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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edom plus

<창작의 장벽>-상업성에 의한 검열

이 시대의 창작의 장벽

by Roman

제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 연도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기억해내질 못한다. 하지만,

글을 제대로 쓰고 배운 최초의 연도는

1981년도,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라고

추측한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년도가

그때였고, 좀 더 나아가서 매일매일

그림일기를 쓰게끔 했던 시기가

그때였다면, 있지도 않았던 일을 찾아서

소재를 만들고 그 전날과는 다른 글을

쓰기 위해서 거짓말을 주룩주룩 늘어놓기

시작했던 자발적인 창작의 시작은

그때부터였음이 틀림없다.


꾸준히 써 왔다면, 38년이나 쓴 글은

적어도 내가 쓰는 이 글의 수준보다는

높아야 한다. 그러나 쓸 때마다

나는 내가 실패할 것을 알고 쓴다. 절대로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글의

수준에는 가닿을 수가 없었다.


거의 매번, 실시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정되어 있는 실패를 만나는 글을 쓴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쓰여 있는 글을 보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되돌이표를

보고선 일면 안심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왜 쓰는가? 습관이기 때문이다.

안 쓴다고 고발당하거나 생활비가 나오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필사적으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내 글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기준은 브런치에서

만들어진 브런치 북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스탠더드와 맞을 것 같다.


살기 위해서라도 그 스탠더드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가까운 글을 써야 자부심이 생

겼을 것이고 힘도 더 났을 거다.


하지만, 내 글에 대해 그나마 좋은 반응을

남겨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고, 완독률이 높으며,

시대에 잘 맞고, 많은 반응을 남길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이곳에 있지는 않다.


언젠가 써서 비슷하게라도 가닿고 싶은

글은 "도스토 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소설, "월터 페이터"의

산문처럼, 사춘기에 스스로 글을 쓰게끔

하는 동력을 주고,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주었던 글이다.


일단, 그렇게 쓰기 위한 훈련이나 작업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디지털 시대"라는,

간명함을 기반으로 한 군살이 쫙 빠진 글과

이에 더해서 보다 감각적인 표현과 더불어

부담 없는 무게를 가진 내용만이

간신히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이르러버렸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라도 이상적인 수준에

근접했다면 자부심이 있을 텐데

그조차도 아니다.


어렸을 때의 이상을 가지고 올드한 감각을

좀처럼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하루는 이렇게 실패가

예정된 글을 쓰는 또 다른 하루지만,

그럼에도 이 짧은 글의 말미에 갖고 있는

창작에 대한 "지론"을 남기고자 한다.


이 시대에 창작을 막는 가장 커다란

장벽은 결국 "상업성"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긴 길을 돌아왔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이건 다른 사람이 쓰는 글이건

그것을 재단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팔릴 수 있는 글인가"이다.


특히나 "수익모델"을 제대로 작동시키며

모기업 "카카오"의 상업 어플로 최소한

존속하면서 "수익성"을 확장시키기 위해선

이 공간에 글을 쓰는 "작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일정 이상의 "상업성"을 가진

글을 써나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 "상업성"을 목표로 글을 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팔리는 글이

되기 위해서 그 외에도 다른 가치를

가지고 이뤄져야 할 창작을, "상업성"을

벗어난 다른 가치를 지니고 쓰여야 할

글을, 박멸하는 분위기로 가진 않아야,

역으로 "상업적"인 가치가 더 높은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대중작가로 흔히 드는 예는

언제라도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의 성공은 우리가 쓰는 글이 바뀌는

경향을 가속화했다. 그가 시작했을

시점에는 "허술하기 이를 데 없이

대충 쓰인 것 같았던 글"이 지금의

시대에선 오히려 더 무겁고도 힘 있어

보일 지경이다. 그가 바꾸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처음부터 기준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글이 나오기 위해서 그가

읽었던 미국 소설과 일본의 사소설은

그가 거둔 만큼의 상업적인 성공을

이 시대에도 만들어낼 만큼의 글이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하루키"란

작가의 작풍을 키워냈고, 그가 거둔

"상업성"의 높은 기준을 세우는데

일조했다.


만약, 브런치팀이 좀 더 지혜롭다면,

현시대에 어필할만한 성공작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으로 앞에 세우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브런치에서

성공한 경험을 가진 작가들이 그런

성공의 방정식과 기준에 충실한 글만을

재생산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만약, 더 긴 시간 장기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시스템이나 사람이

있다면, "쓸데 있는 글"의 기준이

"상업성"에만 사로잡혀 있진 않을 것이다.

"상업성"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업성"을 포함하고도 더 큰 범위에 있다.


그런 글을 쓰고자 하는 진지한 작가라면,

아마도 어플에 대고 직접 글을

써서 2~30분 만에 완성된 내용을 떡하니

브런치에 게재하는 경솔한 글쓰기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하루 종일 한편 또는

여러 날에 걸려 여러 편의 글을 쓴 다음에

최소한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글만을

이곳에 올릴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매일같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생업 때문에서 이든지

아니면, 말 그대로의 연습이든지, 좋은

생활의 습관으로 매일 일기를 쓰고 있던지.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아서 잘 팔리는

글이 되는 것은 충분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을 위해서 쓰는 글이라면,

오랜 생명력을 가지긴 어려울 것 같다.


모두가 쓸데없다고 이야기해도

진득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글,

다른 사람이 설정한 쓸데 있음/없음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만의 가치에 입각한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다양성과

더불어 증폭된 창작의 품질을 낳는다.


이전 시대에선 무섭기 그지없었던

사상에 대한 "검열"에 의한 필터링이

이제는 상업 어플을 통한 "상업성" 기준에

의한 통계/알고리즘과 더불어 일어나고

있는 듯해 일면 섬뜩함이 들어 남기는

글이다.


"검열"은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의 자유"를 쇠퇴시키고, 일부

"검열"에 적극 협조하는 소수 그룹만의

성공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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