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전말에 대한 용기 있는 증언을 보다
(표지출처: SBS)
주변의 누군가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던 사건의 전말에 관련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일종의 경이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곤 한다.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쓰는 과정 같은 역사적인 한 현장에 있었다는 뿌듯한 감동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 그와는 반대로 비극적인 일에 연결되어 연민과 안타까움을 낳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의 역사로써 지난주 토요일에 경험한 "유니세프 후원자 합창단"의 일원으로서 공연을 했다는 가슴 뿌듯한 행사가 끝난 뒤의 회식 자리에서 옆 자리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여성 단원 한분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 한 때 "엽기토끼 연쇄 살인 사건"으로 오인되었던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제보 후에 나와서 증언한 회가 바로 그날(12월 20일 토요일) 밤에 방영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바로 연민과 안타까움이 몰려들진 않았었다. 그냥 다소 어색해진 공기를 가라앉혀 보려고 꺼냈던 이야기는 국민학교 5학년때 5톤 트럭에 치여서 5미터를 날고도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 죽지 않고 사는 하루하루가 참으로 중요해졌다고 했다.
마침 앞에 있던 남자 단원 한분도 맞장구치듯이 의경 생활을 할 때 눈앞까지 치고 들어온 차를 한 손으로 막으면서 몇 미터가량 한 손을 든 상태 그대로 밀리고도 멀쩡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 남자들은 방금 자신이 들은 "연쇄살인 사건"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의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이 인생에 다시 겪긴 힘들 일을 맞이한 낯섦을 어떻게든지 일상의 범위로 끌어들이려 애썼다.
그렇게 넘긴 그 순간은 적어도 내속에선 자라고 있었고, 그 끔찍한 트라우마는 그 누구의 트라우마와도 쉽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을 텐데, 그것을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극복하고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서 합창단에도 성실하게 나올 정도로 건실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일종의 기적적인 또 하나의 인간 승리 드라마였으리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내겐 "공익"이라는 개념에서 아주 멀리 있는 것은 아니며 별관심이 없이 그냥 흘러갈 내용은 아니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란 작은 네트워크 속의 배전반을 통해서도 그분이 용기를 내서 한 증언의 의미는 명확히 설명이 되고 전파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핏 한번 보기엔 인자한 인상의 건물 관리인으로 보였던 60대의 장OO라는 남자가 이미 2015년도에 암으로 사망했지만, DNA 분석 능력이 발달한 2016년, 2020년에 이르러서야 그가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서 첫 번째 여성 희생자의 속옷에서 검출된 DNA와 두 번째 여성 희생자를 묶는 노끈에서 검출된 DNA가 일치하는 이임이 밝혀지게 된다. 천 몇백여 명의 DNA를 대조하여 찾은 결론이었다.
2006년도에 장OO가 강간 치상 미수로 현행범으로서 체포된 적이 있었을 때, 간신히 온 힘을 다해서 1층으로 도망 나와 현관문에서 도움을 요청하며 기절하여 살아남은 여성 피해자가, 그가 관리하던 빌딩의 지하 2층에서 자신이 당했던 일과 신정동 연쇄 살인 사건에 관련된 제보자로서 용기를 내고 증언한 내용이 DNA라는 증거보다 더 확실하게 어떤 방법으로 그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려준다.
이 증언은 만약에라도 2006년에 좀 더 범죄 프로파일링 기술이 발달했거나 유사한 지역 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합해서 분석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면 2005년도에 벌어진 2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같은 형태로 단단하게 시체를 묶어서 도심의 동네 변두리에 유기한 사건 과의 연결성을 파악함으로써, 장OO를 연쇄살인범으로 특정하고 잡을 수도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큰 죄를 저질렀던 자가 자신의 강간 치상 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혐의를 인정함으로써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살면서,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교도소에서도 노끈을 잘 묶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고, 다른 자료에 따르자면 자신이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는 자랑을 수차례 했었다는 증언도 있었지만, 자신의 큰 범죄를 생전 들키지 않았다.
강간 치상 미수의 피해자인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지하실로 끌려들어 갔다면 죽을 수도 있었을 상황을 벗어났는데, 그 가해자에게는 단지 3년 6개월의 징역형만이 주어짐으로써, 출소 후에 다시 같은 범죄를 더 저지를 것이 분명하다는 두려움을 느꼈다는 증언이 또한 방송에서 이어진다.
만약, 그때 경찰이 좀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지하실을 조사했다면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 콜라텍이 있다가 사라진 뒤에 남은 320 sqm의 공간과 남녀 화장실 공간이 있어, 성폭력을 저지르고 살인까지 한 뒤에 말끔하게 증거를 물로 씻어내서 유유히 밤 시간에 CCTV도 없었던 길가의 전봇대 아래와 주차장의 자동차와 벽 사이에 옷까지 입힌 채로 쌀포대와 돗자리 등으로 싼 시체를 유기할 수 있었을 그의 아지트에 있는 여러 가지 증거였다. 노끈과 희생자의 옷에 묻은 곰팡이 등이 그곳에 있었다.
미제사건 담당부서가 뒤늦게라도 생겨서 사회적 정의감에 입각한 경찰의 추적이 이뤄지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뤄진 동시에, 미디어의 사건 추적, 제보자의 용기가 없었다면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을뻔한 사건이었다.
