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Aug 06. 2022

<비상선언>-항공 재난극의 리더가 되고자 하다

4DX에서 이 항공 재난극의 진가를 절절히 느끼며 보다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방금 전에 송파 CGV에서 영화 감상을 마치고 나와서 스타벅스에 앉아 다음 영화를 기다리며 차가운 샌드위치 하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컵을 순식간에 흡입했다. 그러고 보니 내내 긴장을 했던 것은 맞았던 것 같고, 목이 타들어 가도록 만드는 몰입감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보는 내내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은 4DX로 보기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들려서 경험했던 것보다 국내에서 한국 영화를 보면서도 실감 나는 흔들림과 바람이 머리를 스치는 느낌, 영화 속의 인물들이 항공기 안에서 겪는 긴장감과 흥분, 당혹감을 같이 겪고 있다는 기분이 더 잘 내내 생생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그저 2D로 보았다면 아마도 감상은 조금 밋밋해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중간에 비행기의 기장마저 "임시완"이 연기한 살인마로 제대로 형상화된 캐릭터인 "류진석"이 항공기에 살포한 바이러스에 의해서 죽은 뒤에 여객기가 급강하하는 장면은 "미드웨이"에서 나타났던 전투기에 탄 채로 나오는 해전 장면보다도 더 높은 긴박감의 수준과 아찔함을 제대로 4DX가 구현해 냈다.

출처: 매일경제

스크린 속 장면도 비행기가 제대로 급강하하는 것이 제대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배우들 모두가 이 비행기 안에서 천장과 기내 양쪽으로 곤두박질치고 사방팔방으로 던져지는 것이 제대로 연출되고 또한 연기되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항공 재난 영화"의 신기원을 열고 글로벌 영화사 속의 리더급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싶어 하는 야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까지 했다.


"연애의 목적"을 만들었던 "한재림"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제작 전반을 모두 지배하는 엄청난 역량과 재능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타이틀롤이 올라가면서 언뜻 알 수 있었다. 제작과 각본, 연출 등등 중요한 부문에 모두 그의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영화는 통합된 내용으로 장면과 스토리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면서 최대한 군더더기 없게 사태를 진전시키고 소강시키며 적절한 수준의 우여곡절을 겪고 마무리에 이르며, 마지막에 나오는 "드뷔시"의 "달빛"이 극을 차분히 마무리 하면서 어색하지 않은 결말을 만들어냈다.



감상을 최대한 간추려서 써보자면 아래와 같다.


1. 항공 재난 영화로서 글로벌 리더급의 영상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충분히 이뤄졌다. 4DX로 흔들리는 좌석과 더불어 본 감상으로써 내 인생에 한국 영화가 이 정도 리얼한 공포감과 더불어 있는 항공 재난 장면을 만들었던 적은 없었기에 이것만큼은 최고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2. "임시완"이 연기한 사이코 패스 살인마 "류진석"역의 광기 어린 연기와 존재감이 나머지 다른 배우들의 영웅적인 행위와 선행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단초를 잘 제공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존재가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칠 수 없도록 만드는 안전장치를 가져야 함을 제대로 보여줬다.

출처 : SBS 뉴스

3. 바이러스에 감염된 승객과 승무원 모두가 착륙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장면은 일면 아름답고 감동적인 스토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국적 블록버스터의 고전적이고도 강박적인 고정관념이 작용해서인지 "눈물을 짜내는 감동"을 위한 작위적인 설정 같아서 이 영화의 매력 요소를 일부 떨어뜨리고 있다.



제작과 각본, 연출 등의 요소를 모두 지배한 감독이 만든 통합적인 스토리 구조를 탄탄하게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나란 관객에게 남겨 주었다.


0. "비상선언"이란 제목에 대해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자세한 자막 설명이 나오며, 글씨를 크게 하지 않고 작은 글자체로 화면 중간에 적어 넣고 긴 시간 놓아둠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더 주의를 기울여서 그 단어의 의미를 새기게끔 만들고자 한 의도가 있었고,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1. "임시완"이 연기한 거의 절대 악 수준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마 "류진석"은 왜 그런 인물이 되었을까라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일소하고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나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 같은 일반적인 인간과 동떨어져 있는 "타인과 타 생명체"를 괴롭히고 죽이는 것을 태생부터 즐기는 존재를 마치 정말 자신인 것처럼 실감나게 연기한 것에 소름이 끼침을 느꼈다.


