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영웅이었던 분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맞아 쓰는 글입니다.
'21년 5월 초 갑작스럽게 제가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존경하던 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섬유업계에서도 화학섬유라고 불리는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스판덱스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사람이라면 이 업계에서 나름 알려진 분인 이 분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많은 고객사와 해외의 그분이 근무하던 회사의 직원들에게 "H.B. Lee"라는 명칭으로 때론 친근하게 때론 존경을 담아 불리어 왔습니다. 알고 지내던 영국의 그분을 아는 지인에게 이 비보를 전한 바 "매우 신사적이고 친절하며, 사려 깊은, 정말로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는데 안타까운 비극이다"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억은 그분을 아는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것입니다.
저에겐 10살 위의 그분이 왜 그렇게 존경스러웠는가 하면, 그 이유가 다소 길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번호를 달아 나누어서 써야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한국 사회에서 직장에서 만난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이야기이며, 그것을 제가 일했던 직장 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 앞에 알아듣도록 쓴다는 것 자체가 또한 굉장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1. 저는 처음 직장 생활을 인터넷 기반의 중소벤처기업에서 2000년도부터 시작했습니다. 16개 국어로 만든 웹사이트를 통한 중장비의 3국 구상 무역과 IT로 중고 중장비를 거래하는 중개업, 카자흐스탄에 지사를 차려 중장비 수입업과 유학 사업 등을 했었습니다.
2. 그 이후에 또한 중소기업이었던 초극세사 청소용품을 팔던 회사에서 아이엠에프와 더불어 왔던 환율 급상승 등의 호재로 급작스러운 섬유 중흥기에 회사의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었고, 맡았던 해외 수출 업무가 매출을 300배 가까이 확대하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었습니다. 그것을 경쟁사의 담당자들보다 밀도 높고 빠르며, 고객 니즈에 맞는 서비스와 더불어 지속적인 오더로 만들어 간 것이 당시에 직장 초년생으로서의 저에겐 커다란 성취감을 주었습니다.
3. 한번 더 자리를 옮겨 글로벌 최대 아웃도어 캠핑 봉제 회사의 중국 현지 법인에서 근무하던 저는 두 번째의 회사에서 옮길 때 냈던 이력서를 갖고 있었던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을 받아, 그분이 근무하던 당시의 화학 섬유 업계에서 글로벌 최대의 규모를 가진 대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4. 총 12명의 면접자 중에 유일한 중소기업 출신인 저를 당시 다른 대기업 출신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뽑은 사람이 그분이었고, 들어와서 들은 바 그분 역시 중소기업에서 일했었던 바가 있었지만, 그 글로벌 기업에 입사한 이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하며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내렸던 결정이었습니다. 중소기업 출신이라고 해서 대기업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그분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뽑힌 이후에 그분의 신뢰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는 것이 그 때문에서라도 저에겐 매우 중요했습니다.
5. 때문에 당시에 6시 30분 경의 퇴근 시간만 되면 모두 글로벌 기업의 특권이라도 된 양 칼 퇴근하는 분위기에서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하루라도 더 빨리 매출을 크게 일으켜야 하는 "마케터이자 영업 담당자로서" 글로벌의 20여 개국에서 근무 중인 마케팅 직원들을 내부 고객으로 삼고, 6개의 국내 고객사의 판매를 지원하기 위해, 4~500개 달하는 미주와 유럽에 주로 있는 그 고객사들의 브랜드 고객을 위한 초 스피드의 대응을 야근을 불사하며 진행했었습니다.
6. 글로벌 팀과는 이전의 경험에서 배운 대로 웹사이트 리뉴얼을 통한 홍보가 중요함을 납득시켜 제품의 웹사이트 리뉴얼을 진행토록 했으며, 한국어 페이지에 대한 교정도 진행했습니다. 워라벨이 중요한 이 시기에 이것은 절대로 긍정적인 자랑이 될 수 없지만, 그땐 누가 시켜서가 아닌 제가 자청한 일이었습니다.
7. 그렇게 일을 해도 대기업 출신이 아니란 이유로 어떻게든 폄하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 이야기가 무색할만한 결과를 꼭 만들어 내야만 했습니다. (지금 저는 2017년부터 이른바 대기업에 들어와 업무를 하고 있으며 나름 괜찮은 성과를 이루고 있는데, 이 회사는 중소 또는 중견 기업 출신이라도 능력 있는 직원은 적극적으로 등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그 당시 대기업 출신이란 자부심을 내세웠던 전 직장의 대기업 출신들의 사고방식이 전혀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소기업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서 경쟁자의 범위를 줄이는게 생존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8. 그 빌런 족속과는 그 회사를 떠난 이후 지금까지 거의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통해 인정받는 것보다 타인을 대놓고 또는 뒤에서 비하함으로써 확인하는 상대적인 자기 만족감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9. 물론, 그 "빌런"들은 전 세계에 적지 않게 많이 깔려있고, 단지 그런 짓을 요령 있게 하는 것이 마치 회사에 자신의 기여인 것처럼 합리화시키며 수많은 동료와 후배 직원들의 업무 능률과 성과를 어떻게든 떨어뜨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빌런"조차도 그들을 좋게 평가하는 단어입니다. "빌런"은 그래도 생각하고 살아있는 존재지만, 이미 생각이 죽어 있고 자라나지 않는 그들은 그냥 "좀비"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습니다.
