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칼럼부터 다음 블로그, 브런치 스토리로 이어지는 글쓰기 역사
2015년, 40대의 나는 1999년 20대말 "다음 칼럼"부터 써왔던 글 중 일부를 브런치 심사용으로 제출했다. 그리고나서, 항해를 시작하는 배를 비유로 한 에너지 넘치는 첫 글, "이야기 바다 위로 배를 띄우다(https://brunch.co.kr/@rpyatoo/1)"를 부끄러움을 담아 올리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2025년, 50대가 된 지금. 그 에너지는 고갈되지 않고 자가증식하며 계속 글을 쓰게 한다. 중간에 "브런치 무비 패스 5기 작가"로 선정되고, 6개월간 시사회에 참석하고, 올레TV "본자들" 리뷰 패널로 초청받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여러 작가와 모임도 있었다.
이 10년간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글을 통한 성공'이라는 야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생각이 새로운 것을 흡수할 수 있도록 말랑말랑해졌고, 표현력은 일과 일상 모두에서 긍정적으로 향상되었다. 글의 편수가 쌓일수록 가장 큰 보상을 받는 사람이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매번 더 자세히 알게 된다.
글의 효용은 오롯이 내게 주어졌다.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직장에서 하는 일을 등한시하거나 가정에서 해야할 육아나 가사를 돕는 시간을 잃어 버리지 않았다. 일을 더 잘하게 만들어줬고, 가정에서 해야할 일도 글을 씀으로써 더 향상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 물론, 그정도 수준의 글만 쓰다보니 경연대회같은 곳에서 입상할 수준의 글이나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글이 써지진 않았다.
내 글은 "아카데미즘"에서 멀리 떨어진 생활 속의 글이다. 급변하는 한국 사회 속 직장인으로서 영화와 드라마, 서적, 일상을 빗대어 순수한 글쓰기로 세상을 향해 써왔다. 단순한 리뷰만이 아니라, 때로는 소설까지 띄엄띄엄 써왔다. 갑자기 차오르는 에너지로 일단 쓰기 시작하면 분량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글이 눈앞에 쏟아진다. 이런 이야기가 내 속에 있음에 늘 감사한다.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더 오래 어깨에 힘을 빼고 글을 써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정 중독"에 빠져 있지 않았기에 갑자기 한계를 느끼고 떠날 일도 없었다.
2035년, 60대의 나를 상상해본다. 이 플랫폼이 어떤 이름으로 바뀌고 어떤 시스템이 될진 잘 모르겠다. 아마 유료화될 수도 있고, 인간이 쓴 글과 AI가 쓴 글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시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AI를 필기도구처럼 쓰며, 글을 잘 쓴다는 것은 AI와의 싱크로율을 높이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도 중요한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일 것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포함해서.
미래의 60대 나에게 미리 말하고 싶다. "아직 네 글을 통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기대를 접지 말고, 절대로 죽기 전 기력이 쇠하기 전엔 이 취미를 잃지 마라. 그게 네 뇌를 젊고 생기 넘치게 만드는 방법이니까."
브런치는 이름처럼 아침이나 점심 사이의 가벼운 식사다. 내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다른 단계로 이동하는 독자가 잠시간의 허기를 피하기 위해 적절히 읽고 넘어갈 수 있는 글이길.
50대가 되어버린 지금, 엄청난 희망을 품거나 지나친 절망에 빠지기엔 이미 들어버린 나이다. 하지만 100세까지 산다면 이제야 인생의 반에 이른 시기다. 앞으로의 50여 년을 버텨가기 위해서도 브런치와 나의 관계는 어떤 변화가 와도 여러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바다와 배처럼.
이제 10년이 지났을 뿐이고, 이 플랫폼이 나아가야 할 시간은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