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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Oct 09. 2022

<헌트>-스파이 간의 입장 변화

 인간 간의 관계와 정의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스파이물을 그려내다

스포일러가 내부의 스파이처럼 있습니다.


장르물 중에도 "스파이물"이고 그중에서도 "내부의 배신자"를 찾아내는 스토리를 가진 영화다. 수없이 만들어져 왔고, 이 중에 백미라고 할 수 있었던 작품은 영국 정보부 내에서 적국의 스파이에게 정보를 팔아넘긴 배신자를 찾아 처단하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였다.


출처: 다음 영화

이 작품은 영국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유명할 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뛰어난 여러 배우가 나오고 있는 영화로 그 자체로 밀도 높은 여러 배우의 연기의 향연을 볼 수 있는 동시에 다소 복잡한 스토리 속에서 스파이를 발견해 가는 과정 속에서 쌓이는 긴장감과 더불은 해소감 등이 결합되어 굉장한 수준의 흥분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 작품과 비교하자면, "헌트"는 피도 눈물도 없이 수많은 동료와 부하, 적의 죽음을 실시간으로 겪으면서 크게 개의치 않는 "냉정함"이 흐르면서도 굉장히 감정적으로 서로 간의 진실과 분노, 증오를 드러내며 파국을 향해서 거침없이 달려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비교한다면, 보다 화끈하게 맞붙고 있는 두 남자의 라이벌 대결이자 배후를 캐고 배신자임을 추궁하면서, 힘대결을 벌이면서 나아가는 전면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더 직관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복잡도가 적은 상태에서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후반부에 가게 되면 "스파이"를 색출하고자 벌어졌던 두뇌와 기싸움, 기만전술, 연기 등의 서스펜스를 불러일으켰던 요소가 무색하게 출구가 없는 비극을 향해서 일제히 달려간다. 마치, 처음 시작부터 두 주인공은 "내일 태양 같은 것은 뜨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처럼" 자기 파괴적인 결론을 향해서 달려왔었고, 좀 더 추진력을 내서 뛰어내린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헌트"는 “신군부"로서 "박정희 대통령" 사후에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를 그리고 있는 영화다. 소재는 "전두환 대통령"을 노린 암살 시도였지만 그 외의 다른 각료들이 참사를 당한 "미얀마(당시 국가명 버마)"에서 벌어진 북한의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에 대한 상상력을 가미한 내용이다. 현실과 다른 상상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대통령의 이름이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으며, 테러가 벌어진 장소도 "태국의 방콕"으로 나온다.

출처 : 매일경제

물론, 그런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국산 스파이 액션 영화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 처참하고 참담하고 인간성 따위는 저 멀리로 날려버린 배신과 암투와 더불은 단호하게 스파이전에 관련된 대부분의 인원이 아무 의미도 없이 서로 죽어가는 냉정한 건 파이팅과 폭파 씬들로 치밀하게 점철된 "액션씬"들이다. 잘 조명되지 않았던 소재를 가져와서 관심을 주목시키고 그 소재를 확장해서 액션의 스케일을 확실하게 키웠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밀란 쿤데라"의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에서 언급된 "무질"이란 작가의 소설 이야기였다. 이념의 문제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간의 격렬한 투쟁 속에서 서로의 입장이 숨 가쁘게 변화하면서 달라지는 이른바 "인생의 진실 중에 한 측면"을 파고든 나름 깊이 있는 작품처럼 느껴져 올 정도였다.


그 작가의 소설 속에서 두 명의 화자는 최초에 대립되는 의견을 가지고 서로 치밀한 논쟁을 이어가다가는 결국에는 그 논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목적 하에서 후반부로 가면 서로의 입장이 뒤바뀌어져 서로 자신이 갖고 있던 의견을 비판하면서 논쟁을 하는 상태로 변화하고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헌트" 역시 영화의 시작에서부터는 "안기부(지금의 국정원)" 내에서 북한에 정보를 노출시키고 있는 북한 간첩인 "동림"을 찾아내기 위해서 "해외 파트"를 맡고 있는 차장인 "이정재"와 "국내 파트"를 맡고 있는 차장인 "정우성"간의 대립과 반목, 암투, 물리적이고도 전략/전술적인 싸움을 그려갔다.

