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풀냄새가 진동하던 여름날의 어느 때다.
비가 내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던 한여름, 아스팔트 표면은 빗물이 기화되어 아지랑이처럼 우글거린다.
조용하던 찻길과 길가에는 마른 땅에 물이 차오르듯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나는 마지막 계단 넘어로 흐릿하게 보이는 아파트와 산으로 들어가는 왼쪽 작은 길을 유심히 살펴본다.
산으로 가는 입구길 왼편에는 작고 낮은 단독주택들이 산길을 따라 촘촘히 붙어 있고,
각각의 담장에는 이름 모를 덩굴들이 올라붙어 있다.
비가 그친 걸 확인하고 나는 다시 계단 밑으로 뛰어 내려간다.
낮이지만 혼자 산에 간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는 상상도 할 수 없어 급히 동생을 찾았다.
동생은 항상 형의 말을 들어줬고 뒤를 지켜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동생이 함께 있었는지조차 흐릿하지만, 산길 옆 노란 호박에 내려앉은
금파리를 함께 쫓던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면 동생은 분명 곁에 있었을 것이다.
산길로 올라갈수록 높고 낮은 오래된 소나무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걸어 들어갈수록 주변이 어두워진다. 5분간 어두운 숲길을 걸어 나오면
뻥 뚫린 하늘 아래 논밭이 펼쳐진다. 비닐하우스도 보이고 좁은 강줄기와 작은 웅덩이도 보인다.
웅덩이 안에는 올챙이들이 떼를 지어 그림자를 피해 도망다닌다. 얕은 물이지만 징그러운 곤충들이 너무 많아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 흙으로 만들어진 길에 가만히 앉아 올챙이를 시선으로 쫓는다.
내가 앉아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아늑하다. 사방이 키 큰 풀들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오두막의
비밀 공간 같은 느낌이다. 동생이랑 대화를 하면 방음 공간에 있는 것처럼 먹먹하고 울림 없는
또렷한 말소리만 들린다.
동생과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그 나이대에 순수했던 아이들이 하던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한참을 동생과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니다가 나무판으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담벼락 사이에서
사마귀의 알을 발견한다. 처음엔 사마귀 알인지 몰랐지만 집으로 돌아가 곤충 전집을 보고
사마귀의 알인 것을 알게 됐다. 그 당시에는 스펀지 같은, 또는 먹다 만 껌을 붙여 놓은 것처럼 보여,
나뭇가지로 찌르고 바닥에 떨어뜨리곤 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고는 그날 내내
큰 잘못을 한 것 마냥 불편한 마음으로 반나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다음 날 아침, 집 안 유리창 밖으로 울렁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보고 다시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창문을 열어 보니 사람들의 다리가 보인다. 반지하에서 살다 보면 사람들의 전신보다는 정강이가 먼저 보인다.
반지하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살았던 곳은 다리만 보이거나 자동차의 바퀴만 보이는 곳이었다.
창문은 주방과 작은방에 가로 50~60cm 정도 크기로 두 곳이 있었고 미닫이 형태였다.
성인의 다리로 한 보만 옆으로 가면 현관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그 계단 옆에
작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노란색 백열전구가 있고 항상 연탄과 가스 냄새가 났다.
화장실 문 앞 맞은편에는 알 수 없는 집기류들이 쌓여 있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 편에 방으로
들어가는 구리 문틀 유리문이 있었다. 방은 두 개였는데 입구에서 왼쪽에 작은 방이 있었고
그곳은 동생과 내가 함께 쓰는 방이었다. 그 방에는 지금도 만들어지는지 모르겠지만 형광등 설치가 가능한
‘피노키오’라고 적힌 책상이 두 대 놓여 있었고 동생과 내가 각자 사용했었다.
왼쪽 책상의 좌측에는 한 칸짜리 장롱과 주방과 같은 크기의 창문이 있었고,
오른쪽 책상 우측은 벽이었는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나는 벽에 각종 동물과 곤충들을 그리곤 했다.
기억에 남는 그림은 치타였던 것 같다. 치타가 달리는 모습을 책을 보고 그렸었는데 채색까지 해서
잠잘 때 누워 바라볼 때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던걸 보면
어머니도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방의 문틀을 넘으면 바로 안방인데 그곳에는 작은 서랍과 쌀통이 있었고
그 위에 이불이 가지런히 얹혀 있었다. 옆으로 브라운관 TV가 한 대 놓여 있다.
그곳이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살았던 집이다. 평소에도 햇빛을 보기 힘들었지만 대낮에
비 오는 날이면 햇빛 대신 노란 전구를 햇빛처럼 보고 앉아 있었다.
필라멘트에 열이 올라 빛을 내는 것이 신기해 똑딱이 스위치를 여러 번 눌렀다가 혼이
났었던 기억도 생각났다. 하얀색 형광등보다 노란색 전구를 보는 게 좋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태양과 같은 색에 온기도 있어 따뜻했기 때문이다.
노란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면 햇빛에 안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하얀색 전구보다는 노란색 전구를 좋아해 방 곳곳에 비슷한 색온도의 전구를 끼워 둔다.
몇 년 전에는 화장실도 같은 색이었지만 지금은 함께 사는 사람의 취향에 맞춰 흰색으로 바꿨다.
반지하에서 몇 년을 살았을까?
2년, 3년… 여름 두 번 겨울 두 번이었던 것 같은데 그곳의 기억이 유독 오래 남는다.
왜 그럴까? 동생과 갈등 없이 정말 순수하게 어울려 놀았던 장소여서였을까?
그곳을 생각하면 항상 아련한 필름 영화처럼 기억된다.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그곳에 살던 때 겨울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생과 나는 내복만 입은 채 밖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다.
한겨울 눈이 내리던 밤이었다. 두부 장수 아저씨가 종을 흔들며 돌아다니던 시간이었고 동생과 나는
살구색 내복을 위아래로 입은 채 울면서 밖으로 쫓겨 나왔다.
갈 곳이 없어 건물 앞에 주차된 은색 승용차 뒤쪽에 숨어 동생과 웅크리고 있었다.
쫓겨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녁에 이를 닦지 않아 아버지에게 혼쭐이 난 상태였고
결국 밖으로 내쫓긴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동 학대에 해당되는 일일지 모르지만
그 시대에는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잘못을 하면 폭력으로 아이들을 다스리던 세상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상황조차 지금은 추억처럼 따뜻하게 느껴진다.
추운 날 동생과 꼭 껴안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자동차 뒤쪽에서 울고 있었던 기억…
동생의 몸은 유난히 더 작았고 따뜻했다.
그리고… 그때 동생을 더 꽉 껴안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