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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Nov 02. 2021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친환경 종교 vs 원전 찬성론

친환경 주의를 종말론으로 공격하는 원전 찬성론자의 허수아비 때리기

어느 날 처음 만나는 고객사와 함께 한 자리에서, 아니다, 여러 고객사와 함께 한 자리에서 침을 튀기며 인류가 처한 환경 위기에 대한 내용을 몇 가지 기억나는 숫자에 의거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 깨달으면서 그때 그렇게 열변을 토했던 내용을 주워 담고 싶었는지 그 부끄러움을 말하는 것이 아마도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좀 더 집중력 있는 내용으로 적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책의 끝에 이르렀을 때 즈음해서 작가의 논리에 많이 감염된 상태의 나는 어느 순간엔 내가 쓰는 소설 속에도 그가 만든 논리를 그대로 적고 있었으며, 그 논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래와 같았다. 감염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여러 가지 그가 논리적으로 잘 만들어낸 스토리에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정치 및 이권 단체화한 친환경 조직의 일련의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가 망하던 말던 상관없이 친환경 재생 에너지의 사용을 강요하면서 지구를 망가 뜨리고 있어도, 이를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세계를 만들었다. 친환경에 역행하는 것이라면 모두 수출입 금지 품목에 올라갔고, 그 때문에 이상하게 그 가치가 급격한 인플레를 맞은 '성냥'같이 음성 화한 제품이 생길 정도였다."란 이야기가 "2121 성냥팔이 소녀"라는 내가 만든 SF 소설 속에 들어가 있다. 다 읽고 나서야 이런 논리가 특정의 정치 진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종합화된 논리임을 알게 되곤 쓴웃음을 짓게 되었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실을 찾고자 하지 않고 이미 갖고 있는 광범위한 고정관념에 얽매여서만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건 그 나이 먹은 게 아무 필요 없다는 근거를 남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은 깨지고 깨지고 또 깨져야만 한다.


죽는 날까지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내가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것과 지구가 비교적 둥근 타원형의 행성이라는 것, 기하학과 수학, 과학의 정의 중에 엄청난 정보와 지식조차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진리 정도다. 그마저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진리가 아닌 것으로 변화하는 부분도 생길 정도다. 이를테면, 영생을 현실에 구현코자 하는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다.


하지만 경제와 회계, 경영, 조직, 홍보, 광고, 사회적 트렌드, 내가 팔고 있는 제품에 대한 지식 등의 정보와 연결되어 있는 마케터로서의 나는 매출을 늘리거나 가치를 올려야 하는 제품에 대해서 고객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내용을 틈틈이 조사하고 읽고 교육받고 있으므로, 숨 쉴 틈 없이 업무 그 자체에 몰입하고 있는 "갑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정보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갖고 있다.


때때로 일종의 전문가로서 그렇게 갖고 있는 지식을 선보이게 되는데, 통상 내가 접하고 있는 것은 원본의 정보보다는 한차례 쿠션을 먹은 정보, 그러니까, 저널에 실려 있는 자료나 그린피스 등의 친환경 운동 단체의 2차 가공된 정보다. 1차적인 정보라 할 수 있는 논문이나 통계 자료, 원본에 대한 접근은 그 방대한 정보의 양과 너무나 먼 근접성, 대부분 영어나 유럽 언어로 되어 있는 정보를 해석할 능력이 없는 등의 관계로 솔직히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친환경 진영에서 많은 일을 해낸 일종의 영웅으로 분류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런 그가 돌변해서 날카롭게 친환경 진영을 그 바깥에서 공격하는 것은 나와 같이 2차적인 정보만을 접하고 있는 대중의 의구심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꽤 효과적이다.


이 책에서 “친환경 진영”은 “기후 변화론자”라는 이상한 명칭으로 쓰여있기도 하고, 과장과 불의, 조작, 종말론, 식민지 사상, 인구 감소를 주장하는 구 멜서스 주의에 빠진 존재로 프레이밍 되고 있다.


