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AI도 계속 배워나가는 존재다
(출처: IMDB)
상대적으로 저예산인 영화다. 형식의 계보를 굳이 따지자면, 여러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며 벌어지는 활극보다는 대부분의 사건이 스크린 안에서 진행되며 점차 진실에 접근해 가는 유형에 가깝다.
한마디로 말하면, 몸으로 부딪히는 액션보다 화면과 정보의 조합으로 긴장을 만들어내는 영화다.
인터넷에 남겨진 광범위한 SNS 기록, 노출된 동영상, 개인의 모바일 기기 속 정보, 각 기관의 데이터, 거리의 CCTV까지.
인간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축적해 온 거의 모든 기기를 하나의 화면 위에 겹쳐 띄워놓고 범죄를 추적하는 방식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이 작품이 정말로 내세웠어야 할 매력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개봉 전 광고는 분명 시선을 잡아끄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대중적 관심을 충분히 끌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작비가 6천만 달러 수준인데 글로벌 흥행은 7천만 달러를 조금 넘긴 정도였으니, 가성비 높은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광고가 이 영화를 너무 전형적인 방식으로 팔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채 AI 판사 앞에서 90분 안에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즉결 사형. 이 설정만 놓고 보면 얼마나 자극적인가. 하지만 문제는 이런 종류의 플롯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데 있다.
누명을 쓴 주인공이 짧은 시간 안에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는 구조는 이미 인류가 오래도록 반복해 온 고전적 원형이다.
영화만 조금 떠올려봐도 금세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도망자",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 "더 넥스트 쓰리 데이즈", "곤 걸". 한국 작품만 봐도 "재심", "의뢰인", "자백", "피고인" 같은 사례가 있다. 극화 전체로 넓히면 소설,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까지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정말로 차별화할 수 있었던 지점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답은 하나다. AI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의 홍보는 그 핵심을 제대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긴박감을 강조하려는 인물의 흥분된 표정, 폭발 장면, 위기 상황의 단편적인 편집들만 잔뜩 늘어놓은 광고는 너무 익숙했다.
이미 수없이 본 방식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이 영화를 홍보한 쪽이 이 작품만의 새 아이디어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방증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다른 데 있다. 몸이 결박된 주인공이 법정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막강한 정보 접근 권한을 가진 AI 판사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자료를 하나씩 확인하고, 조합하고, 의심하고, 반박하면서 자기 무죄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이다.
저예산 영화 특유의 제한된 공간과 구조를 약점이 아니라 장치로 바꿔놓은 부분이 여기다. 그런데 광고는 이 점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만약 이 영화가 “스크린 앞에 갇힌 한 인간이 AI에게 명령하듯 정보를 뒤지고, 진실을 조립해 가며 자기 목숨을 구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제대로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지금 시대의 관객은 단순한 긴박감보다도,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감각, 말하자면 AI 시대의 자기 효능감 같은 것을 더 크게 느끼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점을 자극할 수 있었는데, 정작 홍보는 너무 낡은 스릴러 문법에 기대 버렸다.
영화 안의 아이러니도 꽤 선명하다. 범죄로 사실상 아비규환이 된 미국에서 치안을 회복하겠다며 AI 법정을 도입하고, 살인 혐의자는 90분 안에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법정 자리에서 가스가 분사되어 즉결 처형된다는 무시무시한 제도를 만든 경찰이, 정작 그 시스템 앞에 서게 된다.
이 역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자극할 수 있었을 텐데, 광고는 이 역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AI 판사 매독스를 연기한 레베카 페르구손의 존재감이다. 연기 자체는 훌륭하다. 문제는 너무 잘 알려진 얼굴이라는 데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AI 판사는 단순한 집행자가 아니라, 주인공과 협업하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 일종의 파트너 같은 존재로 변해간다.
그런데 관객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배우를 먼저 인식한다. 그러니 낯설고도 차가운 존재가 점차 다른 결로 다가오는 감정의 변화가 생각만큼 크게 살아나지 않는다.
