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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an 30. 2021

<밤쉘>-매력녀들의 폭탄 선언

시대가 바뀜에 따라 드러난 참지 말아야 하는 폭력을 이야기하다

스포일러가 여러분에게 제가 휘두른 폭력이 

아니길 바랍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글을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한 문장으로 영화 감상문을 남기는 것을

못하기도 하지만 안 하기도 한다.

왠지 그것이 내가 본 영화에 대해

또는 그것을 본 자신에 대해 폭력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영화 등의 예술작품에

대한 글은 짧으면 짧을수록 그 본질에서

벗어난 평가를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생략된 디테일, 거두절미하고 잘라버린

중요한 가치나 반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사라진 단점이나 악덕이 그 짧은 문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인간에 대한 폭력은 그렇다면 어떻게

벌어지는가? 존중받을만한 인격의 요소를

완전히 눈감아 버릴 때 우리는 한 인간에게

정말로 잔인해질 수 있다.


인종과 성별, 젠더 등 한 인간을 단편적인

설명으로 분류하고 그것만으로 전혀 다른

대우를 하는 것을 쉽게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을 때, 그 단편적인 설명에 따라

가해지는 폭력은 그 단편적인 설명이

얼마나 더 짧고 명확하냐에 비례한다.  


루퍼트 머독이 세운 미디어 제국인 폭스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거대 기업으로

그려지며, 그 안에서 유명 앵커로 성장하는

각기 다른 연령대와 입사 기간으로

나뉜 세 여주인공은 그 제국 안에서

"밤쉘"이란 짧고 명확한 단어로 불린다.

"매력적인 여성"이란 뜻이다. 우선은.

화려하기 이를데 없지만, 성공적인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암투와 불미스러운 성적 폭력, 강제 되는 신체 노출 등은 은폐 되어 있다.

유명 앵커가 되기 위한 길을 밟아 갈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갖고,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영리함과 카리스마,

권력에 대항해서 시청자들의 여론을

살짝 이동시킬 수 있는 영향력도 가진

것 같지만, 여기에 나오는 3명의 "밤쉘"은

회사 내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머독"

패밀리가 아닌 또 다른 창업주인

"로저 에일스"의 성적 노리갯감으로

사용된다. 성공과 안위를 미끼로.

초반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지만, 결국 미디어 제국 안에서 그는 성폭력의 제조기였다.

할리우드의 각 세대를 대표하는 듯한

여배우 3명이 이곳에서 각 세대별로

이 회사 내의 탐욕스럽고 야비한

권력자의 개인 공간으로 불려져서

당한 일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밀로 붙여져야만 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공공연히 알면서도

회사 내의 모두가 모른척하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경력이 휴지 조각이 되고,

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그들이 당한 성추행과 폭력을

고발할 수 없었던 것과 각기 다른 세대의

여성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가졌으나

뒤로는 굴욕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시대는 분명히 그

전과는 다른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 석상과 트위터 등을 통해 "트럼프"로부터

성차별적인 언어로 공격당해야 했던 "메긴

컬리"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은 유력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에게 항의하다가

그만 꼬리를 내리는 초반의 굴욕을 후반부에

가서는 뒤집어엎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

여기에서의 "밤쉘"은 "폭탄선언"이란 뜻이다.

여러 영화에서 그의 연기력은 분장과

배역에 완전히 일치하여 다른 존재가 된

듯한 모습과 더불어 감동을 낳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배우가 실제 인물에 거의 가깝게 변하는 것이 "샤를리즈 테론"의 트레이드 마크다.


"니콜 키드먼"은 그만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에서였다면 언제나 최대의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매력 또한 발산해왔으나,

배역 자체가 우선 자신이 당한 내용을

용기 있게 먼저 발표하고, 수세에 몰려서도

끝까지 협력자를 기다리는 우직함과

순수함을 보여준 "그레첸 칼슨"이어서

"샤를리즈"만큼의 장악력은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만의 연기력은 제대로 발휘되었다.

싱크로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캐릭터를 제대로 살렸으리라.


"마고 로비"가 맡은 "카일라 포스피실"은

셋 중에 가장 신참이자 가장 야심만만한

미래를 꿈꾸며, "그레첸 칼슨"을 배신하고,

"로저 에일스”가 주는 굴욕을 받아들이며

성공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레즈비언"으로서 방송국 사무실 내의

여동료와의 관계를 나누는 내용이 나오면서

앞 서의 두 선배보다 더 높은 강도의 상처를

입었음을 절로 깨닫게 된다. 그가 동참해서

같이 싸우게 되는 내용은 안타깝게도 극적

감동까지 나올 수준의 연기로 이어지진

못했다. 미모는 앞 서의 선배급의 위상을

현시대에 갖고 있지만, 아직 그에겐 필모

그래피를 더 보충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관객과 실화 사이를 잇는 가상의

캐릭터로서 존재감을 살려냈다는 것은

칭찬 받아야할 부분이다.

