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양동이 속 개구리는 몇 마리였을까. [ 2 ]

by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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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시대라지만, 산부인과에는 오전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아내와 산부인과를 가는 날이다.

덤덤한 마음으로, 조용히 옷을 갈아 입고 아내 곁으로 갔다.

아내는 밝고 말이 많은 편이라, 그 사이 나를 챙겨준다.


아내: “아침이라 추울 것 같아. 따뜻하게 입어.”

: “추운데 택시 탈까? 그냥 걸어가도 괜찮겠어?”

아내: “추워도 걸어가자. 그렇게 멀지도 않잖아.”

: “나야 걷는 거 좋아하니까… 그래, 걸어가자.”


아파트 사이를 10분 정도 지나, 천 근처 공원 길목에 접어들었다.

임신 전 초겨울, 이 길에서 아내와 러닝을 몇 번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름이 갓 지난 탓에 공기는 선선했고, 마른 풀 냄새와 물 비린내가 코를 스쳤다.

하얀 눈이 검은 아스팔트와 이름 모를 풀들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마치 축하받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30분쯤 걸어 산부인과가 있는 신도시에 도착했다.

아내는 지쳐 보이지 않았지만,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아내: “오히려 임신 초기에는 많이 움직이는 게 좋대.”

: “응, 나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신도시 아파트 몇 블록을 지나자, 복합 상가와 번화가가 보였다.

나는 이 동네에서 30년 이상 살았던 토박이지만, 서울에서 몇 년 살다 돌아온 후 이렇게 변했는지 몰랐다.

( 정확히는 평소 옆동네에 갈 일이 없었기에, 그 변화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냈다. )

산과 작은 천, 비닐하우스만 있던 동네는 이제 아파트와 상가들로 가득했다.

정말 내가 알던 곳이 맞나 싶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내와 이야기하다 왼쪽을 돌아보니, 유모차를 밀며 들어오는 부부가 멀리서 보였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대였다. 아기가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몇 개월 후면 우리도 저런 모습일 거란

생각에 가슴이 저릿했다. 아이를 특별히 기다린 것도 아니고, 평소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역시 이런 생각 뒤에는 항상 걱정과 불안이 따라왔지만,

나는 최대한 좋은 생각에 집중하려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3층 홀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총총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웃고 있는 예비 부모들, 초조한 남편, 긴장한 아내

이 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얼굴들이 나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한다.

아직 9시 30분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우리는 진료 접수 후 남는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댔다.

아내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뜻으로 아내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주시한다.

그렇게 30분쯤 지나자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료실 맞은편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듣고 자리를 옮겨 앉은 뒤,

다시 5~10분이 흐르고서야 마침내 우리 차례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담당 의사와 가벼운 인사 후 자리에 앉았다.


의사: “첫 임신이시죠?”

아내: “네.”

의사: “그럼 우선 아내분은 안쪽에서 간단한 검사 후, 초음파 확인해 볼게요.”


진료실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더 초조했고 적막감이 흘렀다. 깊은 한숨을 조용히 내뱉는다.

옆방에서는 아내와 의사의 대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1~2분쯤 지나고…


의사: “남편분, 안으로 들어오세요.”

: “네, 알겠습니다.”

의사: “위쪽 모니터를 보시면 하얀색 점 같은 게 보이실 거예요.”

: “아… 네.”

의사: “아직 아기는 아니고, 이 하얀 점이 점점 커지면서 아기집을 채우게 될 거예요.

자, 보시는 것처럼 점 하나죠? 단태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직 아기는 아니고, 변화하는 단계예요.”

: “네…”


모니터 화면 안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콜라주 같은 패턴들이 있었고,

원형의 공간에 하얀 점 하나가 찍혀 있는 걸 발견하고서야 이게 의사가 말한 하얀 점이구나 싶었다.

한참을 바라봤다. 주변은 고요해졌고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차올랐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단순히 벅차오르는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그러다 떠오른 건 “우주”였다.

검은색 배경에 흰 점.


“이 작은 점… 내 삶의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 거구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이 생각 하나 뿐이었다.


다시 주변이 고요해졌고 아득해졌다.

나는 먼저 모니터실을 나오고 아내가 곧이어 따라 나왔다.


의사: “임신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2주마다 확인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우리: “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기된 얼굴에 기쁨의 표정이 어려 있었다.

마치 한 고비를 넘긴 듯한 기분이었다. 아랫층에서 추가 검사를 마친 뒤 산부인과를

나와, 걸어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온다.

발걸음은 가볍고 복잡했던 마음도 어느 정도 안정된 느낌이다.


아내: “나 임신이래! 너무 잘 됐지, 그치?”

: “응, 잘 된 것 같아. 성별 확인은 아직 멀었겠지?”

아내: “그래도 최소 한 달 이상은 있어야 할 거야. 넌 어떤 성별을 원해?”

: “아들, 딸 상관없는데, 요즘은 딸이 좋을 것 같더라.”

아내: “나도 딸! 친구들한테도 난 딸을 낳을 거라고 말했어.”

: “하하, 그게 마음대로 되겠어?”

아내: “그냥 아들도 괜찮고 딸도 괜찮고, 굳이 말하자면 딸을 더 선호한다는 거지.”

: “그래. 아직 성별은 알 수 없으니까, 우선 건강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 햇살은 한층 더 깊고 따뜻하게 내려앉았고,

차가운 입김마저도 그 온기 속에 스며드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