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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an 02. 2016

<캐논 인버스>-영화를 연주하다

목숨을 건 사랑에 따라온 비극을 아름답게 연주하다

감동적인 영화이고,
그 자체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기억은... 우리를 사로잡는 기억은,

평생을 지속하기도 하고,

세대를 지나 변이 된 형태로

우리의 유전자 어딘가에 남기도 한다.


사랑의 아픔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억이다.

기억은 어느 곳에 가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기억도

서랍장 깊숙이에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언젠가는 화목하게 나 자신과

화해하기만을 바라게 되거나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도 된 듯이

그대로 지니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 영화는 기억과 화해하는 동시에

살아남게 만드는 힘을 가진 추억이란

무엇인지를 아름답게 연주하듯 그려낸

감동적인 영화이고, 그 자체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인간 집단을 한 덩어리로
보고 싶어 하는
전체주의의 발광"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옥션... 추억의 골동품을 파는 자리...

이곳에서 관객들은 "기억"을 사려고 하는

필사적인 두 남녀의 경매 행위를 보게 된다.


늙고 부유한 흰머리의 남자가

노란 머리와 큰 눈의 여자가 부르는

높은 호가를 뛰어넘는 금액을 부르며,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

담겨 있는 "캐논 리버스...

두 개의 기억이 가로지르는 음악..."

을 연주한 그 악기, 바이올린을

끝내는 손에 넣고 만다.


여자는 실망한 듯 비틀거리지만,

바로 그 순간이 모든 기억이

캐논 인버스 되는 그 순간의 시작이다.

영화는 이분화된 작중 인물들의 경계가

하나로 뭉치는 순간을 수없이 표현한다.

어느새 둘로 나뉘었나 하는 상황이

하나로 뭉치고, 하나인 줄 알았던 상황이

둘로 갈라지며, 리듬과 화음, 그리고

변주가 맞물리는 바로 그,

"캐논 인버스" 자체를 형상화해내고 있다.

일순간에 이 복잡다단한 스토리들이 한순간의 섬광으로 던져지는 경험을 선사한 영화였다


1) 작중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예노이며,

예노의 연애 대상은 당대 유명 피아니스트,

레비 부인, 그녀는 극 중 부자의 아내로

나온다.

둘은 결국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의 정염을 불태우고 협연을 한 뒤에,

유태인 수용소에서 개별 수감되어 생을

마감한다.


이 와중에 태어난 딸이 바로 노란 머리의 여자이다.


2) 경매에서 나타났던 노란 머리의 여자는

예노의 딸이며, 하얀 머리의 남자는

"캐논 인버스"의 작곡자인 남작,

그리고 예노의 친아버지이다.


그들이 경매에서 경쟁했던 바이올린은

예노에게 친아버지가 남겨준 것이며,

노란 머리 여자에게는

아버지의 유품이자 추억의 선물이다.


3) 남작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하나는 "데이비드"고, 또 하나는

정부에게 낳게 한 "예노"이다.


이 둘은 레비 부인이 예노를

음악학교에 넣었을 때 만나

형제인 줄도 모르고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둘은 레비 부인과의 협연에

솔로로 나가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지만,

예노의 바이올린이

아버지가 선사한 것이고,

자신의 배다른 형이 예노임을 안 후

아버지와의 감정적 결별을 선언하고

예노에게 솔로의 영광을 미뤄준다.


4) 노란 머리 여자는 우연히 한 술집에서

자신을 향해 바이올린을 켜면서

캐논 인버스를 연주하는 중년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노란 머리 여자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주고,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사라지면서 자신이 "예노"라고 말한다.


5) 남작은 노란 머리 여자가

자신의 손녀임을 깨닫게 되고,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인

"예노"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할 때,

실제, "예노"는 이미 수용소에서 죽었고,

그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유일한 아이가 그녀임을 알려준다.

6) 그녀 앞에서 "캐논 인버스"를

연주한 남자는 다름 아닌 "데이비드",

그는 협연에서 솔로를 자신이 했다면,

아무런 비극도 생기지 않았으리라

스스로를 자책하며,


또한 그 책임의 일부를

아버지, 남작에게 돌리면서

자신을 "예노"라고 믿으며,

은둔 생활을 하는 중이다.


그렇게 믿어야만 그가 살아있을

이유가 유지되기 때문이리라.

7) 노란 머리 여자는 "데이비드"가

자신을 "예노"라고 믿고 있다면

그가 자신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면서, 할아버지인 남작의 소심한

마음을 움직여, 데이비드와의 오랜 결별을

해소하러 가자고 한다.

