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쓰다
(출처: Drydenwire.com)
앞서서 그래도 대놓고 연재 중인 브런치 북에 "돌려 쓰기"라는 제목 아래 "스턴트맨"은 볼만한 영화로 추천하는 글을 썼지만 그런 연재가 아니라 쓸 글이 일주일에 한편 이상 더 넘칠 때 쓰는 브런치 매거진에는 그냥 쓰고 싶은 글이 넘치거나 연재 같은 식으로 다소 시선이 의식될 필요가 없는 글을 써야 할 때 쓰기로 했다.
명확한 선정 기준 같은 것은 없다. 매일 직장 생활하면서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 출근해서 일과에 맞춰 일을 하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30분가량 산책하고 일 마치고 집에 온 뒤에 저녁부터 밤까지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한다. 그다음에 체력이 남아 있고 배출되지 않은 기억과 더불은 창작욕이 남아 있으면 쓴다.
그런 체력과 관심 등의 여러 필터층을 거치고도 쓰일만한 이유가 남아 있고, 바닥에 멈춰 있는 에너지의 상태로 꼭 사람들 눈에 뜨이고자 하는 존재 이유를 가질 글이라면 동기가 어떻고 구상이 어떻고를 떠나서 꼭 쓰여야만 할 글이니까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엄격하게 글감이 되어야 하는 기준을 충족하고 구상단계에서 수많은 검토를 거쳐서가 아닌 운이 좋아 걸리는 글이다. 필연적이고 무게감과 가치 있는 글만을 써야 하는 종류의 프로페셔널은 아니니까. 글을 쓰는 방식은 꼭 그런 방식일 필요가 없다. 그 와중에도 글감으로 걸린 작품이라면 의미 있어서다.
"나쁜 녀석들:라이드 오어 다이"는 4편으로써 3편을 이미 보지 않고 지나친 내게는 꼭 봐야 할 필연을 가진 작품이 아니었다. 1 편과 2편은 기쁜 마음으로 솔직히 즐겁게 봤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무뇌아적인 액션 영상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별생각 없이 총을 휘두르는 두경찰 "마이크 리우리(윌 스미스)"와 "마커스 버넷(마틴 로렌스)" 콤비의 좌충우돌 액션은 낙관으로 시작해서 예정된 해피엔딩에 우여곡절 끝에 잘 도달한다.
그런데 3편이 2020년에 개봉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친 뒤에 4편이 금년 중에 개봉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극장을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인지 SNS에서 그나마 1과 2편의 흥행 최고조 때의 기억을 가진 나와 같은 세대에 홍보하는 비용을 아껴서 광고를 볼 기회조차 없었던 건가 싶었다.
누군가 마케팅으로 "베이비붐 세대"와 "엑스 세대", "엠지 세대", "알파 세대"를 세분화해서 이에 맞는 전략을 가지고 영화 홍보와 광고를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중에 이 영화에 대한 의뢰를 받았다면 아마도 온 힘과 예산을 모두 기울여 전심을 다해서 공략했어야 했을 세대는 "엑스 세대"여서였다.
그런데 그보다는 "엠지 세대"를 더 노리고 인스타그램 등의 채널에 더 많은 힘을 기울였다는 내용을 찾아봤다. 그건 극화 면에서 "엑스 세대"를 파고들 수 없을 거란걸 잘 알아서였으리란 생각이 보면서 들었다. 나를 포함한 그들이 이 영화를 예고편을 통해서 혹 봤다고 해도 좋은 입소문은 어려웠다.
초반의 장면이 그렇게 나쁜 방향으로 영화가 가진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긴 했었다. 1편이나 2편 같은 낙관적인 느낌의 장면이 펼쳐지면서 제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제작자로서 이름을 떨친 흥행의 귀재 "제리 브룩하이머"조차 되돌릴 수 없는 문제 상황이 이미 이 영화에 덮여 있었다. 남자답고도 똑똑하고 강력한 존재로 포장되는 것이 어울리는 동시에 능수능란 능글능글한 이미지도 같이 전달해야 하는 "윌 스미스"로부터 사라진 모든 것이 드러났다.
