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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ug 15. 2023

<유랑지구>-지구째로 움직이다

지구를 통째로 들고 태양계 밖으로 유랑 나가는 스케일이다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중국 영화로서의 "국뽕"은 들어 있으나 다루는 스케일은 전지구적이다.


볼 것이냐 말 것이냐의 고민을 길게 한 작품이 이것이었다.


한국 영화라고 해도 지나치게 "국뽕"을 맞은 작품은 아무리 애국심이 철저한 한국 관객조차도 등을 돌리는 이 시대에, 아직 글로벌화되기에는 거리가 있고, 서구적 자본주의 문화와 핀트가 살짝 어긋나 있음이 분명한 중국의 국뽕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오랫동안 들지 않았다.


"한한령"을 내세워 우리 작품을 배격하고 그 외에도 온갖 이유를 들어 해외 문화상품의 자국 내 판매에 제동을 거는 중국 정부를 떠올리자면, 볼 이유가 생기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엄청나게 큰 스케일에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중국 SF 소설가의 원본을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으로 볼만하다는 평가를 받은 뒤에 점차적으로 호기심이 몸 전체로 번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훌륭한 원본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므로.


더구나 깔려 있는 "넷플릭스"에서 언제든 꺼내서 볼 수 있는 작품이었음을 알게 되자마자 과감히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선택이 잘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대 이상이란 표현보다 기대 자체를 초월해 버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중국 영화로서의 "국뽕"은 들어 있으나 다루는 스케일은 전지구적이다.



1. 착상의 스케일 면에서 서구 SF 소설과 영화를 넘어선다.

중국 문명의 오랜 전통문화 흐름이 이 영화 속에서 느껴져 왔다. 대다수의 그 어떤 작품도 지구의 절멸 위기를 맞아 지구를 통째로 들고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프로젝트를 말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창조적인 상상력의 측면에서 이 착상 자체부터가 존중받아야 하는 부분이었다.


대다수의 지구 절멸을 그린 영화에서 피치 못하게 나오는 것은 이 과정에서 특권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인류에게는 살아남을 방안은 주어지지 않고,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살아남아, 지구 밖으로 나가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던지, 그런 줄 알고 나갔다가 다시 추락한 행성이 알고 보니 지구였다라던지 변주부가 계속 늘어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통째로 지구에 1만 개 이상의 대형 엔진을 달아서, 수백 년의 장기 계획을 세워 현재의 태양계를 벗어나 4.2광년 떨어진 다른 태양계에 지구를 안착시키겠다는 착상은 중국 정도의 대륙에서 살아오고 생각한 소설가 정도가 아니라면 쉽게 생각해 낼 수 없는 창작의 영역이다.


"집"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강력한 농본주의적이고도 "천하"를 자신이 살아가는 땅이란 지역에 놓고 우주관과 세계관이 세워져 있는 중국인의 오랜 문화적 입장을 떠올리자면, 돌아가야 할 곳 없이 어딘가로 떠날 수 없고, 살던 태양계를 떠나가면서도 "지구"를 짊어지고 달팽이인양 먼 우주를 유랑하는 지구인의 모습이 떠오르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이것은 타국인이 만들어내기엔 어려워 보인다.

(출처: Alpha-coders)


2. 거대한 우주 공간 스케일을 그럴듯하게 구현할 자본과 관객을 내수에 갖고 있다.

중국 시장 내에서 영화에 투자된 5천만 불(약 700억 원)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으리란 계산이 서지 않았다면 아마도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만큼, 거대한 착상을 그럴듯한 영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거대한 투자가 이뤄졌음이 절로 느껴졌다.


일부는 실사 CG라기보단 애니메이션에 보다 가깝고, 미장센이나 미술 효과에 오히려 가까워 보이는 배경이나 장면이 많이 나타났지만, 지구에 박혀 있는 만 개의 엔진이 가동하는 모습과 영하 80도 이하로 내려가서 전체적으로 얼어붙은 지구 지상의 풍경, 지구를 벗어나서 연결되어 있는 듯이 나오는 우주정거장과 곧이어 인력에 끌려 들어가 부딪치기 직전의 "목성"의 모습까지 한 번에 쓸어 올려 보여주는 씬은 나름의 압권을 선사한다.

(출처: The Mirror)

이 작품에는 국내 유수의 CG, VFX 효과에 대한 전문성을 자랑하는 여러 기업이 참여했고, 투자의 스케일이 큰 만큼 그런 기업이 가진 역량의 최대치를 모두 쏟아부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작품 중간에 한국어 대사를 읊는 배우가 일부 등장하는 장면이 두어 차례 나왔던 것은 어쩌면 영화를 내다 팔 시장으로서의 한국 시장의 가치보다는 배우를 불러 출연시키기 용이했던 외국 국가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보다 보니 안타깝게도 "더 문"을 포함한 우리나라 SF영화의 스케일은 상대적으로 초라한 수준이었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영화로서는 담대하고 용기 있는 큰 제작비를 투여한 커다란 도전이 이어져왔지만, 이야기의 스케일과 착상의 독창성 면에서도 "유랑지구"에 비견할 바가 되지 못해 왔던 것이다.


