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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ug 08. 2020

<행복한 얼굴의 가면>

나를 나답게 만드는 나의 가면 이야기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때는 바야흐로 군입대 이후 정신없이 길들여짐을 당하고 있었을 이등병 때였습니다. 물론, 모두가 이 생활을 겪다가 다음에는 부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질서가 있었기에 어렵고 고달파도 견딜 작정을 하고 있었을 때이기도 했었지요.

 

영창도 다녀와봤다는 제 소속 소대의 키 크고 인상도 좋은 병장 한분이 다소 다정스러운 표정과 음색으로 귀여운 자식 이 얘기 한번 들어봐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이야기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기에 일단 귀 기울여 들었고, 그 이야기는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 옛날이야기 중에 말이야, 행복한 가면을 쓴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이야기할 수 있겠군.


되게 부자인 남자가 하나 있었어. 그 돈을 벌기 위해 한 일들이 아주 못된 것들이었지. 그런 것 있잖아 학교에선 일진이 되어서 비리비리한 애들 돈을 빼앗고, 졸업하고 나와선 길거리 장사하는 사람들 자릿세 뺐고, 사기 쳐서 집 뺐고, 돈 받아선 그냥 도망가고. 사기랑 도둑질만 용케 잡혀가지 않고 내내 했지."


마치 그 사람에게 감정 이입이라도 되었거나 그 욕심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빙의라도 한양, 실감 나는 연기까지 더불어서 이야기를 하니 절로 몰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대에서 이야길 들어봐야 뭐, 욕이나 고함 소리가 전부였던 이등병에게 높디높아 보이는 병장의 차분한 이야기는 마치 하사품 같았으니, 아무 말 없이 그저 열심히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병장의 과거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단 상상마저도 하면서요.


"욕심이 디글디글, 탐욕이 줄줄. 아무도 얼굴만을 보아서는 그 사람과 친해지거나 가까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인상을 갖게 되어버렸거든. 악랄하다고 할까? 악질적이라고 할까? 암튼,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모습이 된 거야"


찌푸린 인상까지 연기하면서 나름 자신의 이야기에 스스로 몰입한 듯한 그분의 모습은 점점 더 그 이야기에 저를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모습만 보고서는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할 사람은 없을 거란 것을 알기에, 겁을 주거나 큰돈이나 선물을 주지 않고는 여자의 환심을 얻을 수 없었어. 그런데, 그렇게 사랑 따위 포기하고 살았던 그 남자도 못 견디게 사랑스러운 여자 하나를 알게 된 거야. 세상에 누구도 자기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박이라도 하듯이 사랑 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깡패 두목도 애인이 있고, 단지 강하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랑받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뭐, 이야기의 설정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라고 가까스로 참견하거나 뭔가를 물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라 앉힌 채로 이야기를 계속 들었습니다. 이건 이야기니까 굳이 실제의 삶과 꼭 비교할 필욘 없는 거겠죠.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알게 됨과 동시에 경멸감과 혐오감밖에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애정공세에도 그 남자에게 아무런 호의를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무시하거나 도망만 갈 뿐이었어. 가진 돈이 아무리 많았어도 너무 무섭고 불쾌하기만 했던 거거든."


뭐, 이런 경우에도 인생의 쓴 맛 단 맛 다 본 대담한 여자라면 그 남자를 이용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여자는 나름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진 남자가 아니면 사귀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거나 정말로 무서워 보이는 그 남자를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겠죠.


"절망감에 빠져있던 그 남자는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정말 피부 같이 느껴지는 가면을 만드는 가면 기술자를 만났어. 모두가 이 기술자를 만나서 잘 만들어지고 호감을 사는 인상을 가진 가면을 사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지. 그러니까 그 남잔 그게 가격이 얼마든지 사고 싶어 진 거야."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에서 나오는 가면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많다면야 뭐 그런 가면 하나 정도 사서 덮고 살아가는 게 어려운 일일까요? 어쩌면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실화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값을 치르고 그가 사고자 했던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인상'의 가면이었어. 그 가면은 항상 행복한 모습, 그니까 너무나 원하던, 악마 같은 인상의 그의 얼굴과는 완전하게 다른 그 반대 편의 그 얼굴이었던 거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는 듯한 그런 거 있잖아"


불행 투성이었던 지난날의 제 인생과 군대라는 참으로 불행한 환경에 갇힌 저에게 그런 인상이 무엇일까란 의문이 잠깐 스쳤습니다. 그건 주변의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그 어떤 것도 모자람이 없이 누리고 갖고 살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열등감도 느낄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어떤 친구나 아는 사람의 모습이었지요.


