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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Sep 18. 2016

<밀정>-볼레로와 폭파씬

폭파씬에 걸맞은 볼레로를 처음 듣다.

현재 개봉 중인 작품인데, 스포일러가 다수 실려 있는 글을 쓰고 말았습니다. 보지 않으신 분은 가급적 읽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민족우월주의에 편승한 군국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해서
보편적인 범인류적 양심에 기대어
불의에 저항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보다 시대에 맞는 보편적인 정서를
드러내고자 하고 있다.


그림자의 시대라는 제목이 어쩌면 더 어울린다.

밀정은 최대한 클리셰를 줄이면서

뻔하지 않은 극의 전개를 추구한

노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장르의 재해석, 그리고 역공이다.


이전의 김지운 감독님의 작품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도

뻔한 서부 마카로니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본 순간, 전형적이다라고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았다.


시작부터 주연 레벨의 배우인

박희순 씨가 군자금을 받기 위해

금불상을 가지고 찾아간

부자의 집에서 함정에 빠져

전혀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생사의 탈출을 시도하다

결국에는 자결한다.

"쥐새끼와 같이 살 순 없지!"


이 정도급의 배우가 초반에

유명을 달리하는 영화를 보는 건

아쉬우면서도 투여된 인적 자산과

향후 나올 스토리와 인물들이  

이 배우가 사라져 비어버린 공간을

어떻게 채워갈지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더구나 그가 맡은 김장옥은

일본의 밀정이라 할 수 있는

송강호 씨가 연기한 이정출의

심경변화를 가져오는 큰 계기가

되는 인물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존재감이 관객들에게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

익숙한 얼굴일 필요가 있었다.


만약 박희순 씨 같은 이미지의

배우가 아니었다면 둘 간에

우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간략하게 줄이기가 어렵다.



어느 배우에게도 꿀리지 않는 카리스마다. 그의 이미지에는 송강호와 이병헌, 공유의 믹스된 느낌이 녹아 있다.

김지운 감독님은 "경제적이고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선택들을

했고, 그것은 영화 속에서

내내 옳았다.


조국이 독립을 할 것인가

못할 것인가에 대한 당시의

전망이 각기 다른 진영에

속한 사람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자신의

가족과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탄압하는 비인간적인

식민통치에 대해서

저항코자 하는 마음은

적어도 양심이나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라질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 안위와 동지를 돕는 것 간의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한 가정은 현실에서 무시된다.

마치 시대가 지난 이념처럼

"민족주의"는 하나의 폐해처럼

해석되는 시대에 이르렀고,

우리는 민족에 기대기보다는

글로벌화로 인해서 우리에게

던져진 힘의 질서, 정보와 지식,

기술, 자본의 강자에게 엎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 아닌가? 라는

다소 원초적이지만 역설적으로는

보다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

맹렬하게 후행하고 있다.

국가주의/민족주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진왜란이 벌어지던 조선의

1592년도에 사실 국가주의는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적지 않은 민중들이

부패하고 약한 조선보다는

쳐들어온 일본군에 협조했고

이는 수많은 의병들의 거병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검색해보면 나오기에

이제는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일제 치하에서

자신의 안위, 좀 더 좋은 옷과

편안한 입신양명을 추구하기로

마음을 먹고 동료들을 등지는

배신자들이 더 이상 거리가 먼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의리나 배신이나 애국, 애족이나

민족적 긍지 등의 단어는 사실

감정과 감성을 자극하는 언어다.

이성적인 경제나 정치의 용어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과 권력의 획득이다.


우리는 기술 문명의 선구자인

미국/유럽 기업에 들어가거나

자본의 질서에서 상위에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서

일신 상의 성공을 꿈꾼다.

이와는 다르게 좀 더 친근한 거리를

가진 정말로 이 동네에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챙기는 이른바 한국의 기업이나

정부 기관을 떠올리기가 힘들다.

