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고도 "사랑"을 찾는 "신"과 "빌런"의 대결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에겐 이 글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먹기 좋고 냄새도 좋고 보기도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고 내일도 같은 것을 먹을 것이라 생각되는 음식이 되면 그 음식이 가진 가치는 떨어진다. 더불어 먹고 싶은 마음도 줄어들고 냄새 맡거나 쳐다보고 싶은 의욕도 사라지는 법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어 있다가 점차적으로 짧은 주기를 거쳐서 하나둘씩 개봉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디씨 엔터테인먼트 유니버스", "소니 스파이더 유니버스" 등의 작품은 오랜 허기짐에 시달렸던 영화팬들에게 감각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차려진 잔치상처럼 다가왔다.
개봉작 중에 일정 수준 이하의 작품이 나온 것은 "모비우스"였고, "이터널스"는 작품의 수준보다 2차 대전 전후하여 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타인종 학살과 인종 청소를 시도했던 일본이 인종 청소를 당할 뻔했던 국가로만 그려지는 일본 중심주의를 방치한 감독이나 제작사의 판단 미스가 나왔다는 문제가 있었다.
드라마로서는 "팔콘과 윈터 솔저"가 다소 약한 흥행성을 보였고, "완다 비전"과 "로키", "What if..."는 기대했던 바를 확실하게 상회했다. 그 외의 수많은 드라마 중에 "실드"와 "호크아이", "플래시", "고담", "디펜더스" 등등의 히어로물을 다룬 시리즈물들을 다 보진 못했기 때문에, 더 평가를 할만한 드라마는 없다.
이 차려진 잔치 상 내에서 천편일률적이거나 간신히 이전에 성공작 수준의 자기 복제물로 느껴지면서 진부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오로지 하나 "모비우스"뿐이었다.
그 외의 거의 모든 작품은 각각 최고 수준으로서 거듭나는 방식으로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매편 볼 때마다 즐거움의 정도가 점점 더 커지는 현상이 그치질 않았다.
"토르-러브 앤 썬더"는 그렇다면, 그 산해 진미에서 과연 어떤 수준으로 나타나는 작품이 된 것일까? 영화를 보기 전의 관객은 이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 더듬이를 쫑긋 세우고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여론은 호불호를 보이는 평가를 이곳저곳에 남겨 놓고 있다.
종합하자면, 익히 잘 아는 방식으로 잘 만들어진 최고의 음식이 대접된 것만큼은 분명하고, 그 양념과 재료, 조리 방법, 요리사의 솜씨, 식기, 불의 온도 모든 것이 최적화된 상태에서 나온 음식이 분명하리란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최고의 음식으로 불리는 또 하나의 작품인 "토르-러브 앤 썬더"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환성을 질러야 맞지 않겠는가? 난 물론, 이전의 개봉작들에 대해서 "모비우스"와 "이터널스", "팔콘과 윈터 솔저"를 빼고서 질렀던 환성을 그대로 지르고 있는 이른바 "마블 빠" 수준의 관객임이 틀림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기 전과 그 이후 불만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목소리를 듣고도 왜 이 영화가 볼만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분명히 이 요리는 맛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맛있게 먹고도 요리 값이 비싸다던지 주방장이나 종업원 태도가 안 좋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욕을 먹고 있더라도 일단 맛보면 그 맛 자체에는 만족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좀 길게 쓰더라도.
맛없는 음식이라면 "맛없다"라고 쓰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냥 "맛없다"라고 쓰기에는 아쉬운 영화다. 그래서 써 본다.
이 영화는 호평 못지않게 적지 않은 악평과도 마주하고 있다. 생각 외로 좋지 않은 평도 만만치 않게 쌓여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동안 산해진미만 경험해왔던 관객이 이제 조금 물리기 시작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이 영화 자체가 시도한 것들에 대한 반감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반감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먼저 적어본다.
