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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13. 2021

<노바디+폴라>-노병은 죽지 않는다

거대한 글로벌 소비 집단인 베이비붐과 X 세대를 위한 찬가

MZ 세대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가 회사나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X세대라고

불리며 집단을 벗어난 개성을 가지고 사회와

충돌하면서 자유를 대변하는 존재처럼 보였던

내가 속한 세대를 저절로 돌아보게 되었다.

미국의 분류는 이러하다.

(출처 : https://i0.wp.com/dankr.ca/wp-content/uploads/2019/02/news-66.jpg?ssl=1)

한국의 분류는 살짝 다르다. 년대가 조금씩 어긋난다. (출처: 한국 경제 신문)


언론이나 마케팅,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광분하면서 집중하는 세대는 기업에 큰

매출이나 이익을 선사할 수 있는 집단으로

분류되기에 하이라이트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하이라이트 자체가 벌어지는

지금의 실제 상황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은 그런 붐 아래에서 소비 트렌드를

주도적으로 형성시키고, 모자랐던 매출과

수익을 향상하는 기회로 만드는 선도적인

집단의 말 그대로 "집단 최면술"적인 "선동"

에 가까운 마케팅이 벌어지는 부분도 있다.


"트윈엑스"같은 남성용 화장품이 마치

X세대를 대변하는 듯한 이미지를 흩뿌리며

내 책상 위에도 크림과 스킨이 올라가 있던

풍경이 떠오른다. 떠 받들어 주는 분위기에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은근히 부각하는

어쩌면 X세대가 갖고 있던 "개인"과 "개성"의

존중을 오히려 무너뜨리고 제품을 팔았던

마케팅의 배면에는 세대 분류를 명확하게

해서 그 연령대의 소비자의 변하지 않는

소비심리를 변하지 않는 마케팅 기법으로

공략하는 "전통적인 메커니즘"이 흐른다.


MZ 세대가 갖고 있는 특징을 분석하는

최신의 트렌드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현재의

"착한 소비", 즉, "친환경"이나 "공정무역",

"사회적 가치"를 쫓는 의미 있는 소비 내지는

"소확행"으로 가는 소소한 범위에 소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소극적인 방향도 관측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마케팅 기법으로 돈을 버는 기업은 그런

트렌드에 일희일비하거나 모든 에너지를

기울여 치우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간에 가장 강력한 호주머니

파워를 가진 세대에 강력한 마케팅 포화를

집중해야 효율성 높은 매출과 이익이

보장되므로, 그 집단에 대한 공략은

MZ 세대 공략에 쓴 나머지를 아낌없이

계속 투여해야만 한다. 그래야 균형이

맞고, 치우쳐서 앞으로 나간 경쟁자들의

뒤에서 수월하게 높은 성과를 주워 담을

수 있게 되는 법이다.


53%의 소비가 베이비부머와 X 세대로부터

일어난다면, 37% 소비가 MZ 세대로부터

일어난다고 일단, 머릿 수로는 감잡을 수

있다. 우리나라로만 일단 한정해서 이야기

하자면. 미국은 그렇다면 다를까? 물론,

다를 것이다. 이민자가 인구의 성장을

나름 돕고 있는 미국은 이 분류상 MZ의

비중이 조금은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이 2 분화된 소비집단이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면

좀 더 나이 먹은 집단이 주머니는 다소 신중하게

열더라도 이후 세대에 비해서 마냥 적은 소비를

하는 집단으로만 분류되지는 않는다.


미국과 일본,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등지에서

아직도 4~60대에 이르는 영화배우들이

영향력을 아직도 확대하면서 스크린에 머물고

있는 이유를 떠올려보자면, 이 "늙은 소비자"의

주머니가 생각보다 튼실하기 때문임을 간과할

수 없다.


노바디나 폴라와 같은 영화, 그전부터

테이큰, 존 웍 같은 젊었을 때 잘 나갔던

특수 요원이나 킬러가 조용히 업계를

떠나 살아가려고 했는데, 이를 멋모르고

잘못 건드렸다가 조직의 궤멸에 이르는

풍지박산을 겪고, 대량 살육이 벌어지는

영화가 해를 거듭하면서 더 만들어지고

재탕이 되고, 자기 복제를 거듭하는 이유는

이 소비집단이 계속 소비해주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인 것 같다.

