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1. 요한 같은 젊은 예술가 지망생이 자신의 특수성을 보편적 사실로 퍼트리거나 그렇게 착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어쨌거나 도이치에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말은 청춘 시절 유희의 상징 같은, 말하자면 마법의 주문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의 주문에 지나치게 기대면 그 효능이 점차 떨어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2.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휘 하나하나가 완전한 필연성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다고는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다. (…)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이 글을 썼던 몇 달 전의 자신은 그 필연성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의 도이치가 믿을 수 있는 건 결국 그 몇 달 전의 자기 자신뿐이라는 점도 분명해서 몇 달 전의 내가 괜찮다고 여겼으면 지금의 나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겠지, 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뒷부분을 계속 읽어 나갔다.
3. 본래 파우스트는 학문(=말)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해보겠다는 겁니다. 문학의 세계에서는 이를 파우스트적 충동이라고 부릅니다.
4. 그러나 그는 지금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힘, 행위의 태동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일단 언어화 된 힘이나 생각이나 행위는 핀으로 꽂아 표본 상자에 가지런히 넣어둔 나비처럼 두 번 다시 날갯짓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5.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6. 무엇이든 흰 종이에 검은 글씨를 적어두면, 마음 놓고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답니다.
7. ‘난 이제 곧 은퇴하니까’ 라고 생각하며 도이치 역시 그러한 논의에 좀처럼 마음을 쏟지 못한 것이 스스로도 애석하다. 그렇지만 자신보다 젊고 미래가 창창한 사람들이 자기와 마찬가지로 태연하게 있는 모습은 분명 어이가 없었다.
8. 곧바로 기억할 수 있는 이론은 대게 현실의 복잡성으로 오류를 품고 있기는 해도, 일단 이론으로서는 뛰어난 경우가 많다.
9. 아까 단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적 필연성이 있는 말만 골라서 하는 느낌이 들어 호감이 갔다.
10. 전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괴테는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은 듭니다. 그게 저에게 힘이 되었어요
11. 괴테는 개인의 한계를 꽤나 의식하고 있었어. 직업의 전문성도 강하게 주장했고, 예술은 제약 속에서 태어난다고도 말했지. 하지만 자네가 말한대로 괴테는 무한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본성을 바꿀 수도 없었어. 그러니 거기에는 스스로 경계하는 의미도 있었을 거야.
12. 토마스 만은 거기서 괴테의 시민성이 드러난다고 했어. 그 작품의 주제가 지닌 내적 무한성을 일단 외적인 완성까지 끌고 갔다는 거지
13. 결국 자신은 자기가 쓴 책을 그대로 덧쓰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잠겼다
14. 그러면 고서들이 진정한 샘물과 같아서, 그걸 한 모금 마시면 갈증을 영원히 진정시켜준단 말인가?.
16. 세상은 언제나 똑같군. 여러 가지 상태가 항상 반복되지. 어느 민족이건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살고, 사랑하고, 느끼고 있어.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17. 편해지려면 쓸 수 밖에 없다. 나는 이 짐을 목적지까지 운반해서 자유로운 몸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이렇게 ‘괴테의 명언’을 자기 문장 속에 끼워 넣자 도이치는 분명한 ‘자유’를 느꼈다. 모든 것이 성취되어 가벼워졌다
18. 회색 · 괴테의 말에 따르면 그건 이 세계에 언제나 안개가 끼어 있기 때문이래. 즉 세계는 완전한 빛과 어둠의 중간에 있다는 거지. 빛과 어둠의 대립이 색을 이루는 거야.
19. 네 노력은 사랑 속에 있어야 하고, 네 생활은 실천 속에 있어야 한다
20. 지금도 우리는 노아의 시대와 같은 무지개를 보고 있어. 그저 거기서 더 많은 이름을 읽어낼 수 있을 뿐이지.