특히나 "유랑지구"에서 나온 지구 지상에서만 활동했을 뿐이기는 하나 "드론"의 움직임과 영상은 일부 "더 문"에서도 움직인 우주 공간과 달에서의 "드론"의 움직임을 떠올리게도 만들고, 대형 우주 정거장에 붙어서 움직이는 우주인의 모습이 구현된 장면의 스케일과 박진감을 떠올리자면, 안타깝게도 "더 문"의 CG, VFX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바로 본다면 약간 허탈한 반응을 낳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3. 스토리가 점차적으로 거대한 협력을 향해 제대로 연결되면서 나아갔다.

국뽕 스토리라고 할 수 있을만한 부분은 가장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큰 희생을 통해서 절멸 직전의 인류를 구한 핵심 인물이자 주인공이 다 중국인이라는 것인데, 특별히 다른 영화에 비해서 두드러기가 날만큼의 "국뽕"을 넘어선 국가적 "프로파간다"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 이유 중에 하나는 처음엔 "류 페이창"이란 엘리트 우주인이자 군인인 남자의 가족 내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임무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중국 군인과 더불어 확장되고, 다른 작업자와 기술 전문가와의 팀워크를 발휘하면서 점차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만한 규모가 되고, 위기가 최고조에 달해가면서는 엔진을 다시 되살리고자 했던 모든 작업자가 돌아와 합류하는 인종과 국가를 가리지 않는 거대한 스케일로 순간 변화하는 과정이 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처: Movies ala Mark)


절망적인 상황에서 끝까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실행하기 위해 가진 모든 수단을 다 불어넣으면서 목숨도 내놓고, 발악을 하는 연기에 비록 세련미는 좀 떨어져 보였고, 디테일도 많이 모자라 보이긴 했지만, 나름 눈물샘을 자극하는 동시에 진정성을 느끼도록 만드는 연출이 이뤄졌다.  

(출처: Needcoffee.com)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만 흥행의 90% 가까이를 달성한 명확한 한계가 이 영화에 있었다.


1. 중국적인 의리와 신파가 다소 드라이해진 비 중국적 세계에선 다소 낯설어 보인다.

"류페이창"과 "류치" 부자간의 갈등은 가족별 2장밖에 주어지지 않는, 얼어 죽지 않는 지구 지하로 갈 수 있는 표찰을 받아 2 가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위중한 병에 걸려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는 "류페이창"의 아내의 연명 수술을 중단하고 죽도록 놔둔 뒤에, 장인인 "한쯔양"과 아직 어린 "류치"가 지하로 내려가 살 수 있도록 한 "류페이창"의 결정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류치"가 아버지를 어머니를 죽인 자로서 미워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아버지를 싫어하는 "류치"는 "류페이창"이 우주 정거장의 일부분을 떼어내서 목성에 충돌하기로 결정하게 된 순간에 "갈등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피붙이가 죽기를 결정하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말리려고 하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여기에서 부자가 눈물을 짜내는 것이 둘 간의 아무 갈등도 해소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구닥다리 "신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극의 중후반쯤엔 할아버지인 "한쯔양"이 다른 일행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서둘러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왜 일부러 방한이 가능한 헬맷을 벗고 차갑게 얼어붙는 길을 택하는지가 이해가 잘 안 되는 관객이 적지 않게  있었을 것 같다.


배우의 얼굴이 나와야 그만큼의 슬픔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 외의 관객에게 아주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배우인 "오맹달"의 "한쯔양"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이겠지만, 오버하는 신파 연기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오버 전에 그렇지만 관객에게 "한쯔양"이 "류 페이창" 대신에 손자인 "류치"를 키워왔을 뿐만 아니라 고아인 "한둬둬"까지 거두어 혼자 키워온 이임을 전후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그 슬픔의 이유는 나름 설명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국내 작품이었거나 다른 더 드라이한 관객이 사는 국가에서 개봉되었다면, 일단, "신파"이므로 신랄하게 두드려 맞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 과정에서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대원이 한 명 있고,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밖으로 나오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해서 조치를 취한 대장에게 할아버지의 손자와 손녀가 반항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군인과 다른 길을 걷기로 선택하는 것도 순전히 오버하는 감정의 토로이고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 중에 누구라도 죽으면 상황 상관 없이 의례 오버해서 정신을 잃은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문화적인 묵계가 중국인에게 있구나라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계속 어색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극 중에 희생한 군인이나 죽은 류페이창, 한쯔양 등등의 인물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존중이나 되새김 없이 그저 냉정하게 극이 끝나버린다. 사람이 너무 많은 나라라서 몇 사람의 목숨이 사라진 정도는 크게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대륙의 풍모 같기도 하고, 너무 드라이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신파"를 "냉정한 결말"로 중화하고 상쇄시키는 것도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만하다.


