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Freedom plus

<일상생활의 모험>-멀리 나가보기

나아갈 영역을 넓고도 멀리 잡고 최대한 나아가 보기

by Roman

아이 때 바라보던 세상은

무척 커다란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였을 때 바라보던

매일 지나는 거리는 항상 넓고

온갖 상상과 신기한 것들이 모여

정글 만큼이나 복잡했고,

그림자와 벌레, 돌조각들과

하수구 구멍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비록 매일 사는 그곳 말고는

제대로 먼 곳으로 나갈

용기도 없고 그럴 수단도 없고

또한 행동의 범위가 좁았어도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약간은 불량스럽고

놀기 좋아하는 말썽꾼들과 어울려

먼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

강남의 논이 펼쳐진 언덕 너머로도

또는 복잡하고 매연에 시달릴 뿐인

거리들을 무작정 다녀보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올 것을 잠시나마 잊고서

정말로 멀리 나가보았던 적은

어린 시절 내내 몇 번 되지 않았다.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지금은

뵐 수 없는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밤 10시경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주머니에 단돈 30원을 갖고


선릉역의 집으로부터

경기도 파주군까지

순복음 교회를 경유하여

무료 버스에 올라타서

오산리 금식기도원까지

가출을 했던 적이 있었다.


기도원 입장료가 500원이었기에

입구에서 입장을 제지당하곤

무작정 서울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중간에 친절한 중국집 아저씨가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를 붙잡아

중국집에 데려가서 집에 전화를

걸어준 탓에 무사히 돌아왔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사실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무모한 가출이었다.


자신이 닿을 곳을 정해놓고
헤엄치는 수영객의 여행기와는 달리

언젠가는 돌아올 곳을 생각지 않고

멀리 가고자 했던 것이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모두 놀랐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이렇게까지

모험은 하지 않아야겠다

다짐을 하고 조용히 지냈다.


그 이후부터는 닿을 곳이

명확하고 돌아올 일정이

정확할 때만 떠나는 사람이 되어

나름 안전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역으로

나를 좁은 곳으로 몰아넣는

주술 같은 것이었음을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면 세상에 대한 이해가,

주위의 모든 이들에 대한 생각들이

점점 얄팍한 것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간접적인 경험이 가진 한계를 말한다.

멀리 가기보다는 바로 지금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재해석과 더불어

예리한 눈을 만들어 상황을 제대로

읽고 보는 능력을 갖기만 바라는 게

사실은 이 넷 문명이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좁은 인식의 함정이다.


방황 속에서 뭔가 의미를 찾는

시기가 점점 더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사람들은 모바일과

더불어 모험적인 상황을 최대한

회피하는데 능해지고 있다.


보다 안전하고 경제적일 수 있겠지만,

반면 미지의 세계를 제대로 경험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개요만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여행의 의미는 이제 시스템을

얼마나 잘 조합해서 목적지에

저렴하고도 안전하게 왕복하는가

이것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고,

상품화된 여행과 모험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그를 벗어난

여행마저 정보가 치밀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온전한 "미지"는

이제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구태의연한 생활과 형식에만

얽매여 자신이 정해놓은 구획

안에서의 안온한 생활에 갇혀서

무엇 하나 변화시키려는 생각 없이

살아서는 안 되는 시기기도 하다.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외성이 가득한 세계의 구조를

만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끊임없는 창조와 발전에 대한

무한한 지향 때문이다.


결국은 수익이나 경제성이

이 변화의 배면의 설명 근거가

되고는 있지만, 그에 앞 서

우리가 가진 본성이 무엇인지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 안정은 더 이상

가진 것 안에 안주함으로써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찾아나가서 붙잡으려 애써야

다가오는 것이고, 다가와도

더 이상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생활이 쳇바퀴였다고

불평하고 있다면 일상의 모험을

스스로 만들어 보기를 제안한다.


지금껏 눈에 익게만 보아왔던

영상들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장난을 소심하게 해본다거나 하면서

작게 시작해서 크게 나아갈 수가 있다.


친구들이나 주변의 환경과 사물들,

의심 없이 바라보던 것들을

하나하나 의심해보면서

세상을 낯설게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더 먼 곳을 향해

가볼 수 있을만큼 담대해지는 것이다.


작지만 모험을 해본 삶의 경험 덕분에

이전의 경력과 네트워크에 한정된 길을

벗어나 다른 길에 서게 되었어도

당황 없이 전진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오히려 평지풍파 속에서도

버틸 힘이 만들어졌다.


물론 정말로 미지의 세계를

다녀온 탐험가들에게 비할바는 아니다.


바야흐로 우리 세대의 아이들 중에

대부분은 수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

현재 있는 직업들과는 다른 직업들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 한다.


변화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그 흐름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필살기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준비 없는 상황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들을

수없이 만날 사람들이

아마도 대부분이 되지 않을까?


이 변화를 맞이하는 작업이

이미 일상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일상의 한순간에서조차

모험을 하고 있는 시대에 와 있다.


집 앞의 공터로부터 벗어나

더멀리, 깊숙하게 인식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지적"인 모험을

멈추지 않는 자들만이 이 시대를

써핑을 하듯이 잘 타고 넘을 것 같다.

이 시대의 파도가 다만 높아지기만 하고

잠잠해질 줄 모르는 형상이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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