존 윅이 매트릭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낳은 베이비붐세대와 X세대를 결합한 작품으로부터 이어진 동질의 세대를 위한 선물이라고 하자면, 노바디와 폴라는 이 취지의 연결처럼 보인다.

영화 속에서 베이비부머나 X세대의

다소 초라해 보이고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늙은이"를 잘못 건드리면,

수없이 많은 적이 일거에 궤멸된다.


그게 뻔한 스토리일거라 생각해도

일상 속에서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자존심을 구기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이 거대 소비집단의 소비자는 영화

속에서 환상 속에 자신을 이입시키며

쾌감을 얻기에 영화사는 끊임없이

이 같은 극화를 확대 재생산 중이다.



이제 바야흐로 영화 감상이 나옵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유의 바랍니다.


특히나 더 올드할수록
더 즐거운 영화기 때문에,
나 같은 X세대 관객은
사운드 트랙까지 찾아서
듣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포스터조차 노바디가 존 윅의 변주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노바디”의 주인공은 영화의 제목이

이미 잘 그려내고 있는, 그냥 살아가는,

겉모습만 보아서는 아무것도 아닌,

중년의 지루하기 이를 데 없고, 심지어

같이 사는 가족으로부터도 존중받지

못하는,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지루하게

살아가며 일터와 가정을 오가기만 하는

한 남자이다.


점프컷과 반복을 통해 매일매일 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맨손 체조 운동을 하며,

하는 일이 블루 컬러인 주인공의 일상을

지루해서 하품이 나기 직전까지 계속

보여준다. “밥 오덴커크”가 연기한

“허치 멘셀”은 평범한 노동자 가장으로

평범한 아니 평범 이하의 외모를

가진 남자로 목소리조차 소심하고

그를 공박하는 사람에게 반박도 잘

못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늙고 왜소한

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자기 집 고양이의 먹이용 통조림을 따주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취조를 진행하는 초반 영상에서의 그는 그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아저씨다. (출처: Deadline)

“존 윅”의 스태프들이 참여한 영화란

것이 카피였기에 이 늙고 별 볼 일 없는

주인공이 어떤 계기를 만나 변신해서

“부기맨” 수준의 완력을 보여줄까 가

기대여야 했는데, 사실 그마저도

영화의 초반에선 그다지 잘 될 것 같지

않아 보일 정도로 노년에 다가가는

무력한 사람의 모습을 그 배우는

매우 잘 연기해 냈다.


집안에 침입한 남녀 강도 2명이

물건을 훔치고 유유히 도망갈 때까지

이 남자는 제대로 저항할 기회조차

주저하며 놓치며, 그 때문에 아내와

아들, 딸 모두에게 경멸 섞인 눈총과

무시를 당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X세대쯤에 속해 은퇴를

향해 한 발자국씩을 내딛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라 절로 감정까지 이입되도록

영화는 정말 그 세대의 감성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잘 만들어져 있다.


그 무력감과 수치스러움, 낭패감을

안고서 그렇게들 살아가는 것이

점점 힘이 빠져가는 수사자들의

자연스러운 삶이지만, 마치 자기

차를 훔쳤다거나 강아지를 죽였다고

숨겨왔던 무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존 윅처럼, 딸아이의 액세서리를

훔쳐간 도둑을 찾으러 가는 길에서

그는 순식간에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 앞의 적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처절한 싸움꾼으로 돌아온다.

(출처: Stream It or Skip it)

"I've gotta be me"라는 가사가 달린

60년대 풍의 팝송이 무력을 자기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한 순간에 잠시 흐른다.

"난 나야, 나로 돌아갈래"로 들렸다.


"박하사탕"이란 한국 영화에서는

"설경구"의 "나 돌아갈래"라는

처절한 대사로 떠오르는 그 문장이

여기에선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무서운 남자의 귀환을 상쾌하게 드러낸

짧은 노래 가사로 나왔다.


알고 보니 그는 특수 부대에서 오래

근무했던 전사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설정은 너무도 뻔한 클리셰다.

그러나 영화는 그 뻔한 클리셰를

완전히 망가질 것처럼 같이 두드려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여럿의

적을 소탕하는 의의로 가진 모습에

비해 엄청난 실력을 가진 자로 그를

그려내면서 독특하게 변형시킨다.