1. 일종의 혁명을 시도했던 부분에 대한 반감
통상적으로 신이라 함은 영원불멸의 존재로서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으면서 영속하는 존재인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신의 이야기를 다룬 고래로부터의 많은 내용들은 이미 처음 그 신화의 원본이 생겨난 이후 여러 인간에 의해서 각색되어 왔고, 적지 않은 버전의 극화 속에서 죽고 사라지는 상황을 반복한다.
그 이야기들이 이어오면서 신의 이름과 캐릭터도 적잖이 변형되었고, 이른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도 정말 아무렇게나 자의적으로 해석되면서 이곳저곳의 소설과 동화, 만화, 웹툰, 애니메이션에서 수많은 변형을 보여주며 존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신화의 다양한 변형을 참고하여 오늘날까지 다양한 코믹스의 히어로의 원형이 만들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잊지 않고 "마블 코믹스" 등의 코믹스 회사는 그 신화 속의 신들도 자신의 컨텐츠 안으로 끌어들여온 것이며, 바야흐로 신화까지 영역을 넓힌 촘촘한 이야기의 네트워크를 구성해 온 것이다.
"아스가르드"는 인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신"들이 모여 있는 행성으로 MCU에 등장한 이래로 그 안에서 이른바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한다. 특히나 "토르"의 동생인 "로키"는 영화 속에서도 설명되지만 3번이나 죽음을 맞이했다.
이 영화는 그 아스가르드에서 나오는 "바이킹"의 신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인 "제우스"를 끌어들였고, 전지전능한 그 신을 우스꽝스럽고 겁쟁이에 "파티광"으로 묘사하면서 여러 면에서 "신"으로서의 권능으로부터 멀어져 코미디언에 가깝게 우스운 모습으로 변해온 "토르"의 위상을 살짝 상대적으로 더 진지한 존재로 끌어올렸다.
나름 진지하게 읽고 공부했던 신화 속의 위대한 존재가 희화화되고, 태초부터 인간의 내부에서 애매모호하게 항상 남아 있는 신적인 존재에 대한 단호한 "부정"이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도살자 고르"를 통해서 나타났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진지한 팬들은 조금 빈정이 상할 수 있다.
여러 신이 그가 휘두르는 "네크로 소드(Necrosword)"에 의해서 죽게 되고, 또 다른 우주 신화적인 예언으로써 우주적 존재인 "이터너티"와 "네크로 소드"로 신을 죽인 자가 만나게 되면 결국 우주 전체의 모든 신을 죽일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굳이 북유럽 신화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문화적 산물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신성 모독 운운하는 이야기를 할 이유도 없고, 자신들이 믿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이 속해 있는 주류 종교가 언급되고 있는 바는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언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뿐이지, "고르"에게 납치된 "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도움을 받으러 신들이 모여 있는 "옴니포턴스 시티"에 도착한 "토르"와 "마이티 토르(제인 포스터)", "발키리"가 여러 국가와 지역에 있는 또 다른 신들의 모습도 고루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신"이란 존재의 권능을 "코믹스"에서부터 광범위하게 희화화시켜왔음을 이제 글로벌 관객까지 슬쩍 알게 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가볍게 보고 듣고 넘어가던 만화를 실사로 만든 영화에 불과했던 마블 시리즈가 그 영향력을 날로 날로 확대해오다가 본격적으로 신의 가치를 형편없이 떨어뜨리며 묘사하자 "신적인 존재"에 기대어서 "코로나"와 "전쟁", "인플레이션" 소비의 저하, 일자리의 감소 등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대중의 입장에서 희미하게 갖고 있던 희망마저 빼앗고 있다는 반감이 자기도 모르게 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크리스천 베일"의 "도살자 고르" 연기가 이런 반감을 무의식 중에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큼 훌륭했었다.
