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Jun 23. 2022

<유체 이탈자>-아이디어 하나로 버티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리라

스포일러가 본편을 이탈한 의식처럼 아래의 글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뿐인 스포일러가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께는 이 글을 읽기를 권하지 않습니다.


"달랑 이거 하나"란 표현이 어울리는 극화를 만났다. 국내 박스 오피스 1위도 했던 작품이란 기대로 읽어본 영화 정보 아래에 달려있는 감상평들이 의외로 50대 50대의 호불호를 보여주고 있어서 과연 봐야 하는 영화인지 아닌지 헷갈렸었다.


이 영화를 본 장소는 또한 십 수 시간 가까이 날아가는 비행기 좌석 앞의 작은 스크린이었는데, 더 이상 고를만한 영화가 보이지 않는다 싶을 때, 그래도 혹시 재미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마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었던 것을 후회한 시점은 영화를 본지 대략 40분쯤 뒤부터였다.


아이디어의 힘이 떨어지고 점차적으로 영화가 기름이 떨어진 차처럼 털털 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시동이 더 이상 걸리지 않고 멈취버릴만한 무렵에 갑자기 여분의 가스로 전환되어 달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오래전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멋지게 보여준 근접 총기 사용 무술인 "건카타" 총술을 회고하는 듯한 액션신이 나타나는 순간에 "아뿔싸, 잘못 보기로 결정했구나!"란 깨달음이 다가오고 나서야 이른바 "대오각성"했다.

물론, 내 눈이 착시를 빚은 것인지도 모른다. 좁은 장소에서 얼굴을 맞대고 근접 총격전을 하는 장면을 보면, "이퀄리브리엄"의 "건카타"가 떠오른다. "존 윅"은 그 다음이다.

순간적으로 다소 오랜 시간, 이를테면, 수십 년간 띄엄띄엄이나마 흥행 영화를 꾸준히 연에 다만 한두 편이라도 봤을만한 관객이라면, 유체이탈이 이뤄질 만큼 실망스러운 연출이 나타난다.


이건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따져보면, 영화가 하나 고유의 것을 제대로 지니고 있는 것은 12시간마다 각기 다른 신체로 의식을 옮겨가면서 자신을 둘러싼 사건의 진상을 하나씩 밝혀 간다는 "아이디어"다.


그 외의 어떤 것도 그 아이디어 이상의 매력을 지닌 것은 없다. 대략 1시간 내외의 짧은 단편으로 만들었다면 임팩트가 살아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상영 시간은 안타깝게도 그보다는 길어서 충분히 실망하며 건성으로 남은 영상을 보면서 이른바 지루함으로 고통을 주는 고문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1. 일단, 사고 등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가진 이가 자신의 기억의 파편을 하나씩 찾아내며, 자신의 정체를 찾아간다는 것은 "제이슨 본"이나 "메멘토" 등의 여러 기억상실을 되짚어가며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 가는 수많은 스토리로 나타난 클리셰다.


그게 나온다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변주부를 기가 막히게 잘 연주하면 관중은 박수를 치게 되기 마련이니까.


2. 자신의 의식이 다른 사람 속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또한 여러 영화에서 나타나는 스토리 상의 클리셰의 가까운 부분이지만 "소스 코드"에서 대표적으로 잘 나타났던 자신의 의식 속의 자기 이미지와 들어간 몸의 외모가 달리 나타나는 장면을 또다시 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물은 "윤계상"이 연기한 "강이안"이다.


최근작 “매트릭스 4”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의 미덕은 몇 번 안나오는 장면이었다는 것이다. 남의 것을 슬그머니 가져다 쓰려면 조금 소심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유체이탈자”에서는 그와 같이 거울에 나타난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자신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이 되는 상황이 필요 이상으로 여러 번 반복된다. 물론 여러명의 의식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딱 필요한 횟수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다른 영화에서 여러번 이것이 쓰였다는 것을 의식/무의식 중에 잊었기 때문인 듯하다.


3. "1" "2" 각각의 클리세지만   가지를 섞으니 기억 상실과 더불어 진행되는 의식의 의도치 않은 12시간마다 이뤄지는 갑작스러운 이동은 이른바 영어 제목처럼 "Spirit Walker"다운 것이 된다. 이것만큼은   잘 만들어졌고, 경탄할만하다.


그리고 그 과정 상에서 한 장소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몸속으로 자신의 의식이 옮겨지는 순간, 주변의 사물이 스르르 이동하고 잔상이 사라지는 동시에 전혀 다른 공간에서 자신이 나타나는 장면은, 예고편에서도 나타나지만 정말로 잘 만든 장면이다 싶었다. 어쩌면 이 장면만을 제대로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4. 그런데, 이 의식의 이동을 한정된 사건 하나에 메어두기 위해서 점차적으로 후반부로 이동하게 되면,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이 그가 의식을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을 조금씩 알아차리는 듯한 상황이 펼쳐진다.


최종 빌런인 "박실장"을 연기하는 야누스적인 "매우 착하고 견실해 보이면서도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충동적인 악당"을 연기하는 "박용우"의 연기 자체는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제대로 해냈지만, 극화 속에서 주어진 설정과 전반적인 영화 연출과 감독의 디렉팅이 엇박자를 내면서,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스스로 파국을 만들어 붕괴하는 허무 개그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뭔가 비용과 한정된 상영 시간에 쫓기듯 극을 마무리하는 기분이랄까?


