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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Nov 01. 2015

<볼링 포 컬럼바인>-부끄러워하라

우리는 그 어리석음을  배우지 말아야만 한다


2003년도에 볼링 포 컬럼바인이라는

다큐멘터리와 마이클 무어라는 감독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할리우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영화 관객들 중에서는

거의 없었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식코 등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국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해왔다

아카데미 시상식 장에서,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게

갖은 욕설을 다 퍼붓는 감독을 보았다는

깊은 인상을 누구나 가졌을 만도 했었다.

Bush,  shame on you, shame on you! 부시 부끄러운줄 알아, 부끄러운줄 알라고! 우리나라에서였다면, 경력단절이 생겼을 것이다.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마이클 무어가

굴린 볼링공은 파괴력이 강한,

스핀 먹고 궤도를 잘 탄 것처럼,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상층부의

지도자들을 향해,  또한 미국의 무기산업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굴러갔다.

1. 마이클 무어의 고향의 은행 사은품

그가 사는 마을은 이른바,

미국인들의 어떤 의미에서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총기 사유화가 보다 보수적이고도,

자연스러운 행위로써  합법화되어 있고,

장려되고 있는 주에 속해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언뜻 이해가

잘 안 가는 화면이 나온다. 한 은행이

계좌를 트는 고객에게, 엽총 하나씩을

사은품으로 주는 풍경이다.

계좌를 트면 장총을 하나 사은품으로 주겠다는 이 아이러니한 광고...


'모순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고객들이 그 총을 들고,

다시 은행을 털러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

2.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 13명을 쏴 죽인

고등학생 둘이 나타났다.

낙제생으로 낙인찍힌 고등학생 2명이 자동화기를 가지고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를 하였다. 이런 사건은 지금도 심심찮게 다시 벌어지고 있다.



그 둘은 아침에 특별활동으로

볼링을 치고, 오후 무렵에는

콜트사의 최신 머신건을 차고,

도서관과 식당과 학교에

무차별 난사를 감행했다.


그들은 단순히 미친놈들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에게 총과 총알을

쥐어준 것은 누구였을까?


13명을 쏴 죽이고, 그들은 자신의 총으로

자기 자신까지 쏴 죽이고 말았는데,

과연 그들이 자기 손으로 총과 총알을

결합하고 방아쇠를 당기게 했던 것은

누구였냐는 질문이 이 영화의 방아쇠이다.

마트에서 총기를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컬럼바인 학교에는

성적 불량의 낙오자에게는

구제받을 길이 없다는 얘기밖에는

아무것도 얘기할 줄 모르는

구태의연한 어른들 밖에 없었다.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구제받을 길 없는

인생의 실패자로 자신을 분류한 청소년이

자신의 불안감과 절망감을 속해 있는

사회에서 해소하는 방법은 파괴이며,

나아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길 밖에는

없었다. 인생에 어떤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꼈다

나는 그 분위기를 절절히 안다.

아니,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또는 사업을 하기까지의 한국에서,

그와 똑같은 인생의 압력이 낙오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어지간한 엘리트가 아닌 이상,

알고 있다. 때때로, 자기 자신을 죽이던지,

아니면, 타인을 죽여버리고픈 충동을

느끼는 어느 순간들을. 물론, 대부분은

 그 순간을 잘 넘기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총기가 있다면

그리고 올바르게 사용을 제어하는

규제가 바로 서있지 않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또한 얼마나

많은 총기 난사 사건들이 일어날까?

3. 총기 사용이 합법화되면, 어디라도

똑같은 문제가 생기는가?

미국에서 연간 총기 사고에 의해서

죽는 사람들은 11,000명을 넘어간다.


그 옆 나라인 캐나다의 경우에는

역시도 똑같이 총기 사유가

합법화되어 있어도, 사고로 죽는 사람은

연간 60여 명인데 반해서 말이다.


물론, 인구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약 700백만 정의 총이 있음에도,

캐나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총기를

난사했다거나, 번화한 도시의

그 어디에서도, 쉬이 총기 사고가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캐나다가 극명하게 미국과 다른 점은
(1) 유색인종이나 빈민층에 대한

적대감이 없는 분위기 그리고

빈곤 계층에 대한 원만한 사회적 복지.


