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마블 팬이나 배트맨 3부작 팬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나란 청개구리의 "배트맨 대 슈퍼맨"에 대한 영화평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
그냥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하길 싫어하고 청개구리처럼 일단은 모두가 원하는 방향과는 약간은 다르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반골기질이란 것이 있다. 오랜 연구에 의해서 전체 인류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40% 정도는 순응형이라 이른바 보수적이라 여겨지는 사회질서를 신봉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구성하며, 나머지 30%가량은 대기만성형이라 한다. 이들은 다소 늦게 깨닫지만 결국에는 끝까지 자신의 길을 찾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 척 살아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는 있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내가 가진 기질은 약간은 "반골"에 가까운 것 같다. 사회 현상에 대해서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라가고 있다고 따라가지만은 않는다.
이러한 기질의 구분은 날 때부터 타고나서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혈액형별 성격분석보다는 좀 더 신뢰가 간다. 선거 때 보통 이런 비중에 근거하는 방향으로 투표가 분산되곤 해왔으며, 두개 이상의 집단의 취향을 잘 끌어당기는 이슈를 선점하는 정치 세력은 엄청난 표 차이로 이기곤 하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대기만성형이 순응형으로 간다고 보면, 얼추 결과가 그 구분대로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란 청개구리의 "배트맨 대 슈퍼맨"에 대한 영화평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 어떤 집단이 주류인지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하지만 항상 청개구리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90% 이상의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그냥 욕을 얻어먹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라고 저항하고 싶어 진 나만의 이유가 있고 이건 사실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정말 기질적인 이유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 영화평을 쓰기 전에 조금 비겁하게도 수많은 이 영화에 대한 평들을 미리 몇 편 보면서 영화를 볼지 말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브런치와 다음 영화, 네이버, 구글 등을 검색해서 국내외 가리지 않고 나름 유명한 영화 평론가분들의 글을 읽어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표현은 국내 평론가 중 한분이 쓴 한 줄 평론의 "곱빼기 먹고 설사한 느낌"이었다. 흥행이 걱정될 정도로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 양 이 작품은 넷 상에서 상당히 폄하되어 있었다. 예전에 "디워"를 대놓고 모두가 까던 분위기가 살아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잭 스나이더는 망작도 만들어 왔고, 우려한 바대로 흥행 각본을 만드는 데 있어서 약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분석도 하곤 하지만 적어도 영상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자기 스타일대로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에 사족을 붙이자면 나로 하여금 "반골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가 마블 히어로물의 메가폰을 쥐었다면 어떻게든 D.C. 와는 다른 작품을 만들려고 애썼을 것이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가 위대하다고 호평받아왔다면 그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배트맨을 만들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모처럼의 연차휴가를 내고 가족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하루를 보내면서 마누님으로부터 영화를 한편 중간에 봐도 좋겠다는 허가를 얻어 극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친한 친구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나가는 느낌이었다.
가는 중간에 폰으로 예매를 마무리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찾으면서 정말 망작이라면 침묵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건질 것이 있다면 글을 쓰겠다고 이미 다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그 부정적인 평론을 남긴 사람들까지도 영화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려 왔고,
이 부분이 보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 음악과 원더우먼의 등장 장면이 주는 몰입감
한스 짐머가 만들어낸 웅장한 음악들과 버무려진 수많은 장면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계속 남아서 귀를 둥둥 울리고 있는 것은 원더우먼이 싸움터에 등장하면서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듯이 나오는 "Is She with You?"이다. 음악을 빼놓고 이 씬의 강렬함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극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한눈팔지 않고 영화의 미덕들을 쫓아보며 나가다 보면 결국 이 영화의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이 순간에 영화 속 히어로들과 같이 긴장하며 화면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약간의 라틴 리듬이 섞이면서, 아프리카의 토속 음악적인 요소가 버무려진 이 OST는 순간적인 몰입 속으로 관객들을 몰아가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분명히 효과적이다. 영화에 몰입해 있었다면 이런 의도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그 의도대로의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다.
이 씬과 이 음악에 이르기 전까지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교차되는 씬들은 모두 여기에 이르러 강력하게 호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뿌려진 장치들이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그 장치들이 결국 이 원더우먼이 포함된 전투씬을 강력하게 만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씬에서 나오는 강력한 원더우먼의 액션 말고는 볼게 없었다는 이야기들을 주로 많이 남겼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몰입해서 보아왔던 바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 부정적인 평론을 남긴 사람들까지도 영화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려 왔고 이 부분이 보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이건 부분적이나마 성공이고 감독의 의중이 제대로 반영된 것이 맞다.