마치 그 나이에 그 초라했던 남자가

나였던 누구였던 그렇게 변할 수

있을 것처럼. 처절하게 망가지며

싸우는 장면에서 그가 초인같이

여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우 그럴듯하고 압도적인 차이가

없어도 간신히 이기는 장면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나름 현실적이다.


중간에 그는 어디에 숨겨뒀던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재물을 가져와

그가 다니던 회사를 사고, 그를 무시하고

괴롭히던 젊은 상사를 발아래에 두기도 한다.


X세대만의 작품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기에

"백 투 더 퓨처"에서 박사 역할로 유명한

배우인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병상에

누워 있는 주인공의 아버지로 나왔다가

후반에 가서는 강력한 화력을 제공하는

반전을 제공한다. 은퇴한 이후의 "베이비

붐 세대"에게도 호응을 받고자 한 설정이라

생각하면 이 영화는 그 두 세대에게 흔쾌히

바치는 선물 같은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적은 미국에서 세력을 확대한 "러시아 갱단".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의 술집에서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부르곤 하는 "잔인무도하고

치밀한 두목"을 끝판 왕으로 설정을 했다.


자아도취의 노래 문화를 가진 라틴이나

이탈리아, 한국 등의 관객은 잠깐 움찔할

수도 있다. 올드한 미국 관객들에겐 일종의

거부감이나 경멸을 드러내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니까.

여기 나온 나이 때의 세대의 관객을 위한 작품이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수준이다.(출처: Steam It or Skip It)

결과로 가는 과정에서 "크레모어"를

입은 상태로 "러시아 갱단 두목"의

가게에 들어가 선전포고를 하고

돌아오는 등의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설정들이 오밀조밀하게 즐거움을

준다. 특히나 더 올드할수록 더 즐거운

영화기 때문에, 나 같은 X세대의 관객은

사운드 트랙까지 찾아서 듣지 않을 수 없다.

이 장면은 꽤 상큼하다. (출처: The MacGuffin)



X세대의 관객들이
짜릿함을 느낄만한 장면이
무척 많이 나왔다.


폴라는 하드코어 존 윅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노바디가 보다 가족 영화였다면. (출처: Filmhulen_Highlights)


"폴라"라는 영화는 그러다 보니 "존 윅"과

"노바디"의 설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가기보단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설정을 깔았다.


영화도 "존 윅"이나 "노바디"보다 훨씬

더 하드코어하고 잔인하면서도 고어물에

가까운 절단 씬과 훨씬 노골적인 노출과

더불어 자극적이고도 만화적인 내용들을

깔아서 단지 올드한 세대에게만 어필하는

영화가 아니라 자극을 찾는 젊은 관객도

다수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작업을 했다.


좀 더 이 세상 속에서 연배가 많고 은퇴를

앞두고 있는 대다수의 올드한 직장인을

화이트 컬러든 블루 컬러든 가릴 것 없이

가차없이 잘라내는 기업들의 현실을 비유하는

악성 킬러 조직이 나온다.


근무하던 "킬러"가 50이 되면 무조건 은퇴를

해야 하며, 대신 수십억 원에 상당하는 엄청난

수준의 퇴직금을 받게 되지만, 이미 이 조직의

오너는 그 돈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은퇴 직전의 "킬러"를 죽이기 위해 따로

별도의 "킬러 조직"을 동원해 조직의 수익을

높이기 위해 은퇴 대상자를 죽인다.


최초에 나오는 희생자는 은퇴를 앞두고

엄청난 미모를 가진 젊은 여자와 함께

거대한 저택의 풀장에서 즐기고자 했던

"킬러"다. 그는 그 여자를 포함한 다수의

"킬러"에게 저격용 라이플로 맞은 뒤에

근접하여 발사한 총탄 등으로 공격받아

잔인하게 죽는다.

답변이 너무 심플하면서 대상으로 하는 관객이 "늙은 관객"임을 드러냈다. (출처: CulturalHater.com)

그리고 "왜?"라고 묻는 피해자에게

그 "킬러들"은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네가 늙어서". 이 심플한 대사에 "피꺼솟"

이란 느낌도 들고 망연자실, "자신이

늙어갈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우선

고연령자를 무시하고 몰아내기로 작정하는

젊은이들과 이에 호응코자 최대한 노력하는

기업과 정부의 정책 방향이 떠오른다."면,

그건 솔직히 "내가 늙었기 때문이다".


