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확인을 한 첫 병원 방문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로 향한다. 별로 웃기지도 않는 농담에 웃음이 나오고 표정이 밝아진다.
우리는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길을 걸었다. 우리의 웃음소리에 길 옆 마른 풀들 사이에서 햇살을 쬐고
있던 참새 떼들이 푸드덕대며 하늘로 날아간다.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말수는 적어지고 긴장과 설렘에 마음이 떨린다.
조심히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나 못지않게 긴장된 표정이다. 얼마나 자랐을까.
2주 밖에 지나지 않아 작은 콩 정도의 크기일 텐데 벌써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망상을 해본다.
오늘도 대기실에는 젊은 부부들과 이미 걸어 다니는 아이들이 부모들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나와 아내는 걸어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한다.
방금 초음파 사진을 들고나오는 부모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고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연신 사진을 들여다본다.
알아보기 힘든 초음파 사진을 들고 숨은 그림 찾듯이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서로에게
설명하는 부부들을 보니 귀엽기까지 하다.
대기만 30분.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왔다. 지난번과 동일하게 아내가 먼저 들어가고 이후 내가 들어간다.
그래도 한 번의 경험이 있다고 나는 모니터를 미리 쳐다보고 있다.
여전히 알아보기 힘든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의사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모니터실 밖으로 나와 조심해야 하는 음식과 여러 가지 주의 사항들을 듣고 다시 2주 뒤에 보자고 한다.
이번에는 초음파 사진 여러 장을 들고 진료실을 나와 자리에 앚는다.
추상화 같은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니, 조금 전 보았던 부부들의 모습이 꼭 우리 같았다.
그 부부들은 손이라도 움직여 이야기를 하는거 같았는데 우린 그냥 보기만 했다.
난 사실 어떤 점이 우리 아기인지 몰라서 아내에게 물어본다.
아내는 우측 원 안에 들어가 있는 작은 점 하나를 가리키며 이 점이 우리 아기라고 상냥하게 말해준다.
작고 “귀여운 하얀 점” 이다.
중학교 과학 시간 우주에 대한 수업을 듣고 궁금한 점이 많았었다.
그 나이 때 궁금한 것이 많다고 해서 선생님께 바로 질문할 용기가 있었던 나도 아니었고
내성적인 아이는 과학 잡지를 찾아보며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백에 무수히 반짝이는 점들이 흩뿌려진 하늘. 우주를 처음 접했을 때
공부에 욕심이 없어도 충분히 궁금해할 것들은 책을 보며 상상했었다.
성인으로 자라면서 우주라는 것에 정보가 쌓여갔다. 우주는 검정이 아니라 어두운 회색이다부터 해서
보이저의 눈으로 본 지구를 지칭해 “창백한 푸른 점” 이라고 명명하는 걸 보고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었는데
지금 내 눈앞엔 우리만을 위한 “따뜻한 하얀 점”이 있었다.
이 작은 점이 우주라는 곳에 안전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몇 개월 뒤면 밖으로 나온다니…
벌써부터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요동친다. 어쩌면 지금 이곳이 가장 안전한 우주일 텐데.
세상에 나오는 순간 수없이 많은 상처를 받아 가며 내가 걸어왔던 또는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갈 것이다.
행복만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건강하게,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나는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싶다.
아내와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왔다. 다른 세상에 있다가 나온듯한 느낌이었다.
그날은 가보지 않은 길로 집까지 걸어가 봤다.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눈으로 새겨가며 아내와 걸어간다.
상쾌한 겨울 공기에 눈 쌓인 길을 보니 아내를 처음 만났던 겨울이 생각난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 아내를 만나게 됐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서로 같은 길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며
서로를 닮은 아기를 상상해 보고 있다.
고요한 우주에서 이 세상으로.
설사 이곳이 힘들고 거친 곳이라고 할지라도
너는 이 세상으로 꼭 나와야 할 이유가 충분한 존재다.
아빠와 엄마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