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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l 05. 2015

<설국열차>-아쉬운 마무리 1%

안타까운 마무리 1% 그러나 99%의 성공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영화 한편을 나름 꽤 진지하고도 재미있게 보았다가도, 마지막에 이르러서 나타난 그다지 내 생각과 잘 들어맞지 않는 결말 하나 때문에 전체에 대한 인상을 구겨야만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때문에 나름 영향력 있는 영화 감독들은 제작자와 타협하거나 영화사와 타협해서 다른 결론으로 영화를 마무리 짓는 현실적인 처세를  종종해야 하고, 이러한 관례들은 때로 그러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감독으로 하여금 "Director's Cut"이라는 감독만이 낼 수 있었던 결론을 넣거나 다른 방식의 편집을 보여주는 또 한편의 영화를 미디어 시장에 내놓게끔 만든다.

나는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의 디렉터스 컷 또는 다른 결말이 들어 있다고 하는 DVD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극장에 걸린 개봉판의 결론이 대중적으로는 가장 타협점이 많은 결론이어서 크게 만족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아주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성향을 지닌 관객이다. 지리멸렬한 영화평을 가끔 쓰긴 하지만 이것이 나를 일반적인 관객들과 다르거나 좀 더 고양된 종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내 감상문을 쓰고 나서 본 뒤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차별성이 없는 관객 1.2.3.으로서의 내 나름의 보편성과 생각을 눈 앞에 마주하고 그냥 이런 차이가 조금 있거나 없다를 아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하게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즐기기에 실제로 독자들도 없는 이 블로그에 때로 글을 남길 에너지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미리 구상을 하고 서본결의 구조를 가지고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심플하게 글을 써가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교과서적으로 쓰여진 수많은 작법들이 있고 글 잘 쓰는 방법들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쓰려고 노력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글은 그렇게 씌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글을 쓰는 동안 내 머리는 다시 회전하고 있으며, 회전한 뒤에 원래의 생각은 변화하고, 글을 쓴 뒤에도 회전하는 생각은 다시 글을 바꾸고 바뀐 글을 보는 동안 글을 써야 하는 주제도 변화하는 일이 내내 내가 글을 쓰면서 매번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설명문으로서의 영화 감상문은 그따위로 쓰여져서는 안된다. 아마도 회사에서 사용할 프레젠테이션이나 발표문, 광고 글귀, 이메일 등은 이렇게 쓰지 않는 것이 내가 사는 방법일 것이다. 실상 위의 내용처럼 비교적 자유롭게 글을 쓰는 방식은 자기 자신의 주장을 담은 연설문이라든가 철학서라든가 이른바 시나리오나 소설, 기타 스토리를 창조하는 일에서 때로 용인하는 글쓰기일 것이다.

연설문은 구상과 기획의 완결판이라도 청중에 호응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소설 또는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만 한다는 명확한 당위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재미있는 글을 쓴다거나 명확한 글을 쓴다거나 하는 정확한 주제를 갖고 쓰는 책이나 글은 주제를 먼저 정하고 정확하게 그 주제가 펼쳐지고 라인이 그려진 도로를 달리는 글쓰기가 펼쳐지는 것이 맞다. 그럼으로써 그런 방식으로 쓰여진 소설론은 실상 새로운 종류의 문화 판매자로서의 소설가나 이야기꾼이 태어나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고 자율성과 독창성과 에너지 등등의 소설가나 이야기꾼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을 불능화시킨다.

소설가라면 적어도 동시대인의 감성을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 딱딱한 구성뿐 아니라 유연한 즉흥성 또한 필요하다.

나는 그런 소설 쓰기의 기본 따위의 책을 열심히 읽고 글을 쓰는 소설가란 존재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책들이 사방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가 지망생들 중에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 있겠고 참고도 될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책은 될 수 없는 부류다. 마치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이 그가 가진 수많은 테크닉보다는 다름 아닌 충분히 독창적인 제품과 그 제품에 대한 열정에 있듯이. 형식이나 기술이라는 것은 대다수의 경우 핵심 내용이 될 수 없다.