영화 속에서 군자금을 금불상과

교환하는 대신에 김장옥을

일본군에게 넘긴 재력가는

어쩌면 그런 상징성을 가진

존재로서 등장한 것도 같다.


영화 외적으로 투자자는

미국 기업인 워너브로이다.

민족주의보다는 "초국가적

무정부주의"가 그들의 구미엔

더 맞는 주제였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민족주의를 기반으로한

항일 독립군의 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진 느낌의

배면에 이같은 사실이 있음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물론, 영화 투자사는 흥행을 통한

기업 수익을 따질 뿐이다.

영화에 대한 투자는 그 영화가

갖고 있는 이념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되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밀정'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특징을 가져야만 한다면

'자국 중심 주의'를 벗어나는

주제와 내러티브가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해외 투자자라도 "밀정"은

세계 4위 영화 시장인 한국뿐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수많은 국가에서

통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투자적격

상품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게끔

이 영화는 세계적 보편성을 추구했다.  


"전함 야마토(감상문)"라는 영화가

같은 일본 극우주의 성향의 만화

작가가 만들었다는 "침묵의 함대"

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극화를

갖고 있다고 내가 평가하는 이유다.

둘 다 2차 대전 당시의 일본의 군함

"야마토"의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두 극화의 세련미는 천지차이다.

골방에 틀어박힌 외톨이의 관점마냥

협소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는

세계를 관통하는 영화가 되기 어렵다.


통상 사는 대로 생각하면 사람은

악해진다.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어야 비교적 올바르게 살 수 있다.

"그냥 산다는 것"은 도덕적인

정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한다.

이른바 "옳고, 그름"이란 판단이

또한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살아남기에도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어쩌면 지금쯤 "악하다"는 말은

이미 사라진 시대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국부론"의 이론적

경제질서에 충실한 사람들을

이제는 광분하며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닮아야 할 롤 모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출의 모습은

이전에 수많은 극화에서 일제의

끄나풀 역할을 한 배역들과

비교해서 그 행위가 일면

이해가 갈 정도가 되는 캐릭터이다.

그런 식으로 적은 우리 안에

우리 동네 안에 생겨났던 것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의 옳고 그름은 "자기 이익"에

관련된 옳고 그름이다. 이를 벗어난

옳고 그름은 이미 생각 밖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영화는 상해의 임정에서

활동하는 폭발물의 전문가들이

다수 무정부주의자, 곧,

아나키스트로 이루어져 있음을

대사 속에서 잠시 드러낸다.

이중에는 외국인도 속해 있다.

'민족우월주의'에 편승한 '군국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해서

보편적인 범인류적 양심에

기대어 불의에 저항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보다 보편적인 정서를

드러내고자 하고 있다.


오히려 더 냉철하고 한 박자
숨을 고른 냉정하고도 확실한
복수가 이뤄져야만 함을 말한다


의열단 단장인 정채산 역을

맡은 이병헌 씨는 이와 같은

영화 속의 구도에서 감성적으로

파고 드는 이야기로 이정출의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반간책', 곧, '이중간첩'으로

이정출이 변모할 수 있도록

그 신념을 이성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바꿀 수 있는

인격적인 감화를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목소리의 설득력을

통해서 형상화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의열단장은 본능에 의지해서 이정출을 믿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를 죽일 기회는 지금 뿐이다"라는 말로 진정성을 보인다. 신뢰를 건 도박.

공유 씨가 열연한 김우진 배역의

세련된 냉철함이 파고들 수 없는

감성적인 깊이를 정채산이란

캐릭터가 잘 구현해 냈고,

표현되지는 않지만 끈끈함과

사랑으로 맺어져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인 연계순 역의

한지민 씨는 작지 않은 극 중

비중에 맞는 연기를 해주었다.


공유와 한지민은 일면 같은 급의 중량감을 서로 나눈다.


