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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y 12. 2019

*무비 패스 <논-픽션>-극화에서 다뤄진 우린 누구인가

일상 속의 세세한 변화를 메인 스트림 영화에 담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브런치패스의 이번 시사회장인

압구정 CGV는 이색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일단 입구를 찾기

쉽지 않고, 영화관과 표를 사는

곳이 이분화되어 있다.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게 아웃 소싱해서

티켓팅 기능도 알아서 하도록 맡긴

것이다. 시대의 변화이고, 어떤

이유였을지도 감이 잡힌다.


(이 영화는 이같은 변화를

대화 속에서 경험하고 떠올리며

일면 당황하면서도 나름 능수능란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는 이전에는

이국적이고 멀리 있는 다른 세상에서

글로벌화된 소비 방식이나 삶을

적지 않게 공유하고 있는 의외로

가까운 나라로 나타난다. 상이한

결혼 문화와는 별개로.)


그리고서 약간 헤매다 보니

앞부분을 조금 놓쳤다. 그런데

엄청나다고 느낄 정도로 대사가

많은 이 영화에서 놓친 초반은

사실 이해하기에 큰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더구나 이 앞 장면에서의 전자출판 편집장

과 오랜 지인인 소설가 사이의 대화의

중요 포인트는 뒤에서 수 번 반복 된다.


 중요하게 다뤄진 주제 중 하나는

유럽, 그중에서도, 일부일처제의

모순을 다루길 좋아하는, 프랑스의

이전과 지금의 문학이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이다.

이른바 “결혼 제도의 모순”.


오직 둘만의 성적인 결합이 항구적이기

어렵다고 기정 사실화한 프랑스 등의

일부 국가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거하는 연인에게도 실제 결혼해서

살아가는 부부에게 주는 것과 같은

혜택을 제공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출산율의 상승을 이뤄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프랑스 정부의

현재 정책을 지지하는 공익성을 일부

갖고 있는 건전한(?) 영화다.

물론 그 외의 나라에서야 근본이 없고

문란한 삶을 관음적으로 엿보게 하는

성인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자출판사 편집장은 아내 모르게

회사 내의 젊은 양성애자인 디지털 출판

마케팅 기획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부인(우리가 익히 아는 배우인 ”줄리엣

비노쉬”)은 그 같은 불륜이 벌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 또한 6년간 뻔히 잘 알고

지내는 소설가와 불륜을 지속해오고 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바람을 핀다

이 소설가의 아내는 자제력이 모자란

동성애자 정치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남편을 무시하며 지내다, 남편이

바람을 누군가와 피우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음에도 뻔히 아는 그의 정부를

만나서도 아무 탓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눈다.


이것이 자극적이고도 충격적이거나

어떤 반전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것이

이 영화가 타국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끌어가는 이유 같았다.

통속적이면서도 자극적이지 않다.

노출도 심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더 사실적이다.


제목을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소설이 다룬 ”논-픽션”에서 거론된

실존 인물의 삶을 소설가에게

도용된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해야 하는가와

소설가의 삶 속에서 그와 연결되고

소설가에게 체화된 인물의 스토리는

결국 소설가의 일생의 일부이고,

이를 글로 써서 출판하는 것은

그의 자유이고 그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논쟁이다. 이것이 나름

프랑스에서는 핫한 주제인 것처럼 보였다.


통상적으로 인터넷 시대 전엔 누구의 삶을

참고하거나 모델로 해서 글을 쓰는 것은

공공연히 무상의 재료로 인식이 되었었다.

누구나 익히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

그의 동의 없이 지인에 대한 글을 작가가

쓰는 것은 의례 용인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블로그 글 하나조차 세계를 향한

전자출판이나 다름없다. 간과할 수만은

없는 포인트가 영화에서 언급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는 지적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소설가와 바람을 피워온 실존 인물을

소설가가 연막을 치기 위해 거짓 진술한

케이블 채널의 저급 토크쇼의 진행자가

아니라 실제의 그녀라고 공공연히 밝히는

것은 가정의 공적인 붕괴를 낳을 수 있다.

이 진실은 공익을 해치게 되기에

밝혀져서는 안 된다고 그려진다.


최초에 이같이 실제하는 저급한 인물과의

성적인 교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사실을 다룬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없었던 글의 내용 때문에 글의 출판을

거절했던 편집장은 후반부에는

전자 출판사를 매각하고자 하는

창업주의 성적 취향이 그 채널 토크쇼의

진행자였기 때문에 다시 출판하기로

결정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파국이 하나 나오게 된다.


