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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y 03. 2016

<캡틴 아메리카_시빌 워>-긴박감과 반전

그 자체로 잘 만들어진 드라마

역시나 배트맨 대 슈퍼맨과는 애초부터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시빌 워는 토요일 심야 시간대라는 뜨거운 시간대이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발 디딜 틈 없이 관객들이 들어차 있었고, 저마다 스토리에 몰입해서 뜨겁게 관람하고 있는 분위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연차를 낸 평일 저녁이었지만 도합 5명만 덩그러니 텅 빈 극장에 있었던 배트맨 대 슈퍼맨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계속 이어지는 새로운 장면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던져지는 유머, 세련된 스토리들이 쉴새 없이 흥미를 끌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어찌 보면 짜내고 또 짜내서 납득할만한 재미를 능동적으로 찾아내야 했다면, 이 작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붙잡고 들어 올려서 "어때 이래도 재미있어하지 않을 건가?"라며 강력하게 휘몰아 붙인 것이다.


일단,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스토리로나 스케일이 달랐다.


많은 캐릭터들이 X맨 이상으로 나타나지만 스토리는 꼬이질 않고, 긴박감도 점차적으로 높아지고, 기대는 계속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올로케이션 촬영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 같은 히어로들 간의 싸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이미 만들어진 전작들과 알려지지 않은 각각의 스토리들을 잘 병합해서 관객들이 구구절절이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갈등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끔 1991년이라는 과거 회상 시점부터의 내용을 현재와 잘 연결해서 제대로 드라마를 구성했다.


더구나 이 같은 갈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마치 "본 시리즈"와 같은 스릴러 액션물의 하나하나 과정을 파악하고 숨겨진 내용을 발견하고 반전이 생기는 구조로 만들어 보여주기 때문에, 단계별로 흥미로운 장면 장면들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 시리즈가 떠올랐던 이유는 각각의 촬영된 국가별로 그 나라의 언어가 나오고, 그 나라의 인물이 그 나라의 억양을 담은 영어를 구사하거나, 각 국의 경찰 병력이나 특수 부대가 윈터 솔저를 잡으러 사정없이 뛰어다니는 장면들과 상당히 기술적으로 보이는 무술 실력을 발휘해서 윈터 솔저와 캡틴 아메리카가 계속 도망 다니는 스토리에 더해서 "제이슨 본"처럼 자기 기억을 잃어버린 채 암살자의 역할을 했던 "윈터 솔저"의 모습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나만이 느낀 점은 아닌 것 같고, 분명히 이 느낌을 받으라고 의도적으로 넣은 장치들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이런 느낌이 오면 이 히어로들이 바글바글하는 극화가 좀 더 손에 땀을 쥐는 액션 스릴러처럼으로도 보인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것은 이 땅 위에서 공중으로 떠버린 "맨 인 스틸"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배트맨 대 슈퍼맨"에 비해서는 착실하게 땅 위로 발을 딛고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기분을 전달할 수 있다.


배경 바깥에 있는 코믹스의 스토리들을 설사 잘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만으로도 이 같은 갈등의 필연성은 절절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이 같은 성공적인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풍성하게 각각의 아이언맨, 어벤저스, 캡틴 아메리카가 각기 최소 2편 이상의 작품을 갖고 이미 바탕이 될 충분한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충실하게 마블 시리즈물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입각해서 봐왔던 관객들은 크게 무리 없이 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더 확장되게 느낄 수가 있다. 시빌 워 원작의 스토리와는 다른 방향을 택하고, 다른 세계관으로 영화를 진행해감으로써 결론도 그와는 다르게 맺었다. 그렇다고 배신감 같은 것은 들지 않는다. 그저 "영화 마블 시리즈"의 착실한 오리지널들로부터 버전 업되어 지속성 있는 스토리라인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동감이 살아있는 히어로들과 적절한 유머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서로 인간적인 면모를 잘 노출하면서 능동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말로도 잘 싸우고 몸으로도 잘 싸운다.

배트맨 대 슈퍼맨과 이 영화에서 같이 "히어로들이 망가뜨리는 도시와 죽인 사람들"이라는 히어로물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히어로들이야 분명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지구 내의 악당들 또는 파괴적인 외계 슈퍼 생명체들과 싸우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무지막지한 싸움은 누군가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죽음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된다.