이 조직의 오너는 영국식 발음을 가진

고도 비만자로 나오는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의 연인이자 "킬러 은퇴자"를 죽이는

조직의 여자 수장 격의 인물이 날카롭게 생긴

중국계 아시아 여자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적의 정체가 영국식 발음을 쓰는 고도비만자였다. (출처:reelrundown)

미국 관객들이 적으로 삼을만한 국가가

"러시아, 영국, 중국" 삼 개국으로 나오고

"자아도취와 고도비만, 유색인종 여자"도

악당 전형으로 나오고 있어 조금 위험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워낙

재미있게 만들어지니 그런 우려는 영화를

보는 중간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매스 미컬슨"은 이 시대에 남은 특별한

연기력을 가진 몇 안 되는 배우 중에 하나라

생각하곤 있었는데, 과연 이 영화에서도

옷을 입고 있던 벗었던 압도적인 연기력과

함께 군살 없는 몸매와 무력을 선보여 주었다.

자신이 실수로 죽인 가족의 일원 중에 하나로

살려둔 소녀가 "바네사 허진스"가 연기한

배역으로 나와 후반에 반전을 선사했는데

이 과정에 있어서 그가 펼친 연기는 거의

완전무결했다.


은퇴를 앞둔 무력하고 늙어버린 존재로

연기를 진행할 때는 그가 은퇴해서 살기로

마음먹은 동네에서 애완견을 하나 산 뒤에

"레옹"처럼 소파에 앉아서 총을 들고 자다가

꿈속의 트라우마 때문에 그 애완견을 쏴 죽이는

장면이 나오고, 집 근처의 소녀를 위해 장작을

대신 패주고는 우렁각시처럼 모른 체하면서

그 주변을 배회하고, 어항을 사서 물고기를

키우기도 하는 장면에선 살기나 킬러로서의

능력은 거의 예상되지도 않고 감이 잡히지도

않을 정도다.


그러다 찾아온 "킬러들"과 마주해서 싸울

때는 일부러 자신을 유혹하는 뇌쇄적인

미모의 여자와 심한 노출 장면을 연기하면서

건장하기 이를 데 없는 "킬러"로서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무척 설득력 있게

펼쳐졌다.


무엇보다도 한번 사로잡힌 뒤에 엄청난 고문을

겪은 뒤에도 탈출하여 살아남아, 다시 반격을

가하는 장면에서 사실 만화적이고 꽤 황당한

부분이 나타나는데, 정말로 그 정도 수준의

배우가 아니었다면 설득력 있게 보일 수 없는

것이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장면이 가장 압도적이면서도 압권인 장면이다. 이것을 보려고 이 영화를 봤다고 느껴질 정도였다.(출처: culturalhater.com)

그와 그와 연락하는 상대방 모두 시대가 지난

폴더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영화 속의

시간대는 X세대보다는 앞 서의 세대의 은퇴

연령을 그리는 것 같지만, X세대의 관객들이

짜릿함을 느낄만한 장면이 무척 많이 나왔다.


이 영화는 2탄이 나올만한 밑밥을 깔면서

끝났기 때문에 절로 기다림이 생길 정도다.

그다음의 주제는 제대로 된 "소녀"를 위한

복수로 넘어갈 것 같다.



미주와 유럽에서는 호주머니가 상대적으로

두껍고 무거운 소비자 층이 베이비붐과

X세대라면, 한국에서는 그만큼은 안 되는

상대적인 빈곤층이 이 두 세대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인구 수로는 이 두 세대와 비교해서

더 큰 집단을 그 이후의 세대는 최소한

인구 절벽기에 들어선 동아시아 국가에선

만들기 어렵다. 그렇다면 MZ 세대에 대한

마케팅 전략은 어떤 식으로 이 동아시아

권에서는 편성이 되어야 할까?


영화를 본 뒤에 이런 질문이 남는 나 자신이

솔직히 좀 직업병에 빠진 듯해서 아쉽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영화 속의 치열하게

늙은 가운데서도 젊은이들과 숨이 끊어질

정도로 경쟁을 버텨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최소한 버티기 위해서라도 젊은 세대들과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가정과 기업, 국가로부터 설사 아무런

존중도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식이나 노하우의 이전이란 덕목도

사라진 세상에서 이제 늙어가는 자들이

다른 세대와 더불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도 준비하지

않은채 세상은 바삐 변화하고 있고

그런 현상은 점점 더 젊은 세대가

중노년으로 진입하는 시기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도 없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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