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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y 28. 2016

<계춘할망>-배우의 힘

김고은 씨와 윤여정 씨의 연기가 없었다면 극장을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스포일러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 외에는 뒤로 돌리거나

다른 링크로 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고은 씨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은
박해일 씨가 가진 것과도 같은
만의 얼굴을 가진 배역 흡수성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의

사모님의 언니의 딸이

김고은 씨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만약 나의

일가친척이 유명인이라면

이렇게 알리고 싶을 것이다.


뿌듯할 것이 틀림없고

다른 쪽으로는 그 유명세를

높이는 쪽으로도 돕고 싶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아도 뮤지컬이나 록, 랩, 미술,

작곡, 모델 등의 영역에 있는

친/외가 쪽 친척들이 내게도 있다.

힘이 있다면 돕고 싶은 마음은

같다. 단지, 여력이 없을 뿐이다.


사장님은 극장의 한 관을 전세 내어서

백 여 명의 직원에게 단체관람을 제공했고

극장 한 관 안에 나와 같은 소속의

사람들이 이만큼 가득 들어찬 것은

학교 시절의 단체 관람 외엔 처음이었다.


이번이 사장님의 첫 시도는 아니었다.

"차이나타운"에도 이 같은 지극 정성이

있었다. 비록 나는 가지 못했지만.


한번 내려와서 인사라도 하고 갔으면

좋았겠다는 사장님의 아쉬움이 지나갔지만

영화 배우는 개봉 이후에는 영화 홍보에

앞장 서야 하기에, 그럴 수 없었으리라

이해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번 오겠지.'


매번 내는 영화마다 할리우드의

슈퍼 히어로 무비의 개봉일과

겹쳐서 번번이 슈퍼 히로인이라도

된 양 싸워왔던 김고은 씨의

영화들은 그런 이미지 때문에

맷집이 있을 거란 느낌을 준다.


솔직히 줄줄이 남자들이

아름다운 외모를 보기 위해서

찾는 배우라고 이야기 하긴 어렵다.


아름답거나 야하거나 이런 느낌보다는

곱디곱고 순수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런 웃음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게끔 지을 수 있는 연기자는 많지 않다. 웃음의 어딘가에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은교에서 보았던 이미지를 토대로

생각해보자면 김고은 씨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은 박해일 씨가 가진 것과도

같은 만의 얼굴을 가진 배역 흡수성이다.


마치 백지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영화 속의 장치들과 소재들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점점 섬세한 그림으로 변하고

영화 시작 이후의 배우의 변화가 궁금한

그런 묘한 인상의 "감정 테크니션"이다.


물론, 쌍꺼풀 없는 눈에 순수한 눈빛과

곱디 고운 얼굴, 끌리는 비율이 있다.

그 자체가 매력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말끔한 공백 같다.

그 위에 덧입혀질 이미지와 연기가

기대되기에 사람들은 그녀의

영화를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뭔가 엄청나게 이 영화가
성의가 없다는 느낌마저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영화는 제주도의 곳곳의

아름답고 특징 있는 풍경들을

찾아 화면에 담았다.


만약 제주도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다면,

가지 않아도 제주도가

어떤 곳인지 맛보고 싶다면,

이 영화는 추천작 목록에

분명히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제주 바닷가의 풍경

정겹고 다정한

해녀 할머니와 손녀

할머니의 조카 부부의

모습이 나오고

손녀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알려주는 묘지 씬도 나온다.


"계춘이 할망"이라고 여러 번

부르고 "혜지야"라고 여러 번

찾는 중에 손녀와 할머니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각인된다.


군데군데 할머니가

손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손녀가 얼마나 할머니를

따르는지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씬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손녀가 시장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다음에 할머니는

애타게 손녀를 찾아 헤매지만

끝끝내 찾지 못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솔직히

풍경과 손녀딸 둘 빼놓고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이 두 사람이 헤어진

그 장면이 애달프게 여겨져야 하는데

뭔가 슬픈 감정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물감 같은 것이 있었다.


거친 삶을 살아가는

제주 해녀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윤여정 님의

인상은 지적이고도

제대로 교육을 받은

도회적인 사람의 것이었다.


물론 본인도 의식했던

부분이라고 하고,

아마도 다른 곳에서

보았던 잔상이 보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뒤로 갈수록 윤여정 님의

연기는 점점 더 그 깊이를

더하고, 왜 그녀를 최고의

배우로 부를 수 있는가를

뚜렷이 증명한다.


고령의 치매 증상까지

잘 형상화 해냈음에도

왠지 극 초반부에서는

"해녀 할머니"라고 느끼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누구의 탓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뭔가

영화에서 인물의 현실감을

끈기 있게 잡아주어야 하는

그 무엇인가가 빠진 느낌이었다.


'알아서 배우들이 현실감을

만들고 유지하는 분위기?'


물론, 이 영화는

극사실주의의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표현주의에 가까운

인생사의 판타지를

"이것은 판타지입니다"라고

도드라지게 그려 보이면서

만든 영화다. 굳이 배역의

현실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을 할 필요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겼다.