그런 사람의 인상은 절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을 갖게 만들죠. 그래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의 인상은 분명히 있어요. 그런 인상의 가면을 갖게 된다면 그런 사랑은 정말로 더 쉽게 받을 수 있겠죠.


"그 가면을 쓰자마자 아까 말한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전에 알던 그 남자와는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다가갔지. 그 행복한 인상만으로도 호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겠지만, 그의 부유함과 진정으로 그녀를 아끼는 태도는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데 전혀 모자랄 게 없었어. 아니, 그 여자는 어느 순간 그 남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까지 생겨버려"


이 부분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일면 그 남자의 사랑이 이뤄질 것 같아 좋다는 감정과 다른 편에서는 그 여자가 자신이 원했던 그 인상을 제대로 가진 남자가 아니라 가면을 쓴 흉악하고 돈 많은 남자에게 속아 넘어가고 있구나라는 딱한 감정 두 가지가 같이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돈이 많다면 사랑도 살 수 있다는 아주 확실한 예잖아요.


"청혼을 받은 그날 바로 여자는 받아들였고 이 두 사람은 그 어떤 결혼식을 올린 커플들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어. 아, 물 좀 갖다 줘. 목이 다 마르네."


물 한 컵 가져다주던 머릿속에는 돈이 많으면 그냥 성형을 하는 것도 괜찮았을 터이고, 아니면 여자에게 돈다발을 갖다 주어도 좋았었을 텐데, 왜 그 남자는 굳이 가면으로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란 의문이 샘솟았습니다. 가면을 쓰면 땀도 차고, 물집이나 땀띠도 생기고 여러모로 괴로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크어, 시원하다. 근데 말이야 누구나 잘되는 사람 옆에서는 이를 배 아파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지. 그가 가면을 사서 여자를 농락해서 재미를 보고 있다고 느낀 한 사람이 이제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된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 아마도 정의감이 투철했거나 질투심이 강했을 수도 있었겠지.


'당신의 남편의 얼굴이 진짜 얼굴이 아니란 걸 알아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끊으세요!'


이게 한번 정도 통화였다면 여자의 호기심은 아마 발동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런 전화가 여러 번 반복되니까 여자도 슬슬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지."


시나리오 모드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네요. 원래 이 병장의 취미가 연기였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지문과 더불어 잘 만들어진 대사가 흐르는 연극이나 영화처럼 점점 더 흥미진진 해졌습니다. 물 한 컵 마신 병장은 저의 많은 질문이 담겨 있는 눈빛을 읽었는지, 관객을 제대로 만난 공연가처럼 훨씬 더 활기차게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그 시대에는 아직 핸드폰 같은 게 제대로 퍼진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집마다 유선으로 연결된 전화기가 있었고, 계속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고 해도 그 번호를 확인해서 스팸처리를 하거나 전화번호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전화가 끈질기게 온다면 오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던 거죠.


"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으니 확인할 길을 알려주죠.'

'그게 뭔데요?'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곤히 잠들어 있을 때, 칼을 가져가서...'

'어쩌라는 거죠?'

'남편의 얼굴을 살짝 그어봐요.'

'끔찍한 소리. 피라도 나면 어쩌라는 거예요?'

'피는 날 리가 없고 아마 가면 속의 그 남자의 진짜 얼굴이 드러날 겁니다. 매우 흉악하고 탐욕스러운.......'

'헛소리 그만하고 이제 연락하지 말아요!'


