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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05. 2022

<모비우스>-배우와 감독만 남고 영화는 사라지다

영화 제작자의 강력한 간섭이 망치는 영화의 대표적인 표본

스포일러가 나옵니다만 솔직한 심정으론 이 영화를 안 보신 분의 눈을 사고 싶습니다.


웃기는 버전의 작품으로 "베놈 2" 어느 정도 성공하고 나니 진지한 버전의 "베놈"느낌의 어두운 영화  편도 대충 그럭저럭  만들면 흥행하겠다고 제작사 측의 누군가가 판단했을 거란 생각밖에  들었다.   


그래도 명맥상 "마블 스튜디오"가 참여한 MCU의 일부 인 듯한 두건을 쓰고 있지만, 이 두건을 걷어올리고 나면 전혀 동류로 인정해줄 만한 작품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독창적이고 어둡기 그지없고, 선과 악의 사이에서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장 인간적이고도 인간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없는 존재 같은 복합성을 띤 "안티 히어로"를 만들어 내고 싶어 했을 야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보는 내내 오만 다른 잡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도록 가만히 놓아두는 심심한 이 작품은 가장 진부하면서도 CG상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 과도하게 등장하는 어둠 속에서 "베놈 1편"이 아수라장의 화면을 지니고도 흥행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인정받은 촬영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과도한 그래픽으로 도배를 했다.


하지만 이 "너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특수효과"로 범벅이 된 채로 이미 뻔하게 평면적으로 예상되는 스토리상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작품으로 그저 여러 히어로 사이에 특징 없이 하나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나오는 "히어로" 비슷한 인물을 하나 등장시켰다는 이미지를 뿌리며 마무리되었다.


소니 픽처스와 컬럼비아 스튜디오, 마블 스튜디오의 엠블렘 등에 이어서 마블 영화 작품의 등장 시에 나오는 오프닝 영상도 나와서 언뜻 일정 수준 이상의 MCU 작품이 나왔으리라는 착시를 유발하려고 했던 것 같으나 초반부부터 다른 일에 더 많은 신경이 기울어질 정도로 집중력을 유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모바일 문명 속에서 너무 쉽고 자극적이고 몇 초만에 한 번씩 신선함과 충격으로 범벅이 된 영상과 스토리만을 체험하면서 망가진 나의 집중력 때문이라고 자책하기엔, 2시간 여가 흘러 영화가 끝나가는 과정에서 그저 허탈감과 일종의 분노 비슷한 것만 남아 버린 내겐 심리적으로 남아 있는 여유도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영화를 보았거나 글을 썼거나, 업무에 관련된 공부를 했거나, 아이와 놀아줬거나, 집안일을 했다면, 그 얼마나 사회와 인류, 지구 전체를 위해서 그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었을까?   


열심히 연기하고 분위기를 살려낸 감독과 배우의 존재감은 남았다. 그러나 영화 자체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어인 일일까?


이 영화가 왜 재미없었는지 쉽게 스러져가는 기억을 되돌려서 쓰자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마치 젖은 걸레를 짜서 물이 나오듯 써 내릴 수 있다.



1. 시한부 생명을 가진 불치의 존재를 사회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 속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같이 희귀 혈액병을 앓고 있는 어린 환자들을 모아 놓는 설비에서 주인공인 천재적인 과학자 "마이클 모비우스"의 옆자리에 우연히 오게 된, "마이클"이 지어준 애칭 "마일로"를 달게 된 "록시아스 크라운"이다.


두 아이는 절친이 되고, "마이클"이 천재성을 인정받아 고등 교육 기관으로 옮길 때 주었던 편지를 빼앗아간 여럿 친구들로부터 다시 받기 위해 얻어맞기도 하는 "마일로"는 극의 초반에 확실하게 "마이클"과의 깊은 우의를 지닌 선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 둘의 우정은 계속 이어지며, 이후에 "마이클"이 인공 혈액을 개발함으로써 인정받는 천재적인 과학자가 되었지만, 정작 "노벨상"은 자신이 완전한 업적을 이룬 것이 아니어서 수상을 거부하는 "결벽증"에 가까운 "올바름"을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마일로"는 원래부터 부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재력"을 지닌 채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면서도 "마이클"이 결국 자신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할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는 존재로 계속 묘사되고 있기에 끈끈해 보인다.


그런데, "마이클"이 개발한 "치료제"를 자기 자신에게 주입한 뒤에 해상 화물선을 개조한 연구소에 칩입한 용병들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싸우게 되면서 그가 죽인 용병 모두의 피를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식혈, 식인, 살귀"의 모습으로 순식간에 변화한 장면이 나오는 타이밍은 사실 충격적인 영상과 더불어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 놀랍도록 강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인식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단계별 변화의 단계, 단계에서 관객은 다른 수많은 영화와 비교했을 때 아무런 차별성을 느낄 수가 없다. 클리셰의 미지근한 반복이 느껴질 따름이다.