8) 모든 기억과 갈등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다시금 과거의 소리와 영상이 몰려드는

끝장면과 함께, 캐논 인버스의 변주를

끝내면서, 같으나 다른 울림을 과거와

미래 양쪽으로 선사하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


9) 유태인과 나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이 두 가지의 대상이 반목하고,

전체주의의 비인간적 만행들인

나치의 유태인 박멸, 소련의 체코 침공이

만들어낸 비극에 대해서 조명한다.

이 영화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 집단을 한 덩어리로

보고 싶어 하는 전체주의의 발광"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9)-1 "데이비드"는 술집 길가에서

바이올린을 노란 머리에게 돌려주면서

몰려드는 러시아 탱크를 향해

"그들이 또 오고 있기 때문이지..."라는

대사를 남기며 사라진다.


그전에 남긴 대사는 노란 머리에게

"기억하지  못하는구나..."였다.


결국 젊은 세대는 전체주의의 악몽이

재현되는 그 순간에도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것인지 뭐가 이렇게 인간의 아픔을

더하게 만드는지를 알지 못하며, 또한 기억

해내지 못한다. 영화는 이것을 말해주고

싶어 했다.


'당신을 덩어리 진 집단의 일부로만

보려는 움직임을 조심하시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10) 음악 학교에 들어서서

"예노"와 "데이비드"가 반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지나친 원칙주의"이다.


자유로운 영혼과 재능을 가진 그들이

원칙에 얽매여 그들의 자유로운 열정을

억압하는 교수들과 반목하는 씬들은

젊음과 젊음을 썩어버리게 하는 것들과의

싸움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음악을 좋아할 수 있다면,
이 영화 또한 좋아할 수 있으며,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음악, "캐논 인버스"에
익숙해질 것이다......


이 이분화되었다 다시 결합되고

끊임없이 변주되는 대상과

인물, 상황, 갈등, 시대, 기억, 역할,

사랑, 우정, 미움, 용서는

바이올린의 현과 칼의 비벼짐을

세세히 떠올리게 해 줄만큼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고,

리듬감을 띄며 치열하게 상영된다.

레비 부인의 테마 음악은,

예노의 테마인 캐논 리버스를

물속으로 잠겨버리는 듯이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그 반영이 길다.


수용소에서 격리 수용된 철장 너머로,

그 아름답고 관능적인 모습이

얻어맞고 헐어버린 얼굴로 나타났어도.


그녀의 "물의 반영"은

둘의 사랑의 순간에서

가장 피크를 이루면서,

그녀의 부드러움을,

사랑을, 아름다움을,

군중들이라는 그릇 앞에서,

부자 남편이라는 존재 앞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그 모습을 확실히 달리하는

"물"의 특성과도 같은 모습을

드러내었기에, 영상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도 물방울처럼,

이 진지한 영화의 분위기를

청량감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입술 두텁고 약간은 빈약한 그녀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물에 대해서 갖고 있는

그러한 관념 때문은 혹 아닐까?


캐논 인버스는

영화 속 음악이기도 하지만,

내용과 영상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아주 멋진 영화 제작의 또 다른 형식이다.


음악을 좋아할 수 있다면,

이 영화 또한 좋아할 수 있으며,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음악, "캐논 인버스"에

익숙해질 것이다......


위의 줄거리와 이야기는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스포일러를 떠나서

이 영화는 보는 순간

공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여러 느낌을 폭포수 마냥

체험할 수도 있다.


러브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영화로서의 결정적 긴장감,
그것을 정말로
연주하듯이 보여주고,
느끼게끔 하고 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과도해지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람은

현실의 곡예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갇혀버린 마음과 생각으로는

이 혼돈과 역학 관계,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도덕과 윤리,

선의의 세계에서의 끊임없는

쟁투와 유희를,

또한 끊임없는 변화를 감당해낼 수 없다.


다만, 과거로 가득히 둘러싸인 자신을

완전히 깨어지지 않게 하는

방어적 전략만이 늘어나게 될 뿐이다.

캐논 인버스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끼여

돌고도는 끊임없는 변화와 갈등,

감정과 이성,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는

조각조각 난 혼돈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을

정결하게,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영화 에너지의 발현과 무의식을 자극하는

원형적 내용의 조화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물 간에 펼쳐지는

동전의 앞 뒷면과도 같은

양쪽으로 치우친 대극적인 상황들을,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매칭 하여 풀어내는

복잡다단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극 내부에서 영화를 바라보았을 때의

느낌과 극 바깥으로 나와서 바라볼 때의

느낌이 각각 다른 긴장감을 선사하는 것

같다.


레비 부인, "소피"는 현재와 과거의

이분법적 반란과 혼돈 안에

모든 것을 쓸어 담아 하나로 융화시키는

인물처럼 보인다.