전화는 다름없이 끊었지만, 마음속의 의심은 결국 밤이 되어서는 그녀를 누르고 일어서게 해서 부엌의 날카로운 칼을 들고 남편이 자는 옆에 다가가도록 만들었어. 그리고 가져온 칼을 서서히 남편의 얼굴에 대고는 슬쩍 찔러보았지, 심장은 두근거리고 남편이 혹 일어난다면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 찔린 틈에서는 정말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던 거야."


조금이라도 깊이 찔러서 혹시 피라도 나서 남편이 깨어났다면 이야기는 어쩌면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겠는데...... 결국 이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의사회 구현으로 가는 건가 싶었습니다.


 "결국 20-30센티 이상을 칼날을 움직여서 남편의 얼굴 위에 써져 있던 가면을 벗겨낼 수가 있었어."


아, 그 흉악한 악마 같은 얼굴이 보였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을 살았던 것인지 아님 몇 개월을 살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진짜 얼굴을 본 여자는 어떻게 했을까? 나무꾼과 살다가 날개 옷을 찾은 선녀가 날아가 버렸듯이 그렇게 도망을 갔을까? 그런 질문이 흘렀지만 입 밖으로 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 줄 알아?"


이 스토리가 어떻게 흐를지는 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미녀와 야수의 스토리보다 회색 수염 스토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고요. 남자는 결국 자기의 추한 얼굴을 보고선 도망가게 될 것이 뻔한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 죽이거나 가둘 것이고, 아니라면, 그 남자의 흉한 얼굴을 보고 실망한 여자가 자기를 속인 남자를 죽이고 그 가면을 자기가 덮어쓴 채로 남편 행세를 하며 재산을 가로채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뻔하다면 그 흉한 얼굴을 보고서는 짐을 싸서 도망가면서 이야기가 끝나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해져 있는데, 병장의 대답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 가면 아래에 있는 얼굴은 말이야, 그 얼굴은 말이지, 그 가면 위에 있던 행복한 얼굴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훨씬 더 사랑스러운 얼굴이었어. 그리고 그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정말로 더 행복해 보이는 그 남편의 지금의 진짜 얼굴을 본 여자는 더더욱 남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지. 이미 그녀에겐 남편의 얼굴이 과거에는 흉악했는지 어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머리를 띵하게 울리는 답변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충격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이야기의 리더십이었기 때문이죠. 그 순간부터 온갖 괴로움과 아픔에 찌푸려있던 제 얼굴은 조금은 더 행복한 얼굴로 변화했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병장의 온화하고 일면 존경스러워 보이는 인상도 어쩌면 행복한 얼굴의 가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고요.


"잘 들었지? 그럼 가서 바닥 닦아라. 끝"


저도 제가 병장이 된 다음에 어떤 이야기로 이등병을 구워삶아야 할지도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었는데요. 그저 태어난 모습 그대로의 "나"를 지키고 그대로 남겨두면 그게 "나"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았어요.


군대에 들어와서 온갖 고통을 겪는 현실에 처해서 사회생활 속에 있었던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좌충우돌 하는 내 모습에 또 다른 관점을 가지란 제안을 한 것이죠. 그런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갖고자 하는 "나의 모습"을, 설사 그것이 가면이라고 할지라도, 갖고 살아간다면 그 또한 내가 만든 "나 자신"의 모습, "나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였던 거예요.


마치 "행복한 인상의 가면"같이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 상상하고, 흉내 내고, 쓰고 살아가는 인생이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기 보단 그를 통해서 만들어진 "나"를 발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날 그 짧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은 뒤에 저의 군생활은, 아니, 저의 삶은 많이 달라졌던 것 같았습니다.


위의 이야기의 원본은 25년이 지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니 "행복한 위선자”란 작품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소설이었습니다. 그동안 그 이야기의 원본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하고 살았어도. 그 이야기를 통해 저에게 "나"를 찾아갈 수 있는 깨달음을 준 그분의 진심을 내내 느꼈습니다.  많이 각색이 되었지만 중심 메시지는 같네요. 아마도 그분은 자신의 인상에 맞는 그런 진심과 본질을 가진 사람으로 잘 살아가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저 역시 그와 같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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