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니까” 생각하며 안심하고 볼 수는 없는 작품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팔콘과 윈터 솔저"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란의 멀티버스"를 보면서 느낀 짜릿한 감동과 재미가 "What if..."와 "완다 비전", "로키"란 드라마를 보면서 점점 더 증폭되고 확장되어 갔던 기대 이상의 "행복감"을 조금 가라앉혀 준 작품이었다.
"케빈 파이기가 제작을 맡은 MCU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대를 충족하지는 못하는구나"를 “이터널스”에 이어서 한번 더 알려준 작품이었다.
"다소 템포가 느린 드라마"를 전통적으로 잘 만든 경험을 기반으로 투입된 감독과 스태프가 만들었던 것인지, 개봉 영화 작품만큼의 밀도와 영상으로 매편 볼 때마다 기대감을 끌어올렸던 다른 드라마 작품에 비해 현저히 긴장감이 떨어졌다.
이 작품이 잘못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다른 작품의 품질이 너무 높아서 느껴지는 하자다.
사실 "팔콘"이나 "윈터 솔저"나 "캡틴 아메리카"라는 불세출의 히어로이자 고결함과 정의를 가진 연기를 어색하지 않게 하는 뛰어난 외모의 배우의 양 옆에서 "사이드 킥"같은 이미지였던 이 두 배우에겐 다시금 존재감을 높이 세우고 이후의 "개봉 작품"에서도 더 중요한 배역 비중을 얻고 관심의 수준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였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했다.
"완다"와 "비전", "로키"의 존재감이 각각의 드라마에서 개봉 영화에서보다 더 높이 아로새긴 것에 비하자면 여전히 그대로 죽은 자인 "캡틴 아메리카"의 위대함의 그늘 아래에서 "사이드 킥"을 하는 배우들 이상의 존재로 이미지의 변화를 주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 다음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로 작정하고 변신하는 "팔콘"의 변심과 변화가 이뤄지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도달 못한 것 같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지 않는 범 인류애를 가진 고결한 존재"였던 "캡틴 아메리카"를 대체할 만큼의 "카리스마"를 지니기엔 "배우 자신의 카리스마"와 "이 배우가 맡은 배역 자체의 카리스마와 능력치"가 그만큼 극화 속에서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는다.
2. "팔콘"이 겪는 드라마 속의 고난은 "캡틴 아메리카"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정하고 비브라늄 방패를 준 뒤에 그것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고민하다가 이를 국가에 반납하고 난 뒤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이다.
속 시원하게 갈등을 잘 봉합하거나 해소하면서 거듭난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이 기대한 만큼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
3. 일단, 미국의 다수 백인이 원하는 "백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흑인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것에 대한 백인의 저항에 대한 두려움이 개봉 영화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 드라마 속에서는 제대로 언급되고 있고, 이것이 하나의 미덕이 될 수 있었음에도 살짝 미진했다. “블랙 펜서”가 그 미덕을 선점했기 때문일 것이다.
슈퍼 혈청을 맞은 강화 군인이 되었고 이에 맞는 영웅적인 활동을 2차 대전 등에서 했음에도 미군의 실험체로서의 학대를 겪어야만 했던 "캡틴 아메리카"의 어둡고도 숨겨진 그림자 같은 "아이제이아"를 다시 영웅의 자리로 돌려놓는 드라마는 나름 괜찮게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허전하다.
그저 그를 영웅을 진열하는 박물관의 "캡틴 아메리카" 코너의 동상으로 만들어 놓아 둔다는 것만으로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진 것처럼 보여주는 장면이 왠지 좀 알게 모르게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정말 그것만으로 그의 인생은 일부나마 제대로 보상받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4. 티격태격하는 버디 무비의 두 남자 배우의 역할을 감독이 기대한 대로 "팔콘"과 "윈터 솔저"는 그럴듯하게 하고 있었지만, 그 둘이 그렇게 부딪치는 이유에는 "캡틴 아메리카"로부터 물려받은 "방패"를 통해 스스로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지 못할 판이었다면 왜 자신에게 그 "방패"를 줄 생각은 못했는가를 따지는 우정에 대한 "윈터 솔저"의 배신감이 자리한다.
그 배신감을 “팔콘”이 알게 된 이후에 이것을 제대로 다독거리고 해소시켜주는 장면이 충분히 나오지 못했고, 대신 반납된 "방패"를 미정부로부터 받아 "2대 캡틴 아메리카" 역할을 하게 된 "존 워커"라는 군인의 거만함과 경솔함 앞에 동지애로 더 뭉치게 되고, 후에 폭주하게 된 그와 같이 싸워서 이긴 뒤에 방패를 다시 되찾는 정도에서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 딱히 잘 된 그림처럼 보이질 않았다.