당한 자들이나 도시, 국가의 입장에서 이들에게 반감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더더군다나 정의와 집단주의의 기치 아래 숨죽이고 살아야만 했던 냉전주의 시대가 저물어버린 지 오래인 글로벌화된 세상에서 더 이상 영웅이 싸우는데 희생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을 그대로 묻어버릴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히어로들이 그렇게 강력한 싸움을 벌이는 것에는 대의명분뿐만 아니라 철저히 개인적인 동기도 섞여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솔직히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자기 자신을 위해 각각의 싸움을 벌이고, 각각의 친 정부와 친 자유 히어로 진영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부분적이나마 서로 인정한다.   


이렇게 히어로들이 서로 인간적이고 내밀한 진심을 털어놓는 모습들을 보고 있는데 관객들에게 스토리가 어색할 이유가 어떻게 생길 수 있겠는가 싶었다. 또한 이러한 진지한 서로를 취조하는 듯한 격한 논쟁과 물리적인 전쟁의 중간중간에 이들은 유머를 멈추지 않는다.


 가장 웃겼던 유머는 테러리스트로 몰린 윈터 솔저가 최면에 다시 걸려서 난동을 피운 뒤에 팔콘과 캡틴 아메리카가 그를 데리고 폐허로 도망치고, 캡틴이 윈터가 정신이 돌아왔는지 서로 엄마 이름과 어렸을 때의 기억을 교환하며 서로 간의 우정을 확인할 때 옆에서 팔콘이 말한 대사였다. "둘이 겨우 몇 마디 주고받고 바로 절친이 돼 버린 거야?" 이 부분에서 관객들이 별로 웃지 않았다는 것은 나처럼 "배트맨과 슈퍼맨"을 본 관객들이 거의 없었거나 본 티를 안 내려고 침묵했다는 것이다. 혼자 웃으려다 참았다.


캐릭터들은 하나씩이라도 서로의 감정을 인간답게 드러낸다.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사고하고, 서로 간의 의견의 차이를 좁혀갈 길을 찾아본다. 이 과정에 순차적인 이해의 과정들이 빠져나간 완전히 맥락이 어긋나는 부분은 언뜻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중간중간이 어색하지 않게 잘 연결되어 있다.




처음 등장한 캐릭터들도 매력적이다.


히어로 코믹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부자로 불리는 가상의 아프리카 부자 국가 와칸다에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왕족 대대로 내려온 비브라늄을 써서 만든 코스튬을 입고 나타난 왕자의 모습은 아주 매력적이다. 유연한 신체만큼이나 유연하고 절제력 있는 사고 능력. 제트기 하나 정도는 바로 타고 몰래 캡틴을 만나러 날아간 아이언맨을 추적하며 따라갈 수 있는 기동력. 기관총 총탄을 맞아도 끄떡없는 엄청난 방탄력.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의 재력조차 그다지 부럽지 않아진다.


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있는 분노해도 그 분노에 삼켜지지 않은 자기 조절 능력 등 어느 하나 매력적으로 비치지 않은 것이 없다.

아버지의 원수라고 생각한 윈터 솔저를 쫓는 블랙 팬서

다만 스파이더맨은 마블로 다시 돌아온 소니의 캐릭터여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불나불 대는 데드풀과 약간 닮은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등장했기에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무게 비중이 많이 가벼운 느낌이다. 그러나 싸우는 능력과 방법 면에서 좀 더 섬세해졌다. 이 시빌 워 다음의 마블 영화가 "스파이더맨"인지 쿠키 영상으로 "스파이더맨은 다시 돌아온다"라고 강조되어 있다.


새로 등장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이전의 독립적인 한편의 "앤트맨"에서 등장했던 스캇은 과연 여러 매력적인 배우들을 줄 세워놓고 보니 안타깝게도 확연히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다만, 예상치 못한 한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았고, 싸움의 중간에 커다란 의외성을 던져 주었으니, 이 부분에서는 성공적으로 조력을 한 것이 틀림없다.



정신없는 싸움이 될 줄 알았으나 매우 질서 정연했다.

무조건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장단점과 감정적인 상태 등이 적절하게 맞물리며 의외성을 보여준다.