그리고 클립톤 가스를 들이마셔 기진맥진한 슈퍼맨과 본디 인간으로서의 체력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배트맨보다 월등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파워와 공격력으로 둠스데이에 맞서 싸우며, 슈퍼맨 이상으로 강력하고도 초인적인 캐릭터를 "맨 인 스틸"의 세계에 드러낸 이 장면은 절로 감탄이 오감을 통해서 나오게끔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미 영화 개봉 전부터 감독이 뭘 잘못했을까를 발견하고 싶어 하면서 영화가 제공하는 의식의 감응력 바깥으로 벗어난 시선으로는, 이른바 "객관적"으로 영화를 살피고 있게 된다면, 이런 경험은 느껴지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저 선택인 것이다. 다만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 않겠다는 선택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선택을 하기 전에 수많은 평론가들을 포함한 관객들은 이미 수많은 마블 히어로물 시리즈와 배트맨 시리즈를 봐왔다. 히어로 영화에 대한 우열의 기준이 이미 잡혀 있는 가운데 그들은 분명히 이 영화에 진작에 몰입하기 어려운 경험을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너무나 부정적인 평론이 많았기에 정말로 무엇을 건져갈 수 있는 영화일까라는 궁금증이 절로 영화에 몰입하게끔 만든 기재가 되어, 그런 두 시리즈물에 의해서 형성된 선입견으로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나도 이른바 선택을 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한 선택이었고 또한 뿌듯한 마음으로 극장을 떠날 수 있게 해 준 선택이었다.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마블 히어로즈 무비와 놀란 감독의 배트맨 무비의 팬들 양쪽으로부터 저항을 낳는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의 팬의 관점
마블의 히어로물들은 어찌 보면 의도적으로 이러한 감응과 몰입의 요소들을 잘 피해나가며 유쾌하고도 쉴 새 없는 재치를 발휘하여 관객들이 언제 영화가 끝났는지도 모르는 지점으로 순식간에 데려가는 기술들을 발휘한다.
그곳에서는 분절되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잘 기획되어서 나타나는 전투씬들이 나름 이야기와 밀접하게 잘 결합되어 계속적으로 잘 이어지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 씬들의 배합이나 연결을 쉽게 비판할 수 없게끔 잘 구성하면서 스피디하게 넘어가는 프로세스가 반복된다.
이러한 마블 히어로물들의 특징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과 융합이 되었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보이며, 이 주인공의 몰입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듯한 한량적이고 자아도취적인 캐릭터는 그 매력을 "어벤저스 시리즈"에서도 극대화한다. 그리고 그것이 로다주 씨가 가장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근거가 된다.
여기에 익숙하고 이미 감탄해버린 관객들은 사실 그러한 방식으로 조금은 가벼워진 듯한 진지함을 갖고 있지 않고, 말 그대로 엄청나게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배트맨과 슈퍼맨, 원더우먼 캐릭터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특히나 최근에 "정의 따위가 무슨 소용이야"라고 외치는 "데드풀"을 재미있게 본 관객들이라면 더한 짜증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반적으로 장엄하고 정공법으로 화려한 씬들과 무거운 고민들을 정중앙에 배치하고 밀어붙이는 이 영화의 고전적인 스타일에 두드러기가 나지 않을 수 없다.
2. DC의 히어로 영화들의 팬의 관점
다른 측면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전대미문의 DC코믹스 영화화의 최대 성공작인 "배트맨 시리즈 3부작"은 정의의 문제에 대한 진지함이 보다 세밀한 리얼리티의 보강으로 더더욱 우리 앞에 놓인 현실과 비슷해 보일 정도로 잘 가공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씬들의 현실성에 감탄하도록 만들어낸 진지한 히어로물을 성공시킨 모범이라고 불릴 만한 작품들이다.
