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만들었는가가 누가 출연했는가 보다 더 중요함을 알려주는 감독
스포일러가 다수 나옵니다. 방대한 원작 "듄"의 내용에 비하자면 손톱만큼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나름 큰 비중을 가진 내용이 나오므로, 영화를 보시지 않았거나 원작 소설을 보지 않으신 분 등에겐 권하지 않는 글입니다.
오랜만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출장길에 그동안 망설임에 망설임을 거듭하며 보지 않았던 "듄"을 보기로 결정하고 재생하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에 3D나 IMAX로 개봉 시에 영화를 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만큼이나 매력적이고도 거대하며, 시각적인 새로움을 가득히 전달하는 영상으로 뒤덮여 있었고, 예상대로 "시카리오"에서 또렷이 드러났던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연출력과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드러난 SF 원작의 위대함을 되살려 이를 더더욱 위대하고 있음직한 현실적인 미래로 만들어내는 판타지를 현실로 형상화해내는 능력을 이미 검증받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으로써 실망할만한 구석이 거의 없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역 음악을 종합해서 위대한 클래식을 보다 완전한 형태로 만들었던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 소나타를 집대성한 '악성' "베토벤", 고래의 중국 무술과 각종 격투기를 종합한 '절권도'의 "이소룡", 판타지 소설의 정형을 완성하여 전달한 '반지의 제왕'의 "J. R. R. 톨킨", 밀실 살인 등의 추리 소설의 형식을 광범위하게 세우고 완성도를 높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이가 이 영화의 원작의 작가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원본과도 같은 바이블이자 '스타 크래프트'를 포함한 SF RTS(Real-Time Strategy, 실시간 전략) 게임의 공식을 정형화하는데 영향을 끼치기도 한 명작인 "듄"을 만든 "프랭크 허버트"의 위상은 1965년에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본 "듄"이란 작품이 가진 SF 소설이자 여러 번 영화화와 TV 드라마화를 거치면서도 원작보다 나은 작품이 나왔다는 평가를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매력도와 완전성, 고도화된 상상력, 미래를 내다보면서 인간성을 읽고 역사를 반추하는 혜안 등은 원본을 보지 않고도 눈에 선하게 읽히고 보일 정도다.
1965년으로부터 57년이나 지난 대중문화적인 수혜를 남부럽지 않게 누린 내가 어설프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더불어 썼던 공동 소설에서 나온 상상력을 포함하고도 더 넓고 깊은 세계를 그치지 않는 상상력을 꼬아서 주제조차 심화시키며 완성시킨 "듄"이란 작품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속해 있다.
이러한 위상을 가진 작가의 복잡 다단하고 수많은 디테일이 녹아 있는 원작을 제대로 영화화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감독을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며, 그런 감독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흥행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쏟는 제작사의 제작자가 아무런 간섭없이 감독에게 온전히 영화를 맡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리저리 찾아본 바, "드니 빌뇌브"는 자신의 여러 성공적인 전작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동안 바보처럼 제작사로서의 영향력을 과신하면서 돈벌이가 될 작품을 지나친 간섭으로 망치기 일수였던 과거의 오류를 반성한 것 때문인지 최근의 대형 블록버스터를 제작할 경우 감독에게 넓은 재량권을 선사하면서 커지고 높아지는 흥행 성적에 깨달음을 얻은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충분한 창작의 권리를 보장받고서 "듄"을 만들었다고 한다.
천재성이 번득이는 "데이비드 린치"가 자신의 흑역사로 기억하는 '지나친 제작사의 간섭'으로 인해 망작으로 만들어진 1984년도의 "듄"은 아직도 그 감독을 몹시 좋아하는 나조차 그다지 보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는 작품으로 남아 있지만, 2021년도에 완성되어 개봉한 "듄"은 "드니 빌뇌브"가 만들었고, 그의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영화를 보고 나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드니 빌뇌브"는 지금 이 시대의 대중이 어떤 것까지를 관심을 가지고 보길 원하고 어떤 것은 그다지 보고 싶어하지 않는지 절묘하게 알고 있는 "감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과도하게 스토리가 복잡해질 수 있는 영역을 지혜롭게 풀어서 단순하게 만들고, 장면 장면, 스토리와 스토리 사이에 약간의 공백을 느끼게 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점점 더 다른 장면으로 슬며시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기는 일을 일면 손쉬워 보이게끔 반복한다.
