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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브 : 우리의 일상 속 히어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떠오르지만 우리 일상화된 유머 코드가 진하다

by Roman

(표지 출처: IMDB)

* 이 글은 오늘만 무료가 아니라 영원히 무료로 작성했습니다.


이 작품의 광고가 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2002년작 "품행 제로"라는 "유승범"이 전설의 일진이자 지질한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작품의 느낌이 회상이라도 하듯이 쫙 떠올라왔다. 남자 학교의 군데군데 흘러 다니는 싸움꾼 전설이 요즘도 그대로 돌아다니는지는 잘 모르겠다.


(출처: 왓차)


학폭이 문제가 되어서 입신이 막히는 일이 종종 나타나는 요즘 사회에서 어쩌면 그런 전설 자체가 그저 학폭의 정황 증거 등으로 언급될 수가 있는 시대니까.


그래서 피지컬이 뛰어나고 배운 무술도 있는 자제가 있으면, 예전 시대와는 다른 대사가 그에게 주어지기도 한다. "무조건 맞아라, 절대로 먼저 위협하거나 때려서는 안 돼". 그렇게 해서 먼저 폭력을 당하고 피해자가 되어야만 합의 시에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법 전략적인 사고를 전달하는 시대다.


"세이 '노'의 가르침"같은 책에서는 정말 그럴법하게 들리는 학폭에 대한 저항 전략이 이렇게 나온다. '매일매일 그냥 괴롭힘을 당하면서 계속 일기를 써서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를 꼼꼼하게 하나 빠뜨리지 말고 적어두고는, 어느 날 의자로 괴롭히는 놈의 뒤통수에 사정없이 갈겨라, 그다음에 학교와 이야기하기보다는 경찰 등의 기관에, 작성한 일기를 제시해라'


요즘같이 "법적인 증거로 채택될리는 없지만 녹취가 용이해진 시대"에는 "다글로" 등의 앱으로 녹취까지 실시간 확보 가능하므로, 더 치밀한 만반의 준비도 가능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집안의 자제가 아닌 이상 폭력적인 언사나 폭력 그 자체를 타인의 신체 등에 먼저 가할 경우, 확실히 탈이 커지는 시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이상의 연령대를 넘어선 창작자의 기억 속에는, 또한 나 같은 중년의 관객이자 시청자의 기억 속에는 학창 시절 각자의 정체성을 걸고, 무림 지존이 되기 위해서 치고받고 전설을 남겼던 수많은 젊은이의 폭력 흥망 성쇠사가 남아 있다.


에고가 팽창하는 사춘기의 그 냄새나는 자뻑의 정신이 만들어 놓는 만화경 속에서 오래 전의 시대에서야 이해하며 넘어갔던 승부를 내기 위해 치고받는 일이, 소설과 영화 등의 수많은 극화에서 아직 나오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가 아직 제대로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회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랑스럽게도 유년기와 청년기를 통틀어 정말 많이 싸워서 항상 때리고 이겼고, 그때마다 양육자가 찾아와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하나 아까움 없이 "깽값"을 내줬다고 광고하는 내 연배 때의 시대착오자들이 무척이나 많다. 시대랑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물론, 아직도 학교 폭력을 다룬 작품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액션은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가고 있다. 흥행성이 문제일 것이다.


"품행 제로"가 그런 피 터지는 싸움이 미화되던 시대 안에서 나온 작품이었다고 한다면, "하이파이브"는 그 시대 밖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루는 이야기 속의 폭력은 그 지나간 시대의 "싸움으로 승부를 보고 인간의 열위를 가르는 풍경"에 익숙했던 창작자와 문화 소비자를 타깃으로 해서 나왔다고 볼만한 작품이다.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코 끝에 먼 시대 풍경의 냄새를 가져왔다.


옆 나라인 데다, 글로벌적으로 통용되는 문화 상품은 대중문화가 되었든 보다 상향된 문화가 되었든 우리보다 군데군데 먼저 시작한 방대함을 갖고 있는 국가인 "일본"은 어떤 방식이 되었든 상업성이 높은 극화가 만들어질 때 과거로부터의 영향력이란 그림자를 살짝 우리 작품 위에 드리운다.