모든 것이 황폐화되고 먹을 것이 전혀 없는 한 행성에서 딸과 함께 사막을 헤매다 딸이 죽은 뒤에 그가 보여준 비탄에 빠진 모습은 자식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가슴에 와닿는 슬픔을 전달하는 연기였고, 그 직전에 자신이 믿는 신인 "라푸"를 향해 "딸"을 위해 음식과 물을 달라고 한 기도도 가슴을 울렸다.
그러고 나서 우연인 것처럼 마주치게 된 그 행성의 "신"인 "라푸"는 자신을 믿는 자가 있건 없건 그다지 개의치 않으며, 얼마나 신도가 많이 죽건 말건 자기 자신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신"의 모습을 연출하며, 이런 "신"의 모습은 이후의 스토리에서 나온 "제우스"에서도 다를 것 없이 묘사된다.
이런 "신", "라푸"의 실제 모습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의 신앙을 버리겠다고 외친 "고르"를 "라푸"가 죽이려고 할 때, "라푸"가 "고르"가 오기 전에 처치한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인 "네크로 소드"를 들고 왔던 자의 옆에서 "네크로 소드"가 "고르"에게 순식간에 쥐어지면서 "모든 신을 죽여라"란 메시지를 준다.
"고르"는 단호하게 "라푸"를 찌른 뒤에 "너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라푸"에게 자신은 "계시"를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완전하게 죽여 버린다.
이후에 "여러 신들을 거침없이 죽이는 행보"를 이어가게 되는 내용은 매우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부가적인 전후의 설명 없이 이뤄진다.
비록 판타지와 SF로 범벅이 된 상업영화에 불과하지만, 왠지 이 영역까지 거침없이 진입한 것에 대해서 일부 관객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부 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하며, 이것조차 아마도 제작진과 마케팅 부서의 사람들은 인식을 하고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나 그것이 스토리를 바꿀 이유는 되지 못했을 것이고, 분명히 "옹호자"와 "비옹호자"로 나뉘어서 갑론을박하는 상황이 그다지 큰 흥행에 대한 위험 없이 영화의 흥행을 도와주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2. "토르"를 이미지 메이킹하는 방식에 대한 반감
물론, "토르-라그나로크"와 "어벤저스-인피니티 워", "어벤저스-엔드 게임"으로 돌아가 보자면, "토르"의 이미지를 위엄과 권능을 가진 "왕"이자 "신"의 모습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수많은 사랑하는 존재들 때문에 심적으로 바닥상태에 이르고, 이 상황에서도 "더이상 잃을 것이 없게 되었기 때문에 힘을 내서 복수하기 위해 목숨을 건" 영웅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스토리를 매번 마지막에 남겨 계속 존재감 있게 등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기는 하였다.
"토르"의 권능과 신적인 위엄을 강조하려고 했던 고전 영화적인 요소를 다시 현대적으로 각색해서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캐네스 브레나" 감독이 만든 "토르-천둥의 신"과 "왕좌의 게임" 등의 각본을 만들고 "터미네이터-제네시스"도 감독한 바 있는 "엘렌 테일러"가 만든 "토르-다크 월드"는 흥행 저조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권능과 무거움을 "크리스 헴스워스"같은 배우의 등에 지워서는 흥행에 걸림돌이 될 이른바 "두드러기"가 일어날 관객이 많을 것임을 알게 된 제작사는 "타이카 와이티티"라는 가볍고 유머로 넘치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인 감동을 잘 이끌어 내는 신진 감독을 선택함으로써 "토르-라그나크로"의 흥행에 성공했었다.