아무리 이 책을 몇 번 계속해서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그의 공격을 1차적인 정보에 대한 근접성이 떨어지는 독자는 그 공격이 제대로 된 공격인지 아니면 논리적인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닌지를 책 안에서는 제대로 포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책을 읽은 뒤에 감상문을 써서 올리기 전에 우선 내가 빠졌을만한 함정은 혹시 없었던 것인지를 검색을 통해서 확인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그 출판 목적부터가 원전 반대론자를 공격하면서 원전 찬성론자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쓰인 책이었다.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같이 원전 찬성 세력에 속하는 번역가가 번역을 했고, 옮긴이의 글 속에서도 특정 보수 정당의 계보를 따르는 대통령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기후 변화에 대한 지나친 낙관을 지지하는 정보의 왜곡을 통해서 지지하는 기술 만능 주의와 지금이라도 모든 발전 시설을 다 원자력으로 바꾼다면 아무 문제없이 탄소 중립이 되는데도 화석 연료와 재생 발전 산업으로부터 이권을 받고 있다는 "혐의"를 씌우면서 미국의 민주당의 “엘 고어” 전 대통령 후보부터 각각 친환경 진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주요한 인물을 인신공격적으로 거론하며, 이른바 "음모론"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음모론"적인 행동을 사실상 엄청난 자본을 써가면서 공공연히 하다 들통나고 있는 미국의 공화당 세력이 "엑슨 모빌"이나 "코크 인더스트리" 등의 석유 화학 기업들을 통해 기후 변화를 부정하거나 이 기후 변화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허구로 포장하기 위한 연구라던가 법안을 세우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벌이고 있는 잘 알려진 상황을 언급하면서 일면 균형을 잡는 듯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 진영도 결코 깨끗하지만은 않다"는 논지만을 펼치고 나선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금전이나 정치적 논리에 의한 부정"을 차단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아닌 "원전의 광범위한 설치"로 마무리하는 논리적인 결락과 더불은 비약을 보여주고 있다. 자주 일간지에서 읽곤 하는 피차 더러운데 같이 욕할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같이 진창에 빠지는 프레이밍을 씌우는 것이다.


상대 진영에서 언급하고 있는 "친환경 재생 에너지"가 기존의 발달된 에너지 원을 제대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전반적인 "친환경, 즉, 지속가능성"을 위한 활동에 대한 부정론을 심화시키고 "원자력 발전 설비"의 확대에 대해서 정열적인 찬성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 이 매력적으로 잘 써진 이 한 권의 책이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다. 스토리 텔러로서의 재능이 가득히 담겨 있는 우수한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란 국문 제목에 걸맞는 착각을 독자에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지속 가능성 발전 활동" 및 "친환경 운동"이란 것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인류에게 불편을 끼치고 동시에 매우 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요청하고 있는 나름 "귀찮은 일"임이 명확한 상황에서, 그 귀찮음을 끼치고 있는 주체를 욕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던 듯하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이고 여러 계층의 식자층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원전 건설 찬성"을 부르짖는 바람에 "원전이 가진 위험성"을 지나치게 간과하고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는 자료도 책의 내용 속에 전혀 담지 않았다. 한국의 원전 기술의 발전 수준이 높아서 위험성이 거의 없는 수준의 원전을 만들 수 있다는 이 책에 대한 반론에 대한 또 다른 반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은 뒤에 이 책에 대한 비판을 여러 곳에서 검색하고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원전을 짓는 것”이 친환경적이고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기 위해서 너무 지나친 재주를 부렸다.