"품행 제로"에서의 싸움의 전설로 언급되는 "유승범"이 연기한 "박중필"이 여기저기에서 언급되는 혼자 수십 명을 때려눕히고 호흡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올 때, 애니메이션화 해서 나오는 장면은 매우 빠른 속도의 CG로써 당시에 일본 만화나 특촬물, 물론,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종종 보이는 것과 유사한 신을 연출해 냈다. 태권도부를 일거에 모두 공중으로 차서 띄워버리는 씬은 "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서 차용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특별함이 있었다.


(출처: KOBIS)


그런 장면들이 과장된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났던 것은 웃음을 유발하고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 "품행 제로"에서의 과장된 액션의 의도였기 때문이었지만, 유사한 정도의 과장된 액션이 "하이파이브"에서 그려진 것은 영화 속 현실을 통쾌하게 만들어 사이비 종교 교주 빌런인 "새신"을 연기한 "신구"와 "박진영"을 통쾌하게 격퇴하는 장면을 더 호쾌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정작 제대로 현실에서 싸움을 할 때, 그냥 무술을 뭘 배웠든 안 배웠든 간에 그저 몸을 붙잡고 힘겨루기를 하거나 발차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엉거주춤 붙어서 근력을 과시하는 막싸움이 벌어지기 일쑤라는 현실을 "품행 제로"는 여러 액션 극화 속의 멋진 싸움은 보기 좋으라고 만들어지는 것임을 제대로 알리는 작법을 가지고 보여줬다. 후일담도 싸움꾼의 추레한 결말을 드러내줬었고.


(출처: Tenor)


"하이파이브"는 좀 더 세련된 "코미디 액션 극화"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보다 세련되고 박력 있는 여러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여러 장면과 장치를 차용했다. 자로 잰 듯이 대칭과 균형이 맞아떨어지는 말끔한 스토리와 기계적으로 잘 끼워 맞춰진 할리우드식 또는 일본 극화식 과장됨과 유머, 절제미, 후속 편을 만들지도 모를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쿠키 영상 같은 마지막 씬까지 뭔가 너무 말쑥해 보였다.


"박지성(안재홍)"과 "황기동(유아인)"같이 연기력을 인정받는 두 배우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서로 싫어하다가 후반부에 제대로 팀 플레이를 하고선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은 "슬램덩크"의 오마주이고, 영화 제목조차 "하이파이브"인 바, 이 작품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짙은 영향력을 보여준다. 그게 싫다라거나 그걸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출처: 톱클래스)


좋게 말하면 흥행 공식을 제대로 적용해서 철저한 디테일을 구성하고, 아직도 할리우드식의 그래픽이 잘 나오고, 일본 애니식의 개그가 잘 먹히면 잘 따라갔다고 흥행될 거란 공식이 지배하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나 옛날에 만들어진 "품행 제로"가 소환될 정도의 유사한 주파수를 지니고 있음을 나도 모르게 느꼈던 것 같다.



작품의 정보를 좀 뒤져보니 개봉한 이후 아직도 국내에서 손익분기를 통과하지 못했다. 2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긴 했으나, OTT에 넘어와 있다. 그럼으로써 아마도 손익분기를 통과했거나 근접했을 것 같다.


잘 만들어졌고, 등장한 배우가 펼친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연기와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 영상도 일품이었는데, 시의성을 살짝 놓쳐서 나타난 것 같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개봉 시기가 보다 적절했다면, 그렇게 천편일률적인 공식에 사로잡히고, 전략적인 실패로 인해 급속도로 할리우드 산 히어로물이 한국 시장에서 인기를 잃을 시점이었던 2022~24년경에 나타났다면, 마치 "강풀"의 "무빙"이 만들어낸 한국산 "히어로물" 스토리보다도 더 우리의 일상에 딱 들어맞게 만들어진 이 작품의 스토리는 지금보다 더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전에 "승부"라는 작품에게는 동작품의 출연했던 "유아인"의 약물 사건으로 인해 다소 늦게 나타난 것이 오히려 시의성을 높였다고 평가했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유아인"으로 인해 적절한 개봉 시점이 늦어진 것이 대략 30% 정도의 흥행 손실을 입혔던 것 같다. 그 덕에 편하게 집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긴 하지만.



