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by 리을의 생각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헉은 친구를 배신하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겠다고 선언한다.

그 한마디는 사회의 규범이나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내면의 양심이라는 눈동자를 응시하며 살아가겠다는 결연한 고백이었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어린 시절 이 장면을 읽은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헉의 이 한마디를 내 인생의 지표로 삼았다.”

그에게 헉은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완전함 속에서도 끝내 자기 신념을 지켜낸 존재였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다짐과 결심, 그리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약속들은 더 빛난다.

젊은 날의 다짐은 언제나 미숙하고 거칠다. 강한 육체와 서툰 경험이 만들어내는 열정은 종종 실패로 끝나거나, 치기 어린 혈기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야말로 인간의 가장 진실한 진심이 깃들어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저서 『말년의 양식(On Late Style)』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의 말년은 조화와 화해의 결과가 아니라, 끝내 풀리지 않는 모순과 비타협의 흔적일 수 있다.”

그는 나이 듦을 ‘원숙함’이나 ‘평온함’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과 끝까지 맞서 싸우며 자신을 잃지 않는 고집이야말로, 말년의 품격이라고 믿었다.

그에게 ‘말년의 양식’이란, 타협과 조화의 완성이 아니라, 끝내 굴복하지 않는 결기의 형태였다.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지드래곤은 말했다.

“요즘은 이기려고 하지 않아요. 그냥 져요.”

그 말 속에는 긴 싸움 끝에 도달한 평온이 담겨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회복탄력성이 낮아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이 말은 분명 자기 이해에서 비롯된 성숙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평온에 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싸움을 멈추며 자신을 이해하고, 또 누군가는 끝까지 싸우며 자신을 증명한다.

어쩌면 인간은 그 두 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사람이 성숙해질 필요는 없으며, 모든 싸움이 유연함으로 끝나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삶에는, 세상에는, 때로 부러지더라도 꺾이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고집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오래도록 한 e스포츠 선수를 응원해왔다.

그의 이름은 “쵸비“ 누군가의 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아마 그가 처음이었다.

꿈에 대해 말할 때 눈빛이 반짝이는 사람이 좋았는데, 자신의 포부를 말하는 그의 눈이 꼭 그랬다.


올해는 그의 데뷔 8년 차. 이제는 선수로서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올해도, 그는 우승을 놓쳤다.


그를 향한 말들이 많았다. “늘 잘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실패한다.”

대회 전 인터뷰에서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세상이 저에게 기대하는 요구치는 우승 아니면 전부 실패라고 판단한다.”


나는 작년의 패배 이후, 그가 조금은 유연해지길 바랬다. 그가 꺾일 바에 갈대 같은 유연함으로 다시 일어섰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웃음 대신 독기를, 평온 대신 결의를.

어느 순간부터 웃음이 사라진 그의 얼굴과 그의 눈빛에는 ‘이번에는 반드시‘라는 우승을 향한 일종의 절박함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일까, 올해의 그가 더욱 슬퍼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겠다는 사람만이 보여주는 독기.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에게 느낀 진심이었다.


이제 나는 내년에도 그가 유연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이 그에게 “이제는 한발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라”고 말할 때

그가 다시 타협하지 않고 이 악물고, 끝까지 달려주기를 바란다.


헉이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고 외쳤듯, 쵸비 또한 “그래, 좋다. 나는 끝까지 가겠다”고 외치길.

그의 독기와 신념이 그를 어디로 데려가든, 나는 그의 여정을 끝까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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