'이거 혹시 이 영화,

재미없는 거 아닐까.....'


그리고 11년이 흘렀다는 자막과

함께, 김고은 씨가 등장한다.


가출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는

반항의 10대의 모습을 연출하고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를 "혜지"라고

부른다. 관객들은 대부분

실종된 손녀가 이렇게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혜지가 친구들과 함께 보여주는

일탈은 사실, 배우의 이미지에 주는

타격을 최소화하고 연소자 관람가를

받기 위해서 절제한 정도의 내용이다.


"조건만남"이라는 용어로 익히

알려진 "매춘"을 유준열 씨가

연기한 악역에게 강요당하지만

실제로 "혜지"가 시도한 것은

숙소에 들어가 남자의 지갑을 털고

문을 열어 자신의 친구들이

이 남자를 협박하는 것이었다.


유준열 씨는 비열한 악역을 연기하지만

알코올이 덜 들어간 맥주 같은 느낌이고

일탈은 더 나아가면 안 되는 선이 정해진

두리뭉수리함이 느껴진다.


일탈이 일탈답지 않고

악역이 악행을 제대로 못하면서

이 부분은 뒤로 갈수록

자동차에 달린 구멍 난 타이어처럼

차체를 기울게 만들고

속도감을 잃게 하는

요소가 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도망가려 했던

남자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피를 흘리고 가출 청소년들은

뿔뿔이 흩어지기로 하고 도망간다.


김고은은 마시던 우유각에

어린 시절의 "혜지"의 모습이

미아를 찾는 광고로 나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왜 배우 이름을 썼는지가

일부 반전의 포인트다.)


만약 좀 더 세심하게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이쯤에서 관객들은

혜지가 왜 할머니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일탈의 나날들 속에서

고통받던 혜지가 왜

전혀 할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이 정도의 의문이

들어야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의문감이

들지 않는다. 그냥 저절로

두리뭉수리 크게 나쁘지도

않은 그럭저럭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고 살아온 거겠지.......

뭔가 혜지가 꼭 계춘할망을

만나러 가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영화는 기대 이하였고

함량 미달 같아 보였다.


심지어 할머니를 경찰서에서

만났을 때의 "혜지"의 낯설어

하는 몸짓, 사실 왜 그 다정했던

"혜지"가 그렇게 가출 생활을

하는 동안 할머니를 떠올리거나

찾아가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대로 대사로 나온


'죽은 아버지의 아내인 엄마가

시장에서 자신을 납치했고

납치된 이후에는 할머니를

못 만나게 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엄마와

새아빠가 죽고 갈 곳이 없어지니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다.'

를 그대로 듣게 되니


뭔가 엄청나게 이 영화가

성의가 없다는 느낌마저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그냥 의례적으로 기대한

플래시 백 정도도 하나

나오지 않은 말로 때우기라고

생각했던 거다.


영화의 주제의식을
제작진과는 다르게
잘 해석해낸
두 배우의 재능이
빗어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성의 없어

보이는 초반부의 내용들을

사실은 나름의 반전들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결락시켰다는 것을

뒤로 가면서 점차적으로

알려주면서 사실은 진지한 영화라고

느끼게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관객들을

가슴 찡한 결말부로

이끌어가는 힘을

중반부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죄책감에 애정이 부담스럽고 고마우면서도 진실을 바로 이야기할 수 없는 양가적인 감정을 정말로 잘 연기해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광범위한

관객들의 몰입감을 끌어들이기

힘들어 보이는 것은

이 영화의 주안점이나

주제가 실제 영화 외적인

목적들에 더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1. 제주도를 홍보

2. 샤이니의 민호의 존재감 부각

3. 한국 사회는 건전하다는 이미지

- 일탈도 너무 심하지 않고

- 미아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끈기 찾아주는 사회 시스템

- 재능 있는 아이를 발굴하는

편견 없는 선생이 있다.

관객들의 이야기 중에 김고은보다 민호가 더 이뻤다는 평가가 많았다. 미안하지만 동의한다.

이런 요소들을 느끼지 않고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둘 사이에는 원사이드 러브 외에는 아무런 화학 작용이 없다. 팬심의 무서움 때문이리라.

이 세 가지가 강박관념과도 같은

선을 영화에 테두리처럼 그려두니

영화는 그냥 잘 식은 적당히 먹기

좋은 죽처럼 변화했다.


건더기가 씹히긴 씹히는 것인지

몸에 좋긴 좋은 것인지

끼니는 잘 때운 것인지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 뒤에 혜지를 데려와서

정성을 다해 잘 키워보려고

하는 계춘할망은 눈물겨운

애정을 보여준다.

정말로 정이 느껴지는 연기였댜. 그리고 떨떠름한 반응도 핑퐁을 치듯이 잘 마주하게끔 해냈다.


