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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신 Jan 31. 2023

01 도빈의 요즘 계획

 


도빈은 늘 계획이 있다. 계획이 있어야 성공이 있을 터이니 성공은 계획에 달렸다고 믿다. 가령 도빈은 집 앞마당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밤바다에 뜬 한치잡이배 갈치잡이배의 줄줄이 늘어선 집어등 불빛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서울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아, 이게 바로 계획의 중요성이라니까! 고개를 끄덕다. 누군가는 그게 도대체 계획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싶겠지만, 도빈에게는 그것이 다 계획이 부른 결과였다. 멸치가 오고 뒤로 한치가 오고 뒤로 고등어가 오듯이. 도빈은 바로 그 뒤로 주머니 속에서 와인 잔을 쓰윽 꺼내 그 누군가를 향해 치어스를 외칠 수도 있었다.   

"야, 그건 계획이 아니라 게틀레기(소라게) 공상이야!"

불쑥 집어등 불빛을 가리며 양배추가 나타나거나,

"야 야 이놈아, 정신이 이시냐(있냐) 어시냐(없냐)?"

머니가 그 단단한 손바닥으로 등짝을 후려치지만 않는다면 집어등 불빛 속을 뚫고 부릉부릉 배기음을 울리며 서울 8차선 도로를  달리는, 보스호스 바이크에 척하고 올라탄 스무 살의 자신도 볼 수 있었다.


계획과 공상과 정신이 그토록 다른 것인가? 도빈은 되묻고 싶었다.   


어쨌든 도빈의 요즘 계획은 '그녀'였다.


도빈은 요즘 계획을 기념해, 계획 앞으로 첫 발짝을 내디딘 날 제법 긴 일기를 썼다.  그 일기의 서두는 아래와 같다.


     


    

나는 열일곱에, 정확히 말하자면 제주의료원 산부인과 병동에서 태어난 지 15년 8개월 4일째 되는 날, 그녀를 향해 첫 발짝을 내디뎠다. 1-3반 교실에서 1학년 교무실까지 217걸음. 한 발 한 발 숫자를 세며 신중하게 걸었다. 그런데 양마리, 아니 양배추가 나타났다. 교복치마 아래 무릎 나온 추리닝 바지를 받쳐 입고 쓰레빠를 찍찍 대며 대걸레를 거꾸로 들고, 졸졸 따라왔다. 떠버렸다.          


“아이고야,  소나이의 사랑은 위대하주게.
암요, 위대하주게마씸
용왕님, 저 소나이의 공상을 외면하지 말아줍써예.”
     

  도대체 뭐라는 건지? 양배추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갯강구가 득실거리는 동네 바닷가 방파제 테트라포드 속에 처넣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꾹 참았다. 대신 손에 쥔 신청서류를 가슴에 꼭 품었다. 부정 타지 않도록.






"해녀학교에 간다고? 왜에?"

그날 담임은 도빈이 내민 서류, 그러니까 담임추천서와 학교장 추천서를 약 2초간 들여다본 뒤 그렇게 말했다.

“그야, 계획! 아니죠. 바로 풍부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죠.”

도빈의 대답에 담임이 피식 웃었다.   

“그래?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해녀학교 경험이라~”

담임은 말꼬리를 길게 뺐다. 도빈은 준비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에~ 그게 저희 할머니도 해녀시고, 또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배우고 익힐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해녀는 유네스코에도 등재됐잖아요. 수업료도 도에서 전액 지원해 주고, 토요일에 하는 거니까 공부에 지장도 없고요.”

물론 도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일곱은 생각과 말을 다르게 다룰 줄 아는 나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해녀가 아니고 해녀 문화고, "

담임은 또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여하튼 알겠고! 추천서를 써 달라는 거잖아?”

도빈은 김이 샜다. 담임은 놀라고, 격려를 받으며 추천서를 작성한다. 도빈의 계획은 그러했다.    

도빈은 교무실에 들어설 때의 기세와는 다르게 얌전히 두 손을 모으고 담임의 하명을 기다렸다.  

“너, 만약에 합격해서 다니게 되면 학교 망신시키는 일 없게 해. 만약 그런 일 생기면."

담임은 말을 끊고 뜸을 들였다. 도빈은 뭐라고 하든지 오케이를 할 생각으로 담임의 입을, 립밤을 발라 번들번들한 중년 남성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 진로탐색 특별반에 들어오는 거다, 알겠어?”

순간적으로 도빈의 얼굴이 썩었다. 들킬세라 도빈은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예, 예.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모범적으로 행동하겠습니다.”

 도빈은 담임이 만든 진로탐색 특별반에 들어갈 생각은 1도 없다.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튈 거니까. 그리고 도빈은 정말 얌전하게 그녀 옆에 있을 생각이다. 5월부터 8월까지. 5월은 멸치처럼 6월은 한치처럼 7월은 고등어처럼 8월은 수애기(돌고래)처럼. 도빈은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해서 일부러 입을 꽉 다물었다.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뒤돌아서 나오는데 담임은 도빈의 뒤통수에 작은 돌멩이를 연속으로 날렸다.   

 “아, 너. 할머니한테 허락은 받았지?”

도빈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야, 야! 잠깐만, 너 양마리랑 같은 반인가?"

'아, 왜 하필 또 양배추 얘기가 나오냐고.'

도빈은 진저리를 쳤다.

"아니요! 아니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도빈은 급기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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