마고 로비는 아직, 유력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를 다양한 영화 속에서 쌓아가고 있는 중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그 이전의 시대였다면 복수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현실 배경으로 "인종 및 성차별의 아이콘"인

"트럼프 정권" 시대였기에, 어쩌면

그 때문에 "성차별"에 대해 더더욱 민감한

여론이 조성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세 명은 의기투합하여, 거목처럼 흔들림

없이 살아왔던 그 중역,  "성추행 및 폭력"을

일상적으로 벌이고, 폭스 뉴스에 출연하는

모든 여성 방송인에게 시청률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짧은 치마를 입히는 일도 강제한

그 창업자이자 중역인 "로저 에일스"가

그 대가를 받도록 만들었고, 그 과정이 절로

긴장감에 빠지도록 했다. "밤쉘"이란 단어는

또한 "폭탄선언"이란 뜻을 갖고 있기에

"매력적인 여성"이 "폭탄선언"을 해서

이뤄낸 이 결과는 영화가 적절하기 그지

없는 제목을 지었음을 다시 확인해준다.


그 긴장감을 만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앞 서의 "트럼프"의 망언이다.

정치적 정점에 올라서서 적지 않은 지지자와

더불어 권력을 갖게 된다면, 아무리 비이성적인

말을 내뱉고 차별적인 언사를 해도 받아주고

넘어가는 미국 사회의 모습은 우선 관객에게

(주로 여성 관객일 수 있지만, 고지식하게

정의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양식을 가진

남녀를 구분하지 않은 관객일 것이다)

억한 감정을 공감토록 이끈다. 우리나라에서

"트럼프"가 했던 망언을 대통령 후보가 했다면

선거에도 그 후보는 참여할 수 없었을 텐데,

도대체 미국은 어떻게 된 나라였던 것일까?

여성의 생리현상에 빗댄 여러 내용을 공식적인 석상에서 이야기하고도 대통령이 되었었다. 미스테리어스 하다. 그만큼, 공화당이란 정당이 제시할 윤리적 기준이 없어서였으리라.

그다음으로 중요했던 장치는 "로저

에일스"를 제대로 연기한 "존 리스고"의

역량이었다. 그는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자신의 가족과 지인 모두에게 "자기 자신"을

깜쪽같이 속인 채로 말을 하듯이 무고함을

호소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진심으로

지지하도록 만드는데, 가까운 부인조차

그 말을 그대로 믿고 흥분하는 모습이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어,

진정한 악당이란 "자기 자신을 속이고,

그 속인 자신을 남들이 믿게 만드는 것"

임을 증명해 주었다.

연기력의 측면에서 하자가 없었다. 제대로 된 양심 없는 "빌런"역할을 보여줬다.

정치적인 올바름을 이야기하면, 재미없게

분위기 깬다고 욕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강조하고 이야기하는

것의 지루함보다 "올바름"을 쫓는 것에

무감각해진 사회가 어떤 폭력을 어떤

차별을 만들어 누구에게 가할 것인지를

막지 못해 우릴 어떤 슬픔에 빠뜨릴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만 한다.


만약 노인이란 이유로 젊은이에게 얻어 맞고,

곱슬머리라고 아이와 함께 봉변을 당하며,

왼손잡이라고 밥 먹을 기회를 뺏기고, 출신

때문에 승진이 좌절되며, 피부색 때문에 좋은

눈길 못 받고, 성별 때문에 급여가 깎인다면,

그걸 바꿀 수 있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매일매일 시도해도 모자람이 없는

흥미진진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더 재미

있는 자극이 많은 시대, 올바른 것 따위 찾지

않아도 당장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는 것

같은 착각이 우릴 "올바름"을 생각하는데서

멀어지도록 한다. 단지 지루하단 이유로.


사실 "폭스" 제국 내의 공공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은 구성원들이 다 알면서도 방치하고

당하는 이들조차 하루하루의 생활의 안위와

자신의 커리어의 지속을 위해 눈 질끈 감고

속으로 눌러 버리려 했던 것이었다.


"올바름"따위보다 "먹고사는 것"과 표면적인

"명예"와 "권력"만이 중요하다면, 언제나 그런

폭력은 광범위하게 지속될 것이다. 그것을

막고자 한다면, 우린 "밤쉘"이란 용어로 불렀던

그 세명의 폭스 뉴스의 앵커에게 어떤 명칭을

붙여야 할까? 최소한 그 세명의 이름부터

알고자 관심을 갖고, 같은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이 영화를 제대로 보고, 정의가

현실 속에서 일부나마 이뤄졌음을 기뻐할 수

있는 관객이 하게 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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