헐크나 토르와 같이 강력한 파워를 바탕으로 하는 캐릭터들을 빼놓은 것은 비전을 제외하고 장비와 더불기 전에는 그저 현실의 인간인 캐릭터들 간의 대결을 그림으로써 좀 더 긴박감과 승패를 잘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영화를 가득 차게끔 했다. 이 천방지축으로 싸우는 캐릭터 둘만 없어도 영화는 질서 정연한 액션씬들을 차례차례 잘 혼합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계산이 확실히 통했다.


특히 서로 간의 갈등이 심화된 이유를 파악하고 화해에 이르렀다고 여겼을 때 다시 갈등이 증폭되는 엄청난 스토리의 반전은 떡밥도 충분했거니와 여러 번 충분히 반복되어 있었기 때문에 납득하기가 편했다. 이와 더불어 정말 치열한 좁은 장소에서의 전투씬이 짧지 않게 진행되는데, 예상을 여러 번 틀리게끔 만드는 반전의 연속이어서 결론에 이르렀을 때도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윈터와 캡틴이 동시에 덤벼들어도 건재하게 싸울만큼 아이언맨은 강하다.
이 싸움이 호각세를 이루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좁은 공간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원거리 화력에서 훨씬 앞서는 아이언맨에게 핸디캡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윈터가 나가떨어지고 캡틴과 아이언맨이 붙었는데, 장소가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긴박감은 최고조가 된다.



워너와 디즈니 양 제작사에 대한 약간의 비교


영화가 끝난 뒤에, "쿠키 영상"같은 것은 제작사의 전통이 아니므로 제공하지 않았던 "워너"와는 달리, 두개의 쿠키 영상이 나와서 관객들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자리에서는 일어났지만 통로 계단 옆 벽에 몸을 기대며 이 영상들 또한 열심히 보았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고, 집으로 돌아가서 또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내줄 것이 분명한 이 영화를 내가 또 절찬리에 꼭 칭찬을 해주어야 할까 싶지만. 이 영화를 한편 본 느낌은 내 안으로 들어왔고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게 해 달라고 해서 이렇게 브런치 안으로 한번 들여보내 본다.


그러면서 라이벌 같은 위치에서 미끄러져 있는 듯한 "배트맨 대 슈퍼맨"의 영상들을 한번 기억해본다. 스토리야 재앙과도 같은 "잭 스나이더"의 취약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정말로 영상미만큼은 상대적으로 더 뛰어났던 것이 틀림없었는 데도 왜 관객들의 마음을 홀리듯 뺐지는 못했을까를 좀 더 생각을 하고 싶다. 이 부분은 그래도 잘 알고 있는 것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중요한 것이 될 것 같다.


원래 (잭 스나이더가 각본에 약하니까)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각본은 예전에 벤 애플랙이 감독과 주연을 하고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한 영화 "아르고"의 각본가인 크리스 테리오가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3가지의 가정을 할 수가 있다.


1. 잭 스나이더가 각본가를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영상 물량에 집중한 연출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2. '아르고'처럼 실화를 기반으로 하거나 케이퍼 무비에 특화된 각본가가 SF 히어로물을 한 것은 무리였다.

3. 제작사의 주문인 "150분짜리 (전체 저스티스 리그의) 예고편을 만들어달라"가 스토리를 많이 망쳤다.


답은 뻔히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이 글을 본 사람들은 일정 비율로 어떤 가정이 참일 수 있는지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연결이 된 문제들로 보고, 3>1>2 정도로 실패에 끼친 영향력을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흥행과 사업성이 중요하다면 중요한 만큼 영화의 스토리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심혈을 기울여야 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다시 남는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재미있는 "시빌 워"를 본 뒤에 그 느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두 진영이 라이벌 답게 서로 필적할만한 수준의 영화를 같이 만들어 주어야, 두 영화 시리즈물의 품질도 더더욱 높이 올라갈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안 될 것 같아 아쉬운 것이다.


이 두영화의 갈림길은 "(최소 2인 이상의) 집단적 지성 감독 체제"와 "살아 있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히 담아낸 영화 제작 방식"을 선택한 디즈니 대 "카리스마 넘치는 솔로 감독 체제"에 "워너사의 영화의 품질 또는 관객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성과 최우선의 무리한 요청"이라는 요소들이 갈라 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삶에 도움이 될 방향이나 태도, 리더십이나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 성과를 내는 비결은 그러므로 전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나름 이 시대를 읽고 대응하는 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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