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각본가를 유지하고 감독을 바꿨을 때 벌어지는 긴장감의 감소
스포일러가 암살자처럼 나오는 글입니다. 조심하세요.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큰 스케일과 다양한 액션씬, 좀 더 심화된 스토리가 나올 것처럼 광고하고 홍보했던 작품이 막상 뚜껑을 열어서 보면 그런 내용의 반의 반도 보여주지 않아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법이다.
이것이 분노에 가까울 정도로 심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은 충족시켜주었으니 적당한 수준에서 불평만 늘어놓고 줄이면 되겠다 싶은 경우가 있는데, "시카리오 2편", "데이 오브 솔다도"가 그 카테고리에 들어갔다.
1편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2편의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에 비해서 얼마나 더 뛰어난 감독인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고, 역시나 오리지널이나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도 있었다. 각본은 동일하게 "테일러 쉐리던"이 작업을 했었음에도 극의 품질이던 메시지던 전달성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액션 영화"의 오랜 팬 중에 하나로써 안타까운 것은 "긴장감"이 너무 가라앉아서 "시카리오"하면 떠올랐을 찌릿찌릿한 순간이 기대했던 대로 나타나질 않았다. 왜 그렇게 김이 확 빠진 영화가 되었을까? 정리를 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1편에서는 정체를 숨기고 서서히 숨긴 이유가 밝혀지고, 반전이 벌어지는 확실한 구조가 있었다. 그러나 2편에는 숨겨진 정체도 없고, 반전도 없다. 그저 뻔한 술책과 예상할만한 위기, 흐지부지 사라지는 갈등이 있다.
2. 1편의 성공 요소 중에 하나인 국경 통과 중에 도로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을 좀 더 긴장감 있게 만들고자 스케일을 키우고 디테일을 높이고 물량을 더 투입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중요한 씬은 아닐 텐데.
중첩되면서 긴장감을 높여가는 구조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갑툭튀 한 이 씬은 그냥 제작자가 '야, 전에 그거 보기 좋던데, 한번 비슷하게 다시 넣고, 좀 제대로 해봐.' 뭐 이 이 정도의 주문을 받고 넣은 씬같은 느낌이 확 올라온다.
https://www.denofgeek.com/movies/sicario-day-of-the-soldado-brings-lifedeath-issues-home/
3. "에밀리 블런트"의 순진한 희생양 연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1편에서 느끼지 못했던 우수한 연기력이 절절히 느껴진다. 물론 연기 경력이 훨씬 짧았을 남미 아역 여배우 "이사벨라 메르세드"가 깜찍한 외모와 당돌한 연기를 통해서 눈도장을 찍지만, 처음에 속았다가 겁에 질렸던 이후, 중간에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의 변화, 마지막에 위기에 처했을 때의 극적 변화 모두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했을 때 왔던 "희생양"에 대한 감정 이입까지는 관객으로부터 이끌어내지 못한다.
배역 자체가 조직 두목의 딸이라는 것이 한계이긴 하지만 1편으로부터 유사한 수준의 "에너지"를 가져오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꼭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른 부분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골고루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일조를 한 셈이다.
4.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레예스" 집안의 딸을 “알렉산드로”가 납치해서 보호하며 데리고 다니는 장면이 잘 와닿지가 않게 처리되어 있다. 1편에서 냉정하게 복수에 치중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냉정하게 죽였던 검사 출신의 "킬러"인 "알렉한드로"는 나중에 "그 딸을 죽여 없애라"는 "멧"의 연락을 받고도 그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5. 납치해서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딸이 차량 대열을 떠나서 도망간 탓에 일이 뒤틀리고, 다시 찾은 뒤에는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하던 미국 정부의 선출직 공무원(대통령)이 국경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발생한 "레예스"에게 포섭된 멕시코 경찰이 이 비밀 납치 임무를 이른바 더럽게 수행하던 "멧"의 비밀공작팀 차량 일행을, 국경을 넘기 전에 앞 뒤에서 공격하다 역으로 몰살당하는 장면 이후에 국가 간 문제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여 작전 취소 및 목격자 제거를 요청한다.
