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Jun 17. 2023

<스즈메의 문단속>-재해로 죽은 이들을 위한 진혼곡

재해로 인한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치유하기 위해 승화되어 만들어진 작품

스포일러가 단속이 되지 않고 나온 영화 리뷰입니다.


이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아내가 계속하고 있었다. 가족이지만 영화에 대한 취향이 많이 다른 우린 결혼한 이후로 좀처럼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없고, 또 다른 취향의 아이가 태어난 이후론 점점 더 같은 종류의 영화가 되든 애니메이션이 되든 같이 보게 되는 일이 점점 더 드물어졌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그래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나의 꼭짓점이었다. 그의 작품은 서로 따로따로 본 것도 있고, 같이 본 것도 적지 않게 있다. 아들과도 같이 셋이 본 작품도 "이웃집 토토로"와 "벼랑 위의 포뇨"가 있다. 이런 문화 작품을 같이 보게 되면 당연히 서로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같이 시도해 볼 언어유희의 빈도 수도 높아질 것이니까.



각국에 있는 편향된 의식을 지닌 자들보다
더 많은 동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결국에는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적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에겐 일본 작품은 보지도 말고 일제는 사지도 말자라는 암묵적인 거부감이 퍼져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창작자에겐 그런 거부감을 특별히 느낄만한 여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의 좌익도 우익도 아닌, "인간이여 자연으로 돌아가자"란 주제로 이야기하는 이를 그저 국적만으로 판단해서 거부하는 것은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손해다. 게다가 그는 "아베"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손잡아야 하는 상대는 각기 첨예하게 대립하는 나라에 살고 있어도 연대할 수 있고,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너무 편향되지 않은 의식을 가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들과 손잡고 이른바 연대해서 그 각국에 있는 편향된 의식을 지닌 자들보다 더 많은 동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결국에는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보다 정밀하게는 일본의 "우익이나 그들이 만든 정부체나 기업"과 중국의 "혐한을 기반으로 한국을 차별하는 흐름", 미주/유럽의 "인종적 편견", 북한의 "(적화 통일을 추구하는) 강경파 내지는 권력층 대다수"와 인식을 같이하는 이들과 싸워야 한다. 그런 싸움을 더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방향의 의식을 가진, 그들 각각의 집단 내의 아군을 만나 함께 연대해서 힘을 키워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족 구성원 서로가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 일본 애니메이션 몇 편에 대해서는 같이 이야기할만한 여지가 생겼다. "신카이 마코토"의 팬인 아내는 "초속 5센티미터"와 "너의 이름은" 2개를 보고서 깊은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시대가 저물어 갈 때 나타난 "신카이 마코토"의 이 두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다만, 난 아직 보지 못했다.


"스즈메의 문단속"도 "슬램 덩크"에 이어서 최근 개봉 후에 큰 반향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슬램 덩크"는 비록 혼자 가서 봤고, "아들"은 따로 보고 와서 매우 만족하게 보았다고 이야기했었기에 이 작품만큼은 셋이 꼭 같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취향을 존중하는 정도를 넘어서 사실 아내가 선택해 준 여러 책을 읽어서 만족해 봤었던 바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을 거란 확신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카이" 감독의 성향도 괜찮고.



"쇼타"의 인격 전부를 느끼고
사랑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인데,
그게 어색하지 않다.


첫 장면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는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니 "신카이" 감독의 특징대로 풍경 등이 매우 잘 묘사되었고,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화면이 계속 펼쳐지고 있어서 나 역시도 푹 빠져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신카이" 감독이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주인공이 엄청난 속도로 잘 뛰어야만 한다고 들었다. 과연 이 애니의 주인공 셋 다 엄청나게 잘 뛴다. 그러면서 풍경이 멈추지 않고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애니메이션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게끔 만드는 방법은 이동에 따른 장면의 전환 기술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남녀 주인공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도 아내의 설명에 의하자면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면서 전반적으로 다양하고 나름 웅장해 보이는 마을의 모습의 등장하는 것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종종 나타나는 전통적인 장면이라고 한다. 이 장면이 성공적인 장관을 종종 보여주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텐데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면도 이에 이어지고 있어서 극적인 만남의 느낌을 더 강조해 주었다.


(출처 : 다음 파이낸셜 뉴스)


"스즈메"는 이후에 밝혀지게 되는 이 멋지기 이를 데 없는 외모에 우수에 빠진 분위기를 가진 남자 주인공 "쇼타"와의 첫 장면에서 이후의 끝장면까지 단 한 번에 마주친 순간에 빠진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거는 모습으로 변화해 가는데, 요즘 세상에도 이런 스토리가 먹힐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는 이야길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한정된 시간 내에 스토리를 충실히 펼쳐나가야 하고, 극적인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선 남녀 주인공이 한눈에 반하는 것 이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 한눈에 반한다는 것의 무게감은 이런 극화에서 벌어지는 것만큼 무거운 의미와 지속성을 갖기는 어려운 것이니까.