그 외의 아쉬움은 상당히 연기를 잘하고 코미디의 비중이 작지 않았던 주인공 "박완서(이재인)"의 아버지인 "박종민(오정세)"의 발음이 방 안에서 큰 화면의 티브이로 보면서 소리를 높였음에도 제대로 이해될 수준으로 들리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는 것에서도 온다.


물론, 영양가 있는 대사는 전혀 없다. 연기력 하면 떠오르는 배우 중의 하나이지만, 우는 소리를 섞어서 심장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철떡 같이 믿고 있는 딸이 통제가 되지 않고 움직일 때마다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대사를 해야만 했던 배우의 상황도 이해가 가긴 하지만, 이게 잘 들릴지 안 들릴지 신경 쓰지 않고 작업을 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안정적으로 앞뒤 맞춰서 편집하고 극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하지만 탐욕스러움과 교활함이 극에 달한 이기주의자인 "새신 서영춘(신구와 박진영이 연기)"과 그의 수하가 너무 허술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아쉽다.


(출처: MTN 뉴스)


한쪽 눈의 각막만 도려내진 전자기파 조종 및 해킹 능력자인 "황기동(유아인)"의 옆에 힐러 능력을 가진 "허약선(김희원)"이 같이 누워 있게끔 방치해 두었던 것도 여기에서 더 시련이 있게 만들었다간 시간이 길어져서 문제가 되니 대충 처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다.


물론, 아동물로 타깃을 두었다면 이해하고 싶지만, 이걸 보러 올 사람 중에 내가 봤을 땐 40-50대도 적지 않았지 싶어서다. 그걸 염두에 뒀으니 80년대 영국 팝가수 "릭 애슬리"가 부른 "Never Gonna Give You Up"이 나왔으리라.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던 배우 "진희경"의 "새신 교주"의 딸 "서춘화" 연기도 그 아버지의 그 딸로서 매우 이기적이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역할이었어야 할 것 같았지만, 더 고령인 "신구"보다도 "진희경"이 발음하는 내용을 알아듣기가 더 어려웠던 상황이라, 이것이 노화를 겪고 있는 내 청각의 문제라고 생각하기엔 좀 억울하다 싶었다.


(출처: 네이트 뉴스)


초능력을 지닌 완전체로 살아 있었던 이가 사고로 죽은 뒤에 이로부터 받은 6개의 신체 각 부분을 이식받은 이가 각각의 다른 초능력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한 신비감을 증폭시키고, 그 비밀을 밝혀가고 싶어 할 만한 관객과 시청자의 호기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두 가지의 떡밥이 나온다.


1. 처음에 사고를 당해서 죽은 상태로 온 신체의 얼굴을 본 의사 두 명이 ‘우리 역사의 인물 중에서 봐왔던 인물을 보는 것 같다’는 대사를 잠깐 주고받는다.


2. 사이비 종교 새신의 교주가 췌장을 받아 혼수상태에서 회복된 이후, 주변 사람을 빨아들여 젊어지게도 되고, 자신의 사이비 종교 조직을 동원해서 다른 이식받은 이를 찾아 금세 20대의 젊은 남자로 변한 뒤에 샤워를 하다가 마치 지옥 같은 곳에서 손을 내밀어 잡고 그를 끌고 가려는 존재에게 저항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으로써, 그 신체의 여러 부분을 이식하도록 한 존재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남았고, 그 인물이 정의나 불의의 구분이 무색하게 초능력만 가진 인물이었고, 어떤 미지의 힘과 연결된 존재 같다는 미스터리를 나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자 궁금한 내용으로 남겼다.


하지만, 이보다 흥행 성적이 더 좋은,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스토리와 장면을 구현한, "마녀 1과 2"에 비교했을 때, 이 작품을 본 관객이나 시청자가 후속 편을 기다릴 비중은 훨씬 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보다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복잡성을 줄이면서 설명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정한 정도의 복잡성과 파생된 스토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충실한 떡밥이 조금만 더 두툼했다면 좋았으리란 아쉬움이 또한 남아 있다.


그래도 이 작품은 "제임스 건"의 "슈퍼맨"보다는 훨씬 가성비가 높은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덜 시대착오적인 작품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날 때 고를 극화가 마땅히 없는 이라면 한번 볼만하다.


그러나 굳이 찾아서 꼭 봐야 하는 작품이라는 말은 양심이 꺼려서 할 수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좀 웃고 싶다면,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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