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양동이 속 개구리는 몇 마리였을까.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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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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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아내의 뱃속에 아기가 있었을 때, 산책 삼아 동네 천을 거슬러 산부인과까지 걸어 다녔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이라 기쁨과 염려, 그리고 불안을 함께 품은 채 앞으로 마주하게 될 현실적인

상황들을 이야기했었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걷고, 햇살이 좋은 날에도 함께 걸으며

아이의 이름과 앞으로의 양육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서로 길을 걷다 말이 없어질 때면,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이런저런 걱정에 빠지곤 한다.

혹시나 하는 아이의 건강에 대한 염려와 세 식구가 살아갈 방향, 그리고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지,

또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들. 생각을 거듭할수록 걱정과 불안은 점점 증폭되어 간다.


나는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애써 떠올리려 해도 없다. 나와 동생에게 장난을 쳤던 어렴풋한 장면이 스치듯 떠오르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런 기억은 내게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불편한 기억들만이 잔존해 있다.

부모가 다투던 기억, 그리고 나와 동생을 나무라던 기억들. 글을 적으며 차분히 되짚어 보니,

목욕탕을 함께 찾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 기억은 좋은 기억이라기보다는,

아버지와 무언가를 함께했다는 흔적에 더 가깝다.

내 등을 밀어주던 아버지, 동생과 목욕탕에서 어울려 놀던 기억들.


목욕탕 밖으로 나와서 동생과 나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우리는 아버지의 기색을 헤아리며 뒤를 따라 걷는다. 나와 동생은 눈을 마주치며 장난을 치지만,

곧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우리가 장난치는 모습을 혹여 들킬까 조심스럽게, 비밀스럽게 시선을 나눈다.

집에서는 크게 웃지도 못하고, 장난도 쉽게 치지 못한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은, 정말이지 극심한 무료함과 우울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나와 동생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의 모습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싸움의 주된 원인이었던 아버지의 술버릇과 폭언 속에서

어머니 곁을 지키던 동생은 점점 마음이 잠식되어, 끝내 세상을 등졌다.


그 후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슷한 가정사를 접하다 보면, 결국 상처받은 사람이 용서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불가능하고, 그렇게 미화된 결말로 끝낼 수는 없다.

이 상처와 고통은 내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라고,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듯하다.


동생이 떠난 지 14년쯤 지난 지금. 마흔이 넘어서야 부모의 혼인 관계는 법적으로 정리되었고,

그만큼 동생에 대한 그리움도 한층 깊어졌다. 어릴 때를 제외하면 생전에 그렇게 살갑지도 않았던 관계였는데,

왜 이토록 동생이 그리운지 지금도 문득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터져 나온다.

길을 걷다 동생을 생각하면 울컥하고 마음 한켠이 저려온다.

외로움을 크게 타지 않던 나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형으로서조차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나인데…


내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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