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양동이 속 개구리는 몇 마리였을까. [ 10 ]

by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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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곳은 반지하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저층 빌라다.

당시 중학교 때 이사를 왔고,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빌라였다.

이사가 완료되고 아직은 집 크기에 비해 짐의 양이 많지 않아 거실 창문 쪽에

3명이 나란히 누워 창문 너머 해지는 하늘을 바라봤었다.


( 그 당시 건물 앞쪽은 낮은 집들만 있어 날 좋은 날에는 버스정류장으로 3개 정거장 앞도

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의 전망이었지만, 지금은 아파트가 지어져서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오래된 저층 빌라다.)


그때도 아버지의 흔적은 기억에 없는 듯하다.

어머니, 나, 동생은 나란히 거실 창문 앞에 누워 노을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제 이곳이 우리 집이에요?

어머니: 어, 이제 이사 안 가도 될걸?

동생: ( )

: 이사 안가면 여기서 계속 사는거에요?

어머니: 그치? 어른이 될때까지 계속 살아도 돼.

동생: ( )


동생도 무슨 말을 한 것 같은데 결국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날때마다 동생의 말을 기억해내려 해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곳은 네 번째로 이사한 집이다. 첫 번째 집은 내가 힘들 때면 소환되는 장소인

기찻길 옆 작은 목장갑을 제조하던 공장 뒤편의 작은 셋방살이 집이었다.


이곳의 외관은 판자를 덧대어 놓은 허름한 단독주택 같은 모양이었고, 대문을 들어가면 장갑을 만드는 기계들이 앞쪽에 일렬로 정렬되어 시끄러운 기계음을 낮 동안 내내 들을 수 있었다.


공장 입구 우측으로 작은 계단이 있는 골목이 “ㄱ”자로 15m 정도 이어진다.

그 끝에 굴곡 하나 없는 평평한 시멘트 벽면에 한 사람 정도가 겨우 출입할 수 있는

작은 문이 우리 집 현관문 입구였다.


이곳의 구조도 특이했었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2평 남짓한 주방이자 현관이었고

아궁이 같은 것 옆에 수도꼭지와 양철 대야가 녹슨 못에 걸려 있었다.

주방 물건도 많지 않았고 필요 이상으로 천정이 높았다.


바로 왼쪽에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에 다락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당시 나의 키로는 다락방으로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문의 위치가 이상하게 위에 배치되어 있었다.


밑에 3단 서랍장이라도 놓아야 겨우 밟고 올라갈 수 있는 높이에 다락방 문이 있었던 것이다.

그 집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한 번 올라갔었는데 묘하게 소름끼치는 다락방이어서

다락방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정사각형 방 한쪽에는 체리색 장롱이 있고 좌측에는 서랍장 위에 역시나 브라운관 TV가 있었다.

어느날 저녁 아버지가 출장을 이유로 일주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었다.

잠을 자다 깨서 어머니께 아버지는 언제 집에 들어오냐고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


( 그때는 아직 아버지에 대한 정이 있었던 때였고, 내가 가장 아버지를 원했던 시기였기도 했다. )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현관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목 담벼락 옆은

다른 단독주택의 계단 쪽 담과 10cm 정도로 가깝게 맞닿아 있었는데

이 골목을 지나갈 때면 집안에서 옆집 아이들이 노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었다.

심심한 날에는 담벼락에 기대 아이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며 몇 시간을 앉아 있곤 했었다.


세 번째 집 또한 낮은 층수의 빌라였다. 층수는 3층이었고 꼭대기 층에 집주인이 살았었는데

이혼한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사는 것 같았다.


빌라의 위치는 높은 건물들 안쪽에 지어져 대낮인데도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도 아직 존재하고 있는 집이지만 5년 전 궁금한 마음에 골목길 안쪽까지 들어갔다가

기분이 좋지 않아 바로 뛰쳐나왔었다.


이 집이 항상 어머니가 누워 계시던 그 집이었고 나와 동생이 청소를 가장 열심히 했던 집이었다.

그 집에서는 반지하보다 더 많은 악몽을 꾸었던 집이었는데 그곳에서도 2년 정도를 살았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집주인의 어머니가 무속인이었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네 번째 집은 반지하에서 15분을 걸어가면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가 있고

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오래된 일자형 상가 건물이 좌측에, 우측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 좁은 골목길로 걸어 내리막길을 5분 정도 가다 보면 왼쪽에 작은 빌라의 중간층이 있다.

나이 40세가 넘어 다시 돌아온 나의 집이다. 이곳은 나의 평생 동안의 트라우마를 안겨줄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곳이다. 지금은 어머니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이기도 하다.


내가 회사를 퇴사할 무렵 이사를 하게 되었고, 이사 온 당일 나는 혼자 창문을 바라보며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왔다는 현실에 그동안 쌓였던 우울감이 한 번에 몰려와

한동안 정신과 육체가 무너져 내렸었다.


4식구로 시작해 3식구가 되었다가 2식구가 되었고 다시 3식구로 돌아와 지금은 4식구가 되었다.


서울에서 몇 년간 아내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함께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홀로 계실 어머니 걱정을 당분간은 하지 않아서 좋지만

아내와 어머니가 잘 지낼 수 있을지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결과적으로 둘은 서로 생각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다. 남이 보면 딸같아 보일 정도로 아내가 잘한다.

어머니도 좋아하신다. 진짜 속마음은 내가 알 길이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동안 적적하셨는지 사주에도 없던 딸이 생겼다고 좋아하신다.

아니면 무뚝뚝한 아들 둘만 키우시다 딸같은 며느리를 보셔서 좋아하시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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