(2) 가상의 위험이 있다고

지껄여대길 좋아하는,

공포로 대중을 조종하고,

여기에 맞는 상품을 팔아대는

미디어의 소란이 없는 분위기.


(3) 문을 열어놓고 절대로

잠그지 않고 사는 서로 신뢰하는 사회.


(4) 사냥용 총기 판매일 뿐,

자기 보호책이라거나,

가상의 적에 대한 방호용이라는

등의 뻔질난 TV 마케팅이 없는 사회.


(5) 사회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이

군산 업체와 여기에 연결된

자기의 이권 때문에,

무기 산업을 확장시키고,

국외에서 전쟁을 유도하는 등의

모순이 현저히 적은 정치권.

이 다섯 가지였다.

미국인들은 다른 선진국 대비하여 20배 가량 총기에 의해 살인당하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에서 살고 있다
고임금 국가들 중에서 인구 십만명당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총기로인해 죽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타국민들

(물론, 대부분은 후진국들)에 대한

배타성, 부익부 빈익빈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천민 자본주의적 특성,

보안 경비에 지나치게 천착하려 하는

나날이 심화되는 불신의 풍조,


공포나 두려움을 자극하는

뉴스를 내보내어 대중을 통제하고,

의미 없는 소비를 자극하려 하는

미디어적 책동을 우리가

전혀 경험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례로, CCTV의 제도적 설치 등의

일방주의적이고, 불신감을 심화시키고,

대중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려는

일련의 사회 제도의 무분별한 범람은,


다름 아닌, 이 나라의 사람들의

폭력성을 점차 심화시키고 불신

마케팅을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고자

하는 또 다른 움직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마이클 무어가 캐나다의 사례를 든 것은

캐나다가 선진국이라서 미국이 따라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캐나다의

이러저러하게 좋은 특성은 흡수해야 할

필요가 미국에게는 있다는 이야기였다.


4. 록히드 마틴사는 무기 산업을

어떻게 옹호하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무기들을 단지,

국가의 방위와 보호 차원에서

판매하는 것일 뿐, 공격 목적이나

파괴를 위해서 만들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적이 공격하지 않으면,

무기는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는 여기에서 역설법을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OST로 사용하면서, 역사적인 스크랩들을

배경으로 깐다.

얼마나 아름다운 미국의 무기에 관련된

세계관이었던지...

미군수회사들의 무기들은,

미국의 CIA 요원인 노리에가가

친미 정권 구축 후에 반항하자,

미군의 파나마 침공이 벌여져

수많은 민간, 군인을 죽이는데 씌여졌으며,

남미의 친미 괴뢰정부를 만들기 위해,

대량의 학살을 하는데 씌여졌고,

이란 정권을 친미 화하는데,

오사마 빈 라덴을 통해 친미적인 활동을

부추겨 이라크와 싸우도록 하는데,

이라크 내에 친미 정권인

후세인을 등장시키는데,

일관되게 전 세계에 친미주의 정권들을

수립하기 위한 공격에 쉼 없이

사용되어왔던 것이며,


곧, 군수산업의 확장을 위해

무기가 사용된 경향이 강했던 것이지.

전적인 미국민의 순수한 방위와

보호 차원이 주 목적만은 아니었다.

90년대부터 쉼 없이 퍼부어졌던

이라크에 대한 비행 포격으로

 50만에 가까운 이라크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어갔으며,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 시즌에

있었던 미군폭격의 대상이었던 나라의

무기 공장은 실은 전혀 상관없는,

아스피린 공장에 불과했었던 것 등등,


주옥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보자면,

미국은 타국을 전화에 휩싸이게 하고,

재앙을 키우고, 수없는 사람을 죽게 하는데,

무기를 사용해왔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미국이 뿌린 군사무기와 전략과 전술은

이후, 미국을 역으로 위협하는 테러조직을

강하게 만드는데 다시금 사용되었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나,

9.11 테러사태는 다름 아닌,

미국 CIA 전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미국이 키운 지도자인 후세인,

그리고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의

지휘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CIA에 의해 교육받은 전문가가 3,000명의 미국인들을 죽인 911 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이 역시, 미국민의 방위와 보호 차원에서

무기 산업을 일관되게 사용한 결과물만은

아니었으며, 자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에

동원되었다.