5. 중간에 “블립” 이후에 어려운 가정사로 고민 중인 "팔콘"의 누나의 어선을 고치러 가서 서로 돕는 몇 일간의 여정 속에서 결국 끈끈하게 다시 친한 사이가 되고, 이로 인해 "팔콘"이 다시 "캡틴 아메리카"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방패"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방패"를 던지고 받으며 연습하는 무술 영화나 기타 운동 등을 다룬 휴먼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나온다.
"록키" 이후에 그런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던 탓인지, 아니면 "팔콘"이 방패를 들어서 싸우는 것보다 "토니 스타크"가 만들어준 "팔콘"의 슈트의 기능이 더 뛰어난 기술로 보였기 때문인지 왠지 그 장면 때문에 어떤 감동이 생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선 "방패"를 가지고 던진 뒤에 튕겨 나온 것을 다시 받고 하는 장면을 "캡틴 아메리카"가 그토록 장렬하게 연습하며 보여준 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슈퍼 혈청 따위 맞은 바 없이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과학 및 무기 기술이 적용된 슈트의 파워에 기대어 싸우던 "팔콘"에게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생겼다는 것이 그만큼의 파워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지 않았다.
6.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급진적이고도 슈퍼 혈청을 맞은 강화 인간이 되어 "히어로"들을 괴롭히는 집단의 두목 역할을 하는 소녀, "카를 모겐소"의 이중적이고도 순수한, 선과 악 양쪽을 오가는 "빌런"으로서의 존재감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
극화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팔콘"이 "캡틴 아메리카"가 되어 가는 어떤 제대로 된 계기가 될만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빌런"으로서의 강력한 장애가 되지도 못했던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히어로조차 아닌 "파워 브로커"임을 숨긴 "샤론 카터"에게 농락당하고 마는 무력한 결말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들과 싸우기 위해서 "바론 제모"가 "윈터 솔저"에 의해서 호출되어야만 했던가라는 허탈감을 남길 정도다.
일단, 그가 지도하는 “플래그 스매셔”집단의 구성원들은 "슈퍼 혈청"을 맞은 힘을 바탕으로 “플래시 몹”을 하는 방식으로 익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테러와 더불은 은행 강도 등의 악행을 엄청난 대의 아래서 하는 것처럼 합리화 하는 젊은이들의 타락을 어설프게 보여준다.
5년 동안의 "타노스"가 전체 우주 생명체의 반을 지우면서" 블립"이 되어 사라진 사람들을 대신해서 여러 이민자들이 미국 등의 서방 선진국들에게 받아들여져, 경제적인 권리와 위상 등을 획득했었지만 다시 돌아온 50%의 인류에게 다시 그 권리를 빼앗기게 되면서 "예산" 부족 등을 문제로 직장과 거주지에서 쫓겨나게 되며, 이에 대한 반발로 "블립" 이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지지자를 확대하기 위해 "테러"를 누가 죽던 말든 점점 더 과격하게 벌이다가 후반부에는 일거에 몰살 당한다.
"007 노타임 투 다이"에서 일거에 소탕당하는 "스펙터" 급의 허무함을 선사했던 것 같다.
7. 이 과정에서 그들이 가졌던 논리가 그저 어리석은 "테러 집단"의 논리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 일리 있는 부분을 "팔콘"이 캐치해서 극의 끝에 그런 무자비한 정책을 진행하고, 5년간 사라졌다 돌아온 사람에게 맞지 않는 금융 기록이 없기 때문에 대출 지원도 해주지 않는 고지식한 원칙 지향주의로 불행을 확산시키는 미국 정부의 고위층 앞에서 훈계하듯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는 장면은 왜 그 장면에서 정부 관계자가 적절한 논리로 대응을 하지 못할 정도로 머뭇거리며 말만 듣고 있는가 하는 의아함을 낳았다.
왜냐면, "플래그 스매셔"의 "칼리"와 싸움보다는 대화를 시도하고, 보다 고결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평등을 지향하는 캐릭터로서 "팔콘"이 극 중에서 "캡틴 아메리카"답게 포장되기 위해서는 "플래그 스매셔"가 지향하는 논리와 행동이 그래도 일면 "일관성이나 진심, 정의"같은 미덕을 지니고 있어야만 했지만,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로 증발이라도 되듯이 극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팔콘"이 "캡틴 아메리카"로 인정받을 정도로 고양된 존재가 되고, 이를 적지 않은 이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내야 나올 수 있었던 감동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팔콘"이 미진하게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를 우격다짐으로 맡는 모양새가 나오니 그의 바로 옆에서 같이 이미지가 상향되어야 할 "윈터 솔저", 곧, "버키 반즈"도 더 나은 이미지로 인식될 수가 없고, 이어서 다른 인물의 위상도 줄줄이 추락한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감동을 극 중에서 몰아낸 것에 대해 끝까지 같은 양상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극을 진행시킨다. 개봉 영화 속에서 감동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히어로 간의 파워 밸런스를 조절하며, 앞 뒤 극화 내용의 균형을 적절히 조정하면서도 참신한 장면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극화가 끝나기 직전에 "샤론 카터"가 잠시 나타나 이중적인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캡틴 아메리카"와의 사이에 있었던 애틋한 연애 감정의 순수함도 순식간에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버리는, 반전이지만, 꼭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것이 그였을까 싶은 아쉬움을 남기는 내용이 잠시 흐른다.