"듄"이 복잡하고 긴 서사를 지닌 작품이라는 외적인 내용만 여기저기에서 읽고 경험하고 나면, 왠지 볼 용기를 잃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복잡성"의 장벽을 세운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반지의 제왕"을 훌륭하게 흥행성 높은 영화로 변환시킨 "피터 잭슨"이 떠올랐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재 창조되면서 그만큼의 장벽은 없어졌다.
사막의 공백과 미덕을 "아라비아의 로렌스"급의 고전 영화의 이미지를 넘어선 영상으로 채우고도 자신의 최고의 흥행작을 다시 "매드 맥스 4_분노의 도로"편으로 다시 수십 년 만에 흥행 경신한 "조지 밀러" 감독급의 사막을 최대한 활용하는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절로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도 아직 "듄 1 부"의 이야기로 만들어질 총 3부작 중에 1부를 마무리한 것에 불과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원작에서 나온 중요한 장치나 주제 역시 훌륭하게 "드니" 감독의 방식대로 구현될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을 갖게 만든다.
쓸데없이 "내레이션"이나 자막 등으로 이 복잡한 작품의 히스토리나 극화 이전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어쩌면 굉장히 불친절하게 영화를 시작하고 군데군데, 스토리의 디테일 상에 공백을 두어서 뭔가 좀 덜 만들어진 것 같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이미 모바일 문명으로 중무장한 최소 개도국 이상 국가의 현시대 관객에게 궁금함을 해소할만한 정보를 찾지 못할 방법은 오히려 별로 없다.
심지어 다른 일로 귀찮고 시간이 없어서 그저 이 영화만 보고 그대로 더 호기심을 연장할 생각이 없는, "듄"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봐도 영화는 나름의 무게감과 깊이를 그저 영화 속 분위기만으로도 선사해서, 관객의 내부를 훌륭한 영상과 스토리를 경험했다는 느낌에 빠지게 만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 영화 속의 여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듄"을 둘러싼 정보를 찾아보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드니 빌뇌브"의 불친절한 디테일 생략의 미덕에 감염이라도 된 듯, 세세히 그 찾아낸 스토리와 배경 내용을 굳이 모두 설명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하게 된다. 어차피, 찾아볼 사람이 쉽게 접하게 될 정보를 이곳에 세세히 적는 것은 그저 "데이터 배설"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블 코믹스 시리즈"만큼 유머 감각이 넘치고도 가벼운 액션과 스토리로 모자이크처럼 점철되어 있는 작품도 아니고 "디씨 코믹스 시리즈"처럼 오래된 히어로의 무게감이 절절히 넘치면서 웅장한 화면을 구현하는 작품도 아니지만, 그저 담담히 영화 속의 스토리에 맞춰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영화 속 현실을 자연스럽게 형상화시키며, 그 영상이 사실 임직 하다는 느낌을 거부할 수 없게끔 만들어버리고, 영화 속 배역에게 관객 자신을 어느샌가 투영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 진지하고도 어둡고 무겁고, 운명과 인간 간의 음모와 투쟁, 배신, 온갖 인간성의 바닥과도 같은 심연이 어른거리는 "원작"의 무게감을 단지 분위기만 전달하면서 그 원작 안에서 자신의 기준에서,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현시대의 관객의 눈높이에서, 중요하게 읽히고 보일만한 이야기만 "드니" 감독이 영상으로 구현해 낸 작품이 바로 이 "듄"이다.
우주 시대에 이르러 뒤룩뒤룩 살이 찐 탐욕 덩어리인 "하코넨" 가문의 "블라디미르" 남작이 황제의 질투심과 이기심과 결탁하여, 지금까지 광대한 우주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던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레토" 공작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말살하기 위해 마치 이 우주 시대에 있어서 저 인류의 멀고도 먼 옛 시대의 "향신료"와도 같은 위상을 가진 "스파이스"(수명을 늘려주고, 능력을 확대시키며, 각종 효능을 가진 물질)를 채굴해낼 수 있는 유일무이의 행성인 "아라키스"에서의 지배권과 채굴권을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포기하면서 물러나고 "아트레이더스"에게 그 권리를 양보하게 된다.