이미 2015년에 폐암으로 죽은 그가 더 가증스러웠던 것은 피해자가 증언한, 장OO의 공격 방식이었다. 휴일 의원 찾기가 어려운 여성 피해자가 이미 문이 닫혀 있는 건물의 병원 층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1층의 문을 잠근 다음에 아래층에서 올라타, 아주 인자한 미소로 1층은 이미 문이 닫혀 있으니 지하 2층을 통해서 입구로 안내하겠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한 뒤에 피해자가 지하 2층에서 당황한 채로 뒤돌아 설 때 칼로 위협하며 지하실의 빈 공간으로 끌고 가려고 한 것이다.
피해자는 필사적으로 쇠난간에 매달리며 끼고 있었던 금반지가 끊어질 정도로 사력을 다해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저항을 하다가 결국 칼로 배꼽 부위를 찔리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을 하다 틈을 발견해서 단번에 뛰어 올라가 닫혀 있는 1층 유리문 현관을 두드리며 외부에 살려달라고 소릴 질렀고, 이에 모여든 군중을 보게 된 뒤에 기절했다는 증언을 했다.
이 뒤에 다시 연결된 증언은 군중이 모여들었을 때에는 그자가 옷을 갈아입고 금색테의 안경을 쓴 말끔한 상태로 1층에 나타나 문을 열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순간 이 실패를 다시 강간 치상 미수범이 되는 방식으로 받아서 자신의 연쇄 살인 혐의의 수사선상에서 빠져나갈 기회로 삼을 생각을 했었으리란 추리가 보는 동안 스쳤다. 진실은 알 수 없겠으나.
여러 번의 절도죄로도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는 조사 내용이 나오고 첫 번째의 살인은 성적인 욕구의 해소를 위해서 저지른 것으로 분석되지만 두 번째의 살인은 성적 욕구와 살인 욕구가 결합된 상태에서 자신만만하게 저지른 범죄처럼 보인다는 내용이 나와서, 들키지 않은 첫 번째 살인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었으리란 추정을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증언에 나선 여성 피해자는 자신에게 가했던 그 행동을 기억해 낼 때, 그는 분명히 자신 전에도 그리고 강간 치상 미수에 다른 징역형 이후에도 또 다른 같은 범죄를 더 했을 것 같다는 추정을 하며, 그알 측에서도 "암수살인(실제로는 발생했지만, 신고/인지/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공식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 살인)"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여성피해자와 그알측, 희생자의 유가족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쇄살인자임이 명확히 밝혀진 이를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공소권 소멸"이 이뤄져서 공식적으로 저지른 범죄 사실을 적시하면서, 범죄의 경중으로 봤을 때 이름도 본명으로 밝혀야 할 사람임에도 그저 장OO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억울한 현실이 바뀌지 않기에 피해자의 유족은 증언을 하기를 거부했다. 공익을 위해서 범죄 내용에 대한 증언을 하기로 용기를 낸 여성 피해자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지만, 법의 변경이 없이는 이미 죽은 자에 대한 범죄 사실의 규명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 결국에는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나온 내용이다.
이 분함에 대해서 잠재적인 피해자일 수 있는 시청자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할까?
많은 부분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매우 성실한 분에게 이렇게 큰 고통이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인생에 있어서 내가 겪은 고통 같은 것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분이 이야기한 대로 삶에 현재 많은 불편을 끼치지는 않을 정도로 트라우마를 통해 겪는 불편함은 줄어들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아직도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아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증언 또한 들으면서 이 용기가 그 트라우마를 조금씩 더 극복하는 힘이 되길 기원했다.
공적이고도 사적으로 고통을 공익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풀어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얻어냈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좀 더 이 사회에서 확실하게 막아내고 격리해야 할 반사회적 범죄자를 문제가 벌어지기 전에 방지할 수 있는 방안과 벌어진 범죄를 단지 경찰력만이 아닌 공공의 관심을 통해서도 해결할 방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시대는 변화해 있다.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문제가 되는 정황을 찍어둘 수 있고, 녹음할 수 있으며,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과는 다른 건으로 분리되었지만 "엽기토끼 살인 미수 사건"처럼 피해자가 자신이 있었던 장소를 이제는 스마트폰 위치추적으로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도 생겼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린 서로에 대한 관심을 더 잃어가고 있는데, 무너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좀 더 살려낼 수 있다면, 그런 범죄에 대한 예방이 더 잘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연민할 줄 안다면, 타인도 연민할 수 있고, 나아가 인류도 연민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등에서 잘 팔리는 도서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심리학을 표방하고 있는 책에서는 이제 주변 사람의 착하다는 평가는 사회적 사형선고와 다를 바가 없다는 아주 현실적이고 냉철한 표현이 나와 있다. 일면, 동의를 하지만 착함이란 단어를 순진함과 섞었을 때의 부정적인 관점에서 나온 말이라 생각한다. 진정 선하고자 하면, 그 선함은 현명함과 통하며, 사악함보다 더 영리한 것이 된다고 믿는다.
이 사회가 현명하고 영리한 선을 쫓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위선적인 선행세를 하는 사이비가 물러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이런 범죄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기강이 잡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