다소 미화되더라도 자기가 진실이라 믿고 있는 삶으로부터 이야기를 던지는 것은 다른 감동을 준다.

그러니까 봉준호 감독이라는 이 이야기꾼. 이 감독. 이 각본가가 어떻게 이 영화 설국열차를 만들어 갔을지. 나는 감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주제가 있었을 것이고 대략적인 콘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찍는 와중에 또는 조금씩 더 편집을 다듬어 가는데 영화는 용틀임을 하듯이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을 것이고 수많은 고민을 하는 가운데 찍었던 내용을 폐기해야만 했거나 예정되지 않은 내용들을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들이 발발하다가 어느 순간엔가 영화는 기승전결을 만들고 결론의 모습을 만들고 완결된 구조를 가져야만 했을 것이다.

한국자본의 투자 케이스로는 엄청난 크기의 작품이다. 대중적으로도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까?

그러니까 이 영화는 내가 예상키에 분명히 원본인 프랑스 만화 원작으로부터 모티브는 따왔겠지만 주제의식은 결국 봉준호 감독의 것으로 충분히 대체가 되었을 것이고 그 주제의식을 구현하거나 그 주제의식의 내용 일부 조차도 영화를 찍어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들쑥날쑥 변화하면서 나아간 작품이 분명할 것이라는 거다.

 영화가 내재하고 있는 애국심 마케팅의 힘은 이 영화가 비록 CJ라는 한국 투자자의 자본으로 만들어졌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을 가동하고 유명한 할리우드급 배우들과 함께 찍었으니 할리우드 영화 수준과 같거나 그 이상의 작품처럼 보이기만 한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에 만족하게 만들고 주위에 입소문을 전달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제는 마케팅 비용 엄청나게 뿌린다고 해서만 빅히트가 일어나는 시대가 더이상 아니다.

최근의 할리우드급의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위해 한국 감독이나 배우들이 참여를 했던 작품들이 좀 있었다.

어떤 영화는 규모의 측면에서 컸고 어떤 영화는 제작사의 측면에서, 스튜디오의 위치 등에서 기존과 다르게 접근했다.

이 수많은 시도들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평가서는 아마도 아래와 같았을 것이다.

1. 디워 : F(물론 한국 관객 동원은 800만 수준이어서 이것만으로는 B+도 가능하다). 다시는 CG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장난치는 이런 애국심 마케팅 놀음에 놀아나지 않겠다.

정말 이 극장표 값으로 기부를 했었더라면 얼마나 기분이 가뿐했었을지 지금까지도 후회가 몰려온다.

2. 워리어스 웨이 : D. 심형래보다 조금 더 인식이 바른 감독이 만들었다 해도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것이다. 배우가 아무리 미남이라도 매력적인 대사가 없다면 매력적일 수 없다.

뭔가 주연 배우가 몰입이 되어 있지 않은 듯한 인상이다.

3. 닌자 어쎄신 : C. 비와 같은 배우가 대사를 줄이고 틈새 시장에서 잔인한 액션을 소화하는 몸짱 무술 배우로 살아남는 것은 좀 괜찮다.

분명히 액션씬에 몰입되어 있는 배우는 이런 인상을 풍겨야 한다. 나머지 영화에선 잘 안되었어도......

4. G.I. Joe : B. 연기력 되고 몸도 되는 이병헌 같은 배우가 메이저급 액션 영화에서 출현해서 대사도 좋은 목소리로 잘 하는 건 더 괜찮다.

5. 라스트 스탠드 : C. 퇴물이 된 배우의 첫 번째 복귀작의 감독이 되는 것은 그다지 흥행에 유리한 고지를 잡는 길이 아닐 수도 있다.

6. 스토커 : C. 스타일리시한 감독과 할리우드의 일류급 배우들이 만나도 대중적이지 않은 칙칙한 영화 주제는 흥행과 거리가 멀 수 있다.

