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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y 30. 2020

<왜 우리가 사이비에 당하는 것일까?>

나름의 효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이비 교주와 사이비

지식인에게 매일매일 당하는

존재입니다. 왜? 공부를 대학교 입시나

졸업논문, 기타 학위를 위한 연구보고서

승진 시험 정도까지만 하고 마니까요.

의심의 범위가 좁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부란 의심보단 습득을 위한 신념과

집중력, 몰입을  좀 더 필요로 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끊임없는 의심이나 회의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리한 사람은 통상 효율을 추구합니다.

뭘 배워야 내 이익이 더 극대화될까에 더

집중하는 효율입니다. 이익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관점은 통상 돈이나 명예,

사랑, 권력으로 분류되곤 합니다.

누군가는 그러다 함정에 빠집니다.


우리는 내가 모르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로 인해

손상 받을 자존심 문제 때문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다른 듣기 싫은 이야기는 절로 귀를 막게 되지요.

사이비 종교나 지식인이 파고드는

틈은 불안감입니다. 어제까지 아무 공부도

안 하고 게으르던 일상이 사이비 종교나

지식인을 만나면 보상을 받습니다.


사이비는 이야기합니다. “내 말을 듣고

열심히 내가 읽으란 지식의 내용을 흡수

하는 그 순간부터 너의 인생은 달라진다.”

한국에선 쉬운 선언적인 사기입니다.

내 지식의 90%를 누구나 알고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살고 있는 사람에게

빛과도 같은 말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부분의 세대의

수능과 내신 등의 대입 시험을 치루는

과정과 대부분이 들어간 대학에서

흡수하는 지식의 대부분이 교집합을

이루니까요. 고루고루 다 80% 가량은

알아야 하는 전공 구분을 일소한 치열한

경쟁 반복과 현시대와 유리된 사회생활을

강요하는 직장 시스템과 만나면서 녹초가

됩니다. 불안하고 지치고, 생존 경쟁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강박이 일상이 되죠.


그 순간 “너는 제대로 공부를 안 한 병X”

외치는 말이 옵니다. 그렇게 녹초가 된

사람을 갖고 노는 전문가들이 파악한

환상의 언어가 그것이니까요.


하나 이 사이비들이 손에 쥔 확실한

정보는 지식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사람들이 책을 들어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승진이나 취업,

일정 자격 요건에 도달하거나 특정의

권력이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이비

집단 내의 수직적이고도 명확하며

손에 잡힐 듯 단순한 구조가 매력을

선사하는 이유입니다.


사이비 믿고 ->독하게 공부->일정 요건을

보장하는 집단 내의 시험에 합격->쉽게

궁극의 권세나 지위, 명예, 사랑, 영생,

내세의 영광 등을 얻을 수 있다는 극히

효율적인 구조에 매료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바보처럼 까이고 노예처럼

사이비 집단의 상층에 거하는 이들에게

이리저리 굴림을 당해도 지배나 착취의

언어에 당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었고, 이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고 그것만을

추구하면 되는 절대적인 신념으로 무장한

집단의 일원이 된 것에 중독이 됩니다.


일단,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아는 게 없는

그런 민족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텍스트로 1~2천의 단어를 한 10분 남직한

시간에 읽어 버립니다. 책을 떠난 정보

흡수량이 그 어떤 국가든 비교 안될

정도로 많습니다. "책"이 아니라고

무시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 16-24세까지만. 그보다 더 살아간

사람들에겐 사이비의 “비논리적인 언어”

휘둘리지 않을만큼 충분하고도 자발적인

독서가 없었고, 이 이후의 젊은 세대는

독서가 없이 혼돈의 언어로 대충 지위로

뭉게는 사람이 마음에 와닿는 것을 주지

못하지요. 사이비는 그 세대간의 간극을

절묘하게 파고 듭니다.

http://www.prism.go.kr/homepage/researchCommon/downloadResearchAttachFile.do;jsessionid=BB8DDFCEC5E48BC9BDEF00A0BFC895BE.node02?work_key=001&file_type=CPR&seq_no=001&pdf_conv_yn=N&research_id=1490000-201400030


펭수가 왜 그리 떴을까요? 부모가 말한

너 왜 그거 안 해, 왜 공부 안 해, 왜 잠자,

왜 놀기만 해 같은 욕만 매일매일 먹고

있었으니까요.