이같이 만들어진 "토르"의 진지함을 거의 70% 이상 덜어낸 이미지는 이후 작품에서도 계속 연장이 되었고, "어벤저스-엔드 게임"에서는 이 같은 과정에서 망가진 "비만형 체형"까지 갖고 자신감도 상실한 "토르"가 어떻게 반전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복구해낼 것인가가 나의 질문이 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채널로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서도 배포된 "페이즈 4"에 속한 "개봉작"과 "드라마"들은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위도우", "완다", "비전", "로키", "팔콘", "윈터 솔저", "제모", "호크아이" 등의 "어벤저스"의 내부 및 주변 캐릭터의 존재감을 최소 유지하거나 더 상향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토르", "헐크", "앤트맨" 등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잠잠하다 "토르-러브 앤 선더"가 나오게 되었으므로, 그간 그 같은 주변 작품들의 일부나 전체를 경험한 관객의 입장에서는 기대감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토르"의 이미지가 다시 상향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나 같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일단, 이전에 엄청나게 무너진 그의 이미지를 영화 속에서 압축된 스토리로 모든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여자인 "제인 포스터"마저 잃었던 그가 다시 근육질의 몸매를 갖게 되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속해서 수많은 행성을 다니며 악과 싸우며, "파워"를 회복하고 발휘했음을 보여준다.
초반에 배우로서의 연기력도 겸비한 이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토르-라그나크로"에서 "크로난" 종족의 "코르그"로 등장하여 "토르"와의 콤비 케미를 일부 만들어 냄과 동시에 "토르-러브 앤 선더"에서는 초반 내레이션을 하는 역할도 겸하면서 극의 끝까지 개그를 멈추지 않는 조연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재미면에서 나름 공헌을 했다.
그런데, "토르"는 신체 이미지를 다시 근육질로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담꾼이자 개그 캐릭터로서의 "토니 스타크"가 떠난 후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균형"에 입각한 제작진의 요구가 있었던 것인지, 이 영화 속에서도 변함없이 개그 캐릭터의 모습을 유지한다.
후반부에 가서야 치열함 싸움 속에서 진지해지고 권능을 가진 "신"이자 "왕"으로서의 위엄을 되찾고 보이게 되지만, 강강약, 중중약, 중약강 등의 리듬감을 가지고 캐릭터가 한번 정도 다시 진지한 모습으로 변해야 할 타이밍에 아직도 싸우는 중에 "록스타"같은 복장을 한 채로 "웰 컴 투 더 정글"같은 음악과 더불어 싸우고, 계획 없이 적진으로 출몰하며, 다시 만난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다시 사랑을 잃게 될까 봐) 오랜동안 사랑을 고백하기를 주저하고, 여전히 더듬거리며 자신감 있게 말을 잘하지 못한다.
신들의 행성인 "옴니포턴스 시티"에 가서는 존경하는 신인 "제우스" 앞에서 이미 "발키리"와 "마이티 토르"는 그와 그곳의 신들이 타락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임을 눈치채고 "벼락"만 훔쳐서 도망가자고 이야기하지만, 미련을 앞세워 "제우스"에게 "도살자 고르"를 처단하기 위한 협조를 요청하다가 "제우스"에 의해서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당하는 장면도 연출한다.
"토르"가 나온 시리즈물 전부를 보면서 다시 전지전능한 "신"이자 "왕"의 모습으로 나타날 "토르"를 기대한 팬이 적지 않게 있었다면, 일부 실망감을 가지고 영화에 대한 반감을 가질만한 부분이다.
3. 성공 공식에 사로 잡혀 안전빵의 스토리를 다시 채용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반감
다시 뻔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자주 써먹는 음식점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 한다. 그것만큼 어쩌면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호응을 낳기 위해서 강조하면서 접근한 좀 더 말초적이고 좀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본능적인 소재를 써먹는 방식에 걸맞은 비유는 또 없을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영웅의 화려한 복귀를 그리지만 동시에 그와 그의 연인, 그의 백성이 취한 위기 상황을 그리고 그 상황 속에 어느 정도의 전능과 예상치 못한 힘을 가진 "빌런"을 집어넣고, 이를 제어할 수 없게 되는 어려움을 그려내다가 결국 끝에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을 투여한 뒤에 결과적으로는 포기했던 "승리"라는 결과를 얻게 되는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들어왔을 때 "와"하는 함성이 나올 정도의 화려한 CG로 만들어진 "뉴 아스가르드 왕국"의 테마 파크화 되고 상업 지구화된 모습을 넣고, "옴니포턴스 시티"의 화려한 비주얼을 보여준 이후에 "스톰브레이커스"와 "뮬니르", "벼락(선더볼트)"이 가진 강력한 파워와 더불어 혼전이 나타나며, "색상이 모두 사라진", "그림자 영역"이란 우주 공간에 진입하여 흑백의 장면으로 전후좌우로 중력이 변환되는 장면 등이 나온다.