주인공 예노가 몰입하는 대상이 되어,

그의 감정과 재능 속으로

같이 혼융하듯 일체화된다.


바이올린에 대한 마치 맹목적이라도

된 듯한, 예노의 몰입은, 소피에 대한

몰입과 더불어, 영화상 과거와 현재의

구심점, 최종적으로 뭉쳐 모이는 자리가  어디 일지를 미리 보여준다.

물의 반영 (드뷔시의 작품이 맞던가?)

레비 부인의 테마는 그저 적절히

인물 배역이 가지고 있는 특성만을

내보이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음악에

반응하듯이, 그 인물에게 반응하도록

이끄는 역할에서 멈추지 않았다.

용기 있는 사랑, 남편을 통해

유태인 박해의 위기를 회피하여

성공적인 피아니스트의 길을 갈 수

있었음에도, 죽음과 다름없는 사랑을

택하여, 예노와의 협연을 하면서 동시에

결정적인 사랑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버리는 모습이


그 시점에서 "현실감 있는 것으로

느껴진 이유"는 예노의 끈질기고 열정적인

사랑의 몸짓과 바이올린에 대한 광적인

집착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끌어안는

물의 이미지도 있었다.

이 소피의 테마곡을 통해서

영화의 스크린 팔방으로 뻗쳐 흐르는

갈가리 부서진 상황을 통합해내는

구도를 창출한 것 같다.


상징적으로는 일종의 성녀나

순교자처럼, 예술혼과 사랑을

종교처럼 받들어 모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에로틱하다.


러브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영화로서의

결정적 긴장감, 그것을 정말로

연주하듯이 보여주고 느끼게끔 하고 있다.

예노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하여,

액자 형식으로

예노의 딸의 내레이션이

영화의 테두리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상, 그 테두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단지,

데이비드와 그의 부정한 아버지의 화해,

그리고 남아 있는 손녀와

예노의 그림자와의 재회일 뿐이다.


소피의 테마는 캐논 인버스 안에서 하나로,

영화적 중심 시각, 두 멜로디의 교차점이

왜 이곳에서 이루어지게 되는가를

설명해주는 곡처럼 들렸다.


모든 화해와, 갈등의 해소가 심지어는

이 음악을 듣는 즉시

바로 이루어져 버린 것 같다.

남아 있는 것들의 정리가

회고적 내레이션에서

화목하게 어깨를 서로 감고

있는 것일 따름이었다.


찬찬히 뜯어볼수록
지루함이 사라져 가는 영화
그것이 바로 Canone Inverso이다.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의 화해보다,

바로 이 음악을 둘러싼 중심점에서

데이비드와 예노, 소피의

화해와 우정, 우애, 열정적 사랑이

빛처럼 빛나면서 파고들어 왔다.


그 내용들이 과거로 설명되고 있지만,

실은 관객들이 오늘이라도  경험해보고

싶은 언제라도 진실인듯한 사랑의 또 한

가지 환상이다.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랑"


현실과 과거, 미래에 두루뭉수리 퍼뜨려

놓은 사랑의 모습에 대한 혼탁한 생각들이

한 점으로 집중되어, 바스러지듯이

널려있는 사랑에 대한 부스러기 같은

생각들을 잡생각 없이 하나로 모이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각종의 영화적 장치들보다,

다름 아닌 그 두 사람의 사랑을

모든 영화 속의 기억 앞에 선행하도록

만들었다.


과거는 아름답다.

아름다움이  한 점처럼 빛나는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압도한다.


이미 경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젠 다시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미래에도 똑같은 감정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캐논 인버스는 이러한 필연에 대한

위로를 선사한다.  

이미 끝난 구절이 다시  되풀이되고,

끝나게 될 구절이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아름다웠던 과거의 사랑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그 저편에서

잠시 다시 걸어올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과거의 사랑을 잊어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너무 멀리 있는 사랑에 대해서

고개를 돌려야 했던 사람들을 위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위한 희망을 주는

실시간의 처방이자 위로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모순되었거나

비겁히 뒤돌려 버렸던 사랑이,

또는 꿈이, 다시 코 앞에서

살아나는 듯한 환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빛이 발사되어,

홀로그램을 만드는 것과도 같이,

다양한 방향에서 교차되는

광선과도 같은 스토리 텔링,

화면적 기법, 음악적 일체감,

배우들의 뛰어난 원형적인 연기가

기가 막히게 한 덩어리가 잘 된 영화,


찬찬히 뜯어볼수록

지루함이 사라져 가는 영화

그것이 바로 Canone Invers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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