할머니는 극 초반에 혜지가

어렸을 때 보였던 그림 그리기에

대한 열망과 재능의 흔적을 떠올려

미술 선생에게 1:1 과외를 부탁하고

이 선생은 못되게 무시하면서도

은근히 제자의 재능을 발휘하게

만든다는 클리셰 성격의 스토리를

잘 만들어 냈다. '용팔이'로

유명한 이 배우의 연기는

전형적인 껄렁껄렁하지만 실력 있고

속 깊은 선생의 역할을 잘 소화했다.


혜지는 이 과정에서

가출 청소년으로 오랜 방황을

해온 막돼먹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겉도는
모습을 보여주는 몇 가지 씬


전학 와서 교단 앞 첫 소개 내용이

반말로 틱틱 거리는 정도라든가

담배를 피우면서 고민한다든가

할머니의 집을 판 통장을 빼돌려

아버지에게 주거나 협박당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위한 합의금으로

주려 한다든가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보인다든가


이러한 씬들이 성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절박한 위기나 극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쪽으로는

잘 어필하지 못한 것 같다.

멀리 도망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솔직한 자신의 애정을 보여주는 위선이자 위선이 아닌 복합연기를 자연스레 해낸다. 이게 재능 아니고 뭐라 할 수 있나?

김고은 씨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서 선천적인 미술의

재능이 있는 것으로 설정된

장면들이 있는데,


제작비의 한계 문제였는지

그 그림들이 정말 재능 있는

화가의 그림처럼 보이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계춘 할망의 초상화라든가

립스틱으로 그려낸 풍경화

마지막에 자신의 전시회에서

나오는 그림들이 일관성 있는

한 사람의 화필로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오!"하는 느낌을

줄 정도로 잘 그린 그림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관객들의 눈의 수준을

적당히 저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미술 등의 소품을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요청만을 하는 것이

일상화된 것이 참여 스태프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허술한

미술 소품들이 배치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디테일에 있어 비어진 공간이다.

그런저런 마이너스 요소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나는

솔직히 여러 번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특히, "고백"이라는 그림에서

나오는 계춘할망이 자신의

두 명(?)의 손녀의 손을 잡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은

절로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전적으로 윤여정 씨와

김고은 씨가 본인들의 연기 역량으로

형상화해낸 그 두 인물들이

보여주는 화학작용이 잘 일어나서

만들어진 것이지, 영화가

잘 만들어져서라고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 영화는

허술함 투성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더더욱

김고은 씨와 윤여정이라는

두 배우의 투탑 연기가

중요했었고, 그 두 배우가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연기의 질은 높았다.

모든 것을 다 지워도 이 두사람이 빗어낸 연기 앙상블은 최고의 수준이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제작진과는 다르게

잘 해석해낸 두 배우의 재능이

빗어낸 것처럼 보였다.


설사 혈연이 아니더라도

온몸과 힘을 다해서

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숭고한 믿음과 사랑의 영역은

종교적인 구도의 영역까지 망라한

윤여정 씨의 깊이 있는 내적 성찰이

없이는 잘 형상화되기 어려운 영역이다.


혜지가 실종된 지 11년 만에

나타나 계춘할망 앞에서

하나의 백지상태의 모습에서

복잡한 내면의 성장과 변화를

일으켜 후반으로 가서는

또한 사랑의 힘으로 감화되어서

다시금 그 사랑의 힘을 전달하는

감정의 극적인 변화를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이끄는 힘은

솔직히 김고은 씨 같은 배우가

아니라면 설득력 있게 그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잠시 엇갈리고

다시 우여곡절 끝에 만나

치매 걸린 노인으로서의

계춘할망의 마지막 날까지

헌신적으로 곁에 있는

김고은의 모습은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서로에게 진심으로 오갔던

모종의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잘 그려진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질문을 남기게 된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고 눈물이 절로 나는 부분이다. 윤여정씨의 연기는 원숙미를 물씬 풍긴다.

윤여정 씨가 원래의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디폴트 상태부터 갖고 있어

의도하지 않아도 보여주는

배우이면서, 동시에

인생의 마지막까지의

변화를 얹어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능력자였다면


김고은은 사실 백지상태의

연기자는 아니겠지만 자신을

관객 앞에서 완전히 비운

백지처럼 만들어 보일 수 있으며

극 중의 배역의 변화와 성장을

그 위에 잘 그려진 그림으로

만들어 올릴 수 있는 능력자였다.


이 두 배우가 없는 이 영화는

상상하기조차 싫고

만약 그랬다면 영화관을

중간에 걸어 나갔을 것만 같다.


하나 오버랩되는 것은

현직장의 사장님.

다소 거리가 있는 혈연 관계지만

계춘할망처럼 성의를 다해서

처조카를 아끼고 있는 것이다.


무엇하나 돌아올 것 없어도

줌으로써 만족하는 사랑.

오히려 영화의 주제는

여기에서 잘 나타나는 것 같다.


영화의 흥행을 돕기 위한

글을 제대로 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분의 마음은

전달 되고 있기를 기대한다.


뭐 딱히 이 글을

김고은 씨나 사장님이

보게 될 일은 전혀 없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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