이런 각각의 장면과 스토리 라인 각각의 짧게 짧게 끊어진 부분들은 각각의 면에서 하나하나 훌륭하기 이를 데 없고, 나름 신선하며, 제대로 된 모험적인 시도가 결합이 되어 있는 것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스토리의 얼게가 항상 일정하고 변화가 없으며, 패턴 자체가 이전의 성공적인 영화의 형식을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일부 관객은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반감이 또한 일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상기의 3가지 반감이 영화를 보면서 일부 들었을 수 있는 반감이자 악평을 구성하는 내용의 대다수가 갖고 있는 내용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 성공한 시리즈물이 아니었다면 가질 수 없는 흥행 공식이라는 노하우와 축적된 자본을 통해서 쏟아부은 물량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 영화의 품질은 절대로 그냥 욕만 하고 말 정도의 수준은 넘어가 있다.
1. “크리스천 베일”과 “러셀 크로우”가 한 “빌런” 연기의 수준이 매우 훌륭하다.
앞서서 "신"이란 존재를 모독하는 영화의 내용에 반감이 생길 정도의 관객이 생겨났다면 그것은 "도살자 고르"의 영화상의 빈약한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그 무서운 "존재감"을 제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만든, 분장의 영향을 살짝 받았겠지만, 위대한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력의 탓이 꽤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고르"의 존재감을 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보이게끔 만든 것은 이를 퇴치할 만큼의 역량을 가졌을 것으로 "토르" 일행이 생각해서 찾아가 본 바, "형편없고 살이 뒤룩뒤룩 찌고 늙었으며,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타락한 신"을 연기한 "제우스" 역의 "러셀 크로우"의 배우로서의 역량도 있다.
"워너 브로스"사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디씨 코믹스"물 중에 가장 위대한 흥행을 제대로 해냈던 "배트맨 트릴로지"에서 많은 이들이 박수를 쳐준 "배트맨"이자 "브루스 웨인" 역할을 뛰어난 연기로 소화한 "크리스천 베일“과 로마의 군인이었지만 모함을 당한 후 치열한 검투사로서의 카리스마가 넘치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장군" 역할을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이며 연기했던 "러셀 크로우"의 대변신이다.
이 두 배우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달려와서 세계관 내의 "신"의 존재감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역할을 같이 수행해주었기 때문에 그만큼 그 이야기는 보다 설득력이 있는 스토리로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졌고, 그 두 사람이 그 각각의 배역을 맡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런 반감 같은 것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 반감이 일부 관객들에게라도 생겼다면 이 두 사람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다는 방증이다 싶다.
2. "크리스 햄스워스"는 제작사와 감독이 원하는 연기를 그 이상으로 해냈다.
이 영화 속에서 "사랑"에 가장 목말라 있는 3명의 인물은 "토르"와 "고르", "제인 포스터"다. "토르"는 극의 초반에서도 "코르그"의 내레이션으로 살짝 언급되지만 사랑하는 모두를 잃어버린 존재이고 더 이상의 상실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 그저 악을 퇴치하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거는 무모하고 건조한 이가 되어버린 모습을 지속한다.
