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잡념

by 리을의 생각

숙련된 러너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호흡도 안정적이다. 반대로 잘 뛰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발걸음은 투박하고 숨소리도 거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뛰고 있는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걸 알지만, 왠지 모르게 사뿐사뿐 뛰며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그래봤자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취미로 뛰지 않기에 내가 고수인지 하수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비단 달리기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것이 쉽게 보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잘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것들은 이런 느낌인가보다. 무언가를 통달할수록, 점점 쉬운 것처럼 할 수 있나보다.


그럼 사랑에 능숙한 사람은, 사랑도 쉽게 할 수 있는걸까. 이런 시덥잖은 생각. 달리는 와중에 하는 생각은 사실 대부분 이런 쓸데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쓸데없는 생각이라도 붙잡으려 달리기를 포기하지 못하나보다. 아직은, 타인의 위대한 생각보다 나 자신의 쓸데없는 생각에 더 애착이 간다.


무언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타진할 때는, 조금씩 가정을 해보는 버릇이 있다.

과연 난 달리기라는 행위를 순수하게 얼만큼 좋아하는걸까. 사실 달리기라는 그 자체의 순수한 행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살이 빠지는 결과값에 집착한 건 아니었을까? 만약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달리지 않아도 달린만큼 살을 빼준다고 하면 과연 난 달렸을까.


그리고 이런 생각은 호흡이 가빠질 때즘 서서히 옅어진다. 이제 아까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동일한 현상을 보고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만큼 난 육체적인 인간이란 걸 실감한다. 머릿속으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아무리 떠올려도, 심장과 호흡이 가빠지면 곧 그런 생각들은 저 밑으로 가라앉는다.


진지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만큼은 적당히 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 의지로 선택한 것들은 진지하게 하려 노력중이다. 그 외의 것들은 보통 나사가 빠져있다. 아마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싶다.


한 곳에 오래 산다는 건, 사실 달리는 사람에게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다. 그건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깨달은 사실이다. 예전의 내가 존재했던 거리를 달리면, 소중히 간직하고 싶던 추억도, 아무 감정없이 샅샅이 해체시켜 버린다.


‘분명 이쯤에서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업어줬었지.’


이제 상대에겐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것과 내 추억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추억이 이렇게 자주 소환되는 건 별로 바라지 않았다.


애틋한 감정도 빈번하면 곧 애틋함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추억이라고 다를 건 없다. 양조위의 화양연화가 명작인건, 이루어지지 않은 애틋함이라고 믿는 나에게 달리기는, 내 추억을 명작의 반열에서 퇴출시키려고 한다.


이제 반환점을 찍고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더 멀리 가기에는, 내일의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다.


문제는 머리로는 다 이해하고 있지만, 다시 되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내 마음이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같은 풍경을 보며 달리기는 지루할 뿐이다. 그래서 난 되돌아가는 법이 거의 없다. 그저 앞으로만 달린다. 당장은 그걸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달리면서도 조금 뒤의 내가 걱정되지만,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임계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