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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r 03. 2016

<데드풀>-밑바닥 초인

히어로이기를 포기한 초인

영화의 주인공이 극 중에서 벗어나

관객들과 시선을 맞추고

마블코믹스 시리즈를 포함한

여러 영화의 배우들에 대해서

관객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말한다...

잠깐. 이거 얼마 전에 올린 "아멜리에"

스타일의 영화이다. 마치 연작이라도

된 것처럼 비슷한 영화들의 감상문을

연이어 쓰게 되어 기분이 묘하다.


물론, 아멜리에와는 달리

이 영화는 훨씬 직설적이고

강렬하고, 폭력적이며,

자기비하가 난무한다.


그럼에도 약간은 비슷한 결론을

보여준다.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알고 보니 이 영화의 주인공
역할뿐 아니라 프로듀서
역할까지 이 배우가
맡았기에 자기 비하의
개그마저 속 시원히
내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데드풀은 바이럴 마케팅의

성공작이라고 불린다.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보다는 이 부분이 도드라진다.

나는 이런 폼재는 애들이 제일 싫어라는 이미지를 마음껏 흩뿌렸다.

영화가 상영된 이후, 그 내용도

커진 흥미에 못 미치진 않았기에

흥행은 크게 일어났다.


영화는 흥행 호조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고, 이미 손익분기는

넘어서서 속편 제작은 수월히

결정 났다는 뉴스도 나왔다.


다른 마블 코믹스의 영웅들처럼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자기 절제와

더불어 좀 더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뒤바뀐다던지 하는 내용이

없다는 데에,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서 나온 데드풀의 이미지라든가

원작 코믹스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기대 이하라는 표현을 쓰겠지만.


킹스맨이 흥미롭게 내놓았던

밑바닥 정서보다도 더한층 노골적인

잡담들과 잔인함, 막 나가는 개그,

생각 없어 보이는 액션, 되는대로

막사는 듯한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데드풀을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DC코믹스의 히어로물

그린 렌턴에 나왔다가

말 그대로 쫄딱 망했던 내용이

이른바 "셀프 디스"거리로 나온다.

오른쪽은 엄청난 제작비에도 폭삭 주저앉은 영화이고 왼편은 적은 투자에도 큰 소득이 나온 영화다.

알고 보니 이 영화의 주인공 역할뿐만

아니라 프로듀서 역할까지 이 배우가

맡았기에 자기 비하의 개그마저

속 시원히 내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심정이 느껴진다.

마치 영화 속의 데드풀의 사선을

걸어 살아가는 위태위태한

인생처럼, 자신의 배우로서의

경력도 그린 렌턴 하나로 막대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던 그가


마치 데드풀이 암기 말 환자가

되었던 이후에 돌연변이화 되어

초인으로 다시 부활한 것처럼

이 영화를 통해서 재기하고 싶다는

그런 심정 말이다.


그렇게 놓고 보니 하나하나의

씬들에 나온 자포자기에 가까운 듯한

데드풀의 말과 행동이 그냥

극 중 배역의 연기로만 보이지가 않았다.


이건 관객 중에 나만이 경험한 현상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대다수의 관객들 중에 그와 같은

추락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었을 터이니


영화의 스토리가 자극하고자

했던 것이 결국에는 이와 같은

공감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자존감의 밑바닥에 서 있는 이에게

높은 도덕적 판단 기준과

고상한 행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자존감을 쌓아가고자 하는

끊임없는 사생결단의 노력이

나올 수는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죽고자 하여 살게 된" 인물을

그리고 있는 것이며, 데드풀은

"사랑"을 위해서 자신을 던져

결국에는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다름 아닌 현실의 젊은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이상화된
젊은이들이 아닌.