이 부분은 미국 정부의 수뇌나 국가 간 정치 상황이 불의와 싸우는 것과는 관계없이 일거에 뒤틀릴 수 있는 것임을 전편에 이어서 보여주는 각본의 일관성이 유지되는 것이라 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장면에서 나온다.
6. "례예스"의 딸과 "알렉한드로"까지 제거하도록 명령을 내린 뒤에 "알렉한드로"는 갑자기 청각 장애를 가졌던 자신의 딸과 이야기하다 배웠다는 수화를 하기도 하고, 멕시코 국경 너머로 "자신의 원수의 딸"을 보내서 살려주기 위해 목숨을 거는 무모한 모험을 하는데, 어찌 보면 잘 이해가 안 되는 이 같은 심적인 변화가 필연성이 없어 보였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일본 애니 "인랑"을 남북통일과 정의, 로맨스의 드라마로 섣불리 변경하려다 흥행에 쪽박을 찬 한국 영화 "인랑"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7. 1편을 개봉한 2015년과 2편을 개봉한 2018년에 어떤 정치적 시류의 변화와 영화 시장의 변화가 있었는지 연구해 본 적은 없으나, 갑작스럽게 살인 기계에서 따사로운 아버지 타입으로 변한 "알렉한드로"와 정의 따위 상관없이 역학 관계를 정돈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이제이" 전술의 일인자 "멧"이 상부의 명령대로 "례예스의 딸"을 죽이지 않고, 갑자기 "증인 프로그램"을 가동해서 보호하겠다고 자신의 파멸까지 무릅쓴 채로, "미국 대통령"에게 "하극상"을 벌이기로 한 장면은 잘 생각해보면 충격적인 반전이기는 하다.
8. "1편"에 나오는 영화 속 세계의 기본 베이스인 "법과 정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선출과 정치적 지위 유지, 국가 간 비즈니스 지속 등"의 내용이 "불의 타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순위를 지니고 있음을 갑자기 그 "게임에 규칙" 하에서 냉정하게 인정하고 활동하던 캐릭터들이 "싫어 더 이상 게임판 위에 말을 하지 않을래!"라고 외치고 반항하는 것이 마치 "달콤한 인생"이란 한국 누아르 영화와 같은 구조로 가는 것 같지만 영화는 "우연"을 통해서 죽어가던 주인공을 살리고 이후에 연결될 "후속 내용"을 가림으로써 관객에게 더 이상의 사고를 할 영역을 이번에는 주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을 조직의 보스에게 알려주고서 죽이기 위해 얼굴에 총을 쐈던 젊은이를 다시 만나는 알렉한드로가 나오는 장면)
9. 어린 멕시코의 학생 하나가 불법 이민자의 이동을 돕는 조직에 가담하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부패한 이가 되고, 나중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영화 속의 병렬되는 또 하나의 스토리로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각본가가 "미국"내의 문제와 "멕시코"의 문제를 동시에 잘 담아내는 놀라운 필력을 지닌 작가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잘 썼다고 해도 구슬을 실에 꿰어주는 "감독"의 역량의 차이가 엄청난 간극을 지니고 있는데, 그걸 각본이나 극화가 무조건 극복해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는 안타깝게도 "시카리오"가 보다 긴장감 넘치는 영화가 되는 데 있어서 3-40% 정도의 비중 밖에는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날 대체 휴일에 시간이 좀 남는 분이 있다면, IPTV 등에서 찾아보셔도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위에 "인랑"이 언급되고 있지만, 일본 애니 "인랑"과 한국 실사 영화 "인랑"의 사이에서 "시카리오_데이 오브 솔다도"는 좀 더 일본 애니 쪽의 긴장감과 재미, 극적 일관성을 가진 작품 쪽에 가깝게 다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작품이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관객에게 무엇을 얼만큼 제대로 줄 것인가를 좀 더 고심한 작품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영화 자체를 재미있게 잘 만들어보겠다는 것을 떠나서 정치적인 시류나 관객이 무엇에 더 관심을 가지고 편하게 받아들일 것이 무엇인지를 오해하면서도 여기에 집중해서 만든 작품은 필히 흥행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고, 감독의 역량은 이 모든 변수에서 가장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