2. 중국 외의 거대 티켓 시장인 국가에서 선호할만한 스토리는 확실히 아니다.

이 극에서 우주정거장 내에서 적극적으로 친구인양 서로 교류하는 것은 중국인 우주인 "류 페이창"과 러시아 우주인인 "마카로프"인데, 이 두 국가는 이미 개봉 연도 이전부터 서구 국가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온 국가다. 다른 우주인으로는 통합 정부의 5개국 중에 미국과 프랑스, 영국도 있겠으나 극 중 나오는 서구 국가 측의 인물의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군데군데 노르웨이인이나 중국인+호주인 혼혈 등이 등장하면서 서구 국가의 인물 역시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인물임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절대다수 모자라다. 항상 백인이 인류를 구해낸다는 백인 중심의 영화를 보는데 익숙한 국가의 관객이 그런 스토리를 황인종, 그것도, 적대국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는 중국인이 보여준다는데 가드를 내리고 쉽게 본 뒤에 박수를 쳐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3. 아주 조금 나오는 유머 코드가 사실 웃기지 않다

여기에서 몇 개 안 되는 유머 코드를 담은 인물이나 장면이 나오기는 하나 정말 그것이 제대로 웃기기 위해 보여주는 장면인지 자체도 잘 이해가 안 되고, 중국을 벗어난 다른 세계의 관객을 웃길만한 내용이었는지도 불명확하다.


할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손자 손녀를 구하러 가서 감옥의 책임자에게 주려고 했던 뇌물이 50년가량 그 할아버지가 수집해 온 "야동"이란 내용은 영화 속의 시대가 2075년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2025년부터 수집해 왔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큼지막한 박스에 담긴 통 안에 있다는 내용 자체가 납득이 안될 수밖에 없고, 그런 것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도 사실 중국 외부에 속한 관객에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류치"가 할아버지의 운전면허를 위조해서 몰고자 하는 거대 트레일러를 초반에 운전할 때와 영화 막판에서 운전할 때 우선은 옆에 있는 차와 한번 부딪치고 나서 불안 불안하게 운전하는 것이 반복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약간의 허당끼를 불어넣어서 매력을 느끼게 만들고자 하는 것 같긴 하나, 뛰어난 운전실력을 보여준 그가 계속 같은 실수를 극의 끝에 와서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트레일러를 끌고 황급히 구동하는 엔진의 불길을 다시 피워 올리기 위한 "부싯돌"을 갖고 움직이는 동안 트레일러 안에서 자신이 쓰고 있는 헬멧에 나오는 구토를 받다가 나중에 차량이 멈추고 내려서 헬멧을 쓰고자 할 때 다른 자의 헬멧을 뺐어 쓰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웃기려고 하는 장면인지, 그 인물의 이상함을 드려내려고 보여준 장면인지가 헷갈렸다. 그 인물이 중요한 희생을 하지 않았다면 내내 이상했을 것 같다.



"유랑지구"란 영화가 갖고 있는 흥행 파워의 중심은 바로 SF 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이 만든 원작이 가져온 특별한 착상이 이뤄낸 원본 스토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유랑지구"를 보고 나서 다시 "더 문"을 본 기억을 복기하다 보니, 이 작품을 보고도 SF영화를 한국 자본으로 더 나은 영상 기술력이 되든, 극화 제작 능력이 되든, 배우 연기가 되든, 더 나은 비교우위를 보여주면서 만들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제작진과 스태프, 배우에게 있었으리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하지만 "김용하 감독님"의 여러 인터뷰 중에, "더 문" 시작 부분에서 "뉴스"를 나열해서 벌어진 내용을 소개하는 방법을 극이나 영상을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택했다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에, "유랑지구"도 채택한 그 방법을 그대로 쓰면서 그것이 나름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다고 보기 때문에, 보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CG, 곧, VFX 효과의 측면에서는 제작비 "280억 원"을 사용한 "더 문"이 "700억 원"을 사용한 "유랑지구"를 넘어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달 착륙 후의 유성비가 떨어지고 땅이 뒤흔들리고 무너지는 장면이 연속되는 부분에서만큼은 "유랑지구"보다 더 확실하고 또렷한 영상을 현실감 있게 제공했다.


그렇지만 그 현실감보다 사실 중요한 것은 더 창의적이고도 독창적인 "극화"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이제 와서 든다. "유랑지구"란 영화가 갖고 있는 흥행 파워의 중심은 바로 SF 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이 만든 원작이 가져온 특별한 착상이 이뤄낸 원본 스토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스토리를 제대로 영상화하기 위한 제작비가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유랑지구"란 영화가 중국 관객에게 침투한 효과성이 커졌던 것 같다. 마치 공산품이나 기타 완제품에 대한 하청을 받아 원청에 제공하기에, 가성비가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B2B에 몰입된 상태로, 이를 경험하게 될 관객의 입장이나 관점을 떠난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 작품은 "유랑지구"만 한 관객을 끌어 당기는 매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중국시장이었다고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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