이 모습은 살짝 넋이 나간 모습이기도 하고, 자신의 권능의 커다란 부분이었던 "아스가르드"를 "발키리"에게 주어버리고 "왕"으로서의 위치도 포기한 그에겐 농담처럼 오가긴 하지만 "고르"가 "신"을 죽이러 다니는 과정에서 자신의 동료 중에 하나였던 "시프"가 겪는 위험을 위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웃기게도 "크리스 프렛"이 연기한 "피터 퀼", 곧, "스타로드"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마치 자신의 부하들인 것처럼 이야기하게끔 만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함선도 아닌 우주선을 마치 자신의 것이었다가 "스타로드"에게 맡기는 것 같은 경우에 안 맞는 대사를 진심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나게 만든다.
그는 어쩌면 자신에게 온 절망을 유머로 승화시켜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영화 속 히어로 중에 가장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상실한 낙차 큰 추락을 겪은 뒤에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을 그런 방식으로 잘 연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뮬니르"를 다시 만난 "토르"가 한번 "뮬니르"를 잡아보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거나 "제우스"의 "벼락(선더볼트)"를 잡을 때마다 나타나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움직이는 "스톰브레이커스"에게도 쩔쩔매며, 자신에겐 "스톰브레이커스" 밖에 없다면서 질투심을 다독이는 모습에서 위축된 그의 심리는 계속 드러난다.
그런 너덜너덜한 심리상태와 불안정함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이후에 "고르"의 공격을 받고 있는 지구의 "신 아스가르드"로 "스톰브레이커스"의 "바이프로스트" 기능으로 순식간에 나타나 싸우는 과정에서 "제인 포스터"가 암으로 죽어가던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도구가 "뮬니르"라고 생각하고 "신 아스가르드"에 와서 "라그나크로"에서 "토르"와 "로키"의 누나인 "헬라"가 박살 낸 "뮬니르"를 잡고 변신한 "마이티 토르"가 되어 싸우면서 나타났을 때, 놀라움과 더불어, 가슴 두근 거림과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토르"와 "제인"이 어느 만큼 헤어져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잠시 나온다. "제인"은 3~4년을 "토르" 정확하게 8년 몇 개월에 일자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제인"이 "블립"의 5년간 사라져 있었음을 암시하며, 얼마나 오랜동안 "토르"가 그를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었는가를 잘 드러낸다.
이후에 "고르"에게 납치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 헤임달의 아들인 "액슬"을 통해서 환영으로 나타나 겁에 질린 아이들에게 찾아가 구해낼 것이라는 희망을 전달하고, 최후의 싸움에서는 "네크로 소드"에 소환하는 괴물들과 아이들 각각이 싸울 수 있도록 자신의 "천둥"의 힘과 동기화시키는 내용 등은 예상할 수 없었던 전개였기 때문에 이 또한 감춰져 왔던 "토르"의 능력이 하나 더 드러나는 장면이어서 일부 신선함과 차별성을 보였다.
분명히 "고르"와의 싸움은 "토르"에게 역부족의 상황이었지만 "제인 포스터"가 "뮬니르"를 들 때마다 스테미너와 힘이 상승하는 반면 "마이티 토르"가 아닌 상태에서는 계속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병석에 그를 두고 "어둠 영역"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비장감이 넘치면서 이 "사랑꾼"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드러낸다.
마지막에 "이터너티"를 만난 "고르"가 소원 한 가지만 빌면 이뤄지게 되는 상황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신들이 그에 의해서 소멸될 수도 있지만 죽어가는 "제인 포스터"를 선택하여 그를 안는 장면이 나올 때, 그저 "고르"에게 "네가 이겼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그가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이었으며 왕위를 차지하는 것이나 신의 권능을 유지하거나 전쟁에서의 승리 같은 것이 아니었음을 드러내 준다.
이런 스토리가 지금까지 "토르"가 바보 같은 모습으로 계속 연기를 해오지 않았다면 설득력 있는 감동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다는 점에서 "크리스 햄스워스"의 연기는 제작사와 감독이 의도했던 내용과 제대로 일치되는 것이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3. 흥행에 성공할만한 작품이 될만한 여러 요소가 충분히 등장했다.
