾은 채로

조직의 존속만을 위해

활동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받는 순간, 맹렬하게 저항하는

투사의 모습으로 바뀐다.


계속 "인랑"이라는 작품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부분은, 이 지점이다.

원작 "인랑"의 주인공은 조직의

존속을 위해서 인간적인

본성과 자신의 내적인

신념을 모두 버린 채

목숨을 구걸하는 여자를

죽이는 결론을 내는데

반해서,


우리 영화 "인랑"의

주인공은 여자를 살리는

쪽으로 자신을 내던졌음에도

무엇을 잃었는지, 아니면

무엇을 얻게 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결론을 내렸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것은

사랑도 정의도 아닌 그저

인간의 본성이 생각보다 선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잠깐 내비친 결론에

불과했었다.

 

흑금성은 실제의 첩보전에 속한

스파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존속이 아닌 자신의 신념과

상대방의 "신의"를 잃지 않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의 자막

내레이션에서 그는 그 같은

그의 결정에 의해서 2010년에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2016년까지

옥살이를 하게 된 것으로 나온다.


우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스파이 활동을 해서 성과를

냈었다. 그 성과는 더 확고하게

커질 상황이었고, 조직으로부터

큰 인정을 받을 상황이었다.

북한 내에서의 광고를 수단으로

북핵의 유무에 대한 증거를 밝혀낼

목적이 이뤄질 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상대편 후보가 당선된다면

많은 것을 잃어버릴 자신이

속한 안기부의 존속과

소수의 정치인의 이익을

위해서 전면적인 공격 성격의

대남 무력 도발을 북한이 당시 집권

세력의 안위를 위해 돈을 받고

해주기로 결정한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북쪽의 고위 관리와

자신의 상사와 남측의

높은 지위의 인물이

자신이 만나던 북한 고위급과

접촉해서 벌이고자 하여,

김정일까지 합의한 일이 가진

예상 외의 취약함을 김정일에게

다시 제대로 알려주고,

그 과정에서 금액 일부를 횡령한

인물도 찾아 말 그대로

일러바친다.


그럼으로써, 국지전 성격에 가까울

정도의 북으로부터의 공격이

벌어지는 것을 막고, 자신이 진행해온

대북 사업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찾는 일을 그대로 진행하려

한다. 임무에 끝까지 충실하려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정체가 북한 체류 중에 발각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지만, 결국

그와 함께 협상의 맞상대로서

남북의 역사적인 경제 교류를

통해 범민족적인 “성과”를

이루려는 순수한 목적을

가진 이와의 인간적인

교류 때문에 살아 돌아온다.


물론, 실제의 이야기는

이처럼 드라마틱했을 리도

없고, 긴박감이 넘치는

서스펜스물이었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마지막

서로가 준 선물인

가짜 롤렉스 시계와

호연지기 넥타이핀을

차고 마주한 두 남자의

시선과 악수는 찡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 감동은 근래 보았던

어떤 영화에서도 쉽게

경험하지 못한 가슴의

울림이었다. 중량급의

연기자 2명이 이 같은

찡한 감동을 유도해낸

것은 정치색이나 현실 속

이기심 같은 것을 떠난

한민족으로서의 동지애,

대의에 대한 두 남자의

지향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제대로 형상화한

그 두 사람의 연기력이

그만큼 출중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날조된 역사와

이상한 공산주의로 버티는

비정상적인 국가라는데

극중 모두가 동의하면서,

이같은 내용이 영화 속에서

반복된다.


반공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어찌 되었든 부정할 수 없는

기치이다. 그러나 그 기치

아래 자신의 이익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왜곡한

"반공"은 악랄하고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북한의

독재자와 결탁해서

자기 이익을 지키는 데에만

활용되는 수단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지금은

이런 왜곡된 "반공"의

폐해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왜곡된 "반공"에 근거한

논리는 계속 나타난다.


앞서 말한 갑을 관계에서

호연지기를 지닌 흑금성이

제대로 알게 되었던 것은

공산주의자로 프레임을

씌운 후보자가 당선되는 것을

북한쪽에서조차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프레임과는 별도로,

체제유지가 목적인

북한의 김정일은 단지

돈이 필요했을 뿐.


그것을 막고자 취했던

안기부의 활동이 제대로 된

"반공"이 아니었던 이유는

그저 먼저 이익을 움켜쥔

사람이 계속 더 이익을

보고자 해서 만든 "반공"

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로서 이 영화는

훌륭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분명히 다시

제대로 짚어야 할 부분은

국내외의 첩보전이라는

것은 분명히 이렇게

낭만적이지 않으리란

사실이다.


마지막 장면의

감동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그랬었으면 하는 판타지다.

이것을 실제로 오해하는

것은 오히려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몰이해에

불과하다.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은 되도,

현실 자체가 되기는

어렵고, 현실 그 자체가

되어서도 안된다. 물론,

현실을 만들어 내는 매개체가

될 수는 있지만서도.


솔직하게 생각해보자면

흑금성은 김정일과 그의

해외 사업 보좌진의 이기심과

물욕을 적절히 활용했었다.

그와 교감을 나누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그 인물조차도

사실은 그 "이익"을 벗어난

다른 더 커다란 목적을 위해

행동하지는 않았으리라.


어쩌면 "흑금성"조차도

주어진 임무와 사명에 충실한

인물에 다름없었을 것이다.

단지, 너무 엉뚱한 명령에

자신의 존재감과 사명감이

일제히 부정당하는 것에

커다란 반발감을 느꼈으리라.

모순된 명령에 대한 부하의

반발감은 그가 유능하고,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그로 인해 하나 더 남은 메시지라면

일을 시킨 이에게 조직에서

부여한 사명감과 인정해준

존재감을 부수면 그 조직의

보다 빠른 궤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경구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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