What a wonderful world가 끝나고,

우리는 잔인한 실체를 가진 미국의

무기 산업을 이해하게 된다.

미국의 무기산업은 이렇게

미국의 안전을 구축하는데 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안전을 해치고,

미국민들의 피해를 점점 더 위협적인 것이

되도록 몰아간 1등 공신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아, 여기에서 록히드 마틴사는

뻔한 사실을 모르는 척 이야기하면서

무기를 팔아재끼는 기업체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군사력의 증강과 무기업체의 확장은,

그 나라에 득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극약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꼭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5. 전미 총기 협회의 찰톤 헤스턴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회장님이었다.

컬럼바인에 끔찍한 참극이 일어났음에도,

전기 총기 협회는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는

총기 규제 움직임에 대한 반동적인 세력을

형성하고자, 일종의 캠페인 대회를

컬럼바인 근처에서 열었다.


그리고, 회장이었던 찰톤 헤스턴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념에 가득한 연설로,

총기 소지의 자유를 부르짖는 분위기를

사회에 연장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규제 법안으로부터, 무기상이 제공하는

미디어들이 살포하는 공포에 길들여진

구매자로부터의 매출을 지켜냈던 것이다.

6. 그 와중에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같은 또래를 쏴 죽이는 사건이 벌여진다.

그리고, 빈민층 마을의 유치원에서,

또 한번, 컬럼바인의 사건을 능가하는

총기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의 어머니는 이미 빈민 구제 따위에는

고개를 돌려버린 부시 정권의

열등한 사회복지책 때문에,

하루에 두개의 아르바이트를 꼬박 뛰어도,

꼭 갚아나가야만 하는 정부 보조금을

갚기에도 모자란 돈을 버는

극빈층의 여성이었다.

무상의 정부 보조금을 유상으로 바꾼 것은,

부시 집권하의 한 인물이었다.

그가, 그 제도의 변경으로 얻은 것은

록히드마틴사의 높은 직책.


빈민 무상 지원 자금은 분명히,

군사비로 돌려졌을 것이고,

그것은 바로, 록히드마틴사의 계좌로

훌륭히 입금되었을 것이다.

총을 쏘았던 아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비참한 괴물로 그려놓기까지 했던

아이였다.


하루 종일 어머니를 볼 수 없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앞 날에 있을 절망감,

망가진 자기 이미지와 반영에

함몰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총을 쏜 것은,

컬럼바인의 고등학생들이

총을 든 것과 또한 무엇이

크게 다른 것이었을까?

막다른 길, 다시 헤어 나올 수 없는 길로

극빈층을 몰아넣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사회 인식 수준은 과연 무엇인가?


수대째, 극빈층을 벗어날 수 없었던

매스미디어에서 배제된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위험하다'라고 말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위험한 존재들이

되도록 만든 사람들일 수 있다.

맹목적인 시장경제 찬양송의

매스미디어를 통한 살포는

당장 소비 가능하고 투자 가능한

계층들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의

마인드 컨트롤일 수 있다.


진정한 국익이나 안전은 당연히

살아남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만드는데

있지 않다. 이걸 깨달아야 한다.

7. 매스 미디어와 전미 총기 협회는

언제나와 다름없었다.

바로, 그 사건이 난 지역에 다시금

전미 총기 협회는 찰톤 헤스톤을 앞세운

유세를 펼쳤다.


총기 규제는 부당하고,

총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판매되어야 한다...


총기 협회는 반동적인 흐름을

여전히 멈추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확신과 카리스마로 가득 찬

또 한차례의 연설과 함성, 박수.

그들은 그러한 사건이 그곳에 났다는

사실을 알기는 아는 것일까?


