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는다.
제조사: 작가정신
카테고리: 유아동/출산
초인적인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책을 본 때는
2009년 가을 무렵이었다.
초반에 잘 넘어가지지 않았던
책장이 갑자기 지진이라도 나서
도로가 갈라져 무너져 내리듯이
거침없이 넘겨지면서
그 두께를 잃어갔던 때는
주인공이 극단적인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거침없이 빨려 들어갔을
때부터였다.
이 글은 실화이다라는
주장을 깔고 있지만,
소설은 르포가 되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기승전결을 가진
극화로써 그려져 있다.
파이 이야기는
인생의 커다란 굴곡을 견디어낸
초인적인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십오소년 표류기나
파리 대왕, 로빈슨 크루소 같은
소설책이나 캐스트 어웨이
같은 영화가 백인 문명의 관점에서
극단적인 표류 상황에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 본연으로부터
드러내려 했었다면,
이 소설책은
인도의 힌두교 문화의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넘겨지지 않는 서두에서
파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이 소년의 별명이 되었는지에
대한 자잘하고 소소한 설명이 나오고,
힌두교 밖에 모르던 소년이
경멸하고 무시해마지 않았던
기독교 신자도 되어버리는
상황이 나온다.
이 같은 설정들은
무한의 소수점으로 표현되는
"파이"로 무궁무진한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비유하는 내용 같기도 했고,
한 가지 종교적 관점에서만
삶을 살아가는 편협함에 대한
풍자로도 비추어졌다.
생존이라는 화두에 맞닿아서
소년이 과연 어떻게
행동해 나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예시들이었다.
극단적인 비극이란
인도에서 동물원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형과
자신을 태우고
북미 쪽의 동물원으로
배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갑작스러운 침몰을 맞게 되어,
가족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구명정 하나에 겨우 생명을 부지하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마침 이 구명정에는 소년 외에도
얼룩말과 하이에나, 오랑우탄, 호랑이가
탄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이 비극이
소년을 강인하고도
지혜롭게 만들고
오랜 표류 생활을 견디고
생존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는
설정은 소설의 책장을 넘기는 내내
경이로운 필치로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다.
작가인 얀 마텔은 분명히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호랑이와 자신의
위계질서를
어떤 방법으로든
잡아가려 애쓴다
구명선 안에서
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여서 먹고,
소년이 앉아 있는
뱃머리 아래에 있는
호랑이가 무서워서
소년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한방에 호랑이의
먹잇감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단 둘이 남은 것이다.
다행이었던 점은
호랑이가 동물원에서 자랐던 탓에
조련사의 역할을 훌륭하게
시도하는 소년에게 어느 정도는
길들여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년은 호랑이가
자기를 먹잇감으로
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호랑이의 먹잇감을
표류 중인 바다에서 만들어내고,
음료수를 만들고,
호랑이와 자신의 위계질서를
어떤 방법으로든 잡아가려 애쓴다.
나는 비즈니스, 내 일을 하면서
거래처들이 마치 내가 자꾸
먹잇감을 던져주어야만 하는
호랑이처럼 느껴질 때가
이 책을 읽은 이후 종종 생기고 있다.
인생은 결국 표류하는 배 속에서
호랑이와 더불어 살며,
호랑이와 나의 먹이 거리를
끊임없이 찾는 긴장된 상황의
연속은 아닐까 싶을 정도가 된다.
덕분에 매우 긴장하되
유연함을 잃지 않으면서
더욱 조심스럽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이 없는
존재의 상징으로
그 두 일본인 직원들을
그리고 있다
소년이 장기간의 표류를
마치고 살아남은 채로
발견된 이후,
침몰된 배의 사건 정황을
조사하러 온 두 명의
일본인 보험 관련 직원들은
소년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데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소년은 그 직원들이 납득할만한
현실 같은 이야기를 비유로 늘어놓는데,
그 이야기는 호러물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하이에나는 난폭하고 이기적인 선원으로
대치되고 오랑우탄은 어머니로 대치된다.
표류의 끝까지 소년과 함께 있었다는
호랑이는 발견되지 않았던 탓에
호랑이 자신이 바로 소년이 아닌가라는
꽤 납득되는 설명에 일리가 있다고 믿고
일본인 직원들은 보고서를 마무리한다.
이 책에서는 실증되지 않고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존재의 상징으로
그 두 일본인 직원들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인도 사람들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이 갖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 국민들에
대한 선입견은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침몰한 부실 항해의 주범인 대만인
선원들이 운항한 배부터도 그러하다)
상상력과 교감 능력의
부족이라는 표찰을
달아놓고들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은 당신을
평온한 일상의 바깥으로
잠시 데려가 준다
재난 영화의 포인트는
얼마나 재난을 효과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가에
있다고 한다면
재난을 다룬 소설은
이 같은 재난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재난을 극복해내거나
그 재난 앞에 어떤 저항을
시도하는가에 중점을 둔다.
삶이 평온하여
지루하기 이를 데 없고,
자극이 필요해도 적당한 자극이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이 소설은 당신을 평온한 일상의
바깥으로 잠시 데려가 준다.
당신은 호랑이와 단둘이
망망대해를 수개월간 표류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을까?
그런 질문도 던져보면서.
호랑이에게 자신을 던져버린다는
비유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에서
"신경증"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나왔다.
삶의 어려운 고통과 마주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호랑이에게
우리를 던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봉착하고
일종의 신경증에 빠져들게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네 속담 중에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이 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과
내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이 글을 읽고 쓰고 있는 것은
삶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호랑이들에게
자신을 먹잇감으로
던져주지 않고
정신 차리고 잘 피했거나
잘 다스려 왔기 때문이다.
2009년이 호랑이해였기에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모두 다들 잘 살아남기를
기원했었다.
오늘은 나의 아이가 이렇게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