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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edom plus

<Sometimes It Snows in April>

때로는 화창한 여름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그것도 거꾸로.

by Roman
Sometimes it snows in April.
(거꾸로 내린 눈에 대한...)


https://www.youtube.com/watch?v=dGo7EqG0X1g

이 음악과 잘 맞는 현실에서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전방초소에서 근무했는데

눈이 4-5월에도 내리더라...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이집트에 눈이 오는

이상 기온 현상보다는 약하다.


오랫동안 글쓰기의 즐거움을

잊고 살아왔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어린 꿈을 배반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렀어야만 했었고,


대부분의 어른이란 존재는 또는

이른바 성숙했다 라는 사람들은

꿈을 배신하고 말아버린 사람이라는

경솔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사실은, 정말로 꿈을 배신하고파서

배신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합리화하는 이유를 쌓고 살지만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도

생기는 법이다.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모두

꿈을 이룰 수는 없는 것처럼

꿈을 포기한 사람이라고 모두

불성실하고 변명이 많은 건 아니다.


잠시 인생의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시기가 오면

마음속에 홀연히 꿈의 부름이

들려오기도 한다.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부름이 들린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름의 촉매와도 같은 영상이

하나 눈앞에 벌어진 기억으로

남아 있고, 그것이 나만의

기억은 아닌 영상이지만, 또렷이

살아남아 자꾸 기운을 북돋아 준다.

오늘은 그 영상이야기를 이곳에

나누고 싶어 졌다.



기억이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문다.

눈과 관련된 기억이

강아지가 보채듯 와서

정강이를 긁어댄다.


귀여운 것... 하얀 강아지의 꼬리가

흔들리듯, 서서 좌우로 쫑긋 대는 것을

바라보다 보면 나 같은 인간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다

들어서 안아버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쯤,

휘문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가장 플래시 하고 상큼하던 시기의 추억은

죽을 때까지도 잊히지 않는 법이라던가?


덩굴이 감싸고 있는 고풍스러운

학교가 그 학교였었다.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페인트 자국 하나 없는

정말로 옛스러운 모습의

학교에서는

기억과는 다르게 벽면 색상이 일부 회색으로 바뀌어 있다. 기억의 왜곡 또는 보수공사.

봄에서 여름을 거쳐가는 사이에

엄청난 홀씨를 뿌려대는 나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었고


그 시기만 되면 복도고 교실이고

학교 운동장, 강당, 길뿐만이 아니라

구석구석 모든 곳의 바닥에는 그

홀씨가 가득히 흘러 다니고 있었다.


정말로 귀찮고 짜증 나기 그지없었다.

쳐다보기조차 싫었던

그 하얗고 먼지 먹어 우중충한

회색 빛 홀씨 덩어리들......


그런데, 어느 우중충한 여름날.

거리에는 스산한 바람만이 부는 오후

우리는 교실에서 스산한 바람소리를

감상하며 선생님의 지루한 가르침을

대부분은 억지로 참으며 듣고 있었다.


즐겁고 자극적인 일 따위

일어날 희망이 없는

교실 바깥과 지루한 안쪽이

여느 때와도 같이 무겁게

학생들을 눌러댈 즈음하여

기적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려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종의 난기류와 냉기류의 호환 시점에

맞물려서 학교의 안과 밖에 깔려있던

홀씨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치솟았던 것이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들이

모두 백조로 변해서 날아오르고

저주받은 이무기들이 용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것처럼


직선으로 곧게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눈송이... 아니 홀씨들은

당시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돌려서

눈 내리는 영상을 보는 것과도 같았었다.


역류하는 눈... 그것도 한여름을 앞둔

5-6월의 오후에 그런 영상이

창밖에서 열렬히 벌어졌던 것이다.


아이들의 무감동했던 눈이

경악으로 빛나고

칠판 가득한 글씨마저

빨려 올라가는 듯한 진기한 경관에

모두의 시선이 창 밖을 떠날 줄 몰랐다.


홀씨들은 지금까지 받았던 홀대를

벗어던질 수 있었고

아이들은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오직 그 영상에 사로잡혀

수근수근 감탄을 하기 시작하는데

수업은 지리멸렬하게도

한 점의 멈춤도 없이 진행되어갔다.


평상심이라... 선생님은 그걸 체득한

사람이 분명했다..., 아님 여러 번

보아서 아무런 감동이 없었던지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험은 잊히지 않는

기상현상과 자연이 만들어 낸

기막힌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자연은 인간의 상상력을 능가한다...'

라는 말을 여기에 써도 괜찮을까?


지루함을 잠시라도 완전히 잊게 하는

현상과 만났던 경험은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걸

느꼈다고나 할지...


이 기억 덕분에서 인지

인생에 어떤 고비가 와도

맥없이 주저앉아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주저 앉는 사람들이

가망없이 약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회적 현상이

바닥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떠오를 수 있는 힘을 준다면

그들은 떠오를 것이다.

이건 자연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나는 이렇게 연상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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