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Sep 21. 2015

<1Q84>-3권 감상 (1)

1권과 2권은 그냥 게눈 감추듯이 읽어버리고 말다

< 2010년 8월 01일 초고 2015년 9월 21일 퇴고>


1Q84 3

이런 이미지가 필요한 작품이었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양윤옥 옮김

출판사: 문학동네 펴냄 | 2010.07.27 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가 이번에는 두 남녀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1Q84'를 헤쳐나가며 겪게 되는 환상적인.....


7초에 한 권씩 팔려나간 하루키의 1-2권은
2.5초에 한 개씩 팔리고 있는
아이폰의 판매량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히트한 상품이다


IQ84 1권과 2권을 이미 2010 초에 후다닥 읽어버린 뒤였지만, 8월까지도 뭐라고 할지, 남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찌보면 충격적인, 혼잡도로를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가는 여주인공의 모습도 생생하다

몰입해서 끝까지 읽었고 이전의 작품들을 읽었을 때와도 비슷하게 마치 하루키라는 니코틴이  몸속에서 뭔가 하루키적인 중독을 지속시키는 대상을 기다리다가  빨아들였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공기 번데기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 형상화해준 작가가 삽화를 넣어주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내용들에는 충격적이라든가 아니면 신선하다라든가, 독창적이다 또는 그가 변신했다 내지는 다시 성장하거나 확장되었다라는 등의 쇼크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냥 1Q84 너무나도 참을  없을 정도로 하루키적인 작품이었다.


때문에 한없이 하루키의 초반 히트작들에 가까운 소설들을 읽어왔을 때처럼 같은 방식의 궁금증과 

같은 방식의 몰입만이 일어났고 끝으로는 같은 방식의 감상만이 남는 작품이었다.


이미 여러 편의, 다소 성긴 분석의 틀로 썼겠지만, 지금은  이상 열정적으로   없을 서평들을 적었던 나로서는  이상 나올만한 내용이 없었던 것이 “해변의 카프카이후의 하루키에 대한 글귀가 남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삶의 여유로움이 생긴 여름휴가, 부모님이 계시는 LA 와서 7 28일부터 8 1일이라는 짧은 휴가 기간이 내게 주어진 뒤에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눈에 보여 구입한 3권은 내게 하루키에 대해서  마디 적을만한 내용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결과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접속해서 글을 적을  있는 에너지를 선사해주었다.

덴고가 아오마메를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기다렸듯이 나도 IQ84 3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가지 서평을 검색해본 , 대부분의 글들이 출판사의 판매 전략을 바탕으로 이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고, 아직, 활발하게  완결까지  글을 읽고 솔직한 서평들을 남기는 사람들이 없는 ,


 창조적인 오해와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에 대한 내용을 남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어차피 하루키는 사람들이 다각도로 자기 방식의 관점을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쓰여진 바와 딴판인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상관없을만한 시점은 지금뿐이다.


더구나 와서 보는 사람도 시비 거는 사람도 없는  유쾌한 웹상의 골방과도 같은 공간에서 내가  쓰든지 사람들에게 폐가 될만한 것은 없다.


시비 거는 사람이 있다면,  말을 적을 시간도 힘도 없는 나는 아마도 댓글을   없는 시스템으로  공간을 운용하면  것이다.


마치 폐쇄적인 인격을 가진  3 속의 세인물들처럼 "골방"으로 도망치면 된다. 하하.


덴고와 아오마메의 연애담으로 중심이 옮겨가면 후카에리와 덴고와 고마쓰의 삼인 공모작인 "공기번데기"이야기라는 중심 소재가 순식간에 빛을 바래게 되었다.

 이유를 나는 하루키가 진작 1Q84   머리 속으로  3권과 4권의 출간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7초에  권씩 팔려나간 1Q84 1-2권은 2.5초에  개씩 팔리고 있는 아이폰의 판매량을 따라갈  있을 정도로 히트한 상품이다.