이후에 같은 친구로서 그 착했던 "마일로"가 "마이클"이 개발한 "혈청"을 달라고 찾아왔을 때, 그 위험성이나 해악 등을 잘 설명하고 이런 문제가 없는 혈청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면 이를 주겠다고 하던지 그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왔다면 오갈 수 있는 대사가 양쪽 간에 전혀 오가지 않는다.


혈청을 달라고 사정을 하는 "마일로"에게 매물 차게 "마이클"은 위험하니까 줄 수 없다고 소리를 치고 위협하면서 보낸다. 뻔히 "마일로"가 돌아가는 길에 혈청이 있다는 사실을 마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허술하게 쫓아내는 그 장면은 각본 따위 상관없다는 의식에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의미한다.


"마일로"는 "마이클"의 혈청을 가져갔다는 장면 하나 없이(연구소에 들어가 지나가는 장면 중에 혈청 두 개를 보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나, 오가는 과정에서 집어가는 움직임 등이 명확하게 암시되어 있지 않다) 어디선가 입수해서 사용하게 되고, "마이클"과 같은 인류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염려는 전혀 없이 마음껏 "일반인"을 죽여서 이 피를 빨고 자신의 회복된 건강과 힘을 남용하는 존재로 화해 버린다.

출처: comic book movie

이 같은 심적인 변화나 인물의 변화에 대해서 지리멸렬한 수준의 긴 장면이 나올 필요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적지 않은 관객의 의식이 "베놈"이라는 외계 생명체도 아닌 지구에서 낳고 자란 두 명의 희귀 혈액암 환자가 하나는 그저 살귀로 변하고 하나는 살귀 노릇을 어쩔 수 없어서 하게 되었지만 최대한 자제하는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 스토리가 납득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연적인 장면이 있어야 했겠지만, 그런 것을 제대로 넣지 않았다. 왜냐면, 상영 횟수를 최대로 늘릴 수 있는 시간 안에 끝나야 하니까.


그것이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설사 작중 인물이 정의 따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는 "안티 히어로"라고 하더라도 온전히 사회생활 잘하면서 자신의 불치의 병을 숨기거나 때론 공개하며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을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감수할 수 있는 무작위의 존재로 그리는 데 있다.     


물론, 실제로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의 "마일로"에게는 어릴 때 가졌던 선의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그렇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특별하고 개별적이며 필연적인 이유가 다만 한 줄이라도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본 관객이 양심에 거리낌 없이 타인에게도 소개할 수 있는 윤리적인 위상을 가질 수 있다.   


"베놈"같은 존재는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마이클"처럼 "강박적인 정의감'을 내세우는 "인간"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얼굴이 썩어 문드러진 "뱀파이어"로 종종 변화하는 그에게 일반인이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베놈"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뜬금없이 한번 나온다.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 속하는 작품임을 설명하기 위한 대사였겠지만, 이건 주인공에게 어떤 정체성을 부여할 생각이었는지를 결국 관객이 모르게끔 만드는 대사다. 차라리 "베놈"이 시원하게 한번 등장해주기라도 했더라면 그냥 지나치는 대사로 무마가 되었을지언정.


2. 시대 정신과 맞지 않는 흥행 공식을 강요하는 제작자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윤리적인 판단을 일소하고 그저 관객이 원하는 것은 자극적인 장면과 그래픽 물량의 투입, 그리고 나름 솜씨 있는 감독의 지휘와 명배우의 그럭저럭 연기다라고 고정관념을 가진 저 멀리 "영구와 땡칠이"영화가 히트하던 시대의 감으로 영화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제작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강력한 실수를 누군가 저질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이 망작의 탄생이다.


"아비 아라드"라는 존재에 대해서 영화에 대한 정보를 고구마 줄기를 캐 들어가는 것처럼 알아보다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제작자로 참여하여 성공한 작품의 수도 적지는 않으나, 그 성공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 주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감독이나 그 밑의 "케빈 파이기"같은 재능 있는 제작자가 그 대신의 제작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실행했을 때였음을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케빈 파이기”를 등용한 사람이 “아비 아라드”이고 “케빈”은 그 때문에 “아비”를 경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내가 혹평을 했던 몇 편의 작품(베놈, 공각기동대 등등)에는 어김없이 그가 제작자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나오는데, 이제 실체로서 명명할 수 있는 그를 결국에는 발견한 것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이제야 흥행에 실패한 영화를 다시 보지 않기로 결정할 때 "아비 아라드"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비중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추적하면 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IMDB / 진정한, 현존하는 빌런이다. 아비 아라드(AVI ARAD)

이 "꼰대"분의 개입을 피해야 그나마 흥행성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질 확률을 높일 수 있고, 설사 흥행을 못했더라도 완전성과 시대 정신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보장하는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3. 희미한 상징성


"흡혈 박쥐"가 결국 이 "모비우스"의 모티브 및 상징화된 안티 히어로의 이미지를 가져야만 하지만, 이건 이미 DC에서 "배트맨"이 너무 오랫동안 상징적으로 갖고 있는 이미지다. 마블 내에서야 물론 "모비우스"가 독보적으로 이 상징성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강조하게 되었겠지만, 이 상징성의 측면에서도 뭔가 모호한 존재로서 "모비어스"가 인식되지 자신만의 이미지를 제대로 남기지 못한다.

