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

by 리을의 생각

달리기 기록은 현저하게 줄고 있다. 달린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는 건 비밀로 하고 싶지만, 내가 나를 속일 순 없으니 참 안타깝다. ‘인터벌’ 훈련을 여름보다 적게 해서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무릎을 다친 뒤로 전력질주를 하면 통증이 느껴져 거의 지속주로만 달리고 있다.


내가 만약 4분대의 벽을 한번 깼더라면 , 분명 지금보다 훨씬 잘 달릴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그때 그 잘 달릴 때 조금 더 유지해서 달렸어야 했는데. 그래서 사람에게 “때”가 있다고 하는 건가보다. 공부를할 때, 돈을 벌 때, 사랑을 할 때. 때를 놓치면 뒤에는 훨씬 큰 비용을 지불해도 그만큼의 성과가 나오기 힘들어진다.


사랑을 할 때도 그렇다. 사랑하기 가장 좋을 나이. 이 때 사랑을 해본 사람과 안해본 사람의 연애관은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나 가능하게 하고, 서로 더 살고 싶게하고, 돋아나게 하고, 꿈꾸게 하고… 사랑하면 이렇게 되나보다 하고 행복을 정의할 수 있을 때. 서로 잔머리 쓰지 않고, 좀 더 순수한 감정에 온 몸을 내던질 수 있을 때. 임계점을 넘긴 사랑이라고 말하면 좀 촌스럽겠지만 어느 정도 타당한 표현아닐까.사랑하기 좋을 나이는 이 임계점이라는 것을 더 쉽게 넘길 수 있었나보다.


몸을 키우는 것도 그렇다. 임계점을 넘기지 못하는 운동은 결국 현상유지 이상의 큰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리고 보디빌딩에서의 임계점은 결국 ‘중량’을 늘리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체중은 어느정도까지 필수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문제는 체중의 증가는 역시 체지방의 증가를 가져오고 외모도 자연스럽게 후덕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차가 큰 부분이긴 하다) 연예인들은 이런 증량이 현실적으로 부담되기에 흔히 말하는 ‘마른근육’을 형성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오래 운동을 하고 재미를 느낀다면 당연히 몇번 정도 벌크업과 감량을 반복하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더 멋진 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보디빌딩에서 증량은 달리기에서의 인터벌로, 임계점을 넘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 신기한 건 이렇게 한번 임기점을 넘긴다면, 더이상 예전과 같은 수준이 아니다.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다. 무엇이든 쉽게 얻는 건 쉽게 사라지고 반대로 어렵게 고생하며 얻은 건 그만큼 내게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인가 보다. 비슷한 맥락으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말 그대로 수준이 달라진다.

또 무엇이 있을까. 임계점을 넘기지 못한 것들이.


‘기분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지만 계속 기분좋게 지낸다라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의 노력을 들어야한다. 고통없는 즐거움은 모순적이다. 노력없는 기분좋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만큼 기분좋음의 기준도 조금씩 높여가야하기 마련이다. 이러니저리니 해도 결국 일정량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노력을 가해야한단 소리다.


이걸 쉽게 해결하려고하는 게 아마 ‘술’ 아닐까. 노력없는 즐거움. 사람들이 퇴근하고, 금요일밤에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이미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할 여력은 없고, 조금이나마 즐겁기 위해 노력없는 즐거움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 어떤 임계점을 넘기기엔 너무 지친 날이니까.


생각해보면, 사랑도 그와 다르지 않다.

서로의 상처를 견디고, 포기하지 않고, 수없이 다투고 다시 붙잡으며 임계점을 함께 넘은 사랑은 그 후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랑의 진짜 완성은 ‘평온함’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견디며 성장한 그 흔적 속에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견디는 것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문학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