그것은 반전이면서도 강하지 않은

이야기의 꼬임이다. 남편의 불륜에도,

자신의 불륜 상대자인 소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도용했음에도 화를 내지

않았던 편집장의 부인이 돌변해서

분노한 이유는 남편이 초반에 이 소설가의

글의 출판을 거절했던 이유가 자신의

이야기가 써져 있다고 무의식 중에

느꼈던 것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이었다.


밝혀진 사실이 남편의 신념이

실존 인물, 그것도 자신이 생각키에

저급한 인물을 소설 속에 그려낸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을 묘사했음에도

남편이 이를 자신으로 인식하지 못했거나

자신을 다소 저급한 인물과 비슷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그제서야, 그 소설가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화를 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는 쓰지 말라는 경고의 발언을

하게 된다. 뒤늦게 원본 카피의 해악을

깨닫는 것이다.


결국 결론은 함부로 극화 속에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에 대해 쓰는 것에

따라오는 폭력성, 인물의 왜곡,

진실의 훼손을 경계하는 것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그것을 중요한 메시지로 포착하기에

내용은 광범위하고 스토리 믹스는

다양하다. 숨 돌릴 새가 없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는 “팩션”을

쓰기 위해 “줄리엣 비노쉬”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다고 소설가가

극 중 편집장의 아내이자 중년

배우 역할을 맡은 “줄리엔 비노쉬”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크하게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찾아보겠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할리우드의 마블 캐릭터 중에

관객과 극화의 벽을 오가는 “데드풀”을

떠올리게 하지만, 임펙트가 안느껴진다.

수다스러움 속에 아쉽게도 핵심메시지가

숨어버렸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의 삶이 향해야 할

행복한 결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나오는 정말

중요하다 싶은 메시지는

이들 사이에서 나온 아이, 아기를

키우기 위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배우자에 대한 부정을

알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넘어가면서

가정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편집장은 일탈을 했었지만

상대자가 권력의지를 가진 양성애자로서

자신을 이용만 하려고 하는 것임을

간파하고 말끔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단호함을 보이면서,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이 멋진 것임을 상기 시킨다.

유혹 당하고 실수할 수는 있다고 해도.

그러나 그런 실수부터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란 성찰은 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다른 문화권이니까.


이 영화는 그 어떤 디즈니 영화보다도

아이를 키우기 위한 책임감 있는 부모의

역할의 중요성을 직설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언어로 프랑스의 일상 속에

젖어들 수 있는 동시에 타국에도

그 핵심만큼은 전달될 수 있도록

말하고 있다.



사족을 하기에 일부 적는다.


1.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읽었던 책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에

대한 내용이 배우들의 대사 속에서

나온다. 우리는 결국 아마존이나

구글, 이베이 등에 분석된 우리의

데이터 베이스로 분류되어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당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비관이 언급된다.


결국 글이라는 것도 팔리기 위해

쓰인다면, 이 같은 흐름과는

무관하게 갈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2. 상기의 주요한 주제 2가지

외에도 이 영화는 다른 무성한

주제들을 나열하듯이 쏟아붓는다.


나름의 독서나 정보 탐색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생소할

내용이 적잖이 있다.


3. 그럼에도 전자 출판 산업에 대한

소소한 이해와 디지털화하는

세계에 대한 비관과 낙관, 정치에 대한

견해, 여배우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

예술적인 연기와 인기를 위한

드라마 시리즈에서의 연기의 차이

문학이라는 장르가 세계 속에서

점점 잃어가고 있는 관심도 등.


무수한 대화가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었을 만큼 많이 이뤄진다.

이른바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속성의 리뷰이기도 하다.


4. 곳곳에 눈에 띄는 PPL이 나타나는데

- 아우디 자동차

- 애플 아이패드

- 라코스떼

등이다.


5. 어쩌면, 프랑스 영화가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정보의 꼼꼼한

교류를 이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된

관객이라면 얻어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바는 무척 많을 것 같다.


6. 논-픽션에 언급된 실존 인물을

소설 등에 도용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는 내용을 진지한 현실의 이슈로

받아들이게 되면, 일단 내가 해야할 일은

단절된 기억 너머에 있는, 내가 글로

써서 온라인상에 언급한 인물에게

늦게나마 양해를 구하는 연락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 연락할 수가 없다.

연락처를 찾을 방안도 없고, 누구였는지

정확한 신상 명세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일로 연락을 하기를 그들이 원할지도

알 수가 없다.


7. 블록버스터, 마블 시리즈 등으로

점철된 나의 영화 감상문 사이에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하나

넣으니 왠지 서가가 하나의

책으로 인해 조금 풍성해진 느낌이다.


엔드게임을 보고 나서 한구석 마음이

공허해진 분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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