7. 미스터 고 : D. 다시 CG가 좀 할리우드를 따라갔네 어쨌네 하는 디워 같은 영화가 돌아온 것 같아 겁난다. 감독의 꿈은 실현돼도 관객의 꿈이 실현되지 않는 비극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심리를 건드렸지 않았을까?

애국심을 강조하면서 중국 시장 공략을 주력으로 하는 알쏭달쏭함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설국 열차는 결국 어떤 평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나는 "A"의 성적표를 결국 설국 열차가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 영화는 CG에 목숨 걸지 않았고, 배우의 매력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았으며, 주로 영어가 사용되는 영화상 환경 속에서 한국 배우들이라는 이유로 입 다물고 몸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에는 번역기라는 영화 속에서 각기 다른 언어의 사람들이 혼성으로 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대화를 오가게 해주는 장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한국인 감독과 배우들이 주어진 여건을 성공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다시 바꾸는 진풍경을 창출했다.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이 번득이는 동시에 이제 봉 감독은 자신의 카드인 송강호 씨를 영어권 관객들과 한국 관객들 양쪽에 좀 더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잘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물론 봉 감독은 한국 내에서의 흥행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 또한 어느 정도 주의를 충분히 기울였다. 인터뷰만 나오면 그는 한국 배우들 덕분에 영화를 찍을 힘이 났다를 반복했다.

한국말을 사용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음에 틀림없었다.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까? 400억의 제작비를 쓰고서 나와야 할 결론은 한국 관객들 대다수가 만족하고 외국인들도 이에 맞춰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울림의 확대 효과였을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이 영화를 찍었는가를 누군가 묻는다면 봉 감독은 한국 관객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죽자고 한국 매체들 앞에서는 지겨워도 반복해서 말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외국 배우들이야 게런티가 괜찮아서 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면에서 봉준호 감독은 언론 노출에 대한 원칙과 더불은 기술적인 인터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암튼 처음부터 그 끝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분명히 1~7까지 우리 관객들이 겪었을 실망감을 뛰어넘는 비주얼과 스토리를 끌고 간다. 그러나 분명히 결말의 순간 이 엄청난 열차의 달리는 파워, 그리고 예정된 파국 아닌 파국으로 가는 그 끝장면에 이르렀을 때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무엇인가가 "팟"하고 끊겨버리는 듯한 느낌에 빠질 수가 있다. 결국 이 결말 부분이 흥행할 수 있을 것인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 되어버렸다. 쥐고서 잘 먹고 있던 핫도그를 빼앗아 가버린 기분마저 들었다.


왜 이 장면이 두고두고 생뚱맞게 느껴지는지...나만 그런건지 싶다.

그리고 이 영화와도 마찬가지로 나는 이 쯤에서 이글을 생뚱맞게 마치고자 한다. 생각해보니 밤이 너무 깊었고 에너지가 없고 할 일이 아침 일찍부터 잡혀 있다. 봉준호 감독에게도 그렇게 끊지 않을 수 없었을 수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제작비일 수도 있고 기간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스토리가 좌충우돌하고  용틀임하는 가운데 관객과 봉준호 감독 사이의 어느 지점인가 약간 불안한 곳에서 끝장이 나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살짝 떨어진 그 어느 순간 만들어진 결말 같은 느낌을 벗어던질 수가 없다.


이 결말을 아예 빼버린다면, 차라리 극도로 고도화된 씬에서 끝나 버린다면 그리고 나서 열린 결말로 남겨두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아직도 열차는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흥행성적에 따라서는 Snowpiercer 2가 나왔을지도 알 수는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크리스 에반스도 송강호도 애드 해리스도 사라진 비 대중적인 결말에 짜증이 조금 난다. 그 이외의 99%에 대해서는 난 만족한다. 다만 영화 전체를 한두 가지의 짜증스러운 부분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영화의 결말이 다소 재미없게 끝날 수도 있는 정황을 "나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그러나 영향력은 거의 없는 이야기꾼)에게 빗대어"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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