5. "강이안"의 연인이자 나름의 격투술과 사격 능력 등을 보유한 여성인 "문진안" 역을 맡은 "임지연"은 그래도 열심히 감독과 연출이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연기를 하고 있는 존재로 나오지만, "강이안"의 의식이 계속 옮겨 다니며 그를 지키고자 한다는 사실을 계속 깨닫지 못하면서 민폐를 끼치는 역할을 너무 오랜동안 초지일관 반복하여 이른바 매력도와 극화 속의 여성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어버린다.


너무 쉽게 알아차리는 것도 안되었겠지만, 깨닫기까지의 과정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자신을 지키고자 해를 끼치려는 다른 이들에게 총을 발사하고 그를 보호하며 뒤로 데려가려는 "강이안"의 의식이 들어간 존재를 공격하는 장면은 미안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으로 느껴졌다. 물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변한다.


그만큼 "의식의 이동"이라는 것을 믿기 힘든 현실 속의 현상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설정이었겠지만, 이 영화 속에 그런 설정에 오래 매여있었을 이유는 굳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이 배역은 여러 정보를 찾아 자신의 애인인 "강이안"이 숨어 있는 "안가"로 이동하면서 "적"들에게 "애인"이 발각되도록 만드는 민폐를 끼치면서 내내 전통적인 액션 영화의 민폐 여성 캐릭터를 변함없고 변주도 없는 상태로 '성실하게' 연기해 낸다.


6. 덩달아 "윤계상"도 이상하게 시키는 대로만 착실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어 버린 것처럼, 자신의 정체를 알아가는 가운데, "차"를 몰고 도망 다니는 장면에서 마치 어제 아이돌이었다가 (오래전 아이돌이었던 것은 맞지만) 오늘 배우가 된 것 같이 서투르고 일상적이지 않은 대사를 읊는 장면을 연출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해서 연기하는 것을 최대한 제어했던 게 아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그냥 그 역시 매우 성실한 직장인 같은 배우의 모습으로 느껴져 왔다. 가진 개성이 마치 철저하게 말라붙어 버린 것인 양. 그렇다고 각각의 새로운 캐릭터를 제대로 존재감 있게 현실화 시켰다고 보기도 어려웠고.


7. 부패한 보안에 관계된 국가 조직의 직원들이 자신이 가진 정보망과 힘을 사용해서 마약과도 같은 향정신성 약품을 빼돌려서 자기 돈으로 만들고 불법적인 사업도 오랫동안 하며,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행한다는 내용이 밝혀진 스토리의 골격이다.


이 과정에서 그 약품을 빼돌리려는 일당의 진실을 알게 된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애인을 없애려고 하는 과정에서 마치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했던 "뤽 배송"의 영화 "루시"와도 같이 이 약품을 주입당하면서 아주 특별한 "유체이탈 능력"을 갖게 되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일당들의 의식을 오가는 존재가 된다는 "아이디어" 하나만이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탱하는 줄기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이 줄기만을 빼놓자면 어설픈 다른 작품의 차용과 클리셰의 반복, 무리한 파국으로의 이동이 나타나면서 작화 붕괴를 하듯이 무너지게 되고, 군데군데 현시대의 액션 또는 스릴러 영화에서 기대하는 스피디한 전개나 프로페셔널한 액션씬, 무리 없는 전개와는 거리가 먼 살짝 시대를 겉도는 결말을 향해 "유체이탈"을 한다.


출연한 배우 모두가 얼마나 열심히 이 영화를 찍었을지, 스태프들이 수많은 장소를 수배하고, 스턴트맨들과 수많은 관련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을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성실함”이 배여 나왔다.


동시에 이 너무도 성실한 자세와 각 잡힌 태도의 영화가 슬그머니 초반의 재미를 잃고 결국에는 존재감을 잃고 만 것에 대해서 그냥 침묵을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는 방법은 이 후반부를 어떻게든 견디겠다는 각오를 하고 보거나, 한 반 정도만 보고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반부의 아이디어는 할리우드에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기 위한 판권을 사 가게끔 만들 정도로 잘 조합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더 이 아이디어가 제대로 된 연출과 극화 구성, 배역의 설정을 제대로 하고 다시 리메이크되어서 나타날 때 한번 더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마도 남아 있는 출구일 것이다.


사대주의는 아니고, 일본작 “올드 보이”의 몇가지 아이디어가 한국 영화 “올드 보이”에서 만개하며 수작으로 거듭났던 것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양상의 기대다.



최근 1년간 100만 이상의 관객 동원을 했던 한국 영화를 찾아봤다. "유체이탈자"는 관객 동원면에서 확실히 상대적으로 성공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일단, 이 작품들은 모두 제작사와 감독과 스태프, 배우가 코로나로 인한 극장가의 최악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용기를 내서 제작을 강행한 작품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배우들의 면모도 뛰어나다. 열악한 역대 최악의 상황에서 희망을 보고,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열심히 뛰었던 것만큼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용기만을 가상하게 여겨서 볼 수는 없다. 야금야금 구미에 맞는 영화만 찾아볼 수 있는 입장이란 것이 갑자기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녹초가 되어서 집에 돌아온 심야에 다시 더한 녹초가 되거나, 주말을 맞아 일로부터 떠난 휴식을 취하던 뇌에 불쾌한 자극을 주고 싶지는 않다. 


다만, 먼 해외 출장을 떠나는 순간에는 한번씩 손대지 않던 영화에 손을 대곤한다. 마치 모험을 찾아 여행길에 나선 돈키호테처럼. 이번에는 절반에 더해서 반의, 곧, 75% 성공이었던 듯하다. 그럼 충분하지 않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