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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l 11. 2019

*무비 패스 <롱 샷>-미국식 코미디의 절정

맞춤형 자막 때문에 더 재미있음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브런치 무비 패스로 이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금기시되는 여러 소재를

다루면서 그 벽을 깨 버리는 통렬함에

기대인 막장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수준이 낮지만은 않은 통찰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코미디지만 극 중의

배우의 연기력은 고개를 끄덕일 만큼의

현실감, 그럼직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미국식 영어가 이렇게 크게 어렵지

않게 들리는 영화도 오랜만이었지만

관객이 잘 번역된 자막과 더불어

잘 들어맞는 영어 대사를 같이 비교하면서

감탄하고 웃는 장면이 적지 않게 나왔다.


잘 된 번역이 더 재미있게 만들어 줬고

영화가 끝난 뒤에 번역가의 이름을 찾아

“역시”라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그 이름은 “황석희”였고, 관객은

영어 표현을 기가 막히게 현대 한국어의

맥락에 절묘하게 갖다 맞춰 번역하는

그의 능력을 자신의 영어 청취

능력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쉽고 재미있는 영어가 사용된 것도

미덕이었지만, 이 엄청난 미국식 욕과

농담, 가십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영화를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능수능란하게 번역한 이의 능력도

뛰어나니 관객의 웃음이 그칠 수

없었던 것이다.


들리는 대로 이해해보려 애썼으나

자막의 매력이 큰 탓에 시선을 돌릴

수 없었고 점차적으로 웃음의 정도도

높아져 갔다. 아마도 그냥 들으려

했다면 웃음은 현저하게 적어졌을 것 같다.


사를리즈 테론의

로맨스 코미디 연기 능력이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약을 하고도 인질이 되었던 공군을 협상으로 구해온 뒤의 장면이다.

마치 물 배우라도 되는 양, 이전에

봤었던 “아토믹 블론드”에서의

어둡고도 냉정한, 레즈비언 스파이의

차가움과 높은 수준의 무술 실력을

가진 액션 배우, 그리고 그 전의

“매드 맥스”에서 보여준 여전사의

이미지를 전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 어두움과 강한 이미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야심만만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정치가로 대선에 나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거의 꾸밈없이

드러내지만, 동시에 변변한 직업도

없는 남자가 그의 사춘기 시절에

유모 노릇을 해줬던 샤를리즈에게

용기를 내서 키스를 하고 발기가

돼있었던 기억을 어필하며 열렬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자 넘어가는

허당스럽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넘어간 정도가 아니라 그로부터의

적극적인 성행위를 주변의 경호원과

참모의 눈을 개의치 않고 행하는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성행위 중에 엉덩이를 때리고

목을 좀 졸라 달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기 때문에, 관객은 이 이미지의

격차에서 오는 상이함 때문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런 역할을 샤를리즈 테론급의

배우가 해내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설득력 있고 재미있었을까 싶었다.


이 영화는 또한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에서 나온

자위행위와 정액에 관련된

코미디를 다른 방식으로

재활용하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제목의 다중적인 의미중에 하나란 것이

또 하나의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1. 영화에서 기억나는 메시지 중 첫 번째는

자신의 신념만 가지고 하고 싶은 대로만

조직에서 일하며 살 수는 없다는

사회 초년생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남자주인공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춘기였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고수하는 역할로 나오는데, 그가 하나씩

태도를 바꾸고, 노숙자 복장 같은 옷에서

정장으로 바꿔 입는 쾌속 사회화 과정은

나름 재미있는 부분이다.

2. 두 번째는 입장이 다른 사람에 대한

엄청난 선입견을 가지고 미워하거나

선을 미리 그어 버리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 삶의 태도인가였다.


남자 주인공은 별 볼 일 없는 민주당 계열의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타협 없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였기에 그와

사랑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노출한다면

이미지가 떨어져 대통령에 선출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그의 신분을 세탁하고

난 후에 제대로 공개 연애를 하자는

대통령 후보의 입장을 공박하고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이별을 선언한다.


그렇지만 그의 흑인 친구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낸 자신이 그가 그렇게

싫어하는 공화당원이고 심지어

기독교인이기까지 하다는 커밍아웃을

한다. 그의 신념 때문에 우정을 잃기

싫어 자신을 감추었단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을 위해 그가 타협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장면에서 또 한 번의 성장이

일어난다.

이 정도의 균형 감각만 갖춰도 사춘기

이상급의 성장이 이뤄진 것일 텐데,

실제 세상을 돌아보면, 우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그만두고, 친구를

버리며, 적지 않은 사람과 등을 돌린다.

그러고서 그것을 또한 어른이 된 것이라

말한다.


3. 세 번째는 판타지임에도 가슴에

약간의 감동을 끌어올려준다.

불의와 타협하면서 권력과 명예와

돈을 얻고, 사랑을 잃는 것보다는

솔직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고

세상과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어쩌면 반대 방향의 역설이다.


대통령 후보자는 자신의 애인이 별 볼 일

없는 사회적 평판을 갖고 있고, 자위행위

후에 수염가에 정액이 튄 동영상을

빌미로 자신의 친환경 정책으로 피해를

볼 벌목 사업의 이권과 연계된

재벌 언론 사주와 전직 대통령에게

협박을 당하여 신념과 사랑을

동시에 포기하면서까지 대통령이

되려 했었다.


그리고 통상 우린 사회에서

적어도 한번 정도는 그 같은 선택을

내리고 사회가 원하는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 어른이란

존재가 진정한 성숙이나 성장과

관련이 없는, 미성숙하고 실제로는

자기 주도권과 의지를 상실한

존재라면 그것이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가 이 영화의

최대 반문이자 메시지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결론이 흐르고,

이 이루어질 수 없을 낙차 큰 사랑은

이뤄지며, 여성 대통령이 선출되는

여권 신장 스토리가 나와서 영화가

정말 표를 많이 팔게 될 거란 예상을

하게 만들었지만, 위의 세 가지

메시지는 남녀노소를 떠나서

제대로 된 의미를 던지는 나름의

수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주관객이 되어

이 메시지를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관객층에는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이 속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웃기보단

이 저급함을 통렬하게 공격하리라.


그들의 롱 샷은 그러한 삶의 자세이고

이 영화와 더불어 웃는 사람의 롱 샷은

보다 균형이 잡힌 삶의 자세일 거라

생각해본다. 사회가 생각하는 어른이

되기보단 사람 사는 사회에 필요한

성숙함을 가진 인간다운 자의 자세.


나라에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거나 듣게 되는데,

왜 어른이 없는지 감상문을 쓰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린 저마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무한대로 투쟁하는 시스템 속에

있다. 이곳은 성장보다는 속도와

네트워크, 위치 상향에 목숨 건

필사적이고도 강박적인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런 현실에서 인간적인 성숙이

끼어들 자리는 한정된다.

그러한 키덜트를 이 영화는

주요 관객층으로 타겟팅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충동적이고 아이처럼

고집 피우고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

내는 모습이 약간 미화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그것이 이 영화가

대상으로 삼은 관객층에게 주는

해방감의 이유 같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관객층에

속해 있는 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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