"미생"에서 잠시 주인공을 연기한 현실 요소의 디테일을 충분히 이해하고 발휘하는 수준의 "미청년" 이미지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서 우리가 일상의 인터넷 속에서 사실 종종 잘 마주치는 타인에게 불쾌한 소리를 하고 괴롭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즐기면서 행하는 인물들로 대표되는 인상과 목소리, 행동을 잘 포착하고 상징 및 비유화 시키는 연기를 잘 해냈다.


"한산_용의 출현" 출연한 같은 "미생"에서도 연기를 했던 "변요한" 결국 존재감 높은 연기자가  거란 예감이 충분히   있단 인상을 확실하게 주었다면,  영화에서 "임시완"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갖고 양극단뿐만 아니라 중간 어디에서도 충분히 주연이 되든 빌런이 되든 간에 자기 역할을 손색없이 제대로   있는 배우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서 증명해 냈다.


2. "송강호"와 "이병현", "김남길" 등 익히 보아온 주인공으로서의 연기력은 그 전의 어느 작품과 비교해서도 모자람 없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관객에게 확실한 존재감과 가공할만함, 두려움, 실제 현실 속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재앙적인 인물을 확실하게 연기한 "임시완"의 존재감을 지울만한 수준은 되지 않는다. "테러범"이자 "씬 스틸러"가 비행기에 탔던 셈이다.


3. 바이러스의 확산 상황에서 "부산행"처럼 나타난 이가 자기밖에 모르며 몸에 증상이 보이는 이라면 어린이라도 상관없이 격리하라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자신도 증상이 나타났을 때, 한국에서 이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탄 비행기의 국내 착륙을 거부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이에 화를 내다가 옆에서 "당신이 아까 한 짓과 뭐가 다른가?"라고 이야기하자 입을 다무는 내용이 나오는데. 현실 속의 이기주의자의 행동 방식을 아주 밉지는 않게 잘 모사해냈다.


이른바 인도주의적 명분 같은 것이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이 지구에서 "미국"도 착륙을 거부하고, "일본"도 자위대 전투기를 보내서 위협해서 "한국"으로 비행기의 기수를 돌리도록 만든 상황에서 "한국"마저도 반이 넘는 국민이 이들의 착륙을 반대하는 장면은 과장됨이 하나도 없는 우리가 속한 현실 그대로여서, 그것에 대해서 억분 같은 것을 느끼는 관객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4. "전도연"이 맡은 국토 교통부 장관은 철두철미 일을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는 보다 실무자 스타일에 가까운 장관이고, 응당 "공무원"이라면 하지 않을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말을 하는 존재로 나온다. 능숙하게 들리지는 않는 한국식 그 자체로 들리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종종 미디어에 나타날 때 장관급 인사가 하는 방식의 어법으로 발표 자료 등을 읊는 연기를 했다.


한국에 있었으면 하는 인명을 어떤 방식으로든 살려야 한다는 강인한 신념과 더불어 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그의 모습은 대책 없이 가라앉았던 "세월호"의 비극을 떠올리게 만드는 동시에 나름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였던 초기 "코로나"에 전국적으로 대응했던 우리의 모습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들었다.


5. "송강호"의 "구인수"는 하와이로 가던 이 비행기 안에 테러범과 더불어 자신의 아내가 있다는 이유로 인해 전력을 다해서 "바이러스"를 한국에 가져온 "류진석"의 행방을 조사하고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계) 다국적 제약회사에 영장도 없이 찾아가 충돌하기도 하며, "류진석"의 동료로 밝혀진 인물을 쫓다가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는 열혈 경찰의 모습을 그려냈다.


나중에 국민의 과반수 이상의 반대로 정체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고, "류진석"에 의해서 변형된 이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로 기능할만한 "항 바이러스"가 개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행기가 들어올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바이러스를 맞고 이전에 개발되었던 "항 바이러스 치료제"를 맞고 사투하는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이로 나타났다.


이런 배역 상의 중요도와 무게감에 비해서 안타깝게도 기대 이상 수준의 연기를 해내었다는 느낌은 와닿지가 않았는데, 법과 절차 등을 중시하는 원칙과 철저함으로부터 멀어진 행동을 "국토부 장관"과 더불어 하는 모습이 꼭 대중의 마음에 와닿기는 지금 이 시대에는 좀 멀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6. "이병현"이 연기한 "박재혁"은 아토피에 걸린 "딸"의 말이라면 모두 듣는 "딸 바보"의 모습을 일관성 있게 연기했고, "딸"이 발견한 "류진석"의 이상 행동과 자신이 경험한 경우에 맞지 않는 그의 행동 등을 종합한 뒤에 "류진석"이 얼굴을 드러내고 영어로 녹화하여 인터넷에 배포한 "항공 테러" 영상을 보고 그를 항공사 직원에게 알리는 역할부터 "류진석"과 몸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도 능동적인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했다.