"사이비"는 어느 진영이든 각각의 극단 어디쯤에서인가 존재한다. 그리고 통상 남의 의도를 너무 곳곳에서 음모론적으로 강박적인 시선과 더불어 신랄하게 비난하는 자에겐 그와 같은 부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하고 있는 자신의 활동이 자신의 글이나 말 뒤에 숨어 있어서 마치 거울을 보듯이 그런 비난을 하게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 역시 "원전 찬성"의 전반적인 확대에 따라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마치 그가 욕한 "엘 고어"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해석만큼이나 자신의 이익과 맞닿는 "에너지원"에 대한 찬성론을 열정적으로 써 내렸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가 없다.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아서 2개월이나 읽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사실 뿌듯한 감정 같은 것이 생겼었다. 그러나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비판"이란 검색어를 통해 찾아낸 이 책의 위험성은 그가 종말론으로 포장하고 맬서스 주의를 악마 화하여 표현한 상대 진영이 만들 수 있는 위험보다 훨씬 더 위중한 것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오카 두 곳에서 터진 원전은 각 9,000명, 8,000명의 사망자와 사망 예정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책에서는 불과 수백 명 밖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원전 사고의 결말이라고 빤하게 알려진 진실을 프로답지 않게  호도한다.


나도 글을 길게 쓰는 편이지만, 긴 글로써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기울여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대중의 인식을 호도하여 보다 위험한 것을 위험하지 않은 것이라고 왜곡해서 받아들이게끔 만들고, 결과적으로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하고 수명 연한이 다되어 폐기 시까지 들어가는 전반적인 비용이 엄청난 원전을, 비록 같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원전 하나의 공간보다 450배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친환경 재생 에너지 발전이 되더라도 그것이 그저 원자력보다 더 비용이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최근 점점 더 비용을 낮춰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무시한 채로 그려진 "원전 찬성론"이 갖고 있는 위험성은 "친환경주의 진영"의 "기후 변화 종말론"보다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풍성할수록 그 같은 왜곡에 자신이 넘어갔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든 보상심리를 노리고 만든 것이 이 책인 듯하다. 뒤의 두꺼운 주석을 담은  페이지를 넘기며 저자의 논지가 얼마큼 왜곡되어 있는지를 검증할 독자가 절대다수 부족한 것을 저자 등은 잘 알고 있다.


내가 홀딱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서인지, 그만큼 그의 매력적인 글쓰기가 갖고 있는 위험성은 더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그가 이런 식으로 더 몇 권의 책을 펴내서 여러 정보를 1차적 정보 수집처로부터 볼 수 없는 사람들을 공깃돌 마냥 가지고 놀 것인가?


그가 써 내린 내용은 정말 대다수의 인류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그 자신과 그와 연관된 이익 단체만을 위한 글이었다. 그러면서도 "친환경 휴머니즘"을 언급하면서 마치 정의로운 뜻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것처럼 자신과 "원전 찬성론"을 미화하고 있었다.


그것에 살짝 넘어갔던 나의 무지를 반성한다. 그런데 앞으로의 삶 속에서 얼마나 나는 더 나의 무지를 이렇게 잘 반성하고서 함정에 빠지지 않고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의식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도 두려워진 순간이 찾아왔다.


사이비는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며 멈추지 않고 우리를 유혹한다. 단지, 자신의 거의 즉각적인 이익을 위해.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누군가도 그런 사이비 중에 하나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쓸쓸해지기까지 한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에 나타난 모순점을 비교적 간단한 검색으로 짧은 시간 안에 간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 2-30분간의 검색만으로도 누가 거짓말과 더불어 착각을 유도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 책은 소설 쓰기와 정치적 프레이밍, 대중 연설 등을 습득하기 위한 교본으로서는 최고 수준이었다고 인정하고 싶다. 역설적인 “친환경 디스토피아”를 그려냄으로써 대중이 “원전 에너지”를 애타게 원하는 여론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자 쓰여진 것이라면 그 본분을 다하고 있긴 하니까.


물론 “목욕물을 떠내 버리려다 욕조 속의 아이까지 버리는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몇가지 살릴만한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몰이해 등에 대한 지적은 나름 정확하다고 평해주고 싶다. 그러나 전체적인 메시지 흐름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과는 어느정도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원전 판타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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