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아내가 출근을 하고 집안이 조용해졌다.
강아지 두 마리도 함께 살고 있어 방 밖에서 부산스럽게 발을 구르는 소리가 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반가운 소리다. 방에서 누군가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척이다.
한 녀석은 나를 기다리고, 다른 한 녀석은 아침밥을 기다리는 중이다.
강아지는 내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존재다. 어릴 적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있었던 존재.
이 녀석들을 품에 안고 있으면 작게 뛰는 심장 소리가 나를 조용히 붙들어 준다.
비록 지금 그 친구들도 나를 떠났지만, 새로운 가족으로 다시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작고 귀여운 존재들이다.
하루의 루틴을 이 친구들의 아침 안부를 확인하면서 시작한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 주방에 서서 밥그릇에 사료를 채운다.
편으로 잘린 고구마를 양쪽 그릇에 나누어 담고, 한쪽에는 삶은 달걀 흰자를 부숴 올려놓는다.
물이 바닥에 살짝 깔리게 붓고 전자레인지에 두 그릇을 30초 돌려, 싱크대에 사료가 물러질 때까지 올려놓고 기다린다.
어느새 두 녀석은 내 옆에 앉아 나를 올려다본다. 사랑스러운 녀석들이다. 행복한 순간들이다.
아침을 해결한 녀석들은 나와 잠깐의 교감을 나눈 후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이제 나의 시간이다. 음악을 재생시키고 매일 먹는 루틴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아침에 먹는 음식은 간단하다.
그릭 요거트 40g, 오트밀 20g, 아몬드 4개, 해바라기씨 조금, 블루베리 80g, 단백질 음료 330ml를 섞어서
시리얼처럼 먹는다. 지금은 먹는 양을 체크하지 않지만 얼추 그 정도 양이라고 생각하며 대충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막내 강아지와 외부로 나갈 준비를 한다. 첫째 강아지는 나이가 있어 외부로 나가는 걸 귀찮아하는 것 같아
조금 더 젊은 둘째 강아지와 산책 겸 바람을 쐬러 나간다. 사실 내가 매일 먹는 커피를 사러 겸사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아마도 같이 외출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간다.
나는 커피에 조예가 그렇게 깊지는 않지만 그 분위기와 여유는 나름 즐기는 편이라, 앞으로도 되도록
이런 시간을 일부러라도 가지려고 한다.
책상에 앉아 커피를 컵에 옮겨 담는다.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고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본다.
세…상……
조용히 숨을 고르며 “세상”이라고 말해 보니, 나에게는 정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상태가 아니었나.
나와 아내를 닮은 작은 아이가 태어날 예정인데, 난 왜 이렇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걸까.
뭐가 부족한 걸까. 남들처럼 분명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이곳저곳에 전화를 해 가며 자랑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좋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정말 좋은 일인 거겠지. 아니, 좋은 일이잖아…
몇 시간 동안 한참을 생각하다가 책상 구석에 있는 시계를 본다. 벌써 2시 40분이다.
둘째 강아지를 안고 집 앞 아파트 단지로 두 번째 산책을 나간다. 바람이 춥고 익숙한 겨울 냄새가 난다.
이곳을 산책하면 매번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이곳 또한 나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낮은 빌라와 오래된 판잣집, 그리고 목장갑을 제작하는 작은 공장, 휴지를 납품하는 작은 창고형
회사, 복싱장, 유치원, 교회, 구불구불한 골목길들. 최소 20년은 더 돼 보이는 빌라가 빽빽하게 있던 작은 동네였던 곳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금은 지하철이 다니는 길목에 철길 건널목이 있었다는 것인데,
하나뿐인 철길에 기차가 지나갈 때면 종소리가 울리고 석탄을 실은 기차가 느릿하게 한참을 지나갔었다.
건널목 바로 앞에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유와 과자를 샀던 기억이 있다.
30대 초반 그리고 40대 초반, 유난히 힘이 든 날이면 꿈속 이곳에서 나를 소환한다.
꿈의 시작점은 항상 같다. 밤에 철길 건널목 옆을 걷는 꿈인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자 걷고 있다.
앞과 뒤를 돌아봐도 사람의 흔적은 없고 발자국만 남아 있다. 건널목 쪽에 다다르면 석탄을 실은 기차가 지나간다.
꿈속에서는 항상 같은 시각, 같은 타이밍에 이 상황이 반복된다. 내가 그 풍경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닥은 늘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이고, 밤하늘에는 별이 수없이 많았다.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나면 한동안 기분이 가라앉는다.
내 정신과 마음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그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 아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본다. 아들일까. 딸일까. 노트를 펴고 이름을 적어본다.
나를 닮은 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무서워진다. 여자아이라도…
나를 닮은 여자아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펜으로 꾹꾹 눌러 이름을 적어본다.
그냥 레퍼런스를 찾는 것처럼 이런저런 단어와 의미들을 생각해 보며 조합해 본다. 내 결정보다 중요한 건
아내의 결정이다.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건 나의 몫이다. 설사 내가 마음에 들더라도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나도 선택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몇십 개의 후보 이름들을 만들어냈고,
다행히도 결국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이름으로 결정을 했다.
나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아들에게만 어울릴 이름이다. 이미 만들어 놓은 것 중에서 조합해
딸의 이름을 만들어 보려고 하니 아들 이름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한자어가 아닌 한글로 만들어 보니 조금 더 만들기 쉬워진 듯했지만 오히려 더 어려웠다.
아들의 이름보다 더 신경 썼고, 더 의미를 부여해 만들어 봤다. 적어 놓은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난 내 이름의 의미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딸의 이름을 다시 지운다.
아내와 나의 추억에서 가장 의미 있고 포인트가 될 만한 단어를 생각해 적어본다. 썩 괜찮다.
아내가 좋아해 주길 바란다. 내 앞에 있는 꺼진 모니터 화면에 뿌듯해하며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이 비쳐 보인다.
아이 생각을 하며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됐다. 생소하고 어색하다. 이내 웃음을 거둔다.
나는 내가 웃는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어색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웃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 위치에서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갖고 있어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자식의 이름을 지으며 웃는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되레 좋아 보였다.
그렇게 웃는 나를 처음으로 괜찮다고 느낀 순간이다.
이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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