이 내용을 사막으로 뒤덮인 이 행성의 원주민인 "프레멘"의 시점에서 초반에 보여주면서 이후에 "티모시 살라메"가 연기한 "레토" 공작의 아들이자, 우주의 인류의 생존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예지 능력을 갖고 미래를 보면서 이미 "아라키스"를 포함한 우주에 뿌려 놓은 신화적 영웅담의 주인공인 "무앗딥"이자 "퀘사츠 해더락"이 될 운명을 지닌 "폴 아트레이데스"의 사춘기 시절에 격게 되는 격동의 비극을 장엄하게 그려낸다.
이 같은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한 가문이나 인간 간의 "교배"를 냉정하고도 잔인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초능력 비밀 결사인 "베네 게세리트" 중에 하나인 "레이디 제시카"가 "레토" 공작의 첩으로서 진심으로 공작을 사랑한 탓에, 원래 "딸"로 태어났어야 비밀 결사의 뜻대로 진행되어 그다음 세대에 태어나야 했을 "무앗딥"이 “레토”가 원했던 대로 남자인 "폴"로 태어나게 된다. 원래 "베네 게세리트"의 능력은 잉태해서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에도 있었지만, "레이디 제시카"는 사랑 때문에 "남자아이"를 태어나게 만든 것이다.
"베네 게세리트"는 혼란에 휩싸여, "아라키스"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비극을 맞기 전에 일종의 원장 수녀 같은 역할을 하는 (공교롭게도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베네데타"에서 이 배역을 맡은 배우 "샬럿 템플링"이 맡은 배역이 '수도원 원장 수녀"다) "교모"인 "가이우스 헬렌 모히암"이 "레이디 제시카"를 찾아와 "폴"에게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고통을 주는 상자에 손을 넣게끔 만들고, 어떤 존재인지를 파악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상자 속의 손에서 아찔한 고통을 느끼는 "티모시 살라메"의 연기와 이를 어머니로서 힘들게 버티면서 마음으로 응원하는 연기를 제대로 해낸 "레베카 페르구손"(“미션 임파서블”의 최근작들의 여주인공을 해왔다)의 내공, 냉정하고 종교적 신념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절대적 진리의 화신이 된 듯한 "교모" 연기를 마치 자기 자신인 듯 해낸 "샬럿 탬플링"의 조합은 극의 진지함을 극치로 올린다.
위의 배우들 외에도 다른 배우의 면면도 각각 맡은 배역의 연기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해내는데 하나의 모자람도 없는 모습을 연출했고, 이른바 명불허전, 자신의 배우로서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장엄한 연기에 서로 보탬이 되어줬다.
1) "오스카 아이작"의 자애롭고 정의로운 동시에 현명한 "레토 아트레이데스" 공작 연기는 "티모시 살로메"가 연기한 아들 "폴"과의 강렬한 연대감과 돈독한 부자간의 정을 느낄 수 있게끔 이뤄졌다.
2) 일면 냉철하고 강한 군인처럼 보이지만, "폴"을 아끼고 그를 제대로 훈련시키는 "거니 할렉"의 역할을 한 "조시 브롤린"은 "어벤저스"에서의 "타노스"와 "데드풀 2"의 "케이블", "시카리오"의 "멧 그레이버"를 전혀 떠올릴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 결국 소설 속에서는 내적인 대사를 통해서 복잡한 심경이 표현되어서 왜 그렇게 배신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가 절절히 이해가 되는 역할이기는 하나,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아라키스"에 주둔하게 된 뒤에 자신의 아내를 납치한 "하코넨"의 아내의 목숨을 건 협박 때문에 배신을 했지만 "하코넨"남작에게 잡혀간 "레토" 공작이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독가스"를 발사할 수 있는 이를 박아 넣는 "웰링턴 유예" 역할을 짧은 몇 컷의 등장씬에서도 인상 깊게 연기한 "장첸"은 수많은 장면이 편집되었음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남겼다.
4) 향후 시리즈가 진전되면서 다시 유전자 복제 인간인 "골라"로 부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선 이 작품에서는 인상적인 무력과 진지한 인간미, "폴"과 "레이디 제시카"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을 "아쿠아맨"에서의 실없고도 경솔한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으로 "던칸 아이다호"를 연기한 "제이슨 모모아"의 존재감도 제대로 살려졌다.
5) 잔인하고 시기심 많은 단순 무식한 악당을 연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을 강력하게 어필한 "데이브 바티스타"의 "글로수 라반" 연기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의 선량하면서도 역시 실없는 농담과 제스처를 보여주는 "드렉스" 역할 때의 모습으로부터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펼쳐진다.