출처: Game Rant

4. 뜬금없이 안티 히어로로 방향 전환


쿠키 영상에서 뜬금없이 "스파이더맨-홈커밍"에 나왔던 빌런인 "벌처"의 배우인 "마이클 키튼(에이드리언 툼스 역)"이 "모비우스"의 세계 속의 감옥으로 나타나 이후 어디서 챙긴 것인지는 모르는 "벌처" 슈트를 입고 날아와 "모비우스"와 만나 같이 한 팀을 이루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모비우스"로부터 흥미를 얻는 장면이 나온다.


재미있는 것이 "마이클 키튼"은 "팀 버튼" 감독이 만든 "배트맨 1, 2"의 주연 "배트맨" 배우였었다. 상징성이 떨어지는 "모비우스"에게 "벌처"의 날개 같은 이미지를 달아주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비우스"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이 느껴지지 않아 답답해진다.

출처: Daily motion

5. 소니 픽쳐스라 같은 일본 회사인 "Casio"의 PPL을 한 것인가 싶었다.


"마이클"의 손목에서 계속 스톱워치 기능을 쓰면서 등장하는 시계가 "Casio"의 전통적인 디지털시계다. 계속 등장하고 있고, 인공 혈액을 들이마셨을 때와 진짜 혈액을 들이마셨을 때, 각각 얼마큼 피에 대한 들이마신 이후의 욕망을 견딜 수 있는가를 측정할 때마다 주로 등장한다.       


이른바 전자시계라고 불린 이 시계를 찼던 국민학교 시절 이후에는 별로 사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현재는 매력 있는 제품으로 인식되지 않는 그 시계가 왜 PPL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는지 고개가 좀 갸웃거려진다.

출처: Stotern

"베놈 2"에서는 소니의 브라비아 TV가 나오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 속에 "카시오"가 나오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 배우의 연기와 주어진 제작 여건 속에서도 가까스로 영화의 매력을 그나마 남아 있도록 만들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도록 만들어준 감독의 역량에 대해서는 정말 가까스로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나마 극찬을 했었던 "차일드 44"라는 영화를 잘 만들어낸 감독인 "다니엘 에스피노사"가 이 영화를 연출해서 다행이었는데, "차일드 44"라는 작품에서 그가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결말로 극을 완결성 있게 이끌어가는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현실에 대한 불합리에 저항하는 정신을 제대로 느끼게 만들어 준 연출력에 있었다.


그런데 "베놈"을 강박적으로 좋아하는 "아비 아라드"는 정의 문제에 대해서 거의 중요성을 못 느끼는 스타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이 제작자의 영향력 밑에서는 그의 장점 중에 5할 이상은 발휘될 수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쟈레드 레토"는 이전의 DC 코믹스 영화 중 최악의 작품으로 기록되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이제 바야흐로 마블 코믹스 영화 중 최악으로 기록되고 있는 "모비어스" 양쪽에 출연한 비운의 배우가 되는 것 같지만, 그의 연기력이 영화를 망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뛰어난 연기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한쪽에서는 완전히 독창적인 "죠커"의 역할을 해냈고, 이곳에서는 영화 흥행상의 실패를 벗어나기 어렵게 제작된 영화 속의 뱀파이어이자 양심 있는 과학자 양쪽을 오가는 "모비어스"를 잘 형상화 냈다. 문제는 양쪽 제작사가 말 잘 듣고 연기 잘하는 배우를 찾아 망쳤다는 것일 뿐.    


파리한 불치 병으로 병약한 존재에서 사나운 인상으로 돌변하며 피를 갈구하는 연기는 그래픽으로 묘사된 "베놈"과 큰 차별성이 없는 "모비우스"의 전투 장면을 그나마 실감 나는 액션씬으로 느끼게 만든 거의 유일무이한 영화 속 장치 역할을 했다.


"맷 스미스"의 "마일로" 연기도 "그린 고블린"의 "월렘 데포"를 약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흑화 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뱀파이어"와 "인간"의 얼굴을 너무 자주 그래픽으로 바꿔서 식상하기 그지없는 얼굴 변화 그래픽 남용 상황에서도 이 빌런의 존재감과 죽어갈 때의 갑자기 약해지는 모습을 오로지 연기력만으로 형상화해 냈다.


이렇게 뛰어난 감독과 배우가 영화에 참여해도 관객이 경험하는 실제 세상의 모습과 너무 동떨어진 곳에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가두고 있는 제작자가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높은 상품성과 흥행성을 가진 영화가 만들어질 확률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피해야 할 그 같은 제작자의 이름만이라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아비 아라드", 절대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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