이 때문에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배트맨이나 악당 조커, 베인, 캣우먼, 투페이스, 알굴 등의 캐릭터들도 현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그들의 능력을 지나치게 확장시키지 않았던 바, 현실의 어딘가에 있는 고담 시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줌으로써 관객들이 좀 더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감탄한 팬들에게는 현실과는 크게 먼 곳에 갑자기 설정되어버린 새로운 배트맨의 능력치와 입으로는 정의를 말하지만 적을 죽이고 고문하고 협박하는데 거리낌을 느끼지 않으며, 범죄자로 취급당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 모습은 배신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캐릭터가 그 이전까지의 배트맨의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라는 영화의 원칙을 어겼다고 분노하는 평론을 보면서 나는 그 평론 자체에 조금 배신감을 느꼈다. "영화의 원작이 되는 코믹스가 어떻게 배트맨을 그리고 있는지도 좀 알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코믹스의 작가에 따라서 또는 대상 연령층에 따라서 배트맨의 성격과 본질은 상이하게 그려진다. 잭 스나이더 버전의 배트맨이 관객을 배신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내 눈앞에서는 없었다. 그냥 영화로서는 또 다른 성격의 배트맨이 하나 탄생한 것이고 코믹스 원작의 입장에서는 여러 캐릭터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마블 히어로즈 무비와 놀란 감독의 배트맨 무비의 팬들 양쪽으로부터 저항을 낳는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쪽에서 욕을 먹으면 다른 쪽으로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다른 두 성향의 영화팬들로부터 한 몸에 욕을 먹는 상황이 된 것이고,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잭 스나이더가 거의 강박적으로 이 양쪽과는 다른 차원의 히어로물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마블 히어로즈 무비의 제작사처럼 그에게 앞으로 나올 히어로 각각의 독립적인 영화를 깔아주는 지원을 해준 바가 없지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 영화는 영리하게도 슈퍼맨의 세계관으로 시작하면서도 영화 속의 이질적인 캐릭터들인 배트맨과 원더우먼을 여유롭지 않은 시간 배분 구조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잘 비집고 배열해냈다. 그에게 제작사로부터 주어진 임무가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을 확실히 각인시키면서 동시에 이어 나올 캐릭터들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킬 것 등이었다면. 사실 잭 스나이더는 임무에 맞게 해야 할 일들을 다 해냈다. 물론, 제작사는 마블 히어로즈 무비의 제작사처럼 그에게 앞으로 나올 히어로 각각의 독립적인 영화를 깔아주는 지원을 해준 바가 없지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흔적들이 보인다.
1. 배트맨의 존재감
"미지의 강력한 외계인을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바라보는 부정적인 과거사에 얽매인 인간". 이 역할에 대해서 간추려 보자면 이러하다.
밴 애플렉의 배트맨은 영화의 시작 시점에서 화자를, 첫씬부터 "배트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루면서, 브루스 웨인으로 설정하여, 그가 긴 내레이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존재감을 확장시킨 다음. "맨 인 스틸"의 장면에서 메트로폴리스의 자신의 기업의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분노하게 된 인간의 편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슈퍼 외계인과 싸우려고 하는데 대한 심정적인 동의를 얻으려 했다.
오프닝 씬에서, 수많은 관객들로부터 욕먹고 있는 소재인, 브루스 웨인의 살해당한 어머니의 이름이 "마사"이고 먼저 총을 맞아 누워있던 아버지의 신음 섞인 음성으로도 불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이름 덕에 슈퍼맨이 배트맨에게 죽지 않을 수 있게 되고, 적지 않은 영화 관객들이 놀리는 포인트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죽일 듯이 싸우고도 어떻게 서로의 어머니의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 화해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순전히 어릴 때의 충격적인 경험 때문에 정의 구현을 강박적으로 추구하게 되고, 악을 증오하는 정도를 떠나서 "모든 사람이 영원히 착할 수는 없다"라는 명제 하에 "슈퍼맨도 언젠가는 나쁜 짓을 1%라도 하게 될 것인데, 그 여파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그러니까 미리 슈퍼맨을 죽이는 것이 내 사명이다"라는 논리를 만들게 된 배트맨의 "순수한 사고 구조"는 사실 슈퍼맨의 어머니 이름이 "마사"인 것만으로도 위험한 슈퍼맨이 내 친구로 돌변하는 것이 크게 이상하지 않은 구조이다. 이게 실상 촌스러운 스토리로 보일지라도 영화 속에서 논리적인 하자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사실은 슈퍼맨과 자신의 공동의 적인 렉스 루터의 끄나풀들을 쫓아가면서, "슈퍼맨을 죽일 수 있는 무기인 크립토나이트"를 빼앗으려 했지만 이를 제지하는 슈퍼맨에게 굴욕적인 "더 배트맨 짓 하면 죽는 줄 알아"라는 멘트를 듣는 수모를 당하는 순간. 배트맨에 어느 정도 감정이 이입되었을 관객들은 열을 받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악평을 쓴 사람들은 전혀 이입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토니 스타크와도 같은 유쾌한 입담이 없는 이 답답한 복학생 같은 느낌의 배트맨은 그들의 환심을 전혀 사지 못한 것이다.