태엽감는  1.2권에 이어 어물쩡 3.4(일본에서는 3권만)권이 나왔던 전례를 보았을 ,


개인 기업가라고 불릴 수도 있는 하루키는 글로벌 판매고에 신이 나있을 출판사가 제시하는 속편 계획에 영향을 받지 않을  없었으리라.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방식의 글을 쓰는 하루키의 작법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가 흥행 성적에 따라 속편을 계획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처럼, 현명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굳이 태엽감는 새의 연장 공연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양을 둘러싼 모험의 히트는, 댄스댄스댄스라는 연장선상의 작품을 하루키로 하여금 다시 만들게끔 만들었고,


좋은 흥행 성적이 속편을 만들게 하는 경향은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뮤지컬, 연극 등을 망라한 모든 장르의 문화 영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언론사들은
이 1Q84 3권에 대해서
하자를 잡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요점은 그렇다면 그렇게 쓰여지는 것이 분명하더라도 하루키의  1Q84 3권은 얼마나   있는 1, 2권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고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쓰여지지 않을  없을 정도의 필연성을 갖고 있는가가  책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할  있는가 없는가의 갈림길이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뛰어난 그의 문장력과 스토리 창출 능력은   번째의 권도 마치 처음부터 기획이 돼있었던 것처럼 만들었다.

심지어 하루키는 1, 2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는 하루키가 아닌 누구라도 이를 읽은  자기만의 3편을   있는 것이며,


하루키 역시 자기만의 3편을 실제로 쓰게 되었던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1. 하지만, "공기번데기" 출판됨으로 해서 오는 “선구"에게 끼칠  있는 피해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420페이지를 읽고 있는 동안 나오지 않고 있다.


"공기번데기" 관련된 후카에리라는 신비의 소녀의 비중이 급속도로 위축되어 버린 것은 상당히 "이상하다".

선구는 마치 양을 둘러싼 모험의 도덕성 유무를 일소한 확장만을 추구하는 권력단체의 모습처럼, 소설 뒤의 백그라운드로 변화한다.


싸우던 대상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종교 단체라는 대상에서 순수한 어린 시절의 사랑으로 맺어지려 하는 남녀를 갈라 놓는 장애물로 변화해버렸다.    


2. 우시카와가  3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많아지는 보다 리얼리스틱 소설에 가깝게 변화한 3권의 분위기는 


1.2권의 다소 이상한 세계로 빠져든  같은 덴고와 아오마메의 풍경과는  다른 세계 속으로 모든 소설  현실이 옮겨간 듯한 변화를 만들었다.

3. 아오마메가 경험하고 있는 처녀 수태의 경우는 하루키 소설이 만들어낸 모든 센세이션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일  있다.


하지만, 약하다.  약하냐면  부분이 센세이셔널한 부분으로 이해되기를 하루키가 원하고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처녀 수태의 부분은 2권에서 권총 자살로 덴고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죽여야만 했을 아오마메가 살아남아서 3권에서 계속해서 덴고를 찾아야만 하는 연결고리로서 만들어진 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분의 필요성을 더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하루키는 후카에리와 덴고의 이전의 2권에서 나온 


"덴고의 성욕은 개입하지 않은  뭔가에 홀린 후카에리가 주도한"


롤리타적이면서도 금기는 넘어서지 않은  같은 성교 장면을 다시 아주 직설적으로 강조 표현하면서 후카에리라는 통로를 통해서 덴고의 정자가 아오마메에게 이동했다라는 내용을 덧붙인다.


5.  외에도,  다시 아오마메가 살아서 덴고를  찾아다녀야 하는가가 여러 차례 반복된다.


하루키로서는 3권이 어물쩡 등장하는데 따라서 오게  수많은 논란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재우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러지 않았을까 싶어  질뿐이다.


(이것은 모든 극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고민이므로 사실 의미 없다.)


6. 하지만, 수많은 신문사들, 좌파 우파 가릴  없이 모든 언론사들은  1Q84 3권에 대해서 하자를 잡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인쇄 매체의 영향력이 죽어가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인쇄된 작품으로서 선방을 하고 있는 인쇄 매체 진영의 히어로에게 그들은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돌을 들더라도 던질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싶어 진다.


7. 그러나 하루키조차도  3권의 제작에 이은  다른 평가가 다시 그에게 4권을 요청하면 이번에는 쓰지 않을  없다라는 입장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3 자체도 쓰여지지 않을  없었던 필연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1권과 2 대한 평가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3권이  히트하지 않는다면 4권은 씌여질 이유는 갖고 있더라도 출판할 이유는 잃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영화처럼 디렉터스 판을 만들어 소규모 출판해주는일이 있지 않다면.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7초에  권씩 팔리는 1Q84 판매량은 어쩌면 7-8권까지 그가 글을 써나가도록 만들 것만 같다.