21. 말을 찾는 건 학자의 본분이지. 구렁이 잡으러 갔다가 구렁이한테 잡아먹혀도 상관없다네. 하지만 말이란 끝까지 불편한 도구야. 도무지 익숙해지는 법이 없거든. 난 아직도 가즈코랑 싸워. 가끔 만나는 젊은 학생의 말을 가로막을 때도 있지. 누군가가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들어서 귀가 어더운 척하며 어물쩍 넘어가기도 하고 …. 그걸 대신할 도구를 도통 찾을 수 없어서 계속 쓰고 있을 뿐이야. 난 심지어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어. 가령 섹스는 어떨까. 응 그건 말보다 확실해. 친밀하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따뜻하지. 하지만 지속되지 않잖아. 역시 나한테 말이 더 잘 맞아. 이런저런 순간적인 감각에 질려 있는 세대이다 보니 불편하면서도 보편적인게 필요하거든. 결국 나한텐 기도밖에 없더라고. 즉 내가 말하는 한계를 지닌 언어를, 성령께서 번역해 신께 전해주는 거야. 그렇게 함으로써 뭐가 어지 됐든 모든 게 곧 좋아지리라고 믿는 것. 어쩌면 모든 말은 어떤 형태로는 기도가 되려 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지도 몰라
22. 지금은 그때만큼 확신에 차서 누군가를 긍정하거나, 그러기 위해 누군가를 부정하고 후회하지는 못할 것이다
23. 도이치는 요한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24. 자네를 나무란다고 해서 글이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25.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돼. 그걸 위해 부모를 마음껏 이용하렴
26. 자신의 명언 찾기는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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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준비하던 일이 있어, 한동안 즐겁게 독서할 시간도 감정도 여력도 없는 하루하루들이었다. 늘 시간이 모자라 아쉬웠던만큼, 첫 단추를 잘 끼운 뒤에는 잠시 나를 위해 꼭 3권의 책은 읽겠다는 다짐을 하며 읽을 책을 정말 신중히 골랐다. 사람을 만날 때도 해가 되는 사람을 만난 후에 끊어내는 것보다, 애초에 만나지 않는 게 현명한 것처럼 책도 분명 시간을 써도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책이 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내게 울림을 주는 책들만 골라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삶일텐데,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중 첫번째로 고른 이 책은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예전부터 그랬듯 눈길을 사로잡는 한 문장이 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예전부터 책을 고르는 기준은 어느 정도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었다. 단 한 문장이,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가.
‘완벽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루키의 말처럼 완벽한 문장을 찾는 건 아니었다. 줄곧 완벽에 대한 환상이나, 나 스스로도 그런 것을 누군가에게 바라지 않는다. 책 내용의 전반적인 내용을 지탱하는 괴테의 철학 중 하나인 ‘파우스트’의 무한한 욕망이 결국 괴테 스스로도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는 결과로 도출되는 것처럼 내가 찾던 문장 혹은 작가가 완벽하기에 좋았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01년생의 젊은 작가의 시선에서 본 사랑이 궁금했다고 말하면 진실에 가까울까. 어쩌면 그에게 질투를 느꼈던걸지도 모른다. 일년에 천권의 책을 읽었다는 그 작가의 세월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책과 글쓰기를 일찍부터 깨닫고 탐독한 그의 역사와 애정의 실천이. 딱히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해본적 없던 내게 경외와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나는 그가 발표하는 모든 작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을 수 밖에 없으리라.
사실 대학원생인 작가의 신분과 젊은 나이를 유추했을 때, 시간과 경험의 한계에서 오는 깊이의 부재를 예상했다. 좋은 글이 단순히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글의 깊이는 작가가 일구어낸 삶의 깊이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깊이와 이해는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가’ 로 요약하는 편이다. 언제나 강자보다 약자의 시선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상상력의 부재는 대게 폭력성을 동반한다. 이 작가가 따뜻한 시선의 소유자이길 내심 바랬던 것 같다
“오래되고도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30일 만에 써낸 이 책으로 오에 겐자부로처럼 젊은 나이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스즈키 유이의 수상이 수상소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여기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스즈키 유이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굉장히 반가웠다. 내 취향과 안목이 이어진다는 느낌은 언제라도 산뜻한 기분을 선사해준다.
이 작품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될만한 문장은 역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아닐까.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이미 말해진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뿐이라고.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인용은 인용에 지나지 않다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삶과 깨달음을 담아 다시 말할 때 비로소 남이 문장이 아닌 ‘나의 문장’이 된다고. 소설 속 방대한 인용의 등장 속에 아마 작가는 그 모든 인용을 마침내 자신의 언어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아낸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작가가 작품의 테마를 ‘괴테’로 잡은 건 역시 파우스트의 무한한 욕망이 실제 작가를 오래도록 괴롭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전문 영역’이 존재한다. 하루키식 비유를 하자면 ‘내가 아무리 우주비행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어도, 현실적인 공기를 담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우주비행사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교양인이란 이 전문영역들의 교집합을 넓고 깊게 이해한 사람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역을 깨닫기란 불가능하리라. 몇백년 전의 괴테가 느꼈던 이 괴로움을 01년생의 스즈키 유이는 일년에 천권의 책을 읽으며 동감했다면, 아마 이 책은 스스로가 내린 결론에 대한 대답이자, 앞으로 작가로서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한 출사표 아니었을까.
니체의 ‘영원회귀’를 모티브 삼아, 쓴 것 같은 이 문장
“세상은 언제나 똑같군. 여러 가지 상태가 항상 반복되지. 어느 민족이건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살고, 사랑하고, 느끼고 있어.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유발 하라리가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밝힌 그의 주장처럼.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삶의 의제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태어나고 자라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먼저 태어난 이들에게 사랑받고, 교육받고, 다른 이와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며 노후를 준비한다는. 이 삶의 의제는 몇천년 동안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유발 하라리의 예측처럼. 모든 것은 반복되고, 결국 한 개체로서의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그 무한한 욕망을 결코 충족시키지 못한다 해도, 닿을 수 없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언어가 지닌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더 좋아질 모든 것을 기대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장을 자신만의 언어로 쓰겠다는 이 작가의 순수한 야망을 오래도록 응원하고 싶다.