6) 영화 시작에서 나오는 일부 내레이션을 제공한 "프레멘"의 "챠니 카인즈"를 연기한 "폴"의 꿈속에 나타나는 소녀 역할의 "젠데이아" 역시 "스파이더맨" 속의 "피터 파커"를 사랑하는 고교생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폴"과의 신비로운 조합을 어느 정도 납득하게 하는 사막 속의 소녀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형상화했다.
7) "프레멘" 부족의 족장인 "스틸거" 역할로 등장하는 "하비에르 바르뎀"은 그전의 그 배우가 연기했던 다른 작품의 기억을 잠시 사라지게 할 정도다.
과도한 CG를 지양하고 가능하다면 실제 현실의 모습을 화면에 담고자 노력한 바, 하나하나의 장면이 주는 생동감이 강해졌고, 일부 사용된 특수 효과의 효과성을 높이며, "프레멘"의 행성인 "아라키스"에서 추앙받는 "샤이 훌루드", 곧, 거대 사막 벌레(Sandwarm)가 등장하여 기다랗고 커다란 몸체의 끝에 달린 "거대한 입을 벌려", 수많은 이빨을 보여주면서 "스파이스"를 채굴하는 기계를 삼키고, 다른 장면인 황제의 친위 군대 격인 "사다우카"와 같이 죽기 위해 이를 불러들인 "리에트 카인즈"까지 삼키는 장면에서 관객(이자 시청자)은 그 현실감을 절절히 느끼게 되고 일면 압도당한다.
"몸에 입히는 방어막"을 장비를 가동해 장착한 채로 칼로 싸우는 장면이 전투 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개인용 방어막의 약점은 느린 속도로 파고드는 칼 등에는 찔리고 베이게 되는 것이란 설명이 잠시 "거니 할렉"이 "폴"에게 전투 능력을 가르칠 때 나온다.
격투의 과정에서 "사다우카"의 능력은 일반적인 "아트레이데스"의 부대와 "하코넨"의 부대가 가진 능력을 뛰어넘는 것으로 상대적인 우위를 보여주며 나오는데, 사막 지역에서의 "프레멘"이 가진 "사막 슈트"라든가, "샤이 훌루드"의 이빨로 만든 "검"과 사막의 황량함과 거침 속에서 자라나서 자생적으로 생긴 능력은 또한 "사다우카", "아트레이데스", "하코넨"과는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어, 각 집단 간의 강약이 나름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스토리를 쫓아가면서 느낄 수 있다.
"베네 게세리트"의 특별한 능력 중에 하나인 "목소리(Voice)"는 구사하는 목소리의 어조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는 숙련되는 초능력으로 그려지는데, "레이디 제시카"와 "폴"이 "하코넨" 군인들에게 붙잡혀 이송되는 과정에서 "레이디 제시카"가 이 능력을 사용하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게 잘 표현되었다.
"샤이 홀루드"를 불러내지 않도록, 규칙적인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사막을 춤추듯 걷는 "프레멘"의 도보 법이라는 설정과, 기계음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탱크나 트럭 같은 무한궤도나 바퀴나 운동 기관이 달린 "운송 수단"이 사막 위를 달리지 못하는 설정과 더불어, 마치 잠자리가 날갯짓을 하듯이 날개를 힘차게 움직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의 모습 등등은 원작에서 어떻게 묘사가 되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추리해내진 못해도, 과연 그 원작 소설 "듄"은 지금 이 시대에 와서 봐도 신선하고 색다른 세계관을 만들어 냈던 것임을 납득하도록 한다.
이런 작품을 좁디좁은 공간에 앉아, 졸리는 눈을 올려 세우며, 가스로 불어 오르는 배와 함께,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내 노트북 컴퓨터보다 작은 화면으로 봐야만 했다는 것이 영화가 끝난 뒤에 올라오는 억울한 감정의 이유였다.
IMAX로 개봉하는 영화관을 찾을 수 있게 되거나, 넷플릭스 또는 IPTV 채널 등으로 훨씬 더 큰 화면으로 다시 한번 더 볼 작정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내가 놓친 영상 속의 디테일이나 만들어진 분위기가 과연 어떤 것인지 재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이 작품은 언제 보더라도 확실하게 고양된 감정을 선사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생의 여러 극화 속에서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측면과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실제 하는 사건을 비유화하고 상징화해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깊이가 결부된 영상물로서 "듄"은 절로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음이 상쾌한 것은 나뿐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