나는 물론 재미있게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기 때문에 이런 시도에 호응해서 브루스 웨인의 심정을 그대로 나 자신에게 이입시킬 수 있었다. 이런 정도의 교감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면 이 영화는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다.
2. 배트맨과 슈퍼맨, 렉스 루터, 죠커의 공통점
배트맨은 영화 후반에 슈퍼맨을 잔인하게 린치 하면서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배운 것은 길거리에서 누군가로부터 갑자기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거였어. 그로 인해 이 세상은 악하다는 것을 알았지"라고 이야기한다. 배트맨 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동안에 토로된 자기 고백성의 멘트인 동시에 잭 스나이더가 어떻게 배트맨의 내적인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하는가를 드러낸다. 조커와 배트맨이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존재라는 은연중에 나오던 내용이 노골적인 대사로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 어릴 적 학대당하고 맞고 자라 왔다고 떠벌리는 렉스가 추가되면서 불우한 가정사로 뭉친 3인의 뒤틀린 현재가 그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이 어릴 때 만났다면 서로의 가정사를 공감하면서 친한 친구들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보면 인생에 있어서 어릴 때의 경험은 인생 전반을 지배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것이구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또한 같은 자극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갈라놓아 천지 차이가 나는 영웅과 악당의 갈림길도 보인다.
이 씬의 전에서 잠적하여 숨어 지내던 슈퍼맨이 자신의 지구 양아버지의 환영을 보면서 일부 훈훈한 교훈을 얻는 장면이 나오는데 두 가지의 스토리가 교차하면서 노린 것은 이 두 사람 다 자신의 어릴 적 경험에서 얻은 판단 기준 바깥으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는 점이다.
3. 배트맨과 슈퍼맨은 단순해 보일 정도로 순수하게 나온다
해외의 평에 따르면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멍청한 짓을 반복하고 영화도 멍청하다"라는 표현도 나오는데,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에 얽매여 살아가는 이런 모습. 각자만의 정의에 사로잡힌 외곩수 같은 진지함들이 실제의 세계에서도 얼마나 멍청하게 보이기 일수인지를 떠올린다면 그 안의 캐릭터가 멍청하다는 것이 영화가 잘못 만들어진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슈퍼맨도 국회를 날려 보낼 폭탄이 청문회장에 들어와 있을 거라고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원더우먼도 렉스 루터의 주변을 조사했지만 그의 계획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배트맨은 계속적으로 렉스의 계획에 끌려 들어가 엄청난 운동을 하며 체력을 만든 뒤에 강화 슈트를 입고서 슈퍼맨과 맞붙게 되는 단선적인 사고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들 순진무구하게 굴지 않으면 갈등이 고조될 여지가 매우 적어진다.
머리가 좋은 배트맨이 슈퍼맨과 직접 싸울 궁리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슈퍼맨도 머리가 좀 돌아간다면 혼자 다 지킬 수 없는 지구를 배트맨이 사는 고담만큼은 맡겨서 지키게 하지 히어로 짓을 그만두라는 협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 중에 지능적인 캐릭터 하나가 교통정리만 잘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대결이다. 대결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지능적으로 그려지지 않아야 했을 중요한 이유가 된다.
4. 원더우먼은 스크린 중심으로 뛰어나오듯 달려들며 시선을 흡수한다.
세상과는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만 주의를 끌어당기는 강렬한 매력과 아름다움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진 원더우먼을 미스테리어스 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로 점점으로 나타나는 몇 개의 씬 안에서 잘 조명해냈다.
그동안의 스토리 내용은 일소하고 "저여자 너랑 같이 온 거 아니야?(Is she with you?) 난 너랑 같이 온 줄 알았는데 (I thought she was with you)" 라는 문답을 주고받는 두 히어로의 가운데에서 그녀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이걸 말한다. 엄청나게 센 여성 슈퍼히로인이 영화의 세계 속에 드디어 나타났다고.
이 강렬한 씬과 더불어 나타나기 전에 원더우먼은 제작사가 잭 스나이더에게 내린 과제를 하나 수행했다. MAC 컴퓨터에서 원더우먼이 렉스의 건물에서 빼내 온 암호화된 파일을 브루스 웨인이 해독하여 다시 전송한 내용을 받아, 4명의 Meta Human의 모습을 그린 동영상들을 요즘의 시대에 맞게 또렷한 노트북 스크린의 동영상으로 보게 된다. 아쿠아맨과 플래시, 사이보그의 모습과 더불어 1900년 대 초반에도 젊은 여성이고 지금도 젊은 여성인 원더우먼의 사진이 등장한다.