10. 하지만 그분은 제가 만나기 훨씬 전부터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우며 1990~2010년대의 한국 섬유 산업의 성숙기에 다니던 글로벌 기업에서 승승장구하여 당시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그 기업의 글로벌 부사장급까지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스스로 그 지위에서 계속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다른 사업부의 한 등급 낮은 직위로 스스로 옮겨 가는 등의 현실적이고도 뚜렷한 자기 관리 능력이 있는 진정으로 본받을만한 우수한 임원이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장 생활의 표본이자 롤 모델이었습니다.
11. 그분만큼은 글로벌을 포함한 내외부 어느 곳에서도 불합리한 "빌런이나 좀비"란 평가가 가능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부하 직원이라고 일단 단점을 찾아서 지적해서 압도하는 것이 일을 시키는 방식에서 우선순위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먼저 들었고, 배웠으며, 경험에서 배운 조언을 주었습니다. 질책은 둔중했지만 바로 행동을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후배라고 부하 직원들을 부르며 자신을 따라오게 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얼마큼 더 열심히 배우고 자기 관리를 하며, 더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투명하고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솔선수범"을 행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참 드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12. 2006년부터 2013년간 제가 그분 밑에서 직간접적으로 맡게 되어했던 일은 국내에서는 2배, 글로벌 전체로서는 40%의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때론 질책을 받고 신뢰의 격려도 받았으며 2008년도의 리만브라더스 사태를 가장 빨리 벗어나서 2009년도 최초로 2007년 수준의 판매를 회복한 기록을 만들었을 때는 상부에 이 같은 내용을 꼭 제대로 보고해주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13. 제가 이룬 그 같은 성과는 저 자신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저의 출신 성분이나 위치를 보고 평가하기보단 가진 능력과 해온 일 자체를 제대로 평가하고 신뢰해준 그분의 리더십이 만든 성과라고 그 때나 지금이나 믿고 있습니다. 만약,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했겠지만, 그 안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만한 계기를 만나지 못하고 일찍 나오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재를 파악하고 선택하여 적재적소에 넣고 신뢰하여 성과로 호응하도록 만든다"라는 것은 쓰기에는 매우 쉬운 문장이지만, 이를 실행하고 결과로 만들어 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을 해낸 것 자체가 그분의 뛰어난 리더십의 성과였습니다.
14. 이분은 쓸데없이 흘려버리는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의 노력파였습니다. 출장을 가던 일상을 살아가던 항상 1시간씩 오전 명상을 하고, 1시간의 러닝 머신 위에서의 달리기를 하고, 비즈니스 회화를 하는 데에는 전혀 모자람이 없었지만, 매일매일 새롭게 영어 공부를 하고 영어 원서를 읽어 실력을 향상함과 동시에 중국 상해에서 아시아 전체를 관할하는 중요한 역할을 오랫동안 하면서 중국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높은 성과를 냈고, 새로운 일을 배웠으며, 글로벌 전체 마켓에서 고객사와 직원들과의 관계도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했으니 이런 분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적어도 저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15. 일면 그분 앞에 무섭고 부끄럽기도 했던 것은 제가 사서 읽은 책 중에 자기 계발서나 경영서 중에 이야기하다 보면 적지 않은 서적은 이미 그분이 읽은 것이었고, 잠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독서 토론도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미 이전에 회사에서 비용을 지원해서 받은 MBA를 수료한 이후에도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해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넘사벽"을 저는 인생의 16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실제로 보고 같이 일하고, 대화를 나누며 대해왔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기적 같기도 하고 꿈같기도 했던 기간이었습니다.
16. 하지만 모두가 저처럼 그렇게 그분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 그분에 대해서 폄하하고 비난하며 상종하지 못할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평가는 오히려 그분이 그만큼의 시기나 질투를 겪을 만큼의 능력자였음을 드러내고 자신의 단점을 감추지 않고 때로 바보스러울 정도로 노출하기도 하는 나름 소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였다면 아마 그런 부정적인 평가가 함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내외부의 여론을 통제했을 것이고, 완벽주의자였다면 그런 티 잡을만한 내용이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어했을 것입니다.
17. 그분은 "우수한 품성"과 일에 대한 "주도성"이 결과적으로 비즈니스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핵심이라고 설명하길 즐겼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수한 품성"이라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나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같은 고전적인 "성공론"이 이야기하는 바로, 지금의 시대에 와서는 순진한 이론처럼 폄하되기 마련인 내용이지만, 그분은 그 이론을 실천해서 실제 자신의 성공 스토리로 만들어 진리임을 실증한 사람이었습니다.