그 시대를 지난 언어에 지친 20-40대는  

펭수에 열광합니다. 세대간의 엄청난

간극이 만든 유행이 되었지요.


나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부모님 노릇을

그들보다 월등하게 강하고 영리한척하는

사이비 집단의 지도자에게로 옮기면서

헤메이는 시간 없이 수직적인 성장을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더이상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뜨겁게

싸울 필요도 없고, 강력한 존재의 우산

아래에서 내가 해야만 한다는 일만

하면 됩니다. 자신만의 지식 체계를

세워갈 필요도 없어집니다.


사이비종교에 들어가 교주가 선택하는

인류를 구원할 인물이 될 수 있는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빡세게 성경

문구를 외우고, 출판사가 자신이

출판한 책을 빨리빨리 팔아먹기

위해 만든 빡센 독서 스케줄을

채우려 지갑을 열죠. 누구 좋으라구요?

실질적으로 교주와 출판사 오너 등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사기꾼들은 타깃으로

삼은 바보들이 선호하고 노예되길

선택하도록 만들 마법의 문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

세대의 지식 역량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하며,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익혀서 영생을 얻거나 승진과 장기

근속을 얻으라고 하지요.


그들은 평균적인 바보들의 문장을

매일매일 연구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세상의 모든 지식인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어수룩한 바보들로부터 이익을

뽑아내면 그만입니다. 그들이

흘리는 지식이나 교리는 어디서든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세워올릴 수 있거나 가부를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거나 통상 무가치한

허상인데도 일단 걸려들면 당하게

되는 이유가 있지요.


그들은 바보들에게 위협을 합니다.

병신처럼 살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란

마법의 주문에 감싸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이전에도 병신이나 바보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위협이 그냥 질러대는 것임을 안다면.


자기 생각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굉장히

쉽게 한방에 인생 고민을 해결해 줄

사이비 교주나 사이비 지식인에게

기댈 것인가.


결론은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갑니다.

안 보던 책을 대신 읽어주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겐 수호천사 격인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인생의

과제 중에 하나인 성장의 고통을

떠넘기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고민을 이미 다 해주고 있었던

척하는 그 연기에 속는 것이죠.


그렇게 효율을 쫓고 있는 것입니다.

굉장히 뻔한 소리처럼 가공된 족보,

쉬운 간추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다가오는 인생의 교훈 인양 포장된

말에 바보가 속는 것에 매일 쾌감을 얻는

것입니다. “아이고 귀여운 바보들.”

이건 매일 매시간 우릴 속이고 있는

그들이 우리에게 마음 속으로 하고

있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불안감에 휩싸인 바보들을 그들은

환영합니다. 그러다 병 X 취급마저도

효율성 면에서 들인 시간과 노력이

최소화되는 그 시점에 하는데,

그걸 바보답게 받아들이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관점을 받아들이며,

안심하는 것에 익숙한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그 사이비들에겐

장기적인 수익이 확보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요.


그 글이나 설교나 책에 감염된 부모부터

손자까지 현금 인출기가 되는 것입니다.

ATM이 우리의 정체성이 아님을 안다면,

이젠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걸리고 시행착오가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우리가 읽을 책과

이해해야할 세계관을 선택할 자유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게 교주의 손에

있다고 사기를 치던, 출판사 삐끼에게

있다고 사기를 치던, 그 거짓말에

이젠 더이상 속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의 돈과 시간은 효율을 가장한

사기에 속기보단 정말로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효과적으로" 쓰여지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천황을 신격화한 사기로 전국민과

식민지 국가의 사람을 전화에

휩싸이게 만들고, 자발적으로

무기가 되어 죽게 만들었던

일본의 군국주의는 아직도

남아 코로나의 와중에도

일본 국민을 소리소문 없이

방치하여 죽이고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는 이 와중에

가장 큰 위기와 우리가 만나게끔

이끌었고, 반사회적인 면모를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한 출판사의 반성없는 표절 및 도용과

더불어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베스트 셀러 만들어 내기 사기는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로

마치 마음과 머리 속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출판 시장을 교란

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예제는 뒤져보면 더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같은 부조리와 불합리, 모순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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