출처 : 더블유 코리아

후반부를 지나가면서 둘이 갖고 있는 입장의 공통점이 갑작스럽게 발견되고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력하는 것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북한의 간첩"이 암살을 막고 "한국의 안기부 수장 중에 하나"가 암살을 기어코 성공시키려는 역전된 상황에 처하는 내용은 관객의 주의를 끝까지 제대로 끌고 간다.


그러나 그런 "무질"의 소설 수준의 문학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양상으로 더 나아가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어쩌면 허무주의나 실존주의 같은 철학을 바닥에 깔고 있는 듯한 양상마저 보인다. 주조연 중 누구도 자신이나 타인이 폭력을 당하는 거나 죽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상 무감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고문을 시작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원하는 자백을 뽑아내는 조직으로 그 시대의 "안기부"가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고, "북한"의 정보 조직 또한 "적화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아타 구분 없이 고문하거나 제거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그저 냉정한 싸움만이 서로의 목적을 위해 벌어질 뿐이다.


이 시대의 분위기를 현시대에 한국에서, 그것도 "블록버스터"급의 작품 안에 제대로 그려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모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침없이 만들어진 작품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단, 한 가지 영화 속의 옥에 티가 보였던 것은 "동림"의 정체가 밝혀지는 내용이 그 직전까지 계속 관객과 시청자에게 헷갈림을 잘 전달하다가 "출입국 기록"을 뒤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일순 영화 속 긴장감을 잠시 잠깐이긴 해도 큰 낙폭을 가지고 떨어뜨렸던 장면이었다. 무엇으로 정체를 드러내게 만들 것인가 고민하다 둔 악수 같기도 할 정도였다.

출처 : 에펨 코리아


"그(?)"가 계속해서 매우 치밀한 인물로 그려져 왔기 때문에 그런 기록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얼핏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투가 벌어지고 내부 스파이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들어간다면 당연히 먼저 살펴보게 되었을 기록을 왜 그렇게 허술하게 놓아두었을까? 아니, 왜 상대편이 그것을 먼저 발견하지 못했을까?


사실 이 같은 비인간적이기 그지없는 은밀한 정보전과 더불은 암투가 진작에 벌어졌어야 했던 작품이 "인랑"이었다는 뒤늦은 아쉬움도 몰려들었다.


이 정도 수준으로 복잡도를 높이고 단호하게 주요한 주조연이 상황이 심화됨에 따라 단계별로 죽어가는 내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헌트"가 만들어낸 흥행 수준 정도는 "인랑"이라는 작품이 앞서서 올릴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원작과는 다른 가상 대체 역사물로써 이 소재를 사용했다면 어떠했을까?


"헌트"는 어쩌면 "인랑"의 실패를 그 영화에 참여했던 "정우성"의 경험과 관점에서도 복기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성공적인 한국형 스파이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액션과 인물 간의 관계의 이합집산 및 파행 등을 그려야 할지를 제대로 연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구현해냈다.


그 결과로 '22년 국내 개봉 영화 중 4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6위에 랭크되었다. 황량하고 잔인한 내용과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메가폰을 잡은 "이정재" 감독이 올린 성과로선 대단한 성취라고 평가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끝에서도 어설픈 감성적 신파를 추구하고 있지 않았고, 잔잔하게 내부를 울리는 인간과 인간 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감정을 배신당하고 죽어가는 중에도 자신의 선의에 입각한 행동을 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건조한 총성으로 끝나는 장면이 이 영화에 이이상 더 어울릴 수 없는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첫 메가폰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충무로를 뒤덮고 있는 성공작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매너리즘에서 벗어난 스토리를 그리고 이를 화면에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흥행이 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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