18. 시대가 지난 "성공학"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물론, 저도 더 이상 방어할 이야기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그분이 따랐던 그 가치는 직장인에게 있어서 "불멸의 가치" 중에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신념이 "꼰대"의 헛소리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품성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인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일부를 가진 것만큼은 분명하니까요.
19. 그렇게 직장인으로서 평가하자면 거의 완벽한 "롤 모델"이고 경영학 교과서의 여러 페이지 또는 최소한 한 페이지는 차지할만한 실증된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이었고, 운도 적지 않게 따르는 일종의 풍운아였던 그분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분이 속한 회사가 중국 회사에 인수 합병된 이후 그전에 그 회사가 갖고 있던 문화가 사라지고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적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의 연락을 취하는 동안 들었었는데, 작년 8월 이분은 최소 3년가량은 그 회사의 한국 대표로서 일할 수 있었음에도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독립했습니다. 독립의 이유는 "자기 주도성"을 갖고 일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0. 이분의 직장인으로서의 성공적인 이력이 앞으로의 자기 사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고 저도 이분과 현재 다니는 회사와의 사업 기회를 만들고자 나름 노력을 했었는데,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금년 5월 초에 비보가 들려왔습니다. 이 분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청천벽력"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1. 그 충격에서 아직도 사실 벗어나지 못했고 어떻게 이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잠이나마 제대로 잘 수 있을까가 지난 2주간의 고민이었습니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보았으나 그런 "인스턴트 메시지"가 오가는 공간에 이 분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올리는 것은 실례다 싶어 지웠습니다. 그런데, 그 지워진 내용이 제 안에서 마치 끝없이 증식하는 아메바처럼 공간을 넓혀가고 있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22. 일했던 직장에서 나름의 높은 지위를 가진 분이었기 때문에, 막역하게 친구처럼 지내진 못했지만, 그분이 했던 말들 중에 제 안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을 제 기억에서 꺼내보고 이제 그분을 기리는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래야만 먼 훗날에 제가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고, 이처럼 훌륭한 분을 주변에서 잃은 비슷한 경험을 한 분을 위로해드릴 수 있거나 그런 분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른 나이에 높은 지위로 글로벌 회사에서 승진을 하고 보니 물론 좋았었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후배였던 미국인, 그래, 백인들이 나를 추월해서 앞으로 나아가더구먼. 그런 것들이 좀 안타까운 부분이었어. (마냥 나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어)"
"올바른 품성을 지니고 옳고 그름을 명확히 가진 상태에서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목적으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해. 그래야만 제대로 성공할 수 있어. 그렇지 않은 그냥 이익만 따지는 관계로 만들어진 거래는 오래가기 어려워"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면 도움을 잘 받기는 당연히 어렵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가끔 연락을 취해서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 두어야만 필요할 때 다른 수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지금 승진을 했다는 내용을 보란 듯이 거래처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통해서나 다른 계기로 알게끔 만드는 것이 더 좋아. 자랑하지 않고 뽐내지 않는 겸손이 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끔 만드는 거야"
"임원을 하고 지내다가 나오게 되니 나의 현실을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동안 하지 않았던 목욕탕 청소도 하고 내 차를 타기보단 아들의 준중형 차를 몰고 거래처를 찾아가면서 내가 스스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깨닫고 자세를 낮추어서 제대로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 통해서 암호화 화폐에 대한 공부를 하고 투자를 해서 조금 돈을 벌기도 했어. 항상 더 어린 사람들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실제로 잘 배워야만 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의 습관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주도적이 돼라"였어. 자신이 하는 일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받아들이고 일을 해야 높은 성과가 따라오게 되는 법이야. 운도 그런 상황에서 따라오게 되고"
뻔한 이야기들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분이 실제로 행하고 그분을 따르는 후배들이 행하도록 만듦으로써 그분 자신의 모습이자 그 후배들의 모습이 되었고 그것을 말로만 하거나 듣고 행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로 자신과 그분을 존경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만들어 왔다고 믿습니다. 이 분 외에 이런 이야기를 했던 분을 떠올리기는 무척 힘듭니다. 사람을 다른 존재로 만드는 지혜라는 것은 그저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행하는 것에서 증명되어야만 가치가 있음을 한 발 더 나아가 실증한 분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투와 이런 부드럽고 사려 깊은 표현들이 그분이 임원 생활을 했던 중에 실제로 후배들에게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태도의 일관성은 이분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며 흘러왔을 거라고 느낍니다. 남기신 말들과 보여준 본이 될만한 행동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해 갈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어쩌면 이분은 저의 삶 속에선 계속 살아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갑작스러운 슬픔이 조금이라도 가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