이전의 성공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는 복제품이 나온 것이 아닌지라는 이야기 자체가 이번에는 이 영화 속에 성공작으로 불릴 수 있을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었다는 또 하나의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수많은 복제품, 성공 공식을 답습하는 게으름과 무신경함을 여러 영화의 단점으로 비평했던 내가 왜 "마블 빠"같이 이 영화는 그런 것이 설사 있더라도 변명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록음악에 맞춰서 록스타 복장을 하고 "장 끌로드 반담"이 대형 트레일러트럭 광고에서 두 다리를 양쪽으로 완전히 벌리고 트럭 두대 사이에 끼여서 달리는 장면이 나왔던 것처럼 양쪽에 적의 공중 공격기 사이에서 다리를 양쪽으로 완전히 벌리고 끼여서 싸우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그대로 일종의 개그다.
이런 개그는 아는 사람만 알고 보는 것이겠지만, 영화 전편에 흐르는 느슨한 긴장감과 이 영화가 현실을 제대로 모사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관객의 즐거움을 위한 허구를 만드는 것이란 신호들이기 때문에, 그 복장이나 "웰 컴 투 더 정글"같은 배경 음악 등의 내용이 진부한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즐거웠다.
2) 암에 걸려서 투병하는 모습으로 등장해서 "뮬니르"를 들고서 "토르" 못지않은 전투 능력을 보여준 "제인 포스터"는 수많은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에게 민폐를 끼치며 자신의 약함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를 남자 주인공이 해결해주는 주체적인 판단 능력이나 제대로 된 모험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여자 서브 주연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난 또 하나의 변형이다.
제대로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죽은 "아스가르드 전사"는 "발할라"라는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언급되었는데, 영화의 마지막 "쿠키" 영상에 "제인 포스터"가 이곳에서 나타나고 "헤임달"을 만나 신전이 이곳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여기저기 신전이 있는 우주의 다채로운 모습이 하나 더 연결된 것인데, 이후의 작품에도 "제인"이 다시 등장할 것이고, "발할라"까지 포함된 스토리로 확장될 것이란 기대를 주었다.
3) "제우스"는 맥없이 "벼락(선더볼트)"를 빼앗은 "토르"가 이를 던져 가슴이 뚫려서 죽는 것처럼 나오지만, 역시 신의 신답게 마지막 쿠키 영상에서 이를 치유하며 다시 살아나 "히어로"에게 치여서 "신"이 제대로 그 권능을 제대로 인간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치욕스럽게 여기며 "헤라클레스"를 불러서 자신이 당한 것을 복수하려고 하는 의지를 보인다. 이 장면도 이후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일부 관객에게 반감을 주었을 "신"의 능력이 너무나도 약한 것으로 묘사되었던 것은 이른바 추진력을 얻기 위한 제작사와 감독의 길게 보고 깊이 생각해서 넣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하는 "피터 파커"가 그 때문에 더 제대로 승리하고 성숙하는 것처럼.
4) "올드 스파이스" 광고를 찍는 "테사 톰슨"이 연기한 현재 "아스가르드"의 왕인 "발키리"의 장면은 "신 아스가르드"가 상업화된 테마 파크 공간으로 바뀌면서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고 "아스가르드"인이 현명하고 지구의 경제 상황에 맞게 진화하여 제대로 적응하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중간에 이런 "자본가"같은 일을 수행했던 "발키리"가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본질이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는 것임을 떠올리며 "제인"과 나눈 대사 뒤에 치열하게 싸우면서 전사로서의 본질을 보여주고, "옴니포턴스"에서의 싸움 중에는 "제우스"가 "벼락"에 맞아떨어진 뒤에 그의 왕좌 옆에 올라서서 군인들을 격퇴하고 아름다운 시녀인 듯한 여자와 눈을 마주하고 서로 매혹되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이른바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서 연출함으로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줄기차게 추구하는 "PC"를 지속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크로난"족이자 남자인 "코르그"가 자신들은 (성별 구분 없이 또는 남자만) 둘이 만나 용암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신생아가 하나 생기는 족속이란 이야기를 하고, 영화의 끝에서 다른 남자 "크로난"족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장면이 나오면서 전 우주적으로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곳도 있다는 상상을 전파했다.