2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뺨을 (자신의 아내인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탈모를 "G.I. Jane"에 출연하기 위해서라고 희화화시킨 것에 대한 항의로) 휘갈긴 "윌 스미스"는 이것 때문에 그동안 쌓아왔던 거의 모든 이미지를 와르르 무너뜨렸다. 한순간에 그는 추락했다.
사실 자신의 아들의 친구와 불륜을 했던 아내와 그의 관계는 대중적으로도 실추된 부부 관계로 보이고 있었는데, 이 내용이 이 사건을 통해서 대중에게 더 알려지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그가 대중매체와 극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와 같은 긍정적이고 남성적인 매력을 제대로 가진 존재가 아님을 글로벌 관객이 너무도 잘 알게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현실과 연기가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반되지 않을 때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흑인 연예인간의) 동류 의식도 없고 숙고하는 태도나 조심성이 없는 건 치명타였다.
그런 내용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국가의 관객에게 아직도 어필할 구석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그에게 뺨을 맞은 이는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았던 탓에 1년여 뒤쯤엔 "윌 스미스"를 신랄하게 토크쇼에 출연해서 아내에게 심하게 배신당하고선 화풀이를 자신에게 한 존재로 묘사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이미지가 박살이 난 상태에서 여전히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존재로 "나쁜 녀석들:라이드 오어 다이"에서 그대로 나오려고 하고 후반부에서는 공황상태에 빠지는 장면을 보여주며 정신적 불안 상태를 노출하는 그야말로 자신의 이미지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작품에 출연한 셈이었다.
극 중에 50이 넘은 나이에 만난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면서 서로 사랑에 빠진 눈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그래서 그다지 현실감이 없어 보이고, 감옥에 갇힌 사생아인 자신의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어떻게든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의 그를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부정의 모습도 그렇다.
초반부에 "마커스"가 심장마비로 죽을뻔했다가 살아온 뒤에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아 살아 돌아왔다고 확신한 상태로 총알과 차가 몰아치는 장소에 자신의 몸을 무리하게 던지는 장면이 반복되다가 "악어"에게 물리면서 극화가 현실감을 찾도록 하긴 한다.
그런데 유치할 거면 그런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던지 아니라면 아예 현실적인 경찰 액션물의 스탠스를 계속 취했으면 좋았을 텐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건 청소년 관람가로서의 장점도 잔인한 성인 액션물의 장점도 모두 잃어버린 이도저도 아닌 포지션을 취했던 것 같은 양상이다.
믿었던 정치인이 적의 끄나풀로 나타나면서 정치인에게 갖고 있는 젊은 관객의 저항감을 흥행의 자극제로도 사용하고 싶어 했던 것 같긴 한데, 야비함과 이중적인 면모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듯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내게 안타까움을 주는 것은 이것이었다. 쉬는 날. 오전에는 이 작품을 보고, 오후엔 "스턴트맨"을 봤었다. 그런데 글감을 찾아 글을 쓰려고 숨을 고르는 동안 오전에 봤던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한참 떠오르지가 않았다. 뭔가 머릿속에 봉인이라도 한 것처럼 꽤 오래 그러했다.
그래서 그 봤던 기억을 찾아내고 영화 제목이라도 떠올려보려고 나름의 기억을 다시 되찾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다. 이런 일은 한창 체력이 좋았고 기억력도 팽팽했을 때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선 5~6개의 작품을 연달아 보다가 1개쯤 떠올리지 못했던 적 외에는 거의 없었던 일이었다.
그만큼, 나의 의식보다 무의식이 이 작품을 기억 속에 봉인하고 잠가 버리려고 했기 때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의 말을 여기에 적는 것은 미안해서 이만 멈추겠다.
제작진과 배우 모두가 열심히 임해서 찍은 작품인데, 배우 하나의 잘못 관리된 이미지와 극화의 유치함만으로 폄하하는 것은 물론 과한 일이다. 그러나 단지 내게 벌어진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