이 영화는 사회적인 메시지와는 무관하게

정부나 좀 더 힘이 있는 집단에 의해서

노예화되고, 짓밟히고 있는 가난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밑바닥의 삶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에 빠진 중요한 이유가

서로가 살아온 비참한 인생에 대한

공감이기도 했는데,


이를 딛고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며

살아가고자 할 때, 주인공이 말기암을

맞게 된다. 신파처럼 그려지지도 않는

스토리의 전환이다.  

연인은 함께 병마와 싸우자고 하지만 그는 떠나려고 한다.

그가 선택한 두 가지는 무작정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연인을 떠나는 것과


도박일지 사기 일지 알 수 없는

영생과 초인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 느낌의

남자가 명함과 함께 건넨 제안이다.

검은 양복과 입모양 외에는 크게 닮아보이진 않지만 그의 닉네임은 에이전트 스미스가 된다.

알고 보니 첨단의 수술이 아니었고

집도의 역할을 한 "영국 악당"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슈퍼 슬레이브(노예)를

만드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돌연변이 세포가 만들어질 정도의

고문을 그에게 가한다.


이 실험실이 X맨의 울버린 같은

돌연변이를 만들고 가공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데드풀은

X맨 스토리와 이곳에서 교차한다.


(X맨 시리즈의 외전인

'더 울버린'에서

이 비슷한 곳에 데드풀이

울버린과 함께 등장하는데

입담을 늘어놓게 만들 재주가

제작진에게 없었던 것인지

그의 입은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입담이 매력의 7-80% 차지하는 캐릭터를 이렇게 만든데에 팬들은 분개했었다고 한다.

이런 감금 실험 형식의 이야기들은

사회의 빈부격차나 권력기관의

횡포에 의한 폭력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물론, 그런 사회 구조적 분석을 하거나

불의에 저항하는 고민을 하는 모습은

데드풀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다름 아닌 현실의 젊은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이상화된

젊은이들이 아닌.


이 과정에서 돌연변이 세포가 활성화한

데드풀은 마치 울버린처럼 세포 재생

능력을 갖게 된다. 속도는 좀 느리지만.


그다음 이야기들은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므로

생략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야성의 존재 데드풀은
그 어떤 마블 캐릭터보다도
실제의 인간과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특하고도 고유한 영화이자

고유한 캐릭터가 되고자 한

당돌하고도 섬세한 재치들이

번득이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앤트맨보다도 더 참담한 상황이다.

하지만 여러 흥겨운 OST와

더불면서 끊임없는 개그를 하며

그런 참담함을 비껴지나 간다.


대부분의 우리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능력이 있다면

있는 만큼 없다면 없는 만큼

올바르게만은 살 수 없는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또는 올바르지 않았더라도

올바랐다고 합리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즐겁고도 행복한 척

우리를 짓밟고 억누르는 것들과

하루하루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


그곳에는 더 이상 뭐가 정의인지

또는 뭐가 합리적이고 올바른지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현실이 있다.


이것은 마치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주어진 동물원이라는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주어진 도심이라는

환경처럼 그냥 주어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야성의 존재

데드풀은 그 어떤 마블 캐릭터보다도

실제의 인간과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바꾸고자 한 것은

제대로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말기암과 망가진 외모라는

개인적인 장애물들뿐이었다.


영화 속 대다수의 슈퍼히어로들은

영웅답게 지구의 평화를 고민하고

정부의 법안의 정당성을 판단한다.


이 현실에서 미국민의

반정도 되는 사람들이 생각없어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데

미국 사람들이 꼭 정의만 원한다고

믿어야만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또한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온라인 상에서 꿰뚫어볼 수 있는

테러방지법이 다수당의 압력으로

통과되어도 나서서 제대로 항의도

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또한

별 말 없는 내가 정의를 말한다는

것도 어쩌면 우습다.  


그럼에도 존경 받는 캐릭터이길 바라는

히어로들과 본격적으로 섞여 들었을 때

데드풀은 어떤 이미지의 캐릭터가

될까? 이것이 궁금해진다. 그 빼놓고

다른 히어로들이 우스워 보이긴

힘들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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