계속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인쇄매체 군단들이그를 전격적으로 밀어준다면 말이다.



이제 거래 가치가 없는 글들은
급속도로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글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길어지고 있으므로 3권에 남아 있는  300페이지가량의 글을 읽은 뒤에 다시 감상문을 써보려고 한다.


이래저래 화젯거리인 하루키의 영향을 받아 글을 쓰고 있는 하루키 반사 효과가 나에게도 입혀지고 있다고   있겠다.


왠지 위의  글은 약간 비판 조의 글이 되어 버린  하지만, 사실은, 동시대에 "유일무이"하게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동양소설가 하루키 만만세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나의 본심이다.


웹상에서든 신문 지상에서든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서도 이제는 Untouchable 되어버린 하루키 씨에겐 벌거벗은 임금님 효과가 입혀져 있다.


뭔가 이상하다 싶은 부분을 이야기하는데 모두가 주저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보다 보면 후광이 비추는 인물에겐 관대해지기 마련인 세상의 평판의 경향도 읽어낼 수가 있다.


( 속에서, 혼다 시빅 같은 차가 PPL처럼 대사에 등장해서 연비 좋은 차임을 홍보하는 듯한 이야기가 나와도 이를 트집 잡는 사람조차 없다.)


악플의 위력마저 벗어난 위상을 가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마치 그의 글에 대해서 메스를 드는 것은 뭔가  모르는 사람이 자존심 때문에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향마저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종류의 시비 걸기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고도 첨단 자본 주의 시장에서 인정받는 소설가는


자신이  시장 내에서 거래되는 상품을 팔듯이 자신의 소설을 팔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순문학이 되었든 대중문학이 되었든 이제 거래 가치가 없는 글들은 급속도로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 하루키처럼 뚜렷하게 팔릴  있는 가치를 가진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도 살리고 자신도 살리며, 자신이 속해 있는 크거나 작은 공동체까지 살릴  있다.


나는 그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느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말하는 분들이 별로 없기에) 드러내고 싶어 하고 있을 뿐이다.


오에 겐자브로나 미시마 유키오처럼 예술혼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작가가 그가 아니라는 것은 그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바가 있다.


반면에, 하루키에 대해서 일련의 사람들이 악플과도 같이 갖고 있는  다른 대응 자세가 있다.


그의 책을 "읽지도 않고 폄하"하는 자세이다. 1990 이전부터 번역서가 나온 그의 책에 대해서 20 년이 지나도록 비슷한 대응 자세가 있다는 것이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다.


하루키를 없는 존재처럼 취급한다고 해도, 이미 그의 이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넓게 살포되어 있고,


노벨 문학상의 최종 후보까지 지명된 바가 있는 위상을 갖고 있다.


더더군다나 일본 헌법을 다시 그의 문장으로 쓰고자 했던 일본 정부의 노력도 있었던바, 그의 존재감을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우리 주위에 실제적인 것들과 더불어 살아 있고,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 우리 회사(당시 다녔던 회사) 미국인 여직원 한분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써놓은 글귀를 웹상에서 읽은 적이 있다 (회사 우리 팀의 홈페이지에 써서 올린 글이다).


동서양을 통틀어서 지역 테두리를 넘어선 광대한 독자층을 구축한 하루키는 분명히 존경받을 만큼  일을  동양의 소설가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과 그의 놀라운 능력이 그의 책의 내용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가  이유는 없다.


하루키의 글을 열심히 읽은 독자라면 그를 비판할  있는 능력도 지금쯤이면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그의 글에 딴지를 걸고 있지 않은 현실을 보다가 그의 글의 중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마디 쓰게  것은 이런 질문이  안에서 생겨 났기 때문이다.


장황한 글을 이렇게 다시 한번 보고 나니 내가 참으로 하루키로부터 독립하려고노력을 많이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015 현재 온전한 독립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솔직히 "담배"보다는 나은 중독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키 잡문집>-내가 아는 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