그와의 악연을 가진 "김남길"이 연기한 "최현수" 부기장은 "재혁"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둘 간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나름 갈등 구조 속에 중요한 요소이므로, 굳이 여기에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 이야기가 그나마 이 영화 속에서는 "박재혁"이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한 뒤에 자기자신을 믿고서 다른 승객을 구하는 영웅적인 행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2022년 현재 이 영화의 흥행에 대해서 걱정이 되는 부분은 살짝 시대가 들어맞지 않는 감동 포인트가 나열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파" 장면이 걱정되었던 "한산"이 무리 없이 넘어갔던 극적인 감정의 토로 등의 감동을 쥐어짜려는 시도가 오히려 현대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나왔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착륙을 포기했던 비행기 안에서 관객이 지상의 가족과 나누는 각각의 영상 통화 모습과 어찌 보면 살신성인으로 자신이 살기를 포기하고 승객을 전심을 다해서 치료하고 살리려고 하는 승무원의 모습, "미국"과 "일본"에서 착륙을 거부당하고 "한국"에서마저 착륙을 거부당하게 되었음에도 어쩌면 바보스럽고도 너무 착하게 그저 비행기 안에서 죽기로 모든 승객이 동의하는 장면은 현실 속의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사실 그렇게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냥 "아름다운 감동적인 스토리"로 받아들이기엔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그 장면 장면에서 물론, 인간으로서 나 역시 조금 눈물을 글썽이게 되기는 했지만, 꼭 그렇게 쥐어짜는 감동을 만들어야만 흥행을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우리의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겐 강박적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이어야만 할까?


그 장면을 전후해서 이 영화가 정말로 박수를 받아야 하는 부분은 CG와 실제로 구동하는 비행기 같은 기구를 가동해서 만들어낸 "항공 재난 영화"의 리더가 되고 싶은 야망이 일부 비치는 뛰어난 장면이었음에도 시대를 살짝 벗어난 "감동 쥐어짜기 장면"은 왠지 그런 야망을 스스로 눌러 가라앉히고 있는 듯한 양상이었다.


"미국"이 아직 정체가 파악되지 않은 괴 바이러스에 감염된 승객이 탄 비행기라고 판단한 비행기를 자국에 내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면이나 "비상선언"을 하고 "나리타 공항"에 착륙하려고 하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서 "일본" 자위대의 전투기가 위협사격을 하고, 착륙 시도 시에 정면충돌도 불사하려고 하는 장면조차도 사실은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의 괴 바이러스 감염자를 태우고 오는 비행기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취할 수 있는 조치처럼 이해되는 바가 있게끔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설득력도 있는 내용처럼 받아들여졌다.


"한국" 국민의 반 이상이 제대로 치료 방법도 증명되지 않은 바이러스 감염자로 가득찬 자국 비행기의 착륙을 거부하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매우 현실적이고 정말로 있을 법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비행기 속의 거의 전부 감염된 승객과 승무원이 전부 자기희생하기로 일치된 마음을 먹게 된다는 장면은 너무 현실과 거리가 먼 판타지처럼 여겨졌고, 그 과정에서 감동의 눈물을 짜내려고 하는 것이 "정말로 이렇게 대중과 관객이 순진하게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는 그 작위적인 감동 짜내기의 시도를 조금만 더 줄이고 좀 더 담담하게 현실을 거울처럼 드러내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끌어나갔다면 아마도 좀 더 수월하게 "한산" 이상의 평가와 흥행을 가져올 수 있는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트럼프"가 자국 이기주의라는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제대로 살포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각국의 자국 중심 주의가 만천하에 민낯을 제대로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벌어진 뒤에 다수 국가의 힘을 통한 정의 실현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길어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 오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을 통해서 좀 더 야박해진 우리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재난을 맞은 비행기의 승객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진 장관과 경찰이라는 역할은 "판타지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그런 모습은 그려볼 만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만들어진 판타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레이 맨>-라이언 고슬링의 색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