도대체 무슨 계기로 그렇게 변했던 것인지에 대한 개연성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 개연성을 경험하려면 "실드"같은 드라마를 찾아봐야만 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내용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존 워커”는 "2대 캡틴 아메리카"였다가 자신의 폭주로 추락하고도 다시 자신의 영웅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본능을 떠나 진심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살짝 극 중에서 다시 미화되었지만, 어두운 모습으로 등장해서 픽업 제안을 남발하는 "발렌티나"로부터 "US 에이전트"라는 일종의 히어로 비슷하지만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역할을 제안받고 이를 맡게 되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모습에서 그 모든 무게감을 일순 다 잃어버리게 된다.
MCU 시리즈물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와 아들 배우가 같이 출연한 것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에서 "셀레스티얼" 중에 하나인 "에고"를 맡았던 "커트 러셀"과 이 드라마에서 "존 워커"를 연기한 "와이어트 러셀" 이 둘 뿐인 것 같다.
“와이어트 러셀”이 연기를 못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가 맡은 역할은 왠지 그를 그의 아버지인 "커트 러셀"만큼의 당대 일류의 배우로 만들만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이상의 즐거움이 이 드라마에 있기 때문에, 나는 한편 한편씩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마지막화까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렇게 만든 이유도 이야기해보려 한다.
1. 개봉작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조연들이 가졌을만한 스토리를 어느 정도 잘 형상화하여 보여준 것은 인정을 해줘야 한다. 이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보기 힘들었을, "팔콘"과 "윈터 솔저", "샤론 카터", "바론 제모" 등의 이전 "어벤저스"에서 두각을 드러내진 못하고 존재감을 잃었던 배역들에게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다른 시리즈와 결합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성공했다.
2 "팔콘"의 변신이 제대로 효과적이고도 감동적으로 와닿지 않은 것이 문제였을 뿐, "버키 반즈"가 "윈터 솔저"였을 때, 세뇌가 된 상황에서 벌였던 "암살" 때문에 피해를 "암살"당한 자의 가족들을 찾아 이른바 속죄를 하려고 하는 내용 등은 그란 존재를 차갑고 무력한 존재에서 좀 더 책임감 있고, 강한 멘털을 지닌 존재로 만드는 회복과 재생의 드라마로 어느 정도 잘 만들어졌다.
3. "팔콘"에게 "블립" 이후에 재정적인 문제가 생긴 그런 누나 같은 가족이 있을 수 있고, "블립"을 전후해서 벌어지는 이민자나 권리 회복, 5년간 가졌던 경제적이자 물리적인 기반을 갑자기 잃게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상상력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4. 미국 정부를 비롯한 미국 사회 전반에서 흑인에게 대해서 가하고 있는 "차별"이란 "폭력"이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드라마"안에서라도 제대로 드러낸 것은 제작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용기를 지니고 이 드라마에 출연했음을 충분히 깨닫게 해 준다.
5. 슈퍼 혈청을 맞고 일반인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을 때, 강력한 도덕적 기준과 고결함, 정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등이 없는 집단이 어떻게 타락해가는가를 극 중 "제모"의 말만큼이나 "플레그 슬레셔"와 "존 워커"를 통해서 그 어느 진영과 위치에 있어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로 나름 균형을 잡고 그려낸 것도 나름 괜찮게 평가할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종합적인 평가는 이 드라마가 전통적인 "버디 무비"이자 "드라마"의 형식을 어느 정도 지향하다 보니 "완다 비전"이나 "로키", "What if..."가 개봉작 수준에 이를 정도로 보여준 스피디함과 유머러스함, 감각적인 편집 등을 경험한 뒤에 이 드라마를 본 나 같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늘어지는 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이후의 드라마가 훨씬 더 나은 품질을 지니게 된 것은 이 드라마를 만들면서 경험한 시행착오에 대한 반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극화의 일관성과 신선함이 훨씬 떨어지는 "유체 이탈자"같은 개봉 영화보단 더 재미있고, 긴장감과 신선함이 이어지는 시간이 짧지만은 않다. 다만 다른 MCU 작품과 비교해서 좀 처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