재미있게 보고도 "피식"웃게 되는 부분은 이런 내용이다. 원래 열리면 재앙이 될만한 문을 지키는 파수돌이었던 고양이 "다이진"을 실수로 "스즈메"가 뽑아내는 바람에 "다이진"의 저주로 인해 "삼발이 나무 의자"안에 갇힌 "쇼타"에게도 애정을 지속적으로 느끼면서 함께 하는 이후의 장면 모두가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외모" 그 자체보다 "쇼타"의 인격 전부를 느끼고 사랑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인데, 그게 어색하지 않다.

(출처: 하입비스트)

젊은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재앙으로부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일본 전역을 다니며,
"문단속"을 하면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멈춤 없이 깔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사건이 거대한 문제와 맞닿는 초반의 이야기는 일본 밖에서 살아온 관객이 그 역사를 일일이 잘 알 수는 없지만, 원래는 주민이 많은 곳이었겠지만 폐허로 변한 마을에 들어가 있을 "쇼타"를 찾아 그에게 한눈에 반한 "스즈메"가 "잘 생기신 분"하고 외치며 돌아다닐 때 그 폐허의 물이 고여 있는 분수대 같은 장소의 가운데에서 덜렁 문만 세워져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무심결에 여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출처: Movies with Mark)



그 과정에서 열린 문 안으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고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문 밖에서 보는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은 할리우드 산 수많은 SF 영화와 MCU 시리즈에서 종종 나오는 다른 공간이나 차원으로 이동하는 문을 그리는 장면과는 또 다른 "다른 세계"와 연결된 문을 그려주고 있다.


그 와중에 문 근처에 박혀 있는 고양이 모양의 돌을 뽑아내자마자 그것은 살아있는 고양이 같은 생명체로 변해서 도망친다. 그 이후에 이 초반 민폐 캐릭터인 "스즈메"는 자신도 모르게 일본에 재앙을 가져오게 된 것인데, 그 문을 통해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일본의 지하세계와도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인 미미즈 지렁이"가 여러 곳에 있는 이런 문을 열고 나와 대형 "지진"을 일으켜 많은 이들이 죽었던 것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극 초반에 그 문을 잘 알지도 못하고 열고, 파수석인 "다이진"도 풀어놓음에 따라서 여기저기 재앙을 가져올 문을 열고 다니게 된 원인을 제공한 "스즈메"가 "다이진"의 저주에 의해서 나무 의자가 되어버린 "쇼타" 함께 열린 문을 닫으며 문제를 수습하는 이야기다.


"쇼타"는 대대로 문지기 역할을 하는 집안의 후손이지만 그 과정에서 "스즈메"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고 탓을 하기보다는 마치 그 역시 한눈에 "스즈메"에게 반한 듯,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젊은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재앙으로부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일본 전역을 다니며, "문단속"을 하면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멈춤 없이 깔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흥행으로 버는 돈보다 공감하는 관객이
사회에서 해나갈 위로가 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스즈메"의 어머니가 "쓰나미"로 인해 사라진 비극적인 가정사를 극복해 가는 과정도 큰 줄기의 스토리로 흐르고. "지진"등의 재해와 인구가 자꾸 줄어들고 있는 일본의 현재 상황 등이 맞물려 버려진 폐허로 존재하는 곳에 있는 "빈 곳"의 "문"을 통해서 재앙을 몰고 나오는 "괴 에너지"를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문단속을 해서 돌려보내고 "요석"을 박아 넣어 활동성을 낮춘다라는 스토리에 각종 액션이 잘 버무려져 있다.


원작자이자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 과정에서 이미 지진 등의 재해를 맞아 죽어간 원혼이나 폐허로 변하기 전의 각각의 마을의 사람들을 환영이나 다른 세계의 모습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일종의 진혼제라고 할만한 "죽어 사라진 이들에 대한 위로"를 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이들이 그같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스즈메"와 "쇼타"가 문단속 중에 일종의 위로 의식도 같이 행하고 있다.


이 작품이 나름의 깊이를 가지고 일본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나라의 관객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내용 자체가 지진이 잦은 일본의 역사 속에 들어 있는 신화 등의 내용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관객이 되고 창작자가 되었던 것은 그 재해의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그 같은 제대로 의식화되지도 않은, 무의식 중에 숨어 있는 "자책감"을 어떻게 승화시켜서 공감을 하고 이 같은 상황에 연결되었던 사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을 찾아서 실행하는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애니메이션은 제대로 된 위로의 극화를 영상으로 선사해 준 의미 있는 작품이며, 흥행으로 버는 돈보다 공감하는 관객이 사회에서 해나갈 위로가 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겟 아웃>-흑백 인종 차별을 요령 있게 다룬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