사건을 취재하러 왔던 방송국들은

사건이 벌어진 이유에 대한 자료 조사나

주변 환경에 대한 탐문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고, 상당히 센티멘털한

보도를 하러 온, '머리 다듬는데 바쁜'

리포터들과 카메라맨, 코디네이터와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멘트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파견했다.


현장은 보도 내용의 뒤편으로

순식간에 사라져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컬럼바인의 사건만큼

일순 경악했을지 모르겠지만,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언제나와 같이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며,

결국에는 사라졌을 것이다.


8. 마이클 무어와 피해자 가족들처럼

행동하는 것은 맞는 일이다.

컬럼바인에서 죽은 자식을 위해서

집회에서 연설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왔다.


그 아이들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라는 사회의 총기 사용에 대한

어설픈 제도임을 다시금 역설했다.


전미 총기 협회의 찰톤 헤스톤의

연설 장면이 이 장면과 교차한다.


총기를 규제하는 모든 움직임을

미국민의 권리에 대한 의미 없는

제어로 몰아세우는 찰톤 다음에.


총알을 맞고 죽은 아이의 사진을 들고서

아버지는 침착하게 연설한다.

그에게는 비록 카리스마도 없고,

확신이나 신념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연기력 같은 것도 없지만,

그의 말들의 호소력은 강하다.

뚜렷한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도 자신들의 아이가

잘못된 제도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저항하고, 분노하고,

집회를 열 줄 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제도의 변경을 요청하는

움직임을 막고자 하는 이면의 움직임 속에

과연 '인간'을 위한 마음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우리는 시민들의 집회에 대한

자의반 타의반의 경계를 갖고 있다.

정부나 대기업, 강대국 등에 항의하는

집회를 여는 것은 경제를 망치는 길이

아닌가 두려워하게끔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세계 속의 보편화된 민주주의의

흐름에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올바른 논리가 있다. 인권,

이른바 사람의 권리라는 것은,

강대국이라고 해서, 또는 정권에 있는

사람들의 심기를 거슬리는 것이라고 해서

누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인간의 권리 그 자체에 대해서

옹호하고, 생명권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그 개선을 요청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논리는 사실상 희박하다.


단지, 대형 집단의 언론 플레이와 여론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 그 항의와 요청을

왜곡시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데 능할 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서라도

꼭 깨달아야만 한다.

피해자 자신인 두 학생들이 나왔다.

하나는 컬럼바인 고교에서 총을 맞아

하반신 불수가 되었고, 또 하나는

그곳에서 맞은 총알이  몸속에 박혀,

불구나 다름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총알들은 다름 아닌,

미국의 대형 할인 마트인 K마트의

매장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마이클 무어와 피해자들은 K마트를 찾아가,

총알 판매를 그만두어달라는 농성을 했다.

매스컴을 이용하고, K마트에, 자신들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힌, 총알을 파는 것은

분명히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제품을

팔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판매를 중지해달라고 정식으로 항의한 것이다.


여기에 K마트는 중요 책임자를 통해서,

전국 지점에 더 이상 총알을 팔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바로 수일 내에 모은 총알을

매장에서 거두어내 버렸다.


행동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우리 사회의

이른바 안전을 위해서,

순진해 보일 정도로 바보스럽게,

올바른 '인간'을 위한 논리를 위해,

도전하고, 항의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사회가 나날이 매스컴, 인터넷,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에 의해

산산이 쪼개져 다시 통합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단지 조금이라도,

정말 필요하다.


무언가 조금씩이라도 바꾸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 어떤 계층에 있더라도 말이다.)

9. 찰톤 헤스톤은 할 말을 잃어버린

허탈한 노인이 되었다.

마이클 무어 역시,

영구 전미 총기 협회의 회원이다.

그리고, 그 자격을 십분 활용해서,

찰톤 헤스톤과의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아, 연설할 때의 그 생기발랄한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는 어디로 갔던가,

마이클 무어가 묻는 질문들에 대해서,

찰톤 헤스톤은 제대로 된 답변을 못했다.


'자네 연구는 많이 한 것 같은데...'