스피디하게 관객들에게 향후 만들어질 저스티스 리그에 합류하게 될 히어로들의 면모를 짧게나마 보여준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전달하는 방식이 시대에 맞았다는 생각을 했다. 욕을 먹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달하는 방식은 시간과 돈과 영화 속의 극 진행의 타이밍을 길게 뺐지 않으면서도 포인트는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부디 손익 분기를 넘는 흥행은 이루어서 이 각각의 캐릭터가 독립된 영화를 하나씩 찍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 영화는 적어도 대다수의 대중이 이미 형성한 판단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해보는 약간의 반골기질을 가진 히어로 영화팬이라면 볼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다.
일단은 글을 쓰는 나 자신의 기질에 입각해서 이 영화의 좋은 면을 발견할 계기를 가질 수 있었고, 마블의 히어로물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를 보면서 형성된 "히어로 영화"의 어찌 보면 고정된 기준점들 때문에 잭 스나이더가 자신의 첫 저스티스 시리즈 영화를 다수 영화팬들의 구미에 맞게끔 전달하기 어려웠다는 변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몇몇 내용들을 그래도 이 포스팅을 통해서 드러낼 수가 있게 되어, 나름 다행스럽다.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 이 영화가 수작이라고 생각하고 나름 빼어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여기는지를 아직 주장하지 않았다. 5명밖에 관객이 들어오지 않은 헐렁한 평일 오후의 영화관에서 보고 있었기에 주변의 호흡이나 반응에 상관없이 혼자 이 영화의 각각의 씬들에 빨려들 듯이 끌려들었는지를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의 엔딩 이후 올라가는 크레디트를 보고 있다 보니, 익숙한 이름이 눈에 하나 띄었다. 그 이름은 프랭크 밀러, 그래픽 노블 작가, 300과 Sin City, 수많은 D.C. 히어로 작품을 그린 분의 이름이다. 노암 머로 감독의 300의 후속 편이나 로드리게즈 감독의 Sin City 2편을 그냥 자기 복제품에 불과했다고 비난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솔직하게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거의 예술 작품 수준에 다가간 원작의 품질이 끌어올린 각각의 씬들이 보여주는 "회화적"인 완전성이다.
적지 않은 장면들이 각각 잭 스나이더가 영화의 구성을 위해 발췌해낸 코믹스 원작의 유명한 장면들을 실사로 구현한 것들이다. 어쩌면 장인 정신을 가지고, 원작 코믹스를 최대한 경외하며, 동시에 이 원작 코믹스의 팬들을 위해 선사한 이 장면들은 잭 스나이더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들이다.
솔직히 마블 코믹스의 상당히 가벼운 씬들에 비하자면 이 둔중하고도 무게감 있으며, 강렬하고도 오래가는 이미지를 각각의 화면에 구현해 내는 것은 그다지 쉬운 작업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잭의 영화적 재능이 불타는 지점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스토리보다는 다름 아닌 이 시각적 효과의 향연이다.
또한 배우들의 지나쳐 보이는 진지함에 짜증이 났을 관객들에게는 인정받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파워의 차이와 한계점의 차이들을 적절한 밸런스를 가지고 조율하여 배분했으며, 각각의 액션씬들이 보여주는 파워풀함과 스피드, 다양성들도 여늬 히어로물들이 갖고 있는 내용들과는 분명히 차별성이 있어 보이는 훌륭한 작업들임이 드러나 보였다. 같이 극장에서 큰 영상으로 보았을 때만 공감할 수 있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미덕들이 유감스럽게도 글로 쓰고자 할 때는 드러내기가 어렵고. 넷 상에 오픈되어 있는 사진들만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수많은 위대한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만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다들 누구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나다. 벤 애플렉이 왜 새로운 배트맨이 되어야만 했는지, 헨리 카빌은 무슨 이유로 슈퍼맨이 된 것인지. 갤 가돗은 왜 원더우먼인지, 제시 아이젠버그가 렉스 루터에 적합한 배역이 된 것인지. 제레미 아이언스가 알프레도에 낙점된 기준 같은 것들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모두 납득이 된다. 그 외에도 에이미 아담스, 다이언 레인, 로렌스 피시번, 카메오 같았던 케빈 코스트너까지 모두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여기까지 잘 글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당신은 이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발을 옮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적어도 대다수의 대중이 이미 형성한 판단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해보는 약간의 반골기질을 가진 히어로 영화팬이라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