굳이 차별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특정하여 차별하는 세계가 변화할수록 내 아이가 살아갈 지구는 안전해지고 그나마 더 행복한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견지에서 이 또한 잘 나온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혐오와 차별이 더 엷어짐으로 해서 우리와 같은 아시아인이자 한국인이 미주 유럽 백인 또는 일본인 또는 중국인으로부터 혐오와 차별을 주고받는 경우도 줄어드는 것이고, 같은 슬라브족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인이냐 러시아 인이냐 구분해서 싸우는 것부터 그만둬야, 전쟁이 끝나고 이 어려운 상황부터 더 나아질 길이 생긴다.
혐오와 차별을 경감시키는 것은 실제로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각각의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라는 견지에서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은 잘못되지 않았다.
5) 전쟁에서 이겨서 포상으로 받은 커다란 염소 2마리가 "아스가르드"에서 놀이기구 노릇을 하던 "배"를 우주선처럼 끌고 "스톰브레이커스"의 "바이 프로스트" 광선으로 깔아진 빛의 도로를 밝고 우주 공간을 날아가는 장면이나 이 과정에서 우주 돌고래가 유영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 등은 판타지 영화로서 제공해야 마땅한 것이 잘 제공된 장면이다.
6) "헬라"에 의해서 쪼개졌던 "뮬니르"가 다시 완전히 접합된 것이 아니라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태로 기능하다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서 여러 적을 공격하고, 적 내부로 들어가서는 다시 튀어나오면서 적을 찢어 놓는 장면 등은 꽤 잘 만들어지고 효과적인 액션신을 만들어 줬다.
7) "옴니포턴스 시티"의 공간은 매우 흥미롭고도 새롭게 잘 형상화되었으며, 군데군데, "셀리스티얼"이나 앞으로의 영화 속에서 나오게 될 우주적인 존재들의 형상도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 어떤 그림을 더 그리고 있으며,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발견할만한 "이스터 에그"가 이 영화 속에도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는 궁금 증을 낳는다.
시간과 에너지가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본 이후에도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떡밥들이 상당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재미는 이런 광대한 스토리와 엮여 있는 시리즈물이 아니라면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글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여러 번 나오게 되는데, 보는 동안 기분이 언짢았고 별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를 추천할만한 영화가 아니라고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는 그분들의 생각도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내 어린 시절의 추억 팔이 영화 같기는 해도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는 "탑 건-매버릭"도 봐야 하고, 극찬을 했었던 영화지만 악평이 넘실대는 "마녀 part 2"도 봐야 한다. 그 두 영화에 대해서 어떤 말을 남기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선 이 영화에 대해서는 내 감정이 "사랑"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실토를 해야겠다. 끈질기게 "토르"의 본질이 "사랑"에 있음을 설정한 그대로 유지하고, 잠시 한 편에만 나타난 "빌런"아닌 "빌런", "고르"의 본질도 "사랑"에 있었다.
참 진부하지만, 이 "사랑"에 대한 변주를 이 영화는 또한번 수많은 이전의 작품처럼 잘 연주했다. 그 점만큼은 여러 비평의 촘촘한 망을 벗어나서 하나 인정해줄 만한 부분이라고 믿고 싶다.
왜냐면, 나 역시도 그 하나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척, 친구, 동료, 그리고 독자분들 등 그 모두에 대한 또는 일부에 대한 "사랑" 없이는 이런 글조차 써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