때문에 정말로 신파로 흐르지 않고

비분강개라는 말처럼 잔악무도한

일본군과 친일파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로 우리를 몰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냉철하고 한 박자 숨을

고른 냉정하고도 확실한 복수가

이뤄져야만 함을 말한다.


영화에 나온 음악들은

2차 대전이 진행되고 있었던

시점에 서방 세계에서 울리고

있었던 지금은 올드한 재즈들이다.

이 재즈 음악들이 울리는 가운데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의열단의

일원들의 모습이 나오면서

빠른 전개와 단호한 주요 배역들의

죽음들이 이제까지의 전형적인

항일 운동을 다룬 액션 영화들이

가져왔던 진부한 장치들을 깨는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중간중간 생각하게 만든다.


이 동네에 모여사는 사람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한 이 비극적인 침탈의

상황이 외국에서는 그저 재즈를

즐기면서 보내는 하루의 일상 속의

뉴스로 흘러갈 것이라는

현실적인 감각을 처절하게

가까운 미래에 다시 경험할 수도 있다.


그 어떤 항일 투쟁을 다룬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견주어도 떨어짐이 없는
강렬한 느낌을 전달한다


수많은 장점들과 매력적인

스토리 전개와 장치들을

이루 다 말하기는 하루가

다 모자랄 것 같다.


다만 그 어떤 것보다도

글로벌 영화사에 길이 남을

"볼레로"와 제대로 연결된

폭파씬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아무래도 하고 싶은 이야길

멈추고 가버리는 것 같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볼레로는 라벨이 작곡한 이후

범 세계적인 흥행을 한 클래식 음악이다.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라는 (https://g.co/kgs/sh9piv 참조)

나치 하에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가해졌던 폭력과 저항의 역사를

180분, 곧 3시간의 영화로 만든

작품이 있다. 1981년도에 만들어져

국내에서는 2부로 나뉘어 TV에서

방영이 되면서 큰 반향을 낳았다.


이 영화가 성공적인 작품이 되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이 난 "볼레로"라고

느꼈다. 스토리보다 어떻게 이 음악이

장면들과 결합해서 감성을 자극할

것인가? 이게 더 궁금하기까지 했다.

1부를 보고난 뒤의 떠오른 질문은

2부에서 볼레로와 스토리가 어떻게

잘 연결될 것인가였다.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명작이다. 이 영화의 정서는 "볼레로" 그 자체였다.


이 곡은 조용히 과거를 회상하면서

처연하게 자신을 연민하는 듯한

작은 소리를 반복하면서 시작하며

점점 더 증폭되면서 테마가

거대한 음역의 오케스트라로

확장되고, 급기야는 폭발적인

감정을 낳으며 모든 앙금을

일순간 해소시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순간 끝난다.


볼레로의 말미와 영화 속의

점점 고조되는 단계를 거쳐

일치되는 타이밍에서의 폭파씬의 합은

거의 완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CG상의 약간의 미흡함정도는

못 본 것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영화 속 상황 안에서의

복수는 말끔하게 이뤄지며

안에 있었던 적과 외부의

적들도 남김없이 척살된다.


이 음악을 액션씬에 이렇게

걸맞게 잘 구현한 장면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았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음악이

담고 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억분과 분노와 침울함을 이기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느낌과도

동일하게 친일파들과 일본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 건물을

폭파하는 씬은 그 어떤 항일 투쟁을

다룬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견주어도

떨어짐이 없는 강렬한

느낌을 전달한다.


어쩌면 배트맨 대 슈퍼맨의

Is She With You에서 나타난

원더우먼을 강렬하게 등장시키는

음악의 효과보다도 더 강렬하면서도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후련하게 느끼지 않을 사람들이

적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모든 장면을 심심하게

벗어날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적어도 이 장면만큼은 꼭

잘 보고 오기를 권장한다.

이것만 보아도 이미 이 영화는

표값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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