'... 집회를 했던 그 지역의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 두 명이 사람들을 쏴 죽였던 것을 알고 있습니까?...'
'... 난 몰랐어, 전혀...'
'... 그리고 그다음의 집회가 있었던 지역에서 여자아이가 총에 맞아 죽은 사실은 알고 있나요?...'
'... 몰랐어, 그냥 계획에 있어서 갔을 뿐이야...'
'... 그곳에서 어떻게 총기를 옹호하는 연설을 할 수가 있었죠?...'
'... 이러지 마,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리고, 마이클 무어는 찰톤 헤스톤 앞에,

총에 맞아 죽은 여자아이의 사진 액자를

들이밀었다.


'... 이렇게  어린아이였나?...'

찰톤 헤스톤은 완전히 힘이 빠진

노인의 모습으로 구 부정히,

애써 그 사진과 마이클 무어를 외면하며,

집안을 걸어 다른 곳으로 걸어가서

사라졌고,  마이클 무어는 그 여자아이의 액자를 정원의 기둥 옆에 세워두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신념이 증발된 마냥 그는 망연자실하게 마이클 무어 감독을 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해악의 실체를 접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자기와 직접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피해를 보기 전까지는

아무리 큰 재앙이 주변을 활보하고

있다고 해도, 그 정체를 제대로

감 잡지를 못하기 마련이다.


막연히, 자신이 지금 무사히 있으므로

세계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고,

자신이, 그 재앙을 제대로 알건 말건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리라

자기최면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앙이나 악의 정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리려는

사람들에게, '확대 해석하지 마시오,

헛소리하지 마시오, 딴 데 신경 쓰시오,

입 닥치시오.'라고 얘기하는 것을

최후의 방패나 보루로 삼는 것은

우리의 아주 일상적인 자세이다.


더 이상 자세히 알지 않으면,

그러한 해악이나 재앙 자체도

 자신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으리라는 착각이 낳는

행동인 것이다.


나는 찰톤 헤스톤의 행동이

이 사회나 나란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현실을

알지 않으려 함으로써 나 자신은

계속 올바를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억지스럽지만,

극히 편한 방식의 삶.


우리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이면을 통해서,

이런 삶의 방식은 배우지 말아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삶과 죽음,

'인간'의 안전을 위한 사항이라면 더더욱.


(찰톤 헤스톤은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지병을 이유로 하여, 전미 총기 협회의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그의 사퇴는

내 생각에는 그가 대중 앞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킨

최후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10. 그 누군가가 전쟁을 하고 싶어 한다.

무기를 사용하고 싶어 하고 있다.

누구에겐 가는 전쟁과 무기는

이익이 되는 또한 자신의 이권이 달린

중요한 수단이다. 누가 죽던지,

무엇이 파괴되던지. 도덕적인 올바름은
사실상 어디론가 사라져 있다.

나 역시, 마이클 무어처럼

외치고 싶어 지게 되고 만다.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최선의 행동을 하고

싶어 지게 된다.  


스포일러를 남발했지만,

내가 누설한 것은 사실상

볼링 포 컬럼바인이 보여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의 일부이다.


여러분들은 더더욱 많은 것들을

"볼링 포 컬럼바인"을 통해서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0개의 핀을 넘어뜨리듯이,

우리의 인식의 세계는 순간

통쾌한 충돌음과 함께 왠지 모를

후련한 기운으로 차게 된다.


총기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던,

마릴린 맨슨. 매스컴이 사건의 주범인양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었다.


그의 기괴한 외양과 총기사건에는

사실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릴린 맨슨 (Brian Hugh Warner) / 가수

출생

1969년 1월 5일


"만약 컬럼바인에서 총기사고를

저지른 소년들과 공동체의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면 무어라고

지금 그들에게 이야기할 것 같나요?"

"그들이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들을

것이고, 단 한마디도 그들에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죠"


외양은 기괴해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가수와 사람들이 대량으로 죽어도

규제 상관없이 무기를 팔아야만

하겠다는 무기와 관련된 사람들 중

누가 사회에 해를 더 끼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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