크리스 프랫을 결박된 경찰 크리스 레이븐으로, 애나벨 월리스를 살해당한 아내 니콜 레이븐으로 배치한 것 역시 흥행 티켓을 의식한 캐스팅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형식은 오히려 스타 이미지가 강할수록 손해를 볼 수 있는 종류다.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의 전작 "서치"가 성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주연이 스타성으로 앞서는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에도 있었다. 존 조라는 익숙하지만 과하게 소비되지 않은 얼굴은, 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절박함과 훨씬 더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관객도 그 감정에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 역시 비슷했어야 했다. 특히 AI 판사는 더더욱 낯선 얼굴이어야 했다. 레베카 페르구손의 외모는 날카롭고 감정을 걷어낸 인물로는 적격이지만, 너무 익숙하다. 포스터에는 잘 어울릴지 몰라도 AI라는 존재 자체에서 오는 이질감과 불길함, 그리고 끝내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의 감동을 살리기에는 손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봤다. 마케팅의 호도 때문에 뻔한 영화라고 생각해 오래도록 미뤄두었던 작품이었는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에 붙들려 있었다.
모종의 쾌감이 있다. 인물이 어디론가 뛰어다니지 않아도, 화면 안의 정보가 조합되고 갱신되고 뒤집히는 과정만으로 긴장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생각보다 괜찮다.
영화의 도입부는 다소 장황하다. 치안이 붕괴한 미국에서 잡혀온 범죄자들이 AI 법정에서 연달아 즉결 사형을 당하며 범죄율이 급감했고, 그래서 이 체제가 정당성을 얻었다는 설명이 빠르게 쏟아진다.
이 설정만 놓고 보면 이 영화의 시선은 꽤 보수적이다. 살인 혐의자는 사실상 유죄 추정 상태에서 출발한다. 90분 안에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죽는다. 미국 공화당식 질서 회복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생활은 거의 남지 않는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면 AI 판사를 통해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정보에 접근해야 하고, 전화나 통신을 통해 관련 인물들의 협조까지 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프라이버시는 사실상 지워진다. 범죄와 치안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권리가 어디까지 후퇴할 수 있는가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체제 자체에 문제가 없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이미 자신을 살인자로 전제해 두고 시간이 흘러가도록 방치할 뿐이라며 AI 판사를 향해 절규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단순히 기술 예찬으로 가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인간 제도의 편향과 결합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주인공에게 온전히 공감하기는 조금 어렵다. 그는 경찰이고, 그래서 보안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를 비교적 본능적으로 안다.
일반인이었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떠올리지 못했을 해결 방식들이 계속 나온다. 그래서 이 영화의 쾌감은 보편적 공감보다는, 숙련된 인물이 AI라는 도구를 활용해 생존해 내는 퍼즐 풀이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영화는 90분이라는 제한시간 덕분에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정신없이 깨어난 인물이 두통과 갈증 속에서도 상황을 수습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결국 자기 무죄까지 증명해 내는 흐름은 꽤 단단하다. 화면 안에 갇혀 있다는 제약이 오히려 압박으로 작동한다.
후반부의 반전도 나쁘지 않다. 살인범으로 체포돼 즉결 처형된 자신의 동생이 사실은 무고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복수하기 위해 계획을 실행한 빌런의 존재가 드러나고, 동시에 경찰 내부의 고의적 증거 인멸이 AI 판사의 오판을 낳았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중요한 사실을 짚는다. AI가 아무리 정교해도, 그 앞단의 인간이 부패하거나 태만하면 시스템 전체는 손쉽게 잘못된 결론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의외로 단순하다. 완전무결한 AI 재판 시스템 같은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오류 가능성을 항상 전제해야 하고, 그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하며, 인간 수사력과 직감처럼 데이터베이스 바깥으로 나가는 영역도 남아 있어야 한다.
관련 인력도, AI 자체도 계속 학습해야 한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의 보수적 질서 논리에서 출발했다가, 끝내는 더 신중하고 진보적인 문제의식 쪽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두고,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다고 말하고 싶다. 대단히 새로운 플롯은 아니다. 배우 캐스팅과 마케팅도 아쉬움이 적지 않다.
하지만 AI라는 존재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핵심 장치로 밀어 넣고, 그 장치를 통해 사법과 감시, 오류와 학습의 문제까지 건드렸다는 점에서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다.
나중에 OTT에 올라오면, 딱히 